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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절도혐의로 구속, 3년6개월 만에 출소해 극비 귀국한 ‘대도’ 조세형 부부

“아내의 편지와 아들 자라는 모습 담은 사진 보며 고통을 이겨냈어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4.07.12 11:29:00

2000년 11월 선교 목적으로 일본에 갔다 절도죄로 구속된 ‘대도’ 조세형이 형기를 마치고 극비리에 귀국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칩거중인 조씨 부부가 본지를 통해 처음으로 아직도 의혹투성이인 당시 사건의 진실과 지난 3년6개월 동안의 마음고생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일본에서 절도혐의로 구속, 3년6개월 만에 출소해 극비 귀국한 ‘대도’ 조세형 부부

일본 교도소 체험과 사건의 억울한 부분을 말하는 조세형씨.


지난 2001년 1월 국내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대도’ 조세형(66)이 2000년 11월24일 일본에서 여자 속옷과 손목시계 등을 훔친 절도죄로 구속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었다.
암울하던 80년대 초 고위층과 부유층의 집만 골라 털어 ‘대도(大盜)’라 이름붙은 그는 98년 출소 후 종교에 귀의해 사회사업을 하고, 자신의 전력을 살려 경비회사에서 일하는 등 새 삶을 살지 않았던가. 그가 일본까지 가서 좀도둑질을 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더욱이 검거 당시 경찰에 저항하며 칼까지 휘두른 것으로 알려져 ‘대도’ ‘의적’의 이미지는 일순간에 무너지고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일본 검찰은 그를 가택침입 및 공무집행 방해,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고, 일본 법원은 그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많은 의문점을 안고 있었다. 한국에서 남부럽지 않은 소득을 올리던 조씨가 일본까지 가서 좀도둑질을 한 이유부터 석연치 않았다. 또한 정말 그가 일본 경찰을 향해 칼을 휘둘렀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는 당시 ‘여성동아’와의 옥중인터뷰는 물론 재판정에서 이 부분을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의혹은 풀리지 않은 채 그는 세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그런 그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 한국에 돌아왔다. 지난 3월18일 가석방되어 3월23일 귀국한 그는 그동안 외부 활동을 삼간 채 서울 강북의 한 빌라에서 조용히 칩거해왔다.
조씨와 부인 이은경씨(45)를 어렵사리 만났을 때 이국 땅에서 험난한 옥살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씨는 여전히 건강해 보였다. 60대 중반의 나이답지 않게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얼굴 표정도 여전했다. 하지만 사건 당시 일본 경찰이 쏜 총에 맞은 오른쪽 어깨는 후유증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장애4급 판정을 받았다.
결혼한 지 18개월 만에 남편을 이국 땅 감옥에 보낸 후 3년6개월 만에 다시 맞은 부인 이씨의 심정은 어떠할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며칠 동안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어요. 이젠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땐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남편이 돌아온 후 그의 생활도 밝아졌다고 한다.
“제가 원래 성격이 밝은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없는 동안 웃음이 없어졌어요. 남편 생각만 하면 밥도 넘어가지 않아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요. 그래서 많이 말랐는데, 남편이 돌아온 후에 몸무게가 11kg이나 늘었어요. 남편도 8kg이나 늘었고요.”
지금은 편안하게 말을 하지만 남편의 절도 소식은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고 한다.
“일본에 선교사업을 하러 간 남편이 갑자기 소식이 끊어졌어요.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 있으랴 싶었죠. 그런데 택시를 타고 가다 그 소식을 들었어요. 믿기지 않았죠.”

세상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아내도 한국에서 창살 없는 감옥생활
무슨 일인가 알아보기 위해 집으로 갔지만 이미 집 앞엔 신문과 방송국 취재차량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피신할까도 생각했지만 집안에 있는 아이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기자들을 피해 겨우 집으로 들어간 그는 며칠 동안 집안에서 감옥 아닌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기자들이 계단까지 올라와 지키고 있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집안에 먹을 것도 없고, 분유도 떨어지고…. 벌레가 있어 치워둔 쌀 한줌이 있길래 그걸로 미음을 끓여 아이랑 둘이 먹으며 버텼어요. 밖에 기자들이 있으니까 불도 못 켜고, 물도 사용할 수 없었어요. 밖에서 ‘계량기 돌아가나 보라’는 소리가 들리니까 수도꼭지도 못 틀겠더라고요. 며칠 동안 그렇게 살았죠.”

일본에서 절도혐의로 구속, 3년6개월 만에 출소해 극비 귀국한 ‘대도’ 조세형 부부

2000년 사건을 통해 부부의 정을 확실히 다졌다는 조세형 부부.


매일 ‘조세형’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게다가 동네 주민들이 반상회를 열고 “도둑놈과 한동네에 살 수 없다”며 집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결국 그는 도망치듯 그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사업도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절친했던 거래처 사람들조차 그를 ‘도둑의 아내’라는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결국 사업도 접어야 했고,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그래서였을까, 언론에선 ‘이씨가 조씨와 법적으로 이혼했다’ ‘외국으로 피신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있었다. 남편을 믿었기 때문이다.
“집에는 예쁜 늦둥이가 자라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남부러울 것이 없었어요. 당시 제가 자동차부품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고, 남편 역시 경호업체에 근무하는데다 1년에 7백회나 강연을 나가면서 남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절도를 했다니 믿을 수 없었죠.”
그는 사건이 알려진 직후 엄상익 변호사가 일본으로 조세형을 면회하러 간다며 같이 가자고 했을 때 곧 사실이 밝혀져 돌아올 거라며 가지 않았다고 한다.
“곧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고 면회를 갔어요. 그때 남편이 ‘내 눈을 보라’며 ‘나 믿어요?’ 하는 거예요. 남편은 결혼하면서 제게 ‘당신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 믿어요?’ 하는 것을 보고 남편을 믿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씨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옥바라지를 했다. 조씨가 아이를 보고 싶어해 아이와 함께 면회를 가기도 했다. 이씨는 또한 일주일에 한통씩 편지를 썼다. 그리고 한두 달에 한번씩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남편에게 보내주었다. 그 사진은 조씨로 하여금 지옥 같은 교도소 생활을 버티게 한 힘이었다고 한다.
“제가 한국에서 9번에 걸쳐 31년을 감옥에서 살았어요. 특히 청송에선 16년을 살았죠. 아시잖아요, 청송이 어떤 곳인지.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처자식을 밖에 두고 3년6개월을 일본 형무소에 있으니까 청송에 있는 것보다 몇갑절 더 힘들더라고요.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물건 훔친 건 사실이지만 목적은 따로 있어
한국에 돌아온 후 조씨는 그동안 아들과 나누지 못했던 부자의 정을 나누고 있다고 했다. 아이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에 다시 환한 미소가 번진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아이가 아빠를 처음 보는데도 낯설어하지 않고 ‘아빠’ 하면서 따라요. 물론 아직 아빠가 뭔지 몰라요. 집사람 도와주었던 남자가 두분이 있는데 그분들을 삼촌이라고 불렀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저에게도 가끔 삼촌이라고 불러요(웃음).”
아이 손을 잡고 산책할 때면 가슴이 짠하고, ‘아빠’ 하고 부를 때면 가슴이 시리다는 그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함께 놀이터에 가서 노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한다.
“여럿이 노는 게 훈련이 안 되어서 그런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제가 같이 있으니까 이젠 조금씩 어울려요. 그런데 녀석이 자기보다 더 어리고 몸집도 작은 아이들에게도 맞아요. 맞으면 ‘잉’ 하고 울고.”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지금은 사람들 앞에 나설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과거처럼 나서서 강연을 하거나 하지는 않고 선교회에서 조용히 봉사하고 싶다고 한다.

일본에서 절도혐의로 구속, 3년6개월 만에 출소해 극비 귀국한 ‘대도’ 조세형 부부

조세형 부부의 결혼식 모습. 결혼 1년 8개월 만에 이씨는 남편을 감옥에 보내야 했다.


“남 앞에 서지 않는 일을 하고 싶어요.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기관을 돕고 싶어요. 재소자들을 위해 30년간 선교활동을 해오신 이춘희 목사님이 도르가선교회라고 선교회를 만들어 오갈 데 없는 노인들 열한분을 모시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 목사님이 암수술을 받은데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져 그분들이 길에 나앉게 생겼어요. 기회가 되면 그분들을 돕고 싶어요.”
그는 또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등 뒤에서 경찰이 총으로 쏘아놓고 ‘조세형이 먼저 칼을 휘둘러 정면에서 정당방위로 쏘았다’고 사건을 조작, 왜곡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살인미수, 공무집행방해죄를 뒤집어씌웠다는 주장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제가 경찰에서부터 그런 혐의를 조사받았겠죠. 그런데 경찰조사에서도, 검찰조사에서도 그런 질문조차 받은 적이 없어요. 조서에도 나와 있지 않아요. 재판을 하면서 처음 들었는데, 너무 황당했죠.”
그는 일본 경찰이 자신의 앞에서 총을 쏜 게 아니라 뒤에서 쏘았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난 상처가 그 증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왜 일본에서 좀도둑질을 한 것일까. 그는 절도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지금 진실을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제가 좀도둑질을 하려고 들어간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어서였다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 목적이 뭐였냐”는 질문에 그는 “일본 전문털이범들의 범행수법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뜻밖에도 일본 경비업체의 보안기술이 우리나라보다 더 허술해보였다”고 하면서 “당시 전직 빈집털이범들과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의기투합했다”고만 밝혔다.
“그러면 당시 경비업체에서 근무하던 당신이 경비시스템 구축에 뭔가 도움이 되려고 그런 일을 했다는 말이냐”고 묻자 “비슷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그렇다’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고 말을 돌렸다.
그는 이유야 어떻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것은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면서 앞으로 조용히 선교사업을 하며 여생을 보내겠다는 소박한 꿈을 피력했다.

여성동아 2004년 7월 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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