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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표 내고 소설가로 변신,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전수찬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4.10.11 11:14:00

사람간의 ‘소통’이 그리워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소설가 전수찬. 아내와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딸아이도 색다르게 키우는 그가 들려주는 이색적인 삶.
대기업 사표 내고 소설가로 변신,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전수찬

결혼한 연상녀와 미혼인 연하남과의 1주일간의 동거를 그린 ‘어느덧 일주일’을 펴낸 전수찬.


“세상에 쓸모라고는 없는 녀석이라 생각할 무렵, 소설을 쓸 수 있게 돼 기뻐요.” 삼성SDS, 삼보컴퓨터 등에서 6년 동안 데이터베이스 설계 일을 했던 전수찬씨(36)는 지난 여름 장편소설 ‘어느덧 일주일’로 제 9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어렸을 적부터 가슴에 품었던 소설가의 꿈 때문에 3년 전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뒀어요. 조직 속에서 하루하루 ‘나’를 잃어가는 게 싫더라고요. 그래도 딸아이 분유 값은 벌어야 하니까 낮에는 공공근로를 했죠. 대학도서관에서 책 정리도 하고 동사무소에서 복사도 하면서 밤에는 소설을 썼어요.”
장편소설 ‘어느덧 일주일’은 결혼한 연상녀 기연과 미혼인 연하남 준태가 나눈 1주일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남편이 1주일간 집을 비운 사이 기연은 자신의 아파트로 준태를 불러들인다. 준태는 마치 이 집의 오래된 주인이었던 것처럼 기연과 함께 음식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섹스를 나눈다.
그렇지만 주인공들에게 죄의식 같은 것은 없다. 불륜에 대한 강박관념도 로맨스에 대한 보랏빛 환상도 없다. 섹스에 대한 탐닉도 일상을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없다.
‘나는 가끔 기연씨네 아저씨에 대해 생각했다. 죄책감 같은 것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기연씨에게 나는 그녀 삶의 어떤 부분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를 만날 때 항상 삶 전체로 대해주었다. 나 또한 그녀에게 언제나 그렇게 대했기 때문에, 이기적인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아저씨와의 관계를 생각하여 괴로워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어느덧 일주일’ 중에서).
작가는 일탈도 일탈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촉수가 모조리 잘려버린 현대인들의 불감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떤 독자들은 제 소설이 ‘쿨해서 좋다’고 하지만 전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소설 속 주인공들은 결코 상처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아요. 현대인들이 아무리 극도로 단절된 상태에 있고 또 문학작품에서 그런 단절을 멋있게 표현한다 해도 결국 모든 사람들은 ‘소통’을 바랄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 점에 주목했고 소설 속에서 기연과 준태의 ‘소통’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그 역시 대기업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많은 단절을 경험했고 누군가와 소통하기를 희망했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나를 움직이는 건 내가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적 관계라는 것, 그래서 그 실체도 없는 녀석이 마치 나인 듯이 나서서 움직이고 있는 것’ 자체를 견딜 수 없어서 대기업 회사원의 명함을 버렸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피부 깊숙이 다가가고 싶어서 회사를 관두고 아내와 같이 60년대 록음악을 틀어주는 술집을 운영했어요.”
그와 아내 이유지현씨(33)는 비틀스 음악을 비롯해 60년대 록음악을 거의 광적으로 좋아한다. 이들이 2년간 연애를 할 때도 줄기차게 찾아다닌 곳은 놀이공원이나 유원지가 아니라 음습한 술집. 그것도 록음악이 고막을 찢을 듯 쏟아져 나오는 집만 골라 다녔다. 전씨가 개인적으로 소장한 록음악 음반만 해도 3천 장이 넘는다고 한다.
“술집을 하면서 손님들이 안주 시키면 제일 싫어했어요. 속으로 ‘술이나 마실 것이지. 나도 놀기 바쁜데 안주는 왜 자꾸 시키나’ 그랬죠. 장사가 목적이 아니라 음악 듣고 춤추기에 바빴어요.”
그러니 장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매출이 전혀 없는 날도 많았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았어요. 전기세도 영업용으로 하면 싸게 냈을 텐데 가정용으로 신청을 해서 한 달에 몇십만원씩 냈다니까요. 생활비만 벌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자고 차린 술집이었는데 얼마 못 가 망했죠.”

대기업 사표 내고 소설가로 변신,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전수찬

남편이 셈이 흐리면 부인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은데 그의 부인은 예외다. 남편과 쌍둥이다.
“아내요? 저보다 더해요. 제가 회사 관둔다고 할 때도 ‘너 하고 싶은 것 해보라’면서 관대함을 보이더니 제 퇴직금으로 혼자 프랑스 여행을 떠난 사람이에요.”
부부가 사는 방법이 참 이채롭다 싶어 “아내가 여행경비로 퇴직금을 다 탕진했어요?” 하고 묻자 그가 픽 웃더니 “설마 양심이 있지 다 탕진했겠어요?” 한다.
그의 부인 역시 대기업에 다니다가 ‘자기 색깔’을 찾아보겠다고 여러 가지 도전을 거듭하고 있고 지금은 영어학원 강사로 일한다. 부부 모두 어떤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데 결혼생활도 남들과는 사뭇 다르다.
“저희 부부는 호주제에 반대하는 의미로 혼인신고를 거부하며 살고 있어요. 결혼식만 올렸죠. 집도 공동명의로 해놓았고요.”
두 돌 된 딸 규민이가 태어날 때도 혼인신고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주민등록상에 ‘합가’라는 형태로 저희가 하나의 가정을 이룬 것으로 인정을 해줘요. 저희 관계는 ‘동거인’으로 표시되어 있고요.”

“고부갈등, 어머니 편 들다 아내 편 들고보니 해결책이 보여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일상생활도 ‘창의적’이다.
“저희 부부는 청소를 안 해요. 상대방이 청소를 안 해도 서로 나무라지 않죠. 대신 아이 보기는 늘 같이 해요. 서로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어느 한쪽에만 아이 보기를 맡길 수는 없잖아요.”
이렇게 여러 모로 ‘튀는’ 구석이 있는 부부이다보니 결혼 초 집안 어른들과 갈등의 골이 좀 깊었다고 한다.
“결혼 6년 차가 되니까 이젠 서로 많이 이해하고 편해졌는데 결혼 초기에는 고부갈등 때문에 집안이 좀 시끄러웠어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소통’에 관한 문제죠. 저도 그 문제가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해결책은 저한테 있었어요. 처음 고부갈등이 불거졌을 때는 제가 어머니 편을 들었는데 문제가 점점 더 꼬이더군요. 지금은 아내 편을 들죠. 그런 태도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더라고요.”
그의 관심사는 일상에서도 그렇고 소설 속에서도 ‘소통’에 관한 문제인데 소통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소통은 옳고 그릇됨의 문제가 아니라 ‘포용’에 가깝다고 보고 싶어요. 나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다는 식의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중요해요. 소통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놓치지 않으면 소통하기를 원하는 사람과 언젠가는 소통할 수 있게 마련이에요.”
작가 전수찬씨는 “이제 딸의 가정환경조사서의 아버지 직업란 앞에서 연필 끝을 씹어가며 고민하는 악몽을 안 꾸어도 될 것 같다”며 “앞으로 죽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끝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여성동아 2004년 10월 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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