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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여성대법관으로 임명된 김영란·강지원 부부

“외조에 발벗고 나선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요”

■ 글·김유림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4.10.11 11:10:00

최초의 여성대법관으로 임명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김영란 판사.
그의 남편 강지원 변호사는 아내를 위해 로펌 대표직을 그만둘 정도로 ‘외조’에 발벗고 나섰다.
가치관은 물론 해맑은 미소까지 닮은 이들 부부를 만났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대법관으로 임명된 김영란·강지원 부부

지난 8월25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법관으로 임명된 김영란 판사(48). 여성 최초라는 점에서 법조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까지 그에게 쏠리고 있다. 김영란 판사는 78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81년 서울 민사지법 판사로 법관의 길에 들어섰다. 그 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여성으로는 네 번째로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오르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의 남편 강지원 변호사(52)는 검사 시절 청소년보호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으면서 청소년 문제 전문가로 이름난 인물이다.
경기도 분당에 있는 강지원·김영란 부부의 자택을 찾았을 때 김 판사는 둘째 딸이 만들어주었다는 붉은색 개량한복을 입고 기자를 맞아주었다. 그때 강지원 변호사는 거실에 앉아 액자를 들고 진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액자에 있던 사진들을 다 빼내고 아내의 사진으로 갈아 끼우는 중이라고 했다.
“요즘은 제가 김 판사의 매니저가 된 것 같아요. 기자들이 아내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저에게 연락을 해오더군요. 이제는 김영란 대법관의 남편 강지원으로 더 많이 불릴 것 같아요.”
김 판사는 “자신이 사법고시 수석 합격했을 때보다 요즘 더 기쁘다고 말해주는 남편의 마음씀씀이가 고맙다”고 말한다.
이들은 유난히 닮은 부부다. 검소한 생활을 고집하는 것 또한 닮았다. TV는 20년 넘게 쓰다가 브라운관이 터지는 바람에 바꿨고, 다리미는 신혼 시절에 구입한 걸 지금까지 쓰고 있다고 한다. 세탁기, 냉장고 역시 작은 사이즈의 구형이다. 남편이나 아이 모두 음식 투정하는 법이 없어 소박한 음식으로 먹을 만큼만 적당히 차린다고 한다.
공정성이 생명인 대법관 아내 위해 로펌 대표직에서 물러나
지난 7월23일 대법관 후보로 지명되던 날 김 판사는 대전에서 재판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법관 후보로 제청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갑작스런 소식에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사실은 미국에 있는 큰아이가 이사를 한다고 해서 휴가를 내고 아이에게 갈 생각이었어요. 비행기표도 구해놨는데, 갑자기 대법관 후보 얘기가 나왔어요. 미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했던 날짜에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죠. 아이는 이사를 하고 난 뒤 전화통화에서 ‘이젠 엄마도 아빠처럼 (유명인사가) 되겠군’ 하며 축하해주더군요.”
김 판사가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해 대법관으로 정식 임명되면서 강지원 변호사는 로펌 대표직과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대법관직에 피해가 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
“법관은 공정성이 생명이에요. 괜히 저 때문에 오해받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 로펌 대표직을 내놓고 지금은 고문변호사로 남아 있어요. 라디오 방송도 가을 개편 때 그만두게 될 겁니다.”
올해로 결혼 23년째를 맞고 있는 강지원·김영란 부부는 신혼 초에는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자주 다투기도 했지만,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서 화를 내고, 어떻게 풀어지는지를 터득한 후’에는 다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강 변호사가 서울지검에 검사로 재직할 때 김 판사가 옆방의 검사시보(검사수습)로 오면서 시작됐다. 강 변호사가 김 판사가 있는 방에 인사차 들르게 됐는데, 김 판사의 선한 인상에 반해 “밥 사준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게 된 것. 처음에는 남자동기들과 함께 자리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만 따로 만나 식사도 하고 데이트를 즐겼다고. 그런데 김 판사는 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강 변호사를 알았다고 한다. 강 변호사가 사법고시에 수석합격한 후 한 고시잡지에 예상답안을 연재하고 있었던 것.

우리나라 최초 여성대법관으로 임명된 김영란·강지원 부부

두딸과 함께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 김영란·강지원 부부. 큰 딸 민형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고, 둘째 딸 선형은 대안학교인 ‘이우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잡지에 실린 남편의 글을 자주 읽었어요. 사법고시를 치르기 바로 직전에 남편의 예상답안을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문제가 시험에 그대로 출제됐어요. 지금도 남편은 그 얘기를 하면서 ‘자기 덕분에 판사 된 줄 알라’고 생색을 내요(웃음).”
두 사람은 만난 지 1년 만인 82년 3월에 결혼을 했다. 당시 두 사람의 결혼식 장면이 ‘9시 뉴스’에 나왔을 정도로 첫 여판사·검사 커플의 결혼은 화제가 됐다고 한다.
김 판사는 맞벌이를 하면서도 지난해 시어머니가 작고할 때까지 시집살이를 했다. 시아버지의 경우 6년 동안 대소변을 직접 받아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시어머니가 작고했을 때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부고’를 일절 하지 않은 채 모친상을 조용히 장례를 치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 판사는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남편이 동생 부부와 같이 살고 계신 친정 어머니를 모시자고 제안했다”며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두 딸아이 대안학교 보내며 자율 교육 실천해
슬하에 두 딸이 있는 이들 부부는 두 아이 모두 대안학교에 보냈다. 미국에서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큰딸 민형양(23)은 담양에 있는 ‘한빛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둘째딸 선형양(17)도 분당에 있는 ‘이우(以又)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큰아이는 중학교 졸업하고 분당에 있는 고등학교에 잠시 다녔어요. 몇 달 다니더니만 획일적인 교육이 싫다며 그만 다니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내가 평소 봐두었던 대안학교를 함께 찾아갔고, 아이가 원해서 입학하게 됐죠.”
우리나라 최초 여성대법관으로 임명된 김영란·강지원 부부

‘청소년 지킴이’ 강지원 변호사와 아내 김영란 대법관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기 위해 23년째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대안학교를 다니던 큰딸은 고3이 되면서 이번에는 대학에 안 가겠다며 수능시험을 거부했다고 한다. 아이의 폭탄선언을 듣고 부부는 처음에는 난감했지만, 결국 “네 인생이니 네 뜻대로 하되, 최선을 다하라”며 아이의 뜻을 존중해줬다고.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는데 A4용지 10장에 미국에서 심리학을 배우겠다는 내용의 계획을 써서 제출했다고 한다.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어학원에 다녔어요. 몇 달 다니더니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하더군요. 혼자 유학준비를 다 해서 떠났는데, 지금 벌써 대학교 3학년이에요.”
둘째아이 역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이우학교는 문화현장 탐방, 자연 탐사 등의 체험학습에 비중을 두고 있으며 농사를 짓고 동물을 기르면서 자유롭게 공부하는 곳.
“둘째아이는 다음 2학기 때 한복 만들기 수업과 도자기 공예 수업 중 어떤 걸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지난번 한복 만들기 수업을 듣고는 ‘나중에 재봉사가 되고 싶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이왕이면 디자이너가 되는 건 어떻겠니?’ 그랬더니 자기는 디자인보다는 한복을 직접 만드는 게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강 변호사는 청소년 교육문제가 나오자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자녀들이 하고 싶어하는 걸 마음껏 체험하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믿고 많은 길을 열어줘야죠.”
그러나 자녀가 공교육을 포기하도록 내버려두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터. 김 판사는 자신의 교육관이 옳다고 믿지만, 가끔 아이들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혼자 내놓은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대법관으로 임명된 김영란·강지원 부부

그는 휴일이면 둘째아이와 함께 심야영화관이나 찜질방에 가고, 만화책도 빌려 보면서 아이와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재작년에는 두 딸과 일본 배낭여행을 떠났는데 헌책방, 만화가게, 중고 CD가게 등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곳을 위주로 돌아다녔다고.
김 판사는 ‘활자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소문난 독서광이다. 집에서도 틈날 때마다 책을 본다는 그는 “아이들에게는 한 번도 책을 읽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아이들도 책을 즐겨 본다”며 “요즘은 부모가 보는 책도 어려워하지 않고 읽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느덧 아이들의 생각이 많이 자랐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현명한 판결문 내놓을 터
김 판사는 지난해 5월 이른바 ‘왕따’를 당한 고교생 이모군과 그 부모가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군 측도 원인제공 등 50% 책임이 있다”는 1심 판결을 깨고 “왕따를 당한 학생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해 화제가 됐다. 그는 학교에 대해 “어느 조직보다 약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절실한 곳으로 피해자에게 일부 책임을 묻는 것은 교육 이념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학교 교육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원지방법원에 재직 중이던 99년에는 호우 피해를 입은 주민 28명이 시흥시를 상대로 낸 청구소송에서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천재지변에 의한 피해지만 그 중 지자체의 책임을 가려내 주민들이 피해보상을 받는 길을 열어준 것.
시민단체들은 2년 연속 그를 대법관 제청 후보로 선정하기도 했다. 여성·장애인·아동 등 소수자를 위한 판결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김 판사는 “‘여성 최초 대법관’이란 타이틀이 다소 부담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사회의 약자·소수계층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평생을 청소년 선도에 앞장서온 강지원 변호사,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떠올리며 약자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는 김영란 판사. 이들 부부는 해맑은 미소, 자녀 교육관, 인생관까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여성동아 2004년 10월 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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