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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무대 뒤 사랑

‘명성황후’ 프리마돈나 이태원 네살 연하 후배 뮤지컬 배우와의 결혼 사연 첫공개

“영화에 나올 법한 소동도 적잖이 겪으며 남몰래 사랑을 키웠어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 장소협찬·더 가온

2004. 05. 04

뮤지컬 ‘명성황후’의 주인공 이태원이 이제서야 제짝을 만났다. 서른여덟 나이에 새 보금자리를 꾸리는 그는 “결혼을 약속한 뒤 줄곧 좋은 일만 생긴다”고 말한다. 그가 처음 털어놓는 알콩달콩 러브스토리&결혼생활 계획.

‘명성황후’ 프리마돈나 이태원 네살 연하 후배 뮤지컬 배우와의 결혼 사연 첫공개

“결혼 예물은 커플 반지와 양가 어머니 한복 한 벌씩만 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결혼식만은 아주 특별할 거예요. 저희가 지도해온 온누리교회 뮤지컬 찬양팀과 뮤지컬 배우 선후배들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거든요(웃음). 바이올리니스트인 저희 올케가 바이올린으로 축하연주도 해줄 거고요. 아마 한편의 공연을 보는 듯할 거예요.”(이태원)
“아무도 축가를 안 불러준다는 거예요. 이 사람이 워낙 음정에 까다롭거든요. 축가부르다 음정이 약간만 흔들려도 신부가 눈을 흘길 텐데 어떻게 노래하냐며 아무도 안 부르겠대요. 그래서 무리지어 부르기로 했어요(웃음).”(방정식)
브로드웨이 관중을 매료시킨 뮤지컬 ‘명성황후’의 프리마돈나 이태원(38)과 뮤지컬 ‘페임’ 등에서 박력있는 춤과 노래로 인기를 얻은 뮤지컬 배우 방정식(34). 유난히 볕이 좋던 4월 중순에 만난 두 사람은 행복에 겨운 듯했다.
두 사람은 1999년 뮤지컬 ‘페임’ 오디션 때 처음 만났다. ‘페임’ 역시 ‘명성황후’를 무대에 올린 공연기획사 에이콤의 작품이라 당시 이태원은 심사위원으로 오디션에 참여했고, 방정식은 오디션에 응시한 여러 뮤지컬 배우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그러나 뮤지컬을 한다는 공통점만 있었을 뿐 두 사람이 가까워질 만한 기회가 없었다. 방정식에게 이태원은 다가가기 어려운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뮤지컬 ‘페임’ 첫 공연을 앞두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질 만한 사건이 터졌다.
“‘페임’ 공연 이틀 전에 주인공 역할을 맡은 남자 배우가 연습 도중에 팔이 빠졌어요. 그래서 이 사람(방정식)이 주인공을 하게 됐죠.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제작진이 정말 걱정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틀을 꼬박 새워 대사를 다 외우고 연습을 하더니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해내더라고요. 술을 워낙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성실하게 해내는 걸 보니 사람이 달리 보이더군요(웃음). 그 뒤로 연습할 때 ‘수고했다’는 이야기도 건네고, ‘이건 이렇게 하면 더 나을 텐데’ 하고 조언을 하기도 했죠.”
그런 모습에서 방정식은 차갑고 어렵게만 보이던 이태원이 실제 포근하고 따뜻한 면모를 지닌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더욱이 뮤지컬 ‘페임’이 끝난 뒤에 몇 사람이 모여 강원도 동강으로 MT를 갔는데 함께 간 이태원이 솔선해 음식을 만들고, 후배들과 격의없이 어울리는 모습에 놀랐다고.
“겉으로 보기엔 매우 까탈스러울 것 같은데 선배의 집이 ‘태원장’으로 불릴 정도로 뮤지컬 배우들이 몰려가 먹고 자고 하는 일이 많아요. 저희 집은 인천인데 한번은 여름에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가 나는 바람에 친구들과 여섯 명이 선배 집에서 며칠동안 신세를 졌어요. 그때 부침개를 해서 내놓는 선배의 모습을 보고 소박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이태원의 소탈한 성격에 반해 도시락 싸고, 호박 달인 물 나르며 구애한 방정식
‘명성황후’ 프리마돈나 이태원 네살 연하 후배 뮤지컬 배우와의 결혼 사연 첫공개

새침데기 소녀와 장난기 가득한 소년. 서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사랑스러운 눈길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 예뻐보였다.


이후 서로에 대한 벽을 깬 두 사람은 절친한 선후배로 지냈다. 이태원은 “처음엔 ‘선생님 선생님’ 하더니 ‘누나’라고 부르다 지금은 아예 ‘누나’라고도 안한다”며 웃었다. 2001년 이태원이 ‘킹 앤 아이’ 출연을 위해 런던으로 날아갔고, 13개월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그 사이 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그리고 각종 오디션에 참가하기 위해 런던을 찾았는데 방정식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선배 공연도 보고 그곳 뮤지컬 극단의 오디션도 볼 겸해서 갔는데 낯선 곳에서 혼자 공연하고 있는 선배가 너무 외로워보였어요.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런던 히드로 공항에 갔는데 선배를 혼자 두고 오려니 갑자기 마음 한켠이 이상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대뜸 ‘선배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고 했더니 ‘어서 가기나 하라’며 보기좋게 퇴짜를 놓더군요.”

‘명성황후’ 프리마돈나 이태원 네살 연하 후배 뮤지컬 배우와의 결혼 사연 첫공개

그러나 방정식은 굴하지 않고 적극적인 구애를 시작했다. 이태원이 런던에서 돌아오던 날도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이태원은 선후배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방정식은 그 뒤로 이태원이 공연을 할 때마다 연습장으로 도시락을 싸서 나르고 몸이 잘 붓는 이태원을 위해 호박 달인 물을 가져다 주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이태원이 너무 보고 싶어 택시를 타고 달려간 것도 여러 번. 그러나 매번 허탕을 쳤다고 한다.
“얼굴만 보여달라고 해도 절대 안 나오는 거예요. 특히 공연 중에는 더했어요. 그렇게 철저하게 굴 수가 없었죠.”
방정식은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영화에 나올 법한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주먹으로 벽을 쳐서 피가 철철 흐르고, 간판도 깨고 경찰 차가 오고 난리도 아니었죠(웃음).”
이태원은 당시 방정식이 일으켰던 소란을 재미난 추억처럼 회상했는데 그토록 철저하게 상대를 외면한 속내가 궁금했다.
“사실 마음을 열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럴 만한 여유도 없었고요. 워낙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괜히 관계가 불편해지는 게 싫었거든요.”
그러던 2002년 이태원이 노래와 춤 등을 가르치는 스튜디오를 오픈하면서 뮤지컬 무대에서 춤꾼으로 인정받은 방정식이 자연스럽게 안무를 담당하게 됐다. 이후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각각 노래와 춤을 맡아 예비 뮤지컬 배우들을 양성하고 있다.
일로 호흡을 맞추며 친하게 지내던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결혼을 생각하게 된 것은 지난해 말 이태원이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앞두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을 때였다. 이태원은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혼자 한국에 나와 있었다. 마침 이태원의 부모님이 귀국해 있었는데 며칠 뒤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자 혼자 몸을 추스려야 하는 이태원을 지켜보는 방정식의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이태원을 좋아하면서도 결혼은 경제적으로 좀더 안정된 다음에 하겠다고 생각했던 방정식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태원의 부모 앞에서 프러포즈 후 열흘만에 허락받아
“사실 선배를 좋아하면서도 결혼을 생각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선배가 혼자 외롭게 앓는 걸 보니까 제 생각이 이기적인 게 아닌가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주위 형들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결혼하면 오히려 책임감이 생겨서 더 열심히 살게 된다며 격려해주더군요.”
마침내 방정식은 용기를 내 이태원의 부모님이 미국으로 떠나시는 날 식사에 초대한 뒤 갑작스레 “딸을 주십시오” 하며 청혼했다. 그때까지 방정식으로부터 아무런 언질을 받은 적이 없던 터라 가족들은 물론 당사자인 이태원까지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버님께서 한참을 고민하시더니 ‘네가 기죽지 않고 살 자신 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그렇다’고 했더니 열흘 동안 기도해보고 다시 전화하라고 하셨어요.”
열흘 뒤 방정식이 전화를 했을 때 이태원의 아버지는 흔쾌히 결혼을 허락했다. 아무런 예고없이 가족들 앞에서 청혼을 받은 이태원 역시 처음엔 당황했지만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 즈음에 이 친구가 순복음신학원에서 예비 전도사들에게 찬양 안무를 지도하게 되고, 저도 여기저기 불러주는 데가 많아져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혼을 축복해주시려나보다 생각했죠. 더군다나 부모님께서 허락하시니까 어쩔 도리가 없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전 어려서부터 부부가 함께 교회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는데 이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명성황후’ 프리마돈나 이태원 네살 연하 후배 뮤지컬 배우와의 결혼 사연 첫공개

이태원은 방정식의 때묻지 않고 순수한 마음에, 방정식은 이태원의 소탈한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목사 아버지 밑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강했던 이태원은 온누리교회에서 뮤지컬 찬양팀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데 지난해 11월부터는 방정식도 합류해 율동을 가르치고 있다. 이태원은 크리스마스 특별공연을 위해 거의 매일 만나 연습하면서 방정식의 열정과 신앙심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방정식은 어머니를 이태원의 콘서트에 모시고 갔는데 무대 위의 화려한 주인공이 며느리감이라는 말에 흐뭇해하시다가 공연이 끝난 뒤 분장을 다 지우고 난 이태원의 모습에 더욱 만족스러워 했다고.
“태원 선배가 워낙 어른들한테 싹싹하게 잘하거든요. 첫눈에 맘에 들어하셨어요. 지금은 딸처럼 여기시죠.”
두 사람은 어머니를 모시고 신혼생활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사람이 차남이라 형님네가 10년 넘게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대요. 이제 저희가 모셔야죠. 친정 부모님도 처음엔 걱정하시는 눈치더니 지금은 오히려 함께 살며 정드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하세요.”
방정식은 그동안 어머니께 효도를 못했는데 애교 많은 아내 덕분에 어머니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됐다며 기뻐했다.



달걀프라이하다 다친 뒤로 과일도 못 깎게 하는 예비 신랑
죽고 못 살아 결혼을 결심하고서도 결혼식 준비를 하다보면 다툴 일이 많다는데 두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결혼날짜를 잡고나니 그동안 몰랐던 서로의 좋은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고.
“제가 심심할 틈이 없어요. 이 친구가 장난 아니게 웃기거든요. 신문이나 잡지에 나온 재미있는 이야기들, 심지어 사설까지 달달 외워서 들려주곤 해요. 결혼하자고 한 뒤로 더 자상해졌어요. 한번은 제가 달걀프라이를 하다 얼굴을 다친 적이 있는데 그 다음부터는 아무 것도 못하게 해요. 과일도 못 깎게 한다니까요(웃음).”
이태원의 말을 듣고 있던 방정식은 미소를 지으며 “책에서 ‘네가 왕 대접받기를 바라면 너의 아내에게 먼저 왕비 대접을 하라’는 구절을 봤다”며 앞으로도 남편으로서 대접받기를 기대하기 전에 아내를 극진히 사랑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런데 이태원은 아내를 애지중지하는 남편의 마음이 간혹 싫을 때도 있다고 한다. 바로 2세와 관련된 문제다. 대학시절부터 복통에 시달렸던 이태원은 나팔관에 혹이 생겨 나팔관을 떼어낸 상태. 2세를 가지려면 체외수정을 해야 하는데 그 비용과 시술의 고통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 고통을 알고 있는 이태원 본인은 정작 꼭 시도해보고 싶다고 하는데 방정식은 단호하게 ‘노’라고 말한다.
“저는 아이를 입양했으면 좋겠어요. 외국으로 입양되어나가는 아이들이 안타까울 뿐만 아니라 이 사람이 그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게 싫거든요.”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 시선을 탁자 위에 고정시킨 이태원의 얼굴에서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금세 표정이 밝아지며 “당분간은 2세 계획할 시간도 없어요” 하며 웃는다. 이태원은 올 여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시 한번 ‘명성황후’ 무대에 선다. 그리고 방정식은 ‘5년 안에 1백곡 안무’를 목표로 안무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일과 종교에 있어 라이벌이 되기로 했다고 한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이태원의 성격과 꼼꼼하게 챙기는 것을 잘하는 방정식의 성격이 어우러져 서로에게 최고의 선생님이자 비평가, 그리고 치열한 라이벌이 되고 싶다고. 아무쪼록 지금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이 한결같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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