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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아이와 함께 보는 풍경화

경쾌한 빛과 색의 하모니

2004. 05. 04

경쾌한 빛과 색의 하모니

로베르 들로네, 동시에 열린 창들, 1912, 캔버스에 유채, 46x37cm, 런던, 테이트 갤러리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의 ‘동시에 열린 창들’이라는 그림이에요. 처음 보면 뭘 그린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각형 혹은 삼각형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모습만 눈에 들어오지요. 이 그림처럼 사물의 형태를 거의 혹은 전혀 알 수 없는 그림을 우리는 추상화라고 부릅니다.
사물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 추상화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들로네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아무 생각 없이 마구 그린 것은 아닙니다. 들로네는 어느 날 파리의 개선문 꼭대기에 올라갔답니다. 거기서 에펠탑을 바라보는데, 주변 건물의 창에 햇빛이 반사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군요. 거기서 들로네는 상상해 보았답니다. 도시의 모든 창이 열리고, 그 창마다 햇빛이 반사되어 빛의 놀이로 충만한 세상, 빛을 무지개 색채로 분광하는 프리즘처럼 수많은 유리창이 서로에게 프리즘이 되어 풍성한 빛과 색의 하모니를 연출하는 세상, 그 찬란한 환상이 바로 이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그림 가운데서 약간 위쪽을 보세요. 녹색의 기다란 에펠탑이 보이나요? 그 에펠탑을 둘러싸고 갖가지 표정으로 어우러진 반사광이 화려한 추상 풍경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밝은 색과 어두운 색, 차가운 색과 따뜻한 색, 선명한 색과 흐릿한 색 등 그 어우러지는 모습 또한 매우 명랑하고 율동적입니다. 마치 경쾌한 음악을 듣는 것 같지 않습니까? 들로네는 바로 그 음악을 생각하며, 그 음악에 취해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가지 더∼
오르피즘은 들로네의 색채 구사가 매우 음악적이라 하여 시인 아폴리네르가 들로네의 미술에 붙여준 이름입니다. 오르피즘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시인 오르페우스의 이름을 이용해 만든 말입니다. 오르페우스가 하프(harp)를 타면 심지어 말 못하는 짐승들까지 감동을 받았다고 하지요. 오르페우스의 음악처럼 생생한 음악적 감동을 주는 그림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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