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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동안 21명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엽기행각 추적기

“토막낸 사체 믹서에 갈고, 간과 뇌수 먹었다”

■ 기획·최호열 기자 ■ 글·강지남‘주간동아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4.09.02 15:12:00

10개월 동안 노부부와 윤락여성 등 21명을 살해한 것으로 밝혀져 세상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던 ‘살인마’ 유영철. 소름 끼칠 정도로 잔인했던 그의 범행행각 전말과 범행동기, 내면세계를 밀착 취재, 분석했다.
10개월 동안 21명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엽기행각 추적기

지난해 9월24일 신사동 노부부 살해사건부터 올해 7월13일 출장 마사지사 임모씨(27) 살해사건까지 지난 10개월 동안 무려 26명을 살해했다는 유영철(34)의 진술을 들은 경찰들은 맥이 풀렸다. 강력범죄 수사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베테랑들이 모인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 형사들이었지만 그의 말은 도무지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7월16일 오후, 경찰은 서강대 뒤편 야산에 올라 그가 가리키는 지점을 파헤쳤다. 잠시 후 심하게 부패한 살점들이 드러났다. 수백 개의 조각으로 잘린 한 구의 사체였다. 그제야 경찰은 그의 자백이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충격을 받은 경찰들과 달리 그는 “그냥 죽였다. 아무 느낌도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유영철은 치밀하고도 잔혹한 ‘살인기계’였다. 그가 윤락여성들을 부르는 데 사용한 휴대전화는 지난 6월 살해된 우모씨(28)의 어머니가 사용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우씨로부터 어머니가 석 달 전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경찰에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이 휴대전화로 윤락여성들을 ‘살인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집으로 불러들인 윤락여성을 곧장 살해하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 “고향이 어디냐” “남자친구는 있냐” 등 사적인 대화를 나눴다. 심지어 고향 부모에게 안부 전화를 걸게 하기도 했다. 또 여성들을 협박해 “오빠, 나 이제 고향 내려갈 거야. 같이 일하지 못해서 미안해”라든가 “언니, 나 지금 이상한 남자한테 납치됐어” 같은 말들을 녹음해뒀다. 그리고 여성의 사체를 처리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음성을 들려줬다. 살해 시점을 속이고, 납치로 가장한 것이다.
그가 DNA 검사에 걸리지 않기 위해 윤락여성들과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경찰 발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검찰조사에서 그는 “처음에는 아무나 불러다 때려죽였지만, 나중에는 예쁜 여자만 골라 성관계를 갖고 죽였다”고 진술했다. 심지어는 4시간씩이나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성관계까지 갖고 나서 살해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행도구로 팔각형의 5kg짜리 쇠망치를 사용했다. 이 망치는 공사현장에서 벽이나 바닥을 깨부수는 데 사용되는 도구. 유영철은 편리하게 휴대하기 위해 1m 길이의 나무 손잡이를 떼어내고 짧은 고무막대를 달았다. 망치의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이음새 부분을 석회로 단단히 바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뚱뚱한 여자는 옮기기 무겁고 키 큰 여자는 욕실에 누일 수 없어 기피”
이 망치로 그는 피해자들을 단번에 살해했다. 단독주택에 침입해서는 마주치는 사람의 얼굴과 목을 마구 내리쳤고, 윤락여성들의 경우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가라”고 속삭이고는 뒤통수를 때렸다. 경찰이 서울 서남부지역 미제 살인사건들의 피해자 사진을 유영철에게 보여주며 “얘도 니가 죽였냐?”고 묻자 그는 “아니오. 수법이 틀리잖아요. 나는 한 방에 죽여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서남부 사건의 피해자들은 가슴과 등, 배, 다리 등을 여러 차례 찔려 숨진 것.
유영철은 범행대상을 자신이 원하는 조건에 맞춰 골라냈다. 그는 ‘아담한 키에 마른 체구의 미인’을 선호했는데, 일부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이혼한 아내를 닮은 여성을 골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뚱뚱한 여자는 무거우니까 살해한 후 사체를 옮기기 어려워서, 키가 큰 여자는 목을 잘라내도 좁은 욕실에 똑바로 눕힐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10개월 동안 21명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엽기행각 추적기

7월30일 유영철에게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천도제가 열렸다(왼쪽). 유영철이 사용한 쇠망치와 범행도구들(오른쪽).


7월18일, 범행동기를 집중적으로 캐묻는 기자들 앞에서 유영철은 “여성들은 몸을 함부로 굴리는 일이 없고 부유층은 각성했으면 좋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부유층과 윤락여성에 대한 ‘훈계’의 의미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인상을 풍긴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처럼 ‘정당성을 지닌’ 살인범은 아니었다.
검찰에서 그는 “지난해 9월 출소 후 이혼한 아내와 아들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아내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아들의 똘망똘망한 눈빛을 보고는 아내만 죽이기로 마음을 돌렸다. 그러나 안방에서 마른 김 한 장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는 아내에게 연민을 느껴 포기했다. 그날 유영철은 아내를 대신할 ‘대타’를 구해 살해했다. 다른 피해자들과는 달리 이날 희생된 여성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칼집을 내 짓뭉갰다.
그는 지난 1~2월경 동거한 애인 김모씨(27)도 죽이려 했다. 유영철이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씨가 “헤어지자”고 하자 집에 감금해놓고 온몸을 묶은 후 목을 졸랐다. 김씨가 잘못했다고 매달리자 “다시 만나겠다”는 다짐을 받고 풀어준 그는 김씨가 변심할 때를 대비해 김씨의 부모 연락처까지 받아뒀다. “변심하면 부모를 대신 죽이겠다”는 협박이었다. 거의 실신상태로 풀려난 김씨는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살해 목적의 범행과 금품갈취 목적의 범행을 철저하게 분리한 그는 가짜 경찰신분증을 만들어 경찰행세를 하며 불법 복제물을 파는 상인이나 윤락여성에게 돈을 뜯어내 생계를 꾸렸다. 그는 경찰에서 “영화 ‘공공의 적’에서 클로즈업되는 경찰신분증을 베껴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이 ‘가짜 경찰신분증’은 4월14일 황학동 노점상 안모씨를 살해하는 계기가 됐다. 영화에서는 유영철처럼 신분증을 위조하는 범행을 우려해 진짜 신분증과는 다른 디자인을 사용했는데, 경찰서에 종종 들락거렸던 안씨가 유영철의 경찰신분증이 가짜라고 의심한 것. 이것이 유영철을 자극해 결국 안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7월18일 봉원사 인근 야산에서 벌어진 사체 발굴 작업에 모인 경찰 관계자들은 사체 훼손 정도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체들은 15~18조각으로 절단돼 있었다. 유영철은 빨리 썩게 하기 위해 비닐봉지를 벗기고 사체 조각들을 땅에 묻기도 했다.
유영철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잔인한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의 가족이 20년 이상 거주했던 동네 주민들은 “종종 교도소를 들락거리긴 했어도 가족에게 잘하는 착한 젊은이였다”고 기억한다. 초등학교 담임교사였던 하모씨는 “집안 형편이 어렵고 조용한 아이였지만, 학급 일도 솔선수범하고 운동도 곧잘 해 아이들이 좋아했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은 이번 사건이 보도되기 전까지 유영철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소년원에 들어갔으며 이후 계속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가끔씩 연락이 되지 않아 소식을 물으면 그가 항상 “제주도에서 돈 벌고 있다”고 둘러댔기 때문이다.
3남1녀 중 막내아들인 유영철은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와 막노동을 하게 되면서 여덟 살이던 77년 식구들과 상경했다. 알코올중독자이던 아버지는 식구들을 잘 챙기는 편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동네 아기들을 맡아 돌보면서 가계를 꾸렸다. 아버지는 유영철이 6학년 때 술에 취해 무단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여 숨졌다. 유영철은 검찰에서 아버지에 대해 “연이은 사업실패 때문에 알코올중독자가 됐다”고 회상했고, 어머니에 대해선 “그런 아버지 때문에 심적으로 많이 고통받은 분”이라고 말했다.

10개월 동안 21명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엽기행각 추적기

유영철의 어린 시절 모습.


그림을 무척 잘 그렸던 유영철은 미술가가 되고 싶어 안양예술고교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유영철은 “색맹이라서 떨어졌다”며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고졸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K고등기술학교에 입학했고 고교 2학년 때 친구 몇몇과 서울 성동구에 있는 주택가를 침입해 절도한 혐의로 소년원에 들어갔다.
소년원에서 나온 뒤 학교를 그만둔 유영철은 계속 절도를 일삼으며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그러다 20세 무렵 첫사랑인 아내 황모씨(32)를 만났다. 친구 노씨는 “90년경 영철이를 만났는데, 아내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걸 온몸으로 구해주면서 서로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영철이는 ‘부부 금실이 아주 좋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결혼 후에도 절도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93년에는 승용차를 훔치다 잡혀 구속됐다. 94년에는 둘째형이 실명(失明)을 비관해 한강에 투신자살하는 ‘지옥’과 아들이 태어나는 ‘천국’을 동시에 맛보는 와중에도 절도 행각을 계속했다. 2000년에는 미성년자를 차에 태워 강간·폭행한 혐의로 3년 6개월 형을 언도받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아내는 유영철이 구속되자마자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양육권도 가져가버렸다.
경찰에 따르면 유영철은 전주교도소에서 이혼을 통고받은 후 살인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나’라는 심정으로 ‘살아 있을 때까지 죽이자’고 마음먹었다는 것. 유영철은 출소한 후 서울 일대를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물색했고 미리 ‘찍어둔’ 집에 침입해 속전속결로 작업을 마치고 빠져나왔다.
“붙잡히지 않았다면 올해 안에 백 명은 죽였을 것”
범행에 완벽을 기했기에 잡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에는 2주 간격으로 단독주택을 침입해 살해했지만, 윤락여성을 집으로 유인해 살인하기 시작한 뒤로는 살인을 저지르는 간격이 점차 짧아졌다. 윤락여성 살인을 꾀하다 경찰에 붙잡힌 7월15일은 살인을 저지른 지 고작 이틀 후였다. 경찰에서 유영철은 농담 조로 “붙잡히지만 않았다면 올해 안에 1백 명쯤은 거뜬히 죽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철은 지난해 9월27일 출소한 지 2주 만에 휴대전화를 개통했다. 그가 고른 전화번호는 ‘1818’. 신촌에서 6년째 이동통신회사 대리점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1818은 대표적인 기피번호다. 그동안 1818을 번호로 쓰는 사람을 딱 2명 봤는데 둘 다 조직폭력배로 남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고른 숫자”라고 했다. 유영철에게 1818은 전화번호만이 아니었다. 경찰 관계자는 “유영철이 사용하는 인터넷 아이디나 비밀번호 대다수에도 1818이라는 숫자가 꼭 들어갔다”며 출소 후 분노와 비관에 빠진 그의 심리상태를 설명했다.
유영철을 대면한 수사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유영철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듯하다”고 한다. 지난해 10월9일 구기동에서 일가족 세 명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 유영철은 “본래 그 집의 앞집을 목표로 정했는데, 정원에서 공사를 벌이는데다 큰 개가 있어 포기했다. 그래서 나오는 길에 뒷집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진술했다. 수사 과정에서 ‘앞집’이 존속살해범 박한상의 변론을 맡았던 황산성 변호사의 집임을 알게 되자 유영철은 검찰에 “황 변호사에게 변론을 맡기고 싶으니 의사를 타진해달라”고 상식 밖의 요구를 하기도 했다.


10개월 동안 21명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엽기행각 추적기

유영철이 살해 후 토막 내 비닐에 싸서 버린 시신들을 발굴하는 경찰들.


얼마 전에는 유영철의 말 한마디에 검찰과 경찰에서 ‘믹서 소동’이 벌어졌다. 검찰조사에서 유영철이 “5명의 사체를 찾지 못한 것은 사체를 모두 믹서에 갈아버렸기 때문”이라고 진술한 것. 검찰은 경찰에 유영철의 오피스텔 등지에서 믹서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믹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 관계자는 “완전 범죄를 위해 사체를 믹서에 갈다가 힘이 드니까 그만둔 게 아니겠냐”고 추측했다.
네 구의 사체에서 간이 발견되지 않아
8월13일 검찰이 “유영철로부터 4차례에 걸쳐 피해자 인육을 먹었다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입증되진 않았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또 한 번 세상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가 먹었다는 ‘인육’은 ‘간’이다.
수사 관계자는 “유영철은 아버지와 둘째형 모두 간질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은 간질로 죽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살해한 4명의 사체에서 간을 도려내 바로 먹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둘째형은 실명을 비관해 자살했음에도 그는 간질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사 관계자는 “유영철은 간질과 한센병에는 사람의 간이 효험 있다는 터무니없는 민간 속설을 그대로 믿었다”며 “실제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네 구의 사체에서 간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유영철은 간뿐만 아니라 뇌수(腦髓)도 먹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관계자는 “유영철이 ‘뇌수를 떠먹어봤는데, 맛이 비릿하더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림대 조은경 심리학과 교수는 “유영철이 처음부터 장기(臟器)를 목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한 건 아닐 것이다. 이는 살인행각의 진화단계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처음에는 살인도구를 현장에 두고 나오는 등 범행이 미숙했지만, 나중엔 방화를 하는 등 살인을 거듭할수록 범행기술이 발전한 것처럼 장기를 먹는 행위도 ‘살인의 진화단계’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것. 조 교수는 “장기를 먹는 쾌감을 느낀 이후로는 그 쾌감을 위해 살인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유영철을 윤락여성 연쇄살인 혐의로 기소한 이후에도 수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검찰이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5구의 사체를 찾는 일과, “출소 후 예고 여학생들과 동거했다”는 유영철의 진술에 따라 이 여학생들을 추적중인 것.
유영철은 검찰에서 아직 사체를 찾지 못한 피해자 5명의 인상착의, 살해시기, 살해장소, 사체 유기장소 등을 진술했다. 유영철은 봉원사 인근 야산에 사체를 파묻고는 캔 조각 등으로 작은 표지(標識)를 해놓았다고 했는데, 이 표지가 비에 휩쓸려 떠내려간 탓인지 아직 사체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잘 챙기는 ‘의리 있는’ 유영철과 연쇄살인범인 ‘살인마’ 유영철.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유영철’ 사이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 것일까. 깊게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 속에 숨겨진 그의 ‘여러 얼굴’을 밝히는 데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여성동아 2004년 9월 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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