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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안타까운 사연

폐암 투병 6개월 만에 끝내 세상 떠난 이미경

■ 글·조희숙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4.05.04 10:45:00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탤런트 이미경이 지난 4월11일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부터 침대 시트를 갈아달라며 보챘다고 한다.
또한 가장 좋아하는 액자를 머리맡에 걸어달라고 하더니 농담처럼 유언을 남기겠다며 휴대전화를 달라고 했다고. 그렇게 그는 떠날 준비를 했던 것일까.
폐암 투병 6개월 만에 끝내 세상 떠난 이미경

4기 폐암환자의 투병이 어디 쉬웠을까만 간간히 TV에 비춰진 이미경(44)은 병색은 완연했어도 표정만은 밝아보였다. 무리한 바람인 줄 알면서도 그를 아끼는 사람들 모두 그가 브라운관으로 다시 돌아와 질펀한 아낙을, 똑부러지는 커리어우먼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그런 바람을 저버리고 지난 4월11일 밤 10시30분 경 이승에서의 삶을 조용히 마감했다.
다음날인 4월12일 이대 목동병원 장례식장에는 그의 부음소식을 전해들은 조문객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선배 탤런트 서승현, 반효정, 정재순, 연규진 등과 김미숙, 박지영, 양정아 등 동료 후배 탤런트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덕화를 비롯해 박철, 윤다훈 등은 직접 찾지 못하는 마음을 화환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KBS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통해 그를 알게 됐다는 서승현은 “참 야무지고 재능있는 후배였는데…” 하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반효정도 “우리가 몰랐던 내면의 깊은 아픔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그의 유족은 오빠와 세 명의 동생들. 뇌변병 3급 장애를 앓고 있는 칠순의 부친은 고혈압이 심한 상태라 차마 그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사망소식을 듣고 둘째 동생 숙현씨(42)가 일본에서 오는 동안 그의 오빠 성진씨(47)와 두 동생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바로 전날 밤 품 안에서 동생을 떠나보낸 성진씨는 아직도 동생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며 망연자실해 있었다.
“교회에 갔다가 조금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허겁지겁 달려가니까 미경이가 힘없이 누워있더군요. ‘오빠 왔어’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힘들게 눈을 뜨고는 ‘어… 왔어…’라고 말하더니 제 품에서 그대로 눈을 감았어요”
폐암 투병 6개월 만에 끝내 세상 떠난 이미경

영정사진은 그가 막 탤런트로 데뷔할 무렵 찍은 것으로 생전에 앨범을 정리하던 그가 고른 것이라고 한다.


2남3녀 중 둘째딸인 그는 참 씩씩하고 야무진 사람이었다. 잘못된 것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성진씨도 “누나 같은 동생이어서 언제나 미경이가 무서웠다”고 말할 정도다. 동생이 눈을 감은 뒤 처음으로 얼굴을 자세히 바라봤다는 성진씨는 “죽은 사람 같지 않게 얼굴이 너무 곱고 예뻐서 계속 어루만져주었어요. 나중엔 너무 쓰다듬었는지 죽은 동생의 얼굴이 빨개졌더라고요” 하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해 10월 SBS ‘왕의 여자’ 촬영 중 폐암 판정을 받은 그는 6개월간 병마와 힘겹게 싸워왔다. 지난 1월 2차 항암치료 후 그의 가족들은 담당의사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난 3월부터 사실상 치료를 중단한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폐암 치료제로 개발된 신약만 복용했다고 한다.
그는 특별한 유언을 남기지 않았지만 신변을 정리하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틈틈히 ‘유언’처럼 자주 당부한 말이 있었다고 한다. 주로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이었는데 친오빠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했던 것.

폐암 투병 6개월 만에 끝내 세상 떠난 이미경

생전에 선배나 동료들의 병문안을 정중히 사양한 그는 ‘환자’가 아닌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의 빈소를 지키고 있는 오빠와 남동생의 모습(왼쪽). 장례식장에는 서승현, 연규진, 김미숙, 박지영 등 많은 동료 연예인들이 찾아왔다.


발병 후 친오빠 집으로 거처를 옮긴 그의 병수발은 서울예대 동기생 3명이 번갈아가며 해주었다고 한다. 독신인 그와 마찬가지로 친오빠가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자진해서 간호를 맡겠다며 친구들이 먼저 발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발병 직후부터 임종하는 순간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의 곁을 지켰던 친구 차성숙씨는 “미경이는 투병 중 한번도 삶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지난 4월7일에는 강남의 한 극장으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러갔을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이었다고.
“아픈 사람 같지않게 농담도 잘 하고 작은 것 하나에도 크게 기뻐했어요. 목욕을 시켜주면 아이처럼 기분 좋아하고, 비록 잘 먹지는 못했지만 음식을 해주면 ‘너무 맛있다’고 말을 했죠. 몸이 조금 나아지면 함께 피크닉을 가자고 해서 피크닉 가방까지 다 싸놓았는데…. 결국 못 가고 말았어요.”
사망 이틀 전 그는 갑자기 각혈을 하는 등 증세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친오빠 성진씨에 따르면 그는 병원 치료비가 모자라 동료로부터 치료비를 건네받았다는 한 신문기사를 보고 몹시 화를 냈다고 한다.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도 주변 사람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던 그였기 때문. 게다가 원자력병원 홍보대사인 탤런트 김원희의 주선으로 원자력 병원으로부터 치료비는 물론 주차요금까지 무료혜택을 받은데다 MBC 노조에서 경제적 도움을 받아 별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 그는 잘못된 보도로 인해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면목없다며 내내 마음 아파했다고 한다.
가족과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 그는 일체 병문안을 정중히 사양했으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가족끼리의 기념촬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환자’보다는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 임종 당시 그의 몸무게는 40kg이 채 안될 정도로 야윈 상태였다. 쌀 한줌으로 일주일을 먹을 만큼 식욕이 떨어져 물과 과즙음료에 의존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파스가 없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통증 또한 심했다고.
장례식장에서 눈길을 끈 것은 챙 넓은 모자를 쓴 채 활짝 웃는 그의 영정사진이었다. 사진은 그가 탤런트로 막 데뷔한 20대 중반의 것으로 생전에 앨범을 정리하던 그가 “참 좋다”고 말해 가족들이 미리 확대해놓은 것이라고. 틈틈이 그와 젊은 시절을 추억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친구 차씨는 “어느날은 미경이가 ‘만약에 나에게 아이나 남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는 지금보다 덜 외롭긴 했겠지만 아이와 남편이 없어서 오히려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더군요. 그 말이 정말 가슴 아팠어요”
그의 시신은 벽제 화장터를 거쳐 일산 청아공원에 안치되었다.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으로 지난 81년 ‘무대’로 데뷔해 KBS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고독’, MBC ‘여명의 눈동자’ ‘가을에 만난 남자’ 등에 출연한 탤런트 이미경. 그의 바람대로 그는 우리의 기억속에 영원히 ‘연기자 이미경’으로 남게 되었다.

여성동아 2004년 5월 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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