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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예술가의 일과 사랑

2년 만에 내한 공연 가진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이런 자상한 신랑을 둔 전 정말 행복한 신부인 것 같아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강수진 제공

입력 2004.11.10 15:52:00

지난 10월25일과 26일,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약 중인 발레리나 강수진이 ‘오네긴’으로 2년 만에 내한 공연을 가졌다. 그는 이번 고국 방문에 맞춰 자신의 발레인생이 담긴 에세이가
출간되는 값진 선물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02년 매니저인 툰치 쇼크맨과 결혼한 강수진이 직접 들려준 알콩달콩 신혼 생활.
2년 만에 내한 공연 가진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37)이 ‘오네긴’ 공연을 위해 지난 10월22일 고국을 방문했다. 그의 이번 방문은 10월25일과 2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오네긴’ 공연을 위한 것.
강수진이 고국으로 향하기 전인 지난 10월 중순 독일에 머물고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 시간으로 오후 3시, 독일은 오전 6시였다. 마침 토요일이라 너무 일찍 전화를 한 게 아닌가 내심 걱정했는데 그는 반갑게 전화를 받으며 이미 30분 전부터 연습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독한 ‘연습벌레’로 알려진 강수진은 이렇듯 혼자만의 연습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집에서 호흡명상과 요가 스트레칭으로 잠자는 사이 굳어진 근육과 관절을 풀어주고 몸에 활력을 불어넣은 뒤 출근하면 극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본 연습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 출근 직후의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는 제대로 된 워밍업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식으로 혼자만의 훈련을 계속해왔다고 한다.
그가 매일 아침 출근하는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은 그의 집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연습은 하루 8~9시간 동안 계속되고, 공연을 앞두고는 밤 11시까지 연습할 때도 있다고 한다.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늘 어딘가 아프고, 아프지 않은 날은 ‘내가 연습을 게을리 했구나’ 하고 반성할 정도라고.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최장수 무용수이자 유일한 종신단원
강수진의 이번 내한 공연은 지난 2002년 ‘카멜리아의 여인’ 이후 2년 만이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공연하는 세계적인 발레리나인 그에게도 고국에서의 공연은 남다른 설레임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특히 ‘오네긴’은 한국인의 정서에 잘 맞을 거라는 생각에 한국 관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작품이라 기대가 크다고.
2년 만에 내한 공연 가진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같은 작품도 공연할 때마다 감흥이 달라요.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무대 위에서의 느낌이 크게 달라지고요. 고국에서의 공연이니 세계 어느 곳에서 하는 것보다 설레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오네긴’은 보시는 분들이 모두 좋아할 만한 작품이에요.”
‘오네긴’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예술 감독을 지낸 안무가 존 크랑코의 대표작으로 오만한 청년 오네긴과 순진한 처녀 티티아나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작품. 가슴 깊이 간직한 사랑을 떠나보내며 강인한 여인으로 성장해가는 티티아나 역을 맡은 발레리나의 절제된 내면 연기가 이 작품의 백미다.
96년 ‘오네긴’의 티티아나를 처음 연기한 강수진은 그동안 “남자에게 순종적인 듯하지만 사랑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는 고결한 여인상을 뛰어난 연기력과 풍부한 감성으로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수진 역시 “내면의 강인함을 요구하는 티티아나 역할이 나의 기질과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느 작품이든 매번 공연할 때마다 느낌이 다르지만 ‘오네긴’은 특히 해를 거듭할수록 저에게서 성숙함이 배어나오는 것 같아 좋아요. 갈수록 작품과 편하게 사랑에 빠진다고 할까요(웃음).”
그동안 ‘오네긴’ 역을 맡아 강수진과 호흡을 맞춘 파트너만 여섯 명. 이번 공연의 파트너를 제외한 5명의 무용수들이 모두 은퇴했다는 사실은 사뭇 강수진의 연륜을 느끼게 한다.

2년 만에 내한 공연 가진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결혼은 아주 큰 선물’이라고 말하는 강수진. 그는 남편 덕분에 일상의 자잘한 행복을 맛보고 있다고 한다.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종신단원이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는 입단한 지 14년이 지난 무용수에게 ‘종신단원’의 자격을 주는데 현재 강수진이 유일하다. 유럽에서는 발레단 간의 경쟁이 치열하고 발레 무용수들의 자리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유럽의 명문 발레단에서 종신단원이 되었다는 건 그의 실력이 그만큼 탄탄함을 의미하는 것. 강수진은 99년 ‘무용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최고 여성 무용수로 선정되며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로 인정받은 바 있다.
남보다 다소 늦은 중학교 때 발레를 시작해 최정상의 위치에 서기까지, 그의 발레인생을 담은 에세이가 그의 이번 고국 방문 일정에 맞춰 발간됐다. 월간 ‘객석’ 기자 출신으로 오랫동안 강수진을 곁에서 지켜본 무용평론가 장광열씨가 강수진과의 충분한 교감을 거쳐 완성한 ‘당신의 발에 입 맞추고 싶습니다’(동아일보사)가 그것.
강수진이 2002년 ‘카멜리아의 여인’ 공연을 위해 내한했을 당시 결정된 일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됐으니 3년 가까운 시간을 들인 셈. 강수진은 “나이가 더 든 다음에 책을 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망설였는데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과정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내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에는 선화예중에 다니다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서 유학한 강수진이 86년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하기까지, 그리고 이 발레단에서 군무 무용수 시절을 거쳐 7년 만에 주역 무용수 자리를 따내고 95년부터 프리마 발레리나 자리에 올라 세계 최정상의 발레리나로 서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틈틈이 체크해온 강수진은 완성된 글을 읽으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제 목소리가 녹음된 걸 듣거나 제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보는 것도 참 민망한데 저에 대해 기록한 글을 읽으려니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표현한 거라 생각하니 괜찮아졌어요. 사람들이 책을 읽고 얻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에요.”
2년 만에 내한 공연 가진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이번 책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강수진의 가족사와 2002년 결혼한 남편 툰치 쇼크맨과의 결혼 생활 등 개인 강수진의 일상도 잔잔하게 서술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강수진은 2002년 1월11일 오랜 연인 툰치 쇼크맨과 결혼했다. 툰치 쇼크맨은 터키 태생으로 수진과 같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함께 활동해온 동료 무용수. 9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그만둔 뒤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고 만하임 발레단 등에서 발레 마스터로 일하고 있는 그는 결혼 전부터 강수진의 스케줄 조정은 물론 모든 비즈니스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
툰치는 강수진을 처음 본 순간 외모가 예쁘다는 것 이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반면 강수진은 자신을 향한 툰치의 사랑을 몇 년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무뚝뚝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따뜻함과 유머를 겸비하고 있는 툰치의 매력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그후 두 사람은 10년여의 긴 연애를 했다. 그 사이 강수진은 툰치로부터 두 번의 프러포즈를 받았다. 첫 번째 프러포즈는 95년, 터키 해안에서였다. 강수진은 당시 툰치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결혼을 허락할 수 없었다고 한다.

2년 만에 내한 공연 가진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강수진은 결혼 후 가족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툰치, 시어머니와 다정한 포즈를 취한 모습(왼쪽), 하피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언니 여진씨, 동생 혜진씨와의 즐거운 한때.


“남편이 처음 결혼하자고 했을 때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어요. 외국 생활을 오래하고 있지만 전 구세대라 제 인생에 결혼은 단 한번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번 하면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선뜻 ‘예스’라고 하지 못하고 시간을 더 갖자고 했죠.”
선뜻 프러포즈를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툰치의 프러포즈는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고 한다. 예술가로 산다는 게 많은 시간 고독을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데 툰치와 함께라면 그 외로움과 고독마저 즐거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결국 결혼을 미루는 대신에 두 사람은 한국에 들어와 강수진의 부모로부터 결혼을 허락받고, 가족들과 함께 조촐하게 약혼식을 치렀다. 그리고 2002년, 툰치가 다시 한번 프러포즈를 하자 강수진은 ‘이제 결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강수진에게 결혼 생활에 대해 물으니 까르르 웃으며 “이런 자상한 신랑을 둔 전 정말 행복한 신부인 것 같아요” 하고 대답한다. 결혼 전부터 강수진의 매니저 역할을 자임해온 툰치는 강수진이 공연할 극장의 수준이나 관객 동원 가능성, 수익과 지출 등 모든 비즈니스 전반을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아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터뷰 당시 내한 공연을 앞두고 있던 강수진은 “공연을 앞두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남편이 그런 것들을 다 받아주니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평생 발레 이외의 삶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강수진에게 결혼은 아주 큰 선물과 같다고 한다. 오랫동안 무대 위의 캐릭터에만 몰두해 살아온 그에게 남편이 자잘한 일상적인 기쁨을 맛보게 해주기 때문.
툰치는 특히 요리 솜씨가 뛰어나다고 한다. 요리 얘기가 나오자 강수진은 “남편은 요리를 진짜 잘해요”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내를 위해 거의 매일 요리를 하는 툰치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요리는 매콤 달콤한 카레와 생선요리. 강수진이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때면 직접 매운 요리를 찾아 나선다고 한다.
3년째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아직까지 부부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간혹 진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감정이 상해 그가 입을 다물면 남편이 먼저 “Let’s forget it(다 잊어버리자)” 하고 말한다고. 그러면 기분이 금세 풀리고 자연스럽게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강수진은 시집 식구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데 그 밑바탕에는 예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3녀1남 중 둘째인 강수진의 언니 여진씨와 여동생 혜진씨는 둘 다 하피스트로 여진씨는 현재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고, 혜진씨는 독일에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한 남동생 대준씨는 현재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 중이다. ‘한국의 로트랙’이라 불린 고 구본웅 화백이 그의 외할아버지이니 그는 ‘예술가 집안’의 자녀인 셈. 그런데 툰치의 가족들도 모두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어머니께서 오페라 성악가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세요. 돌아가신 시아버지도 성악을 하셨고요. 시동생들도 각각 비올라와 첼로 연주 활동을 하고 있으니 가족들이 모두 예술 분야에 몸담고 있는 거죠. 그래서인지 다들 국제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어요. 터키인이지만 모두 외국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요. 모두들 개방적인 편이에요.”

2년 만에 내한 공연 가진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강수진과 툰치 쇼크맨은 95년 한국을 방문해 반지를 주고받으며 약혼식을 올렸다.


어려서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타향살이를 해온 강수진은 결혼 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때문에 아이를 낳아 완벽한 가족을 이루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강수진은 현재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무용수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다. 그러나 그는 지금이 오히려 발레리나로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한다.
“나이가 든다는 게 젊었을 때와는 또 다르게 좋은 점이 많아요. 남자 무용수는 체력적인 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지만 발레리나의 경우 제 나이가 오히려 전성기일 수 있어요. 경험 하나하나가 모두 보물인데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보물을 갖게 되니 무대 위에서의 표현력도 훨씬 풍부해지지 않겠어요.”
성공한 대부분의 발레리나들이 그러하듯 그에게 예술감독으로서의 꿈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글쎄요” 하고 대답한다.
“전 오늘 당장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 생각하지 내일, 그리고 미래를 계산하지는 않아요. 언제까지나 발레세계에 남아 있을 건 맞지만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때그때 그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죠.”
강수진의 삶 자체가 그랬다. 선화예중 재학 시절 뒤늦게 발레를 시작했을 때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연소로 입단해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 때도, 군무 무용수로 7년여의 긴 시간을 무명으로 보낼 때도 그는 한번도 목표를 정해본 적이 없다. 다만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한번도 누군가를 이겨보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최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것, 모순 같지만 그의 삶은 그것이야말로 성공과 행복을 동시에 거머쥐는 비결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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