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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화재·지진… 아찔한 재난체험기

“실감나는 재난 현장 직접 체험하고, 대처 요령 확실히 배웠어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ㆍ문경선 ■ 사진ㆍ정경진

입력 2004.08.05 19:06:00

재난의 위험성과 대처법을 제대로 알고 있으면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각종 재난의 위력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서울시민안전체험관을 찾아 직접 재난을 체험하고 대처요령을 배웠다.
태풍·화재·지진… 아찔한 재난체험기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과 장마. 지난해 여름 남부지방을 거세게 할퀴고 지나간 태풍 ‘매미’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태풍과 폭우에 대비한 확실한 준비가 시급하다. 심각한 재해는 대부분 ‘혹시나’ 하는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되는 것. 겪어보지 않고서는 사실 재난의 위력과 공포를 가늠하기 어렵다. 태풍 ‘민들레’의 여파로 굵은 빗줄기가 그치지 않던 지난 7월6일, 필자는 각종 재난의 위험성을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서울 능동의 서울시민안전체험관을 찾았다.
지난 3월부터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민안전체험관은 일반 시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재난의 위험성을 직접 체험하면서 안전의식을 고취시키고, 효과적인 대처방법을 생생하게 익히도록 만든 시설. 제1체험장부터 제4체험장까지 모두 4개의 체험장에 화재, 지진, 태풍, 응급처치, 소화기 사용법 등 20여 종의 체험 코너가 있으며 하루 세 차례 예약제로 운영된다. 한번에 최대 2백명까지 수용이 가능하고 소방관의 인솔 아래 약 2시간 동안 체험과 안전교육이 진행된다. 어린이와 노인은 무료, 어른 7백원, 청소년 3백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김태성 소방교의 안내를 받으며 재난 체험을 시작한 필자는 우선 1층에 마련된 오리엔테이션 코너에서 안전교육 및 체험시 주의사항 등에 대한 기본 교육을 받았다. 영상화면을 통해 앞으로 체험하게 될 체험장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놀이동산에 와 있는 것 같은 흥미진진함과 약간의 긴장감이 교차했다.
제1체험장에는 그물과 사다리 등을 통해 탈출하는 방법을 체험하는 구조구난 체험 코너를 비롯해 서울시 5대 재난사례에 대한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는 모니터, 소방 상식에 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 등이 준비되어 있다. 특히 서울시 5대 재난사례 코너에서는 대연각호텔 화재, 성수대교 붕괴, 아현동 가스 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홍제동 화재 등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참담한 사건들의 정보를 상세히 제공하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 재난의 참혹함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태풍·화재·지진… 아찔한 재난체험기

재난체험을 마친 뒤 ‘소방안전퀴즈’를 풀고 모범시민 상장을 받은 필자.


제2체험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한쪽 코너에 자리잡고 있는 공중전화. 화재 발생 시 공중전화로 119에 신고하는 것을 직접 실습하도록 마련해놓은 것이다. ‘전화 한 통 하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 실습까지 필요할까?’ 하고 생각하면 오산. 화재가 났을 때 소방관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화재 발생 위치를 동, 번지까지 자세히 일러줘야 하고, 사상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어떤 유형의 화재인지 설명해야 한다. 다급한 상황에서 이런 내용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김태성 소방교에 따르면 신고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우리 집에 불이 났으니 빨리 와달라”고만 말한 뒤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때 공중전화나 휴대전화로 신고한 경우, 발신번호로 화재 장소 추적이 불가능해 소방관들은 ‘우리 집’이 어딘지 알 길이 없다고.
소화기 사용법도 마찬가지. 이론적으로 소화기 사용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화재 초기에 신속하게 소화기를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김 소방교는 “화재현장에서 종종 타버린 소화기가 자주 발견된다”며 “이는 급한 마음에 소화기 사용을 시도했다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포기한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소화기 체험 코너에서는 주방의 모습을 담은 스크린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가스레인지, 난로 등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소화기를 작동시켜 불을 끄는 실습을 하게 된다. 5초 이내에 신속하게 소화기를 작동시켜야 하는데 제한된 시간 안에 화재를 진압하지 못하면 스크린 속의 주방은 금세 불길에 휩싸인다. 소화기 작동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필자 역시 막상 소화기를 직접 사용해보니 행동이 굼떠 화재 진압에 실패하고 말았다. 소화기는 먼저 안전핀을 뽑은 후 바람을 등지고 발화점을 향해 손잡이를 힘껏 움켜쥐어야 한다. 이때 손잡이를 잡은 상태에서는 안전핀이 꼼짝도 하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

태풍·화재·지진… 아찔한 재난체험기

김태성 소방교로부터 배운대로 인공호흡을 직접 실습하고 있는 기자.


이곳 체험관의 하이라이트인 연기 피난 체험 코너는 화재 현장의 아찔함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뿌연 연기로 인해 점차 호흡이 곤란해지고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화재로 인해 전기가 차단됐을 때를 가정한 상황이라 실내가 암흑처럼 어두웠고, 점차 불길의 열기가 뜨거워져 ‘이러다 죽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오직 촉각에 의존해 미로처럼 꾸며진 공간의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 갑자기 천장이 무너져 내릴 수도, 바닥이 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그냥 앉아서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불이 났을 때 높은 건물의 창문에서 무작정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김태성 소방교는 화재 시 몸을 최대한 낮춰 땅바닥에 바짝 엎드릴 것을 강조했다. 검은 연기로 가득 찬 건물 안에서도 지면에는 약간의 공기층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손잡이가 뜨거울 때는 문 너머에 맹렬한 불길이 있다는 신호이므로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고. 엘리베이터 탑승도 금물. 화재 시 엘리베이터는 건물의 굴뚝 역할을 해 질식사할 위험이 가장 큰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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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태풍 매미의 위력에 감각이 무뎌진 것일까. 제3체험장의 풍수해 체험 코너에 들어섰을 때 이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바람의 세기가 초속 30m라는 김 소방교의 말에 약간은 실망했다. 지난해 여름, 태풍 매미가 최대풍속 초속 60m를 넘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라 그 절반에 불과한 초속 30m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들렸던 것. 하지만 순전히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이었음을 이내 깨달았다. 초속 30m로 부는 바람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안전 바를 붙들지 않고서는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고개를 들면 숨쉬는 것도 힘들 정도. 초속 30m가 이 정도이니 초속 60m의 바람은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여기에 시간당 200mm의 양으로 폭우가 쏟아지자 태풍 중심 지역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됐다. 물론 시간당 200mm는 아직 한국의 기상관측 사상 기록된 적이 없는 강수량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록된 최고 강수량 기록은 98년 7월31일~8월1일 사이에 전남 순천지방에 시간당 145mm의 비가 내린 것이라고. 초속 30m의 바람을 탄 빗방울은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과 함께 얼굴을 때렸다. 눈은 뜰 수도 없거니와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호흡이 곤란했다. 빨리 기계작동이 멈춰지기만을 바랄 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비바람 때문에 부두의 대형 크레인이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 체험이었다.
이러한 풍수해에 대처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실외로 나가지 않는 것. 간판 등이 바람에 의해 떨어질 수 있으므로 걸어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미리 집 밖에 있는 물건들이 날아가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고정시켜야 하고, 집이나 마을이 침수되었을 때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


태풍·화재·지진… 아찔한 재난체험기

초속 30m의 바람과 시간당 200㎜의 폭우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풍수해 체험과 연기 피난 체험, 지진 체험 코너는 재난의 위험성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마지막 코스로 들어간 지진 체험 코너는 1평 남짓한 작은 부엌에서 최대 진도 7도까지의 지진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지진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법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던 필자는 식탁에 앉아서 지진이 발생하기를 기다렸다. 약한 진동으로 시작된 지진은 점차 그 흔들림의 정도가 심해지면서 부엌 전체를 흔들어댔다. 김태성 소방교에 따르면 지진은 길어야 1분 이내에 종료되며 강한 진동이 계속되는 시간은 15초를 넘지 않으므로 멀리 대피하려 하지 말고 있던 장소에서 안전한 위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또 “여진은 시간의 간격을 두고 발생하기 때문에 주변의 응급상황도 얼마든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며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무엇보다 침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진의 파괴력은 건물의 붕괴나 땅의 균열 등 1차적인 요인 이외에 지진 후 이어지는 각종 화재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지진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전열기나 가스레인지의 사용을 중지해 화재의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이어서 탈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문을 열어놓아야 하는데 지진으로 인해 문틀이 뒤틀리면 문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다시 닫히지 않도록 고정시켜놓아야 한다. 탈출구를 확보하면 낙하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차례. 방석이나 이불, 두꺼운 책 등으로 머리를 보호한 뒤 책상이나 식탁 밑으로 몸을 숨겨야 한다.
이외에 산악구조, 응급구조 등 20여 가지 재난 체험과 안전교육을 마치면 체험관에서 배운 지식을 테스트해보는 ‘소방안전퀴즈’를 풀게 된다. 3단계에 걸쳐 모든 문제를 통과한 사람에게는 체험관에서 ‘모범시민’ 상장을 수여한다. 2시간 동안 필자의 체험교육을 담당했던 김태성 소방교는 우여곡절 끝에 3단계까지 통과한 필자에게 “가르친 보람이 있다”며 상장을 건넸다.
언제 어디서 닥칠지 알 수 없기에 더 무서운 재난. 생명에 위협이 느껴질 만큼 공포스러운 각종 재난들을 직접 체험하면서 안전하게 살아 있음에 새삼 감사하며 미리미리 안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서울시민안전체험관 문의 02-2049-4000

여성동아 2004년 8월 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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