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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요즘 최고 인기남 ②

영화 ‘우리 형’에서 철부지 반항아로 열연하는 원빈

“겉으론 미소년 같지만 제 연기 속에는 땡볕에서 뛰어놀던 투박한 어린 시절이 배어 있어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이승재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진인사 제공

2004. 11. 03

올 초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1천만 관객 시대를 연 원빈이 지난 10월8일 개봉한 ‘우리 형’으로 또 한번 관객몰이에 나섰다. ‘꽃미남’의 대표주자로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은 원빈이 직접 들려준 영화 촬영 뒷얘기 &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

영화 ‘우리 형’에서 철부지 반항아로 열연하는 원빈

그가 “형”이라고 외칠 땐 너무 자연스럽다. 그리고 늘 눈물이 난다. 1천만 관객 동원의 신화를 이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형”을 부르며 울부짖던 동생, 원빈(27). 그가 다시 “형”을 부르며 돌아왔다. 10월8일 개봉한 영화 ‘우리 형’에서 경상도 한 마을의 ‘주먹 짱’ 종현 역을 맡은 것.
영화에서 원빈은 이른바 ‘언청이’(구순구개열)지만 공부 잘하고 착해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형 성현(신하균 분)을 때로는 시기하면서도 남들의 놀림으로부터 보호해준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형에게 의존하는 동생의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이 영화에선 제가 형을 보호하는 입장이에요. 기댈 수 있는 형과 보호해줘야 할 형, 둘 다 마음에 들어요(웃음). (장)동건이 형은 그야말로 ‘선배’ 같아요. 제가 의지할 수 있고 저에게 힘이 돼주죠. 반면 (신)하균이 형은 친근해요. 뭔가 끈끈한 게 있죠. 하균이 형은 제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요.”
원빈은 이번 영화에서 엄청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스포츠 머리에 삐쭉 스크래치를 내는 외모상의 ‘모험’을 감행하는가 하면 입으로는 거친 욕을 쏟아내는 것. “이 ×새끼들아. 내 ×라 피곤하거든? 다음에는 떼로 덤비라, ×발 놈들아” 하며 싸움질을 일삼는 원빈의 모습은 분명 당혹스럽지만, 그의 이런 ‘능청맞고 뻔뻔스러운’ 변신은 이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애를 먹었어요. 가장 힘든 건 내레이션이었죠. 대사는 그냥 경상도 어투로 하면 되는데, 내레이션은 경상도 사람이 표준말을 하려는 것처럼 말해야 하니까 정말 어렵더라고요. 진짜 제가 할 수 없는 발음이 있을 땐 포기하고 연기에 그만큼 더 전념했어요.”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한층 남자답고 성숙해져
원빈은 ‘우리 형’에서 여고생 미령(이보영)의 모습에 홀딱 반해 “나는 당신의 보디가드. 사랑의 보디가드. 나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주세요. 새벽에도 달려갑니다” 하는 투박하기 그지없는 연애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부터 자신의 이미지가 다소 남성적으로 변한 듯하다고 말했다.
“늘 ‘꽃미남’ 혹은 ‘미소년’이란 얘기를 들었는데, 요즘 한층 강인해지고 성숙해진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느낄 만큼요. ‘태극기 휘날리며’가 제 연기의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이렇게 변한 모습이 작품이나 광고에서도 묻어나죠. 나이를 좀 먹어서 그런가? 물론 광고는 메이크업이 짙고 수염도 기르고 하니까 더 남성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요.”
‘미소년’의 얼굴을 벗고 이제 ‘남자’가 되고자 하는 원빈이지만, 그에겐 왠지 눈물이 참 잘 어울린다. 그는 “이번 역할은 ‘꼭지’라는 TV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캐릭터와 비슷하다. 순수하고 맑지만 강하다”면서 자신과 눈물의 궁합에 대해 이야기했다.
“드라마나 영화나 제가 울지 않은 작품은 거의 없었어요. 겉은 강하지만 속은 여리고 순수한 이미지가 저에게 맞았죠. 눈물이 저와 맞는 거 같아요. 뭔가 맺힌 게 많아선지…. 누나가 그러는데, 다른 배우들은 슬프게 울지만 전 서럽게 운대요.”

영화 ‘우리 형’에서 철부지 반항아로 열연하는 원빈

TV 드라마 ‘꼭지’에서 여덟 살 연상의 다방 마담에게 “왜 우린 안 된다는 거야!” 할 때도, 드라마 ‘가을 동화’에서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니?” 할 때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형, 우린 같이 돌아가야 돼”라고 할 때도 그는 늘 뭔가를 눈물겹게 토해냈다.

도회적인 외모와 달리 가로등 하나 없는 산골에서 유년 시절 보내
휴대전화 광고 모델로 활동하면서 ‘첨단’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원빈의 과거는 첨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산골에서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단 저는 외모로만 보여지고 저의 뒷이야기들은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그래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제 작품 속에 녹아 있고, 또 힘들었던 삶이 캐릭터에 배어나오는 것 같아요. 저를 ‘꽃미남’이니 ‘미소년’이니 하지만, 실제 영화나 드라마에선 그런 느낌들을 못 받으셨을 거예요.”
원빈은 “예전엔 인터뷰에서 고향을 강원도 정선이라고 했는데, 이젠 여량이라고 정확히 말한다”면서 “여량을 사람들이 잘 몰라서 편의상 정선이라고 한 건데, 고향 분들이 섭섭해하시더라”며 웃었다. 그는 자신의 지난 시절에 대해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묻지 않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은 “내성적이라기보다는 낯을 좀 가리는 편”이라고 말한다.
영화 ‘우리 형’에서 철부지 반항아로 열연하는 원빈

원빈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한층 성숙해진 느낌이라고 한다.


소년 시절 원빈은 굉장한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그는 “싸움은 별로 안 했지만 막상 싸우면 맞지는 않았다”며 운동은 물론 남자애들이랑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태권도를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고기 잡고 미역 감고 구슬치기하고 딱지치기하고 뛰어놀다가 해질 무렵이면 누군가 ‘이제 저녁 먹으러 들어가자’고 외쳐요. 그러면 모두들 시커먼 얼굴로 집에 들어갔죠. 저녁밥을 먹고 나면 세상이 그냥 까맸어요. 마을에 가로등이란 게 없었거든요. 뒹굴거리며 이런저런 공상하다가 잠자는 것밖엔 할 게 없었죠. 지금처럼 샤워하고 자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시골이지만 어려서부터 너무 잘생겨서 혹시 ‘왕따’당하진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허허허” 웃으며 “그런 산골에서는 땡볕에서 하루 종일 뛰놀다 보면 얼굴이 거무튀튀해져 누구나 똑같이 보인다”고 했다.
소년 시절 원빈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다름 아닌 ‘브라보콘’이었다고.
“그땐 (브라보콘이) 3백원인가 했어요. 그건 명절 때나 먹을 수 있었죠(웃음). 아니면 친인척이 찾아오거나, 집안에 행사가 있거나, 엄마의 기분이 무척 좋을 때 겨우…. 평소 과자나 아이스크림은 꿈도 못 꿨는데, 그건(브라보콘은) 아이스크림 하나에 들어 있는 게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먹으면 마음이 뿌듯해졌어요.”
‘우리 형’에서 원빈은 어머니가 형의 도시락에만 쌀밥 밑자락에 소시지를 깔아주는 것에 대해 섭섭해하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웃어넘긴다. 원빈은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싸주던 도시락에 얽힌 정겨운 추억도 떠올렸다.

영화 ‘우리 형’에서 철부지 반항아로 열연하는 원빈

내성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원빈은 의외로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호탕한 성격이었다.


“당시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는 기본이고, 소시지를 싸주면 좋고, 거기(소시지)에 달걀을 덧씌워주면 더욱 좋았죠(웃음). 겨울이면 4교시가 시작되기 전 난롯불 위에 양은 도시락통을 올려놨어요. 도시락 밥 밑에 콩기름을 약간 깔고 밥 위에 김치를 얹어놓은 뒤 1시간이 지나면 아주 훌륭한 ‘김치볶음밥’이 됐죠. 그 도시락이 가장 맛있었고 기억에 남아요.”
학창 시절 외모 때문에 여학생들한테 꽤 시달렸을 거라는 짐작과 달리 원빈은 “시골에서 춘천으로 유학을 갔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다. 친구들은 여자친구 얘기도 많이 하고 미팅도 하고 소개팅도 했는데, 당시 나는 여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고교 3년 내내 여자를 만나본 기억이 없다”면서 “다만 가슴 떨리는 사랑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그건 몰래 지켜보고 좋아했던 짝사랑이었다”고 귀띔했다.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 생활에 회의 느끼면서 연예인 꿈꿔
‘우리 형’에서 종현은 형인 성현을 “너” 또는 “성현아”로 부르지만, 실제 원빈은 어릴 적부터 다섯 살 위의 형을 이렇게 부른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형은 어릴 때부터 항상 저를 믿어주고 조용히 뒤에서 바라보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어요. 우리 집 남자들, 아버지와 형, 저 모두 하나같이 조용했거든요. 반면 우리 집 여자들은 무척 활발하고 쾌활했죠. 누나들과는 꽤 티격태격했어요. 아마 누나를 누나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웃음). 뭐 이런 거 있잖아요. ‘난 남자고 넌 여자니깐. 널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단순하고 철없는 생각….”
마침 그와의 인터뷰는 원빈의 큰누나 김혜경씨(원빈의 본명은 ‘김도진’이다)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일본식 어묵집에서 진행됐다. 김씨는 “빈이가 어려서부터 너무 예뻐서 열 살 위인 내가 늘 업고 다녔다. 부모나 형 누나들의 사랑을 무척 많이 받았다”고 회고했다.
원빈의 큰누나가 서울 정착에 성공하면서 동생들이 하나 둘 상경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관련 회사에 다니기 위해 상경한 원빈이 문득 연예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신문에서 한 연예인의 재충전을 다룬 ‘3개월 동안 쉬겠습니다’란 제목의 기사 때문.
“매일 출퇴근하는 생활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였어요. 기사를 보니 연예인은 돈도 잘 벌면서 쉬고 싶을 때 쉬는 데다 그것조차도 대단한 일처럼 알아주더라고요. 또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가 나중에 재개하면 재개했다고 관심을 쏟아주고요. 평소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바로 저거다’하는 생각이 번쩍 스쳤어요. 그땐 정말 10분의 1도 몰랐어요. 톱스타가 흘려야 하는 눈물을 말이에요.”
96년 한 케이블 TV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합격하면서 연예계에 첫발을 디딘 원빈의 스타성을 첫눈에 알아본 이는 다름 아닌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김이었다. 앙드레김은 원빈을 보는 순간 바로 케이블 TV로 전화를 걸었고 유니세프를 위한 자선 패션쇼 무대에 원빈을 세웠다. 앙드레김은 지금도 원빈에 대해 “꿈의 눈빛을 가진 배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막 이쪽(연예계) 일을 시작하려던 새내기였죠. 케이블 TV의 한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잠깐 나왔는데, 앙드레김 선생님께서 우연히 보시고 연락을 주신 거예요. 전 그 당시 시골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데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 앙드레김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도 잘 몰랐어요. 제가 방송국 사람들에게 ‘앙드레김 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굉장히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궁금했죠.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가 왜 나를 찾는 걸까.’ 제가 패션쇼 무대에 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영화 ‘우리 형’에서 철부지 반항아로 열연하는 원빈

결국 그는 그토록 소망하던, ‘CF 한 건에 수억원씩 벌고,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여행도 갈 수 있는’ 톱스타가 됐지만 요즘 복잡한 고민에 시달린다고 털어놓는다.
“제가 나오는 광고 포스터들이 시내에 쫙 깔린 걸 보면 너무 부담스러워요. 늘 주목받는 입장이다 보니…. 올라서기도 어렵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가 더 어렵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저는 더 이상 멈출 수가 없어요. 앞을 보면 가파른 오르막길이고, 뒤를 보면 까마득한 내리막길이고. 저를 보는 수많은 시선, 제가 만들어낸 환상…. 조금이라도 제가 삐끗하고 안 좋은 모습을 보이면 전 단 한 방에 추락하고 내리막길로 꽂히겠죠? 그래서 항상 긴장하고,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이걸 깨는 게 제 숙제예요. 그래야 제 연기도 제 생활도 더 나아질 거라고 믿어요.”
갑갑하고 쓸쓸할 땐 팬들이 보내온 선물과 편지가 위안이 된다고 한다. ‘원빈…씨,…바…가…우…요(원빈씨, 반가워요)’라고 일본인 팬이 서툰 한글로 써 보낸 편지엔 따스한 진심이 녹아 있다고.
“사적인 시간이 전혀 없고 그래서 더 외로우니까, 예전에 혼자 있던 시절이 굉장히 그리워요. 사회와 완전히 차단돼 순수하고 자유분방하게 지내던 때가요. 요즘엔 저도 모르게 때가 묻고 가식적인 면이 생겨요. 그런 나 자신을 볼 때마다 너무 싫어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제가?”
겉으로 풍기는 도회적인 이미지와 낯가림이 심한 미소년의 이미지가 겹쳐 인터뷰가 쉽지 않을 거라 예상됐던 원빈. 그러나 그는 의외로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털어놓는 솔직한 젊은이였다. 그동안 보여줬던 그의 눈물연기에서 가슴 뭉클한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 것은 이처럼 세련되지 못한 과거와 정상의 자리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감추지 않는 막내둥이 기질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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