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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사랑을 나눠요

양재천 오염 감시하고 아이들에게 숲 생태 가르치는 주부 박상인의 숲사랑·자연사랑

“아이들에게 자연을 소중한 친구로 만들어주며 보람 느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안소희 ■ 사진·지재만 기자

2004. 08. 03

주말마다 초등학생들에게 양재천의 생태환경을 체험학습시키는 한편, 환경오염 감시활동도 병행하는 박상인 주부(40). 숲 해설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그가 들려주는 남다른 숲사랑, 자연사랑 이야기.

양재천 오염 감시하고 아이들에게 숲 생태 가르치는 주부 박상인의 숲사랑·자연사랑

토요일 오전 9시30분. 양재천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바쁘다. 오늘은 어떤 놀이를 하며 아이들과 한바탕 뒹굴어볼까? 10시가 되자 웅성웅성 1백50여 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오늘은 은천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생태수업을 받는 날. 10여 명의 아이들과 한 모둠을 이루어 움직였다.
흙보다는 아스팔트가 익숙하고 고추잠자리보다는 게임기가 친근한 도시 아이들에게 초록 수풀과 강물은 되레 어색한 모양이다. 하지만 쭈뼛거리던 아이들은 수업을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 꽃은 이름이 뭐예요?”
“선생님, 저기 저 번데기가 나중에 딱정벌레가 되는 거예요? 우와! 딱정벌레는 어른 때는 예쁜데 아기 때는 너무 못생겼다.”
양재천을 따라 산책을 하며 꽃 한 송이, 벌레 한 마리에도 탄성을 지르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퍼붓는다. 맙소사, 어떤 녀석은 나방 애벌레를 한 움큼 잡아서는 코앞에 불쑥 내민다.
“이야! 잉어다!” “어디, 어디?”
마침 대치교 아래에 잉어떼가 몰려 있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신이 났다. 강물에 바짓가랑이 젖는 줄도 모르고 발을 담근 채 갈대잎으로 만든 배를 띄우며 어떤 아이는 꽃을 태워 보내고 어떤 아이는 풀반지를 태워 보냈다. 자연 속에서 행복해 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 그것은 자연이 주는 행복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축복이 아닐까.
이런 날은 자연과 아이들, 이 소중한 보물을 만나게 해준 인연에 마냥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환경운동을 하는 친구 덕분이다. 그 친구와 나는 등산을 좋아했는데 우리는 틈만 나면 야트막한 앞산부터 이름난 국립공원까지 함께 오르곤 했다. 산행을 하며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숲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저건 쥐방울덩굴인데 멧돼지가 뱀에게 물리면 저 덩굴을 먹는다는 거야. 쥐방울덩굴이 해독작용을 한다나봐. 정말 신기하지?”
그 친구의 설명을 들으며 이 나무 저 나무의 이름을 맞추다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어 정상을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양재천 오염 감시하고 아이들에게 숲 생태 가르치는 주부 박상인의 숲사랑·자연사랑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고 했던가. 관심을 갖고 바라본 숲은 거대한 우주요, 생명의 덩어리 그 자체였다. 숲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국립공원에서 개설한 ‘숲 해설가 양성교실’에 등록해 본격적인 공부에 나섰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숲 해설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양재천 잉어 떼죽음 보며 환경보호의 어려움 절감
숲 해설이라고 하면 흔히 일방적으로 말하는 딱딱한 형식을 떠올리기 쉽지만 진정한 역할은 관람객들이 숲을 이해하고 숲과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사람과 숲을 이어주는 일이다. 아이들에게는 숲에서 놀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주고 어른들은 자연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양재천 오염 감시하고 아이들에게 숲 생태 가르치는 주부 박상인의 숲사랑·자연사랑

초등학생들에게 양재천 숲의 생태에 대해 설명하는 박상인 주부.


숲 해설 봉사활동은 자연스레 환경운동으로 이어졌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파괴되는 산과 숲의 처참함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숲을 지켜보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일단 내 주변부터 지키리라 마음먹었다. 환경운동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고 주변 환경을 관심 있게 살펴보는 것인데, 우리 자원봉사 모임 ‘양재천사랑 환경지킴이’에서는 숲 해설 봉사와 양재천 오염 감시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양재천변의 식물을 살펴 생태계의 변화를 조사하고 매주 수질 검사를 실시하는데 대체로 상급수 판정이 나와 다행스럽다.
그러나 지난 봄에는 길이 40cm가 넘는 수백 마리의 잉어와 향어가 떼죽음을 당해 주민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어디선가 유입된 오수가 양재천을 순식간에 시커멓게 오염시켜버린 것이다. 간신히 맑은 물을 되찾은 양재천이 한순간에 훼손되는 모습을 보며 환경보호의 어려움을 절감했다.
요즘 더운 날씨를 피해 양재천을 찾는 주민들이 부쩍 늘었다. 때문에 길이 비좁아 둔치 가운데에 사용하지 않는 통행로를 다시 닦자는 요구가 있는 모양이다. 문득 지난 봄에 한껏 알을 품은 채 그 길을 가로질러 아래 둔치로 이동하던 사마귀가 떠올랐다. 그 통행로가 사람들의 ‘산책로’가 되는 순간, 작은 곤충과 동물들의 ‘생존로’는 끊길 텐데…. 조금 불편하고 번거로워도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사는 길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생태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다음 수업에는 아이들에게 아까시나무로 자연 파마도 해주고 다래덩굴로 그네도 태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올 겨울 ‘철새 교실’도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숲은 어느새 나와 자연을,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날이 덥다고 문을 닫고 에어컨 바람에 갇혀 아이는 전자오락에, 자신은 텔레비전에 빠져 있는 주부가 있다면, 가족과 함께 가까운 숲으로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숲은 나와 가족을 이어주고 더불어 사는 삶을 이어주는 힘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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