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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뮤지컬 ‘맘마미아’ 주인공 박해미·황민 부부의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

“배우와 관객으로 만나 여덟살 나이차, 이혼경력, 생활고 극복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 맺기까지…”

■ 기획·조득진 기자 ■ 글·장옥경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4.05.04 10:32:00

공연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뮤지컬 ‘맘마미아’가 4월24일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흥행요인 중 하나는 연기자들의 풍부한 인생경험에서 우러난 연기. 특히 주인공 박해미는 이혼의 아픔을 겪은 후 8살 연하의 남편과 동거를 시작해 아들을 낳고 살기까지 사랑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어본 터라 더욱 실감난 연기를 펼쳐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가 남편과 함께 털어놓은 극적인 러브스토리 & 남다른 결혼생활.

‘공연 내내 소름이 돋았어요. 노래를 어쩌면 그렇게 잘하는지.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도 또렷또렷하게 들려오는 음성에 정말 감동했습니다.’
‘돈이 없어 맨 뒤에서 보았지만 열정적인 해미님의 모습을 보며 너무 행복했고 눈물이 났답니다. 마지막 부분의 노래가사를 듣는 순간 이렇게 좌절할 때가 아니다, 다시 힘내 열심히 뛰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해미님 공연이 좌절과 슬픔에 빠졌던 사람 한 명을 구하셨습니다.’
‘공연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열심히 봐서 온몸에 쥐가 나네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해미언니 공연마다 다 보러갈 거예요. 벌써 카페도 가입했어요.’
뮤지컬 ‘맘마미아’를 본 관객들이 그에게 보낸 글이다. 주인공인 ‘도나’ 박해미(40)의 게시판에는 공연을 보고난 뒤 감동을 적은 감상글이 줄을 잇는다. ‘나이가 들어도 섹시하고 멋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중년의 주부관객은 그에게서 희망을 얻는다. ‘나도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토로하는 글이 많다.
박해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의 진실이 묻어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랑에 실패하고, 사랑의 환희에 떨어도 보고, 또 사업에 실패해서 수중에 단 돈 1만원이 없어 고통스러웠을 때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런 경험들을 통해 연기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됐다고 한다.
“오디션을 통해 ‘맘마미아’의 주인공에 뽑혔을 때 제 앞에 온 행운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젊고 예쁜 여배우들이 많은데 나이 마흔에 대형 무대의 주인공이 되다니.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며 쌓아온 기량을 무대에서 몽땅 보여주기로 마음먹었죠.”
그의 뒤에는 여덟살 연하의 남편 황민(32)씨와 다섯살 난 아들 성재가 든든한 버팀목으로 지켜주고 있다.

‘각시품바’ 공연 중 배우와 관객으로 만나 첫눈에 특별한 감정 느껴
뮤지컬 ‘맘마미아’ 주인공 박해미·황민 부부의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

올해 상반기 최고의 흥행작으로 기록될 뮤지컬 ‘맘마미아’. 팝 그룹 ‘아바’의 히트곡들이 중년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가운데가 박해미.


대학 3학년 때 뮤지컬 배우 활동을 시작한 그는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무대를 떠났다가 2년 만에 이혼하면서 무대로 다시 돌아왔다. 20대 중반에 이혼녀가 된 그는 연기를 통해 자신의 슬픔과 고통, 아픔을 풀어냈다. 하지만 혹여 ‘누가 가까이 다가올세라’ 이성에 대한 마음은 단단한 호두껍질 속에 숨겨놓고 있었다고.
그런 그에게 단박에 ‘필이 꽂혀’ 그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가 나타났다. 지난 95년, 10대 여성 품바가 되어 연극 ‘각시품바’를 공연하고 있을 때였다.
“막이 오르고 객석에 조명이 켜지는데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객석에서 날 보는데, 바라보는 눈빛이 굉장히 섹시했어요. 강렬한 헤드라이트가 ‘쫙’ 하고 비추는 것처럼. 순간 나를 뚫어버릴 것 같았다고 할까요.”
그의 남편 황민씨는 당시 캐나다에서 살다가 15년 만에 한국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왔던 것. 함께 놀 친구도 없어 심심하던 차에 누군가 품바 연극을 보러가자고 제안했고 LA에서 품바 공연을 본 적이 있었던 황씨는 당시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나서 극장으로 향했다. 여자가 품바로 나온 것을 보고 ‘희한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연기에 몰입해 함께 울고 웃으며 공연을 봤다.

“공연 중에 해미씨가 객석에서 한 사람을 무대 위로 데리고 가더군요. 무대 위에 올라간 사람은 그의 장난에 마냥 구겨지는 거였어요. 나가면 안되겠다 싶었죠. 공연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에서 여자 품바가 남자와 결혼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상대를 고르러 제 옆까지 왔어요. 긴장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손을 끌고 나가 무대에서 얼떨결에 결혼식을 했어요.”

뮤지컬 ‘맘마미아’ 주인공 박해미·황민 부부의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

올해쯤 빚을 거의 다 갚는다는 박해미 황민 부부는 내년쯤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싶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고 사인을 요청하는 황민씨에게 그는 “한국 분이 아니시죠?” 하는 질문을 던졌다. “캐나다 벤쿠버에서 온 교포” 라는 대답과 함께 시작된 담소로 두 사람은 황씨의 집과 그의 부모가 사는 집이 다섯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두 사람은 동네사람 만났다며 서로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황씨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차나 한잔 하자는 말과 함께.
“그게 화근이 되었다”며 황씨가 아내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일주일 후 만나고픈 마음이 들어 황씨가 전화를 했더니 그가 “양평에 있다”며 “오고 싶으면 오라”고 했던 것. 양평이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차를 몰고 물어물어 도착해보니 공연 끝나고 여자 다섯이 ‘쫑파티’를 하던 중이었다. 거기서 그는 이틀 동안 다섯 여자와 얘기를 나누고 심부름도 하며 운전기사 노릇을 했다.

떨쳐내려 이혼경험 밝혔더니 오히려 귀국해 집요하게 구애한 남자
“마지막날 에버랜드에 갔어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데 음악이 나오자 저 친구가 춤을 추기 시작하는 거예요. 걸어가면서 음악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턴’을 하고, 몰입해서 춤을 추자 일행이 ‘얘, 사람들이 쳐다본다, 창피하다’고 했지만 저 친구는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 모습이 참 좋았어요. ‘이 여자다’ 싶은 필이 왔죠.”
황씨는 그를 만나기 전까지 한국 여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여자 친구는 모두 백인이었는데, 이유는 한국인의 고리타분함이 싫어서였다고. 너무나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도 부담스러웠고, 한국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들의 모습도 지나치게 사람을 구속하고 간섭하는 것 같아 싫었다고 한다.
“춤추는 그를 보는 순간 ‘한국에도 이런 여자가 있구나. 감정표현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확 끌리더군요. 그래서 그날 놀이공원 입장료를 제가 다 냈어요. 돈 좀 썼죠(웃음).”
서울로 돌아온 일행은 방배동의 한 카페에 들렀다. 그런데 카페에서 다른 지인들을 만난 박해미는 이야기를 하느라, 그들의 테이블엔 오지도 않았다. 황민씨는 할 수 없이 네 명의 여자와 노래도 부르고 블루스도 추며 그를 기다렸다.
“저 친구(박해미)가 올 때까지 끝까지 기다렸어요. 그리고 블루스를 출 수 있게 됐죠. 다른 여자와 추는 블루스와는 느낌이 달랐어요. 이 사람과는 내가 원해서 추는 것이니 느낌이 다를 수 밖에요. 블루스를 추면서 ‘키스를 해도 되느냐’고 했더니 ‘왜 이러느냐’며 화를 냈어요. 그래서 살짝 뽀뽀를 하고 말았죠.”
일행은 날이 밝아서야 카페를 나섰고 네 명의 여자를 데려다준 뒤 마지막으로 그의 집이 있는 일산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미련이 남아 미적거리는데 박해미가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잠시 후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들이 함께 간 곳은 KBS 방송국의 ‘엄앵란쇼’. 그는 이날 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의 이혼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황민씨는 그때 박해미의 나이를 처음 알았다고. 같은 상황에 대해 박해미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



“‘품바’가 1인극이어서 객석의 관객과 어우러져 ‘허벌나게’ 난장을 치려면 공연이 시작될 때 그날의 분위기를 띄워줄 남자를 골라야 해요. 이 남자를 처음 봤을 때 결혼 생각 같은 건 꿈에도 없었어요. 한번 실패를 했던 터라, 남자보다는 일이 우선이었죠. 느낌은 왔지만, 너무 어려서 ‘이건 아니다’ 하고 한계를 분명히 했어요. 저는 연하 취향이 아니거든요. ‘캐나다 교포가 출국을 앞두고 공연을 보러왔다’고 해서 ‘외국에서 고생했겠다’ 싶어 잘해줬던 게 전부예요. 그런데 자꾸 저를 여자로 대하잖아요. 그래서 ‘엄앵란쇼’에 데리고 가서 간접적으로 고백을 했죠. ‘나 이렇게 과거도 있고 나이도 많다’고.”
하지만 황씨는 비자 문제로 캐나다로 간 지 일주일만에 가방을 싸들고 돌아와 그의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캐나다의 부모에게는 취직이 되어 계약서를 쓰러간다고 둘러대고 귀국한 것.
“국내에 일가친척이 전혀 없어서 내가 받아주지 않으면 갈 곳이 없다는 거예요. 나중에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셨는데….”

뮤지컬 ‘맘마미아’ 주인공 박해미·황민 부부의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

다섯살 난 아들 성재. 이혼 경력과 나이차 탓에 결혼을 반대했던 시집의 마음을 풀어준 일등공신이다.


그게 작전이었는지 몰랐다는 박해미는 어쨌든 당시에는 내쳐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한다. 나이차도 너무 나고, 원했던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 ‘보내야 할 사랑’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편안히 쉴 수 있는 사랑을 찾아도 시원찮을 나이에 한순간 불같이 타올랐다 꺼지는 사랑은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황씨의 집요한 구애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하루 동안 유치장에 들어가 있던 황씨는 풀려나자 바로 그에게로 돌아왔다.
“그때서야 ‘이거 장난이 아니었구나, 객기가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좋게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고 제 집에서 동거를 시작했죠.”

동거 끝에 임신, 혼인신고 앞두고 시집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미국 UCLA 의대를 다니다 캐나다로 가서 화공학을 전공한 황씨는 낮에는 취직자리를 알아보고 저녁이 되면 대학로에 가서 그를 만났다. 박해미는 주변 사람들에게 황씨를 자신의 사촌동생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사촌동생인데 반말을 하냐?” “두 사람 좀 이상하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는 싸움이 잦았다. “왜 남들 앞에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냐?” “지금이 밝힐 때냐?”가 주싸움거리. 서른한 살의 박해미 입장에서는 직업도 변변치 않은 스물셋 젊은 사내와의 삶은 불안정 그 자체였다.
“함께 살면서도 계속 갈등을 겪었어요. 매력적인 남자였고 삶의 활력소도 되는데 문제는 나이차였죠. 늘 ‘내 또래만 됐어도’ 하고 생각했어요. 사회적인 편견을 무시하기가 어려웠어요.”
캐나다에서 가져온 돈도 바닥나자 황씨는 초등학교 동창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주류유통 회사에 일자리를 구했다. 낮엔 일하고 밤이면 박해미를 찾아 대학로로 오는 황씨를 비웃는 이들도 있었다.
“저보다는 해미씨가 더 힘들었을 거예요. 저희를 아는 몇몇 사람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박해미는 영계킬러다’ 하며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사람들의 눈길이 힘겨웠던 황씨는 결혼해 아이도 낳고 오순도순 살자며 박해미를 졸랐다. 하지만 그는 결심을 하지 못했다. “난 배우다, 아직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아기를 가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2000년 초였어요. 제가 외국 맥주회사에 다닐 때였는데 전 직원이 가족동반 사이판 여행을 갔어요. 그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이 친구가 임신소식을 알렸어요. ‘아, 나를 위해 아기를 가져줬구나’ 얼마나 감격했는지….”
아이가 생기자 박해미는 황씨와의 결혼을 결심했고 출산 후 혼인신고를 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시집어른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자식 교육 때문에 캐나다 이민길에 올랐던 부모는 그가 여덟살 연상의 여자와 동거하고 있고 곧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소식을 알렸을 때 거의 기절하다시피했다고 한다. 황씨는 한동안 캐나다의 부모와 의절하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가진 열달 동안 두 사람은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모진 시련을 겪었다.
“나름대로 제작도 하고 기획도 해보고 싶어 일을 벌였는데 그게 잘못됐어요. 뮤지컬과 탈선청소년들을 연결시켜 공연을 해보고 싶었는데 생각 외로 돈이 많이 들어갔어요. 투자도 받고 있는 대로 돈을 긁어서 사업을 벌였는데, 능력 부족으로 몇 억 빚만 지고 망해버렸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희 연극 스태프 중 한 사람이 사기를 쳐서 법정 구속을 당할 위기에 몰렸어요.”
임신 6개월 때 민·형사 사건이 연달아 터져 박해미는 만삭의 몸으로 검찰청을 오가며 사기친 사람들과 싸우는 한편 빚 문제로 시달려야 했다. 황씨는 소송상대로부터 온갖 멸시를 당하며 뺨까지 얻어맞았다. 또 보증을 서주었다가 월급까지 차압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황씨는 한번도 “당신으로 인해 고통스럽다, 괴롭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술자리에서 벌인 행인과의 주먹다짐으로 합의금 2천만원까지 물어주는 등 두 사람에게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 마케팅 팀장이었던 황씨는 회사를 그만둬야 했고, 박해미도 어디에도 손을 벌릴 수 없어 생계를 꾸리기조차 힘든 상황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든 어려움을 헤쳐나가기로 했다. 황씨는 삼촌 회사의 일을 도와주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고, 박해미 역시 레슨을 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뮤지컬 ‘맘마미아’ 주인공 박해미·황민 부부의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

그러는 사이 2세가 태어났다. 아들을 품에 안은 황씨는 캐나다로 전화해서 벅찬 감격을 알렸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했더니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전화를 끊었어요. 두시간 후에 아버지가 전화를 해서 ‘너는 이놈아… 의절…’ 하며 호통을 치시더군요. 그래서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전화는 끊어도 아이 이름은 성재라고 하고 영어 이름은 리차드라고 해. 아버지가 리차드니까, 할아버지 이름을 따!’ 하셨어요. 우리 부부를 받아들이신 거죠.”
성재의 탄생으로 부자간의 갈등이 해소되었고 박해미는 며느리로 인정받게 되었다. 마침 1년을 끌어오던 법정싸움도 무혐의로 끝나 이들 부부에게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경제문제 등 많은 어려움을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
“행복이 부의 축적에 있지 않다고 봐요. 돈이 없어 방 한칸에 살아도 가족간의 애정이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돈 때문에 밑바닥까지 내려가봤다는 박해미는 요즘 이혼사유 중 경제적 요인이 급증하고 있다는데,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살아오면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날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 편해요. 아직까지도 월 2백여 만원의 빚을 갚고 있고 다가구 주택 2층에서 전세도 아닌 월세로 살고 있지만, 사랑만은 잃지 않고 살아요.”
여덟 살의 나이차, 경제적 위기 등 숱한 악재 속에서도 이들 부부가 헤어지지 않은 이유가 뭘까? 더군다나 결혼을 했던 것도 아니고 동거를 했던 커플인데….
“이 남자와 살면서 제가 특별히 잘해준 건 없어요. 여느 아내들처럼 제때 식사를 챙겨주기도 힘들고. 오히려 남편이 찌개를 끓여 밥상을 차리곤 하죠. 걸레빠는 것도 힘이 좋기 때문에 훨씬 하얗게 빨 수가 있다며 자신이 하고, 아이에게도 정말 헌신적으로 대하죠.”
휴대전화가 걸려오면 “언제 오는데? 시간 맞춰 와” 하며 무뚝뚝하게 대하고, 화가 나면 “너 안 잡는다. 너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아내임에도 황씨가 그와 사는 이유에 대해 “오히려 매달리지 않기 때문에 사랑이 더 굳건한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엄포가 아니라 진짜 자신감있게 안 매달리니까 내 여자가 아닌 것 같은 불안감, 그런 게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남편이 저를 카멜레온이라고 하는데, 내 여자면서 매번 딴 여자를 보는 심리를 느낀다고 할까요? 그런 점 때문에 저 사람이 제게 더 잘하는 것이 아닐까요?”
‘맘마미아’ 공연 날짜가 다가오자 황씨는 아들을 데리고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가 ‘도나’ 역할에 100%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자 한 것이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 황씨가 부모에게 음식을 만들어드리고 설거지도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우셨다고 한다. 부엌일 한번 안 시키고 귀하게 키웠던 아들이 결혼 후 완전히 달라진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린 것.
“남자라고 무조건 군림하려는 태도는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어른들 중에선 저를 보고 ‘미친놈’이라고 혀를 차실 분도 계시겠지만 사랑하는 여자에게 지고 사는 것이 뭐 그렇게 나쁩니까? 밖에서는 지고 살면서 안에 들어와서 여자에게 명령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고 봐요.”
황씨는 요즘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독립했다. 외국 맥주를 수입하는 회사를 차려 업계에 돌풍을 일으킬 정도로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 하지만 ‘맘마미아’가 공연되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무대를 찾아 그날 공연에 대해 모니터를 해주고 뮤지컬이 끝난 뒤엔 집 앞 포장마차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올해까지만 고생하면 빚을 거의 갚아요. 내년엔 서울 근교에 작은 집을 얻어 불우한 환경의 아이를 입양해 성재와 함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꾸며보고 싶어요. 우리 주변엔 의외로 불행한 아이들이 너무 많거든요.”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어도 무대 위의 거목으로 살아갈 자신이 있다는 박해미. 꿈을 이루기 위해 요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건강’이라며 밝게 웃었다.

여성동아 2004년 5월 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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