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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지독한 사랑

고(故) 김동리 선생과의 ‘사랑의 추억’ 담은 자전 에세이 펴낸 작가 서영은

“한 사람만 사랑하는 데도 인생이 참 짧아요”

■ 글·박윤희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4.09.10 11:33:00

작가 서영은씨가 최근 남편 김동리 선생과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펴냈다.
이순의 그가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웠던 사랑의 추억과 선생을 잃은 슬픔을 춤으로, 글로 극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고(故) 김동리 선생과의 ‘사랑의 추억’ 담은 자전 에세이 펴낸 작가 서영은

최근 작가 서영은씨(61)가 에세이집 ‘내 사랑이 너를 붙잡지 못해도’를 펴냈다. 이 책은 지난 93년 ‘한 남자를 사랑했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것을 제목과 구성을 바꾸고 책갈피마다 그가 좋아한다는 샤갈의 그림을 함께 넣어 재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첫 출간 당시 남편 김동리 선생(1913~95)과의 사랑이야기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지난 8월11일 종로구 평창동 그의 집을 찾았다. 북한산 자락에 얹혀 깎아지른 바위가 담 역할을 하는 그의 집은 고즈넉한 사찰을 연상케 할 만큼 깊은 공간감이 인상적이었다. 대문에서 현관으로 이어지는 ‘ㄱ’자 모양의 기다란 마당에는 건물과 대칭되는 자리에 3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산목련이 자라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 넓은 초록색 잎사귀를 무성하게 달고 있는 산목련을 보고 있자니 해마다 늦은 봄날, 하얗고 큰 꽃송이를 홀로 지켜보기도 했을 그의 스산한 마음이 상상 속에 그려졌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 오른편에 그가 마치 성스러운 제단처럼 꾸며놓은 공간이 시선을 끌었는데 그곳에는 남편 김동리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과 촛대, 몇 권의 책, 그리고 빛바랜 동양화 한 점이 놓여 있었다. 동양화 속 연로한 선비는 깊은 산중에 홀로 앉아 사색에 잠긴 얼굴이었는데 얼핏 김동리 선생이 연상되었다.
그도 동양화의 한 공간을 떨치고 일어선 듯 단아한 한복 차림으로 기자를 맞이했는데 환갑을 막 지난 여인에게서 자목련 같은 색과 향이 느껴졌다.
“귀동이, 점순이, 봉순이를 키우려고 4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왔어요.”
그가 들려주는 이 집의 내력은 고고한 자태와는 다르게 퍽 소박했다. 그의 집에는 세 마리의 개가 있는데 그와 함께 사는 가족들이다. 이 가운데는 남이 키우다 버린 개도 있다. 그는 이들이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애써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찾다가 이 집에 눌러앉게 됐다.
“요즘 같은 도시환경에서는 새나 고양이, 강아지 같은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나서기가 정말 힘든 상황이에요. 또 아파트가 중요한 주거공간이 되면서 동거동물들을 쉽게 버리는 것도 문제죠.”
그러고 보니 그의 집 처마에 비둘기 몇 마리도 보인다. 그가 집 없는 비둘기에게 몇 번 먹이를 주었더니 아예 비둘기가 눌러앉아버렸다고 한다. 이밖에도 집시 고양이, 노숙자 강아지들은 배가 고플 때 시시때때로 그의 집을 거처로 삼는다. 그가 버려진 생명들을 일일이 거두어주고 곳간을 열어놓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를 천상 여자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스스로를 가리켜 “겉만 여자이고 안은 남자”라고 말한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강릉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릴 때부터 수영을 바다에서 배웠으니까 성격 자체가 대범해요. 서울에 살면서 굳이 바다를 가지 않아도 제 내면에는 늘 바다가 있어요. 인생 자체가 바다이고 저는 늘 파도를 헤쳐 나가는 기분으로 살고 있죠. 개척자 정신이 있어서 남들이 겁내는 것을 일단 저질러보고 먼저 가보면서 체험하는 성격이에요.”
더군다나 반골 기질의 그는 어렸을 때부터 ‘대가가 크면 클수록 좋은 사랑’을 늘 꿈꾸어왔다.
‘나는 나밖에 모르는 남자에겐 관심이 없다. 사랑을 나눈 대상들이 열 명쯤, 또는 그보다 더 많아도 좋다. 그런 남자에게 마지막으로 선택된 여자이고 싶다. 나의 사랑을 얻으려는 남자는 그런 모험을 해야 한다. 가정을 가졌든, 수도승이든, 아편에 미쳤든, 노름에 미쳤든, 사랑을 얻기 위해 그가 치르는 대가가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다.’(‘내 사랑이 너를 붙잡지 못해도’ 중에서)

고(故) 김동리 선생과의 ‘사랑의 추억’ 담은 자전 에세이 펴낸 작가 서영은

이런 그가 강릉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퍽 괴로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조회시간 교장 선생님의 ‘우리 고장은 신사임당을 배출한 곳으로서’로 시작되는 훈화내용은 여학생들에게 모험심을 길러주기보다는 ‘지고지순한 현모양처의 길’을 최고의 인생 목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일상적 인간’에 대한 거부감이 컸어요. 남이 이미 다 간 길을 좇는 삶의 패턴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죠.”
퍽 조심스러웠지만 이 대목에서 빚 독촉을 하듯 김동리 선생과의 사랑에 대해 운을 띄웠다.
그는 이십대 중반, 대학을 휴학하고 직장에 다니던 중 소설창작법을 배우기 위해 한 문학지에서 연 창작실기강좌를 들었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으로부터 소설창작의 기초를 배웠는데, 어느 날 박경리 선생의 추천으로 ‘황토기’ ‘등신불’ ‘무녀도’ 등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김동리 선생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때가 67년 초겨울. 중구 신당동 김동리 선생 댁에서 습작원고를 사이에 둔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마주 앉았다.
“김동리 선생이 제 첫 소설을 보시더니 ‘이 소설은 너무 수필적이야. 다른 원고가 있으면 좀 가져와보지’ 하셨는데 그 분에게 두 번 다시 원고를 보여드릴 기회를 갖지 못했어요. 제가 두 번째 원고를 완성했을 때 우리는 원고 얘기를 하기에는 겸연쩍고 쑥스러운 사이가 되어 있었어요.”
연애에 첫걸음을 떼면서 두 사람이 마음의 증표로 주고받은 선물은 책과 시계였다고 하는데 김동리 선생은 ‘김동리 문학선집’을 한 질 건네며 첫 권의 안표지에다 ‘일심영원(一心永遠)’이라는 휘호를 담아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집사람과 이혼은 할 수가 없어. 손선생 참 좋은 여자대이. 그 사람과 만날 때 이혼을 한 번 했기 때문에 두 번씩 할 수는 없대이. 또 이혼을 한다면 나는 사회에서 매장당할 끼대이.”
이때 서영은 선생의 기분은 어땠을까.
“당시 사랑에 대해서 제가 품고 있던 환상대로라면, 남자는 이런 경우 자기에게 아주 소중한 뭔가를 걸고서라도 사랑을 쟁취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줘야 할 순간이었죠. 그런데 그분은 나를 사랑하지만, 뭘 포기하면서 사랑을 증명해 보일 수는 없노라고 솔직히 털어놓으셨어요. 환상은 깨어졌지만 저는 진지하고 정직하고 나이 든 얼굴로 제 앞에 앉아 있는 차선의 사랑에 감동되고 말았어요.”

김동리 선생, ‘일심영원(一心永遠)’ 휘호로 마음 고백
이후 연인은 ‘따로 또 같이’ 동거 아닌 동거 생활을 하면서 사랑을 키워갔다. 사랑과 욕망의 속성상 천국 같은 시간도 있었지만 지옥 같은 시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그는 김동리 선생에게 알리지 않고 4박5일 동안 잠적해버렸다. 김동리 선생의 “어디 갔었나?”라는 추궁에 그는 “헤어져보려고요” 하고 답했고 곧이어 “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노”라는 말과 함께 눈앞에 불이 번쩍 했다.
‘그분의 목소리가 쉰 목 안으로 잠겨버렸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맞았다. 매를 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얼마 동안 때리고 맞는 소리만 났다. 코에서 피가 나왔다. 눈이 감겼다. 나는 울음 대신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격렬한, 온몸을 시원한 물처럼 흘러내리는 환희였다.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었다. 운명의 확인이었다.’(‘내 사랑이 너를 붙잡지 못해도’ 중에서)

고(故) 김동리 선생과의 ‘사랑의 추억’ 담은 자전 에세이 펴낸 작가 서영은

서영은씨는 스스로를 가리켜 ‘겉만 여자고 속은 남자’라고 말할 정도로 대범한 성격이다.


그는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이 홍안에서 주름이 진 모습으로 바뀔 때까지 김동리 선생과 맺은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혼생활은 꼬박 4년. 부부싸움도 했다. 어느 해 겨울, 부부싸움 끝에 그가 집을 나와 한 호텔에 묵은 일이 있었다. 이 때 김동리 선생이 그를 찾아왔다. 다짜고짜 큰소리가 날아올 줄 알았으나 김동리 선생은 목욕탕의 수돗물을 이리 틀어 보고 저리 틀어보기를 몇 차례, 전혀 의외의 말문을 열었다.
“여기 따뜻한 물 나오니까 같이 목욕이나 하고 집에 가자.”
당시만 해도 일반 가정에 온수가 귀할 때였는데 김동리 선생의 실리적인 말 한마디에 가출 소동까지 벌어진 부부싸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순식간에 종료됐다. 이렇듯 김동리 선생은 늘 산처럼 넉넉한 분이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또 한 번 부부싸움이 벌어졌고 그는 반항하는 심정으로 다시 짐을 싸서 호텔에 투숙했다. 그런데 이번 짐 꾸러미 속에는 커피메이커와 커피만 가득 들어 있었다.
“워낙 커피를 즐겨 마시는데 호텔 커피 값이 비싸잖아요(웃음).”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동리 선생이 정말 대단한 분이셨나봐요? 이렇게 서영은 선생의 마음을 평생토록 붙잡고 있는 걸 보면요” 하고 물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사랑은 ‘의지’예요.”
끝까지 가보는 것. 그는 ‘인연’에 대해 이렇게 정의 내렸다.
“김동리 선생이 아닌 다른 어떤 촌부였어도 한번 인연이 맺어졌으면 ‘내가 끝까지 살아내고 모든 것을 치러내겠다’는 심정으로 살았을 겁니다.”
40년 세월 동안 범상치 않은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살았기 때문일까. 마치 인생의 한 시기를 분명하게 매듭이라도 짓듯 또박또박 풀어내는 그의 말 속에서 굵고 깊은 진동이 느껴졌다.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을 찾기 위해 떠돌아다닌다고 좋은 인연이 맺어지는 게 아니에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치러내겠다’는 각오 없이 인생을 살면 늘 마음이 떠다니게 됩니다. 어디서든 뿌리를 깊게 내려서 ‘나무’로서 존재하겠다고 생각하면 기쁨의 샘이 거기서부터 쏟아져요.”
그는 김동리 선생과 정식 결혼생활을 4년 남짓 했는데 이런 그에게도 역시 결혼은 사랑의 시험대였다. 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스스로 이를 감상이라고 주입시키며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제가 외출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어요. 시장을 가도 꼭 몇 시까지 돌아오라고 시간 약속을 받아내는 분이었죠. 작가는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닌 것처럼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평생 만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아군은 ‘의지’이고 적군은 ‘회의’예요.”
김동리 선생은 향년 83세로 95년 6월17일 숨을 거두기 전까지 5년간의 투병생활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세상을 뜰 때까지 의식불명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각종 음해와 오해에 시달렸다. 전처 자식들과의 재산분쟁도 이 무렵 터졌다. 이 문제에 대해 그는 함구했다.
“주변 사람들의 말 때문에 김동리 선생 옆에 있는 것 자체가 괴로웠어요. 그때 일을 이루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밑바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고 할까. 그냥 저 자신을 놓아버린 상태에서 ‘그래 내가 당해주마’ 하는 심정으로 견뎌냈어요.”

고(故) 김동리 선생과의 ‘사랑의 추억’ 담은 자전 에세이 펴낸 작가 서영은

사랑과 열정은 다르다는 서영은씨는 김동리 선생에 대한 사랑이 실은 열정이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이때 김동리 선생의 병상에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게 한 사람들 때문에 그는 마치 유배지로 쫓겨나듯 결혼 전 살던 집으로 물러났다. 지옥에 던져진 심정이었을 텐데도 그는 마음에 흐르는 슬픔을 담담하게 글로 풀었다. 또한 춤으로 풀었다.
“집에 선생을 모셔서 살풀이춤을 배웠어요. 그런데 동티가 나더라고요. 나 아닌 뭔가가 계속 흔들어대는 느낌이랄까. 마음의 빈틈이 커서 그랬나봐요.”
그는 한 여성 법조인과 살풀이춤을 함께 배우다 중단하고 라틴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살사, 룸바를 배웠고 탱고에 이르러 자신의 춤을 찾았다.
“몇몇 문인들과 탱고를 배우러 다녔는데 아마 집 몇 채 값은 날아갔을걸요(웃음). 탱고에 푹 빠져서 아르헨티나에 가서 배워올까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으니까요. 탱고 공연도 빠지지 않고 다 봤어요. 지금이요? 지금은 몸이 빨래처럼 하얗게 되어서…. 몸의 유희도 젊은 날의 얘기죠.”
68년 ‘사상계’에 ‘교(橋)’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그는 83년 ‘먼 그대’로 제 7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사막을 건너는 법’ ‘시인과 촌장’ ‘꿈길에서 꿈길로’ 외 다수가 있다. 올 가을쯤에는 신작 에세이 ‘일곱 빛깔의 위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그와의 인터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을까. 그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침에 산책을 하다 생각이 나서요. 열정하고 사랑은 달라요. 열정은 ‘욕망’이고 사랑은 ‘진리적 이성’이란 것을 꼭 말하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 김동리 선생에 대한 저의 사랑도 실은 열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 차이를 아는 데 이렇게 세월이 많이 갔습니다.”
수화기 저 너머에서 그의 한숨 소리가 언뜻 흘렀다.
“한 사람만 사랑하는 데도 인생이 참 짧아요.”

여성동아 2004년 9월 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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