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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딛고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로 연기 복귀한 허준호

“이혼 위기 맞는 역할이라 망설였지만 팔자로 알고 연기에 충실할 생각이에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4.11.03 11:39:00

탤런트 허준호가 돌아왔다.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한 그가 개인적인 아픔을 딛고 연기 활동을 재개하기까지의 과정과 3년간 시련을 겪은 끝에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사업에 대해 처음으로 속속들이 털어놓았다.
아픔 딛고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로 연기 복귀한 허준호

탤런트 허준호(40)가 KBS 새 주말드라마 ‘부모님 전상서’로 1년 만에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드라마 ‘올인’과 영화 ‘실미도’에서 열연하며 SBS 연기대상 남우조연상과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주가를 높였던 그였기에 그간의 공백은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 사이 사업적으로, 가정으로 큰 아픔을 겪은 그를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부모님 전상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마작가 김수현씨가 대본을 쓰는데다 탤런트 김희애가 출연하는 터라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몰고온 작품으로 허준호는 김희애의 남편 박창수 역을 맡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출연 소감을 묻자 “저로서는 영광이죠. 두 분 모두 말이 필요 없을 만큼 대단한 분들인데, 그런 기회를 마다할 바보가 어디 있겠어요” 하며 웃었다. 하지만 처음 그는 바보가 되기를 자처했었다.
“사실 좀더 쉬고 싶었어요. 김수현 작가가 저를 고집한다는 걸 알면서도 한 달 동안 도망다녔죠. 하지만 담당 PD는 물론 제작본부장까지 사무실로 찾아와 협박(?)하다시피 하니까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는 지난 1년 동안 ‘불멸의 이순신’ 등을 비롯한 모든 출연 제의를 사양해왔다. 아직은 카메라 앞에 설 때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직은 카메라 앞에 설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1년 동안 모든 출연 제의 거절
“제가 뮤지컬을 하든 영화를 하든 드라마를 하든 사람들은 저를 보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거잖아요. 이전까지는 저도 늘 그분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작품에 들어갔다고 자부해요. 솔직히 이번엔 그렇지 못했어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으로 촬영을 시작했는데, 막상 카메라 앞에 서니까 신명이 나더라고요. 욕심도 생기고…. 재미있는 게 지난해 10월 이혼하고 나서 딱 일주일이 지나니까 이혼남 배역이 들어오더라고요(웃음). 그후로도 이혼남이나 이혼 위기에 처한 남편 역할만 잇따라 들어왔죠.”
‘부모님 전상서’에서 그가 맡은 배역도 아이가 자폐아인 것에 대한 실망감과 사업 실패가 겹치면서 아내(김희애 분)를 구박하고 외도하다 이혼 위기에 처하는 역할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시청자는 드라마 속 인물과 이를 연기하는 배우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보셔도 할 수 없죠. 그게 제 팔자라고 생각해야죠. 처음엔 그게 두려워서 안 하려고 했는데 문득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두려워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젠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제 배역에 충실할 생각이에요.”
‘부모님 전상서’에 대해 그는 남자주인공이 바람이 나고 이혼 위기에 처하지만 결코 불륜 드라마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점점 희망이 사라지고 각박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아름다운 드라마라며 그렇게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탤런트 김희애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처음이지만,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에 몇몇 연기자로부터 김수현씨가 대본연습을 할 때 깐깐하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한판 붙을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아픔 딛고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로 연기 복귀한 허준호

“첫날 대본연습을 할 때 일부러 김수현 선생님 옆자리에 앉았어요(웃음). 그런데 막상 연습에 들어가니까 분위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정말 연극연습을 할 때처럼 진지하고 좋았어요. 사실 어떤 드라마는 대본연습이 너무 무성의하거든요. 더욱 놀란 건 김수현 선생님이 연기자들의 대사, 호흡까지 지적해주는데 잘못된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맞는 말만 하시니까 싸울 수도 없고…(웃음).”

3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아버지 이름 내세운 장강엔터테인먼트 설립
지난 1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에겐 무척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힘든 일을 당하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일부러 여행을 갔다가도 일정을 채우지 않고 곧바로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여행을 떠나면 오히려 견디기 힘들었어요. 차라리 일에 파묻혀 지내는 게 낫더라고요. 그래서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했어요. 밤이면 사람들 모아놓고 술을 마시고…. 한때는 두주불사로 마셨는데, 드라마 출연을 결정하면서 딱 끊었어요.”
그를 붙잡아준 것은 사업이었다.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엔터테인먼트사업을 준비한 그는 그동안 수차례 좌절을 겪은 끝에 두 달 전 ‘장강엔터테인먼트’란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이상한 사람들을 파트너로 만나 고생을 많이 했어요. 결국 혼자 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죠.”
회사명은 그의 아버지 이름에서 따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아버지 허장강은 60년대 우리 영화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였다.
“처음엔 다른 이름이 있었는데, 제가 일부러 아버지 이름을 걸었어요. 우선은 제가 더 책임감 있게 일하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앞으로 같이 일할 파트너들에게 더 이상 장난치지 말라는 뜻에서예요. 그들도 양심이 있다면 아버지 이름까지 걸고 하는데 잔꾀를 부리지는 않겠죠.”
사업을 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그는 지난 일은 다 훌훌 털어버렸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자기 잘못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
“제가 잘못했으니까 사기를 당했겠죠. 덕분에 세상을 많이 알게 되고, 인생공부도 했어요.”
장강엔터테인먼트는 배우들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아니라 뮤지컬도 만들고, 연극도 하고, 드라마와 영화도 제작하는 종합기획사다. 모두 그가 경험해본 분야이기 때문에 자신이 있다고. 다만 경영능력이 부족해 현재 전문가들로부터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월트디즈니라고 보시면 돼요. 월트디즈니 이름으로 영화도 제작되고, 드라마도 나오고, 뮤지컬 공연도 하잖아요. 그게 진짜 엔터테인먼트예요.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기획사가 없어요. 제가 처음으로 그 일을 시작할 거예요.”
첫 작품으로 준비중인 것은 뮤지컬 ‘갬블러’. 과거 신시뮤지컬컴퍼니에서 공연했던 ‘갬블러’는 “평생 해도 좋을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가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뮤지컬이다. 국내 공연에서 성공한 것은 물론이고 2002년 월드컵 직후 일본에서 공연을 했을 때도 전회 매진을 기록하고, 기립박수를 받는 등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다.
“국내보다는 중국과 일본, 동남아 등 세계시장을 겨냥할 거예요. 현재 중국과 일본과는 공연계약 체결을 앞둔 상태예요. ‘부모님 전상서’가 내년 4월에 끝나니까 내년 5월쯤이면 중국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을 거예요.”

아픔 딛고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로 연기 복귀한 허준호

배역의 비중보다는 작품을 보고 선택한다는 허준호.


그는 또한 영화제작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현재 형사 이야기를 다룬 영화와 전설을 소재로 한 영화 시나리오를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아버지가 생전에 하고 싶었던 일 중에 준비만 하다 결국 못하고 돌아가신 게 영화사를 운영하는 것이었어요.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셨죠. 배우가 영화사를 차리면 망한다는 속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 자신 있어요. 배우여서 망하는 게 아니라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외에도 그의 머릿속엔 뮤지컬 전용극장 건립 계획이 세워져 있다. 벌써 건립 예정 후보지까지 물색해놓은 상태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84년에 데뷔한 그는 올해로 연기 생활 20년째를 맞는다. 그의 매력은 악역을 해도 차가운 인상 뒤에서 배어나오는 고독함이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한다는 것. 특히 영화 ‘실미도’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1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마음 정리 안돼
“그때그때 주어진 역할에 저를 맞춘 것 뿐이에요. 작품에 저를 녹아들게 한다는 게 저의 연기관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연기할 수 있는 여백이 있는 배역이라면 극중 비중을 따지지 않고 했어요.”
영화 ‘실미도’가 그랬다. 사실 몇 년 전에도 실미도를 소재로 한 영화가 기획되고 있었다. 당시 그에게 유일한 생존인물인 조 중사 역할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 작품에선 조 중사가 공동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도 같은 조 중사 배역이 들어왔다. 역할 비중은 훨씬 줄어 있었지만 그는 자신에게 맞는 배역이라 생각했기에 주저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 그 결과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드라마 ‘올인’도 마찬가지. 당초 그에게 출연 제의가 온 것은 다른 배역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놉시스를 보던 중 한 인물이 강하게 들어왔다. 16번째로 나와 있는, 인물 설명도 주인공의 감방 친구라는 단 한줄뿐인 단역이었다.
“연출자에게 누가 그 역할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3~4명에게 의사를 타진했는데 아무도 안 하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 좋은 배역을 마다하다니 정말 바보들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걸 하겠다고 했죠. 제가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공간이 보였거든요. 제 생각대로 ‘올인’은 ‘복수혈전’ 이후로 제가 드러난 작품이 되었죠.”
그는 악한 역할을 하면 다음엔 착한 역할을, 영화를 했으면 다음엔 드라마나 뮤지컬을 하는 식으로 끝없이 변화를 주고 있다.
“어느 한곳에 고착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단련하는 거죠. 그래야 팬들에게 좀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전 악역을 했을 때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드라마 ‘왕초’에서 김춘삼(차인표 분)을 괴롭히는 발가락 역할을 맡았을 때도 반응이 뜨거웠어요. 길을 가다 돌에 맞기도 했으니까요(웃음).”
인터뷰 내내 그의 표정은 비교적 밝았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욕이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에게 “이번 드라마 출연이 마음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하자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떻게 정리가 되겠어요? 안돼요. 이제 겨우 1년이 되었을 뿐인데, 벌써 정리가 되었다면 미친 놈이죠.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빨리 털 수 있겠어요? 시간이 더 지나야 정리가 되겠죠. 지금 생각엔 평생을 안고 살아갈 것 같아요.”
그는 과거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기가 남자니까 자신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 그의 말처럼 남자답게 힘차게 연기와 사업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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