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기억하는 장면은 식당에서의 에피소드다. 샐리가 “여자는 성적으로 오르가슴을 느끼지 않았는데도 남자들이 실망할까 봐 흥분한 것처럼 연기한다”고 말하자 해리는 이를 믿지 않는다. 그러자 샐리가 즉석에서 “오우, 갓, 아아, 예스, 예스, 아아, 아아…”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마치 오르가슴에 오른 듯한 목소리와 표정을 연출한다.
대학교 때 만난 남편과 3년간의 연애 끝에 12년 전 결혼한 김은경씨(가명·35).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그는 실제 오르가슴을 느끼기 전까진 영화 ‘해리가…’를 보면서 샐리의 말에 백번 공감했다고 한다.
“남편과 섹스를 하면서 성적인 흥분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게 마치 제 잘못인 것 같아 남편에게 미안했어요. 그래서 평소 (섹스에)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오르가슴에 오른 척했어요. 여자는 좋지 않아도 마치 좋은 것처럼 연기할 수 있으니까요. 샐리의 말처럼 여자는 황홀한 척 거짓으로 연기할 수 있다는 걸 남자들은 잘 모르나 봐요.”
남편에게 알몸 보여주고 적극적인 섹스하는 게 쉽지 않아
김씨는 남들은 ‘깨가 쏟아진다’는 신혼 초에 혼자 속으로 끙끙 앓았다고 한다. 더욱이 친구들 중에서 빨리 결혼한 편이라 혼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시부모님은 2층, 저희는 1층에 살았는데, 집 구조가 어른들 눈치를 살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성관계를 할 때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었어요. 또한 성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어 남편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식이었죠. 한마디로 수동적인 섹스를 했어요.”
그는 섹스를 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위축돼 적잖이 고민했다고 한다.
“첫아이를 낳을 때까지 2년여 동안 별 느낌이 없었어요. (섹스를 할 때) 아프기만 했죠. 일종의 성교통이었는데, 성적인 흥분 없이 삽입이 돼 질내 애액 분비가 잘 되지 않았던 거예요. 남편이 섹스에 미숙해 서둘러 삽입을 했거든요. 아프다고 하면 남편이 무안할까 봐 빨리 끝내기만을 기다렸어요.”
성을 죄악시하는 잠재의식이 ‘고통스런’ 섹스를 하는데 한몫한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섹스를) 할 때 유난히 부끄러웠어요.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은 컸지만 남편 앞에서 알몸을 내보이고 적극적으로 섹스를 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자라면서 받은 엄격한 가정교육과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이 성생활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성욕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성적인 자기표현을 하지 못해 남편이 그의 성감대를 찾지 못했던 것. 성관계 도중 남편에게 자신의 성감대를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옛 어른들이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면 (섹스의) 맛을 안다고 하잖아요. 저도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러면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영화나 소설, 비디오를 보면 섹스할 때 여자들이 다들 뒤로 넘어가잖아요. 거친 신음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걸 보면서 저 느낌이 뭘까 궁금했어요. 여자들이 출산 이후에 성생활이 즐거워지는 이유는 ‘남편 앞에서 대담해지고 부끄러움이 없어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
그가 즐거운 섹스를 위해 다짐한 첫 번째 각오는 남편에게 벗은 몸을 보여도 부끄럽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자는 것이었다. 남편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는 것도, 그 반대의 경우도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졌다고. 그전까진 오럴 섹스를 해도 남편의 요구로 했을 뿐 자신이 먼저 하고 싶은 마음에 해준 적은 없었다고 한다.
“남편은 깊고 강하게 삽입하는 게 여자가 황홀경에 빠지는 지름길인 줄 알고 피스톤 운동에 열중했어요. 저는 아프기만 했죠. 그래서 어느날 용기를 내서 남편의 귀에 대고 ‘하드보다 소프트가 더 좋아’ 하고 얘기했어요. 무겁고 거친 섹스보다는 가볍게 터치하고 삽입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거죠.”
그는 그렇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하기까지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내가 원하는 섹스가 무엇인지 말하고 나니 또 다른 용기가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예컨대 가슴을 애무할 때도 유두를 손가락으로 비틀 때가 더 짜릿하다고 알려주었고, 자신도 남편의 성감대가 어디인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는 것.
“남편과 제가 서로의 몸을 애무하면서 신체적 감각과 쾌감에 생각을 집중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거죠. 성적 흥분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도록 전희시간을 늘렸고요. 오럴섹스를 할 때도 예전에는 남편이 저에게 한 다음 제가 남편을 해 줬는데, 어느 날 (남편이 제 성기를) 애무해 짜릿한 느낌이 드는 상태에서 (남편이) 삽입하니까 ‘아, 이런 게 오르가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전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유두가 단단해지고 커지는 몸의 변화를 직접 체험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는가 싶더니 질이 반사적으로 수축을 반복하더라고요. 클리토리스와 질 오르가슴을 동시에 느끼게 된 거지요. 짧은 시간 동안 질 내부에서 강한 수축이 반복적으로 이뤄져 극치감을 맛본 거예요. 오르가슴을 알기 전에는 고통스런 ‘작업’에 불과했던 섹스의 참 묘미를 알고 나니 세상이 달라져 보이더라고요.”
오르가슴을 느낀 이후 섹스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됐다는 그는 “부부사이에 성적 친밀감이 더해져 결혼 생활에 활기가 생겼다”면서 “남편이 나를 애무할 때 슬며시 남편의 손을 제 성감대로 이끌어 만질 수 있도록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남편은 여러 가지 체위를 시도하는 편이에요. 어느 땐 요가에 가깝다고 할 만큼 고난도의 체위를 요구하기도 해요. 예전엔 아무 말 하지 않고 재미있는 척 응했는데 이제는 안 그래요. 저는 후배위를 아주 싫어해요. 남편은 그 체위가 자극적이고 좋다지만 전 깊게 삽입돼 아프고, 삽입한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를 애무해도 그 체위가 싫어서 그런지 별다른 느낌이 없더라고요.”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를 낸 그는 자신의 재미없는 섹스 트러블을 해결하는 첫 번째 단추가 부끄러움을 벗어던지는 일이었고, 두 번째로 전희를 충분히 한 후 결합하는 것임을 터득하게 됐다고 말한다. 남편이 ‘간단히’ 애무하고 삽입하려고 하면 ‘조금 더’라는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남자들은 특별한 전희 없이도 오르가슴을 느끼지만 여자의 몸은 그게 아니에요. 전희를 하지 않고 결합하는 것과 한 후에 결합을 하는 것은 천지차이죠. 남편이 전희를 빨리 끝내려고 하면 제가 남편을 애무하면서 결합의 시간을 늦춰요. 식스나인(일명 69체위)도 오르가슴을 알기 전에는 그저 부끄러운 체위일 뿐이었는데 오르가슴을 알고 난 이후에는 쾌감이 높은 체위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는 여성이 주도권을 잡고 움직이는 속도와 삽입의 깊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여성상위 체위가 가장 좋다고 한다. 남편이 자신의 가슴을 눈으로 바라보면서 강한 자극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슴이나 다른 곳을 애무하는 일도 가능해 성적 극치감을 높여준다는 것.
“오르가슴을 느끼기에 좋은 또 다른 체위는 정상위예요. 남편이 삽입한 채 양손으로 클리토리스와 유두를 각각 자극하면 오르가슴에 쉽게 도달해요. 단순히 피스톤 운동을 할 때와는 달리 쾌감이 더해지거든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섹스를 하고 난 뒤의 시원한 느낌도 좋아요. 마치 사랑이 확인된 가운데 잔잔한 평화를 누리는 듯한 느낌이 독특하거든요.”
부끄러움 떨치고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의사표현하며 성감대 찾아
그는 섹스를 할 때 남편은 지나치게 서두르고 자신은 수동적으로 임한 것이 ‘문제’였음을 알게 된 이후 성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남성은 정액을 분출하는 사정을 통해 쾌감을 느끼지만 여성은 아주 섬세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천천히 달아오르면서 극치에 오른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둔다는 것.
“아마 남자에게 섹스는 생물학적 행위이고 여자에게는 감성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 차이로 인해 성교통이 심하지 않았나 싶어요. 여성은 워밍업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남자들이 그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성적인 기쁨과 최고조의 흥분에 달하는 순간을 경험한 그는 “더 이상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 연기하면서 사는 여성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여자의 몸과 마음은 남자와 달리 복잡해요. 성욕의 표현방식이 서투를 뿐 여성도 잠재된 성욕이 강하다고 봐요. 많은 영화에서 모든 성교의 절정으로 여자의 오르가슴이 등장하듯 세상의 모든 여성이 섹스 할 때 오르가슴에 도달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부부의 성생활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잘못된 고정관념을 꼽았다. 자신이 성교통을 해소하는 방법을 쉽게 찾지 못한 것도 남편과의 성관계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남편이 혹시 나를 헤픈 여자로 보지 않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
“요즘엔 일주일에 2~3번 정도 남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요. 부끄러움을 많이 벗어던졌지만 아직도 불을 켜고는 못해요. 남편이 거실 소파에서 TV를 보면서 앉은 자세로 하자고 하는데 그러면 밖에서 누가 볼 것 같아서 그건 아직 잘 안되더라고요.”
말투며 외모, 걸음걸이까지 천상 여자라는 느낌을 주는 그는 “딸에게도 성에 대한 당당함과 여자도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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