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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수술한 시인이자 사회사업가 이문기

“남자로서 내가 사랑한 여자들과의 남다른 섹스 체험”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4.04.12 11:48:00

국내 최초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해 화제를 모았던 시인이자 사회사업가인 이문기씨가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사와 성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를 사랑했던 여인들과 여성을 혼절에 이르게 한 카섹스 등 그가 털어놓은 ‘내가 만난 여자들’과 섹스 체험.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수술한 시인이자 사회사업가 이문기

전과 3범의 조폭 두목에서 출소자들의 갱생을 돕는 사회사업가로, 시인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것으로 유명한 이문기씨(47·본명 이동숙)의 이력이다. 이처럼 그의 인생은 드라마틱하다. 그가 최근 자전소설 ‘색다른 남자’를 통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함께 남자로서의 여성 편력(?)을 털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6년 동안 사귀던 13세 연하의 여성과 2001년 11월 결혼했다가 5개월 만에 이혼했어요. 그 일로 너무 힘들어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했죠. 그때 제 삶을 정리하려고 글을 썼는데, 아무래도 제가 만났던 여자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더라고요.”
반포의 오피스텔에서 만난 그는 다리를 다친 상태였다. 보름 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벌써 네번째라고 한다. 이번은 아니지만 과거 사고들은 대부분 그의 목숨을 노린 것이었다. 이 외에도 몸 곳곳의 상처들이 그의 험난했던 인생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는 뿌연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여자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제가 여자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식구들은 공주처럼 예쁘게 자라기를 바랐지만 그럴 때마다 전 어린 나이에도 ‘여자 취급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어렴풋이 ‘내가 남자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밤에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나섰는데 셋째형이 여자들과 달리 담벼락에 서서 소변을 보는 게 보인 것.
“괜히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저도 화장실에 가서 서서 소변을 보는 연습을 하기도 했죠(웃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초등학교 때 입지 않았던 치마를 입어야 했다. 집안 식구들은 “드디어 여자다워졌다”며 좋아했지만 그는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속으로 ‘그래 당분간 여자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되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치마를 입는 것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 학교에 가면 여학생들 속에 성이 다른 제가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싫었어요.”
어느날,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청소시간에 교실 바닥에 엎드려 걸레질을 하다가 치마가 올라가면서 팬티가 드러난 것. 당시 그는 여성용 팬티가 아닌 남성용 팬티를 입고 다녔다. 뒤에서 걸레질을 하던 아이가 그걸 보고 놀라 비명을 질렀고, 소문은 삽시간에 학교 전체로 퍼져나갔다. 행동도 남자 같은데다 속옷까지 남자 것을 입고 다녔으니 그가 남자로 통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집에 여자 팬티가 있어요. 어머니가 사다 제 서랍에 넣어두었으니까요. 하지만 전 그걸 입는 게 싫어서 동생이나 오빠 것을 가져다 입었어요. 하다못해 교도소에 있을 때도 남자 팬티만 입었죠.”

여고 진학이 싫어 진학 자체를 포기
교복 치마를 입는 것조차 싫어했던 그였기에 여고에 진학하는 것은 지옥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남녀공학인 예술고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대신 동네 중학생들에게 과외를 하고, 합기도장을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날 텔레비전 뉴스에서 중학교 동창이 서울대 의예과에 수석합격한 여학생이라며 인터뷰를 하는 광경을 보았어요. 충격이었죠. 그 순간 3년을 허비한 제 자신이 한심스럽더라고요.”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동양방송 탤런트 공채에 합격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포기해야 했다. 다시 한번 배우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그래서 무작정 집을 나왔지만 당장 거처할 곳도 돈도 없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형들을 찾아갔어요. 세명이었는데, 밤에는 술집과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다 여자들과 호텔에 가고, 다음날 낮에는 차를 끌고 여대 앞에 가서 그날 밤에 같이 놀 여대생을 꾀어내는 게 하루 일과인 소위 상류층 오렌지족이었어요. 그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여자를 다루는 법을 터득했던 것 같아요.”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수술한 시인이자 사회사업가 이문기

전과 3범의 조폭 두목에서 사회사업가, 시인으로 변신해 새 삶을 사는 이문기씨는 자신의 삶 자체가 연기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을 두달 정도 하고나자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헤어 진 얼마후 길거리에서 누군가 알은 체를 하며 다가왔다.
“대뜸 저를 잘 안다고 해요. 제가 주먹을 잘 쓴다는 걸 알더라고요.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인데다 별명이 절구일 만큼 주먹이 강했거든요. 운동을 해서 몸도 날렵했고요.”
그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주위에 주먹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17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보스가 되어 충무로를 휘저으며 다녔다. 그런데 여자의 몸으로 남자들을 거느리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처음엔 남자로 보이기 위해 생리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생리대를 차고 다녔어요. 그러면 고환이 있는 것처럼 두둑하거든요. 나중엔 패드를 차지 않고 있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죠. 심지어 러닝셔츠 바람으로 있어도 운동으로 단련해서 가슴이 나온 것으로 생각들을 했어요. 목욕탕에 갈 때만 슬며시 빠져나왔죠. 조직원 어느 누구도 제가 여자일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그가 호남 출신의 주먹 조직이 장악하고 있던 무교동의 한 나이트클럽을 급습해 초토화시킨 것을 계기로 전국에 지명 수배가 내려졌다. 그로 인해 넉달 동안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불심검문에 걸리지 않기 위해 숱하게 변장을 하고 다닐 때도 여장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일년 정도 주먹세계를 경험하고 나니까 이것도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수를 결심했죠.”
신체구조상 여자이지만 겉모습은 완벽한 남자였던 그였기에 구치소 수감 첫날부터 곤혹스런 일을 겪어야 했다. 남자 피의자 줄에 서야 할지, 여자 피의자 줄에 서야 할지 망설여진 것이다. 그가 ‘여자’라고 말하자 구치소의 직원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결국 여자 교도관이 은밀한 곳을 확인한 다음에야 여자 수감방으로 갈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기상시간이 되자 여자 수감방은 남자가 들어왔다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80년 가을, 2년6개월의 형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한밤중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삼청교육대 소문을 들었던 터라 이씨는 직감적으로 자신을 잡으러온 기관원들임을 알았다. 이대로 잡혀가선 안 된다고 판단한 이씨는 재빨리 피신해 몇달 동안 도피생활을 했지만 오래 숨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사고를 내고 자청해서 교도소에 두번이나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까 제가 전과 3범이 되어 있는 거예요. 더 이상 교도소를 들락거리면 인생을 망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인생이 한심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 인생에 대해 하느님과 담판을 짓기 위해 명동성당에 갔어요. 그게 인연이 되어 출소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했어요.”
85년 출소자들의 자활을 돕는 ‘아브라함의 집’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사회사업가로 나선 그는 지금도 출소자들을 위한 봉사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성전환수술 전에도 여성들과 섹스 즐겨
그는 90년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함으로써 비로소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일치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성전환수술을 하기 전에도 여성과 섹스를 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가출 직후 상류층 오렌지족들과 어울릴 때나 폭력조직에 몸담고 있을 때 여성들과 섹스를 했어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성에 눈을 뜬 건 80년 교도소에서 처음 출소하고나서였어요. 출소하던 날, 전부터 알고 지내던 여인이 마중을 나와 있더라고요.”
이씨와 그녀는 동거에 들어갔고, 이내 사랑에 빠졌다. 7년 연상이었던 그녀는 남편과 이별한 뒤 혼자 살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당시는 성전환수술 전이어서 삽입섹스는 할 수 없었죠. 하지만 삽입섹스가 아니더라도 방법은 많아요. 그녀도 섹스를 하고난 후 ‘전 남편과 할 때보다 훨씬 좋다’며 행복해 했으니까요.”
두 사람은 결혼을 결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자끼리 결혼할 수 없다’는 양가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이씨에게 ‘함께 미국에 가서 성전환수술을 받고 그곳에서 살자’고 했지만 도피중이었던 이씨로서는 미국에 갈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이씨가 다시 교도소에 가면서 둘은 헤어져야 했다.
출소자의 자활을 돕는 새 삶을 시작한 후에도 여자들의 유혹이 끊이지 않았다. 함께 일하던 여직원은 물론 여성 자원봉사자들로부터도 끊임없는 유혹을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출소자들의 상담소인 ‘아브라함의 집’을 운영하며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누세트를 팔았는데, 이것을 미끼로 접근하는 여성도 있었다고.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수술한 시인이자 사회사업가 이문기

이씨는 한번도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상담소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로 비누 배달을 갔어요. 여자 혼자 있었는데, 대낮인데도 핑크빛 잠옷 차림으로 나오더니 비누값을 주겠다며 저를 집안으로 끌어들이더라고요. 그러더니 ‘연애 한번 하자’며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거예요. ‘시간을 내주면 멋진 차를 사 주겠다’고 했지만 유혹을 뿌리쳤죠.”
그는 마약이 동반된 질펀한 섹스 파티도 경험했다. 97년 그는 우연히 스와핑과 비슷한 모임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는 여자와 파트너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커플들이 마약에 취해 난교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란 그는 다음날 새벽 파트너와 함께 급히 차를 몰고 그곳을 빠져나왔다는 것.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어요. 서로 마음에 들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카섹스를 하게 되었죠. 그런데 그녀가 섹스 도중 절정에 이르자 비명을 지르더니 급기야 기절을 하는 거예요. 얼굴이 노랗게 변하고…. 급하게 손가락을 따서 피가 나게 하니까 그때서야 의식이 돌아오더라고요. 나중에 들으니까 원래 심장이 약하다고 하더군요.”



체위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
97년 소설 ‘형이라 불리는 여자’를 펴내며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알려진 후 그에게 프러포즈를 해오는 여성들이 많았다. 그중엔 고등학생도, 여대생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출소자를 위한 사회사업에만 전념했다. 그러다 알게 된 김모씨는 그의 적극적인 후원자 중에 한명이었다. 열세살이나 어렸지만 6년 가까이 이씨를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이씨도 점점 그녀에게 매력을 느꼈고,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되었다. 마침내 2001년 11월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끼리 결혼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식을 올린 게 화근이었다. 그의 결혼식을 이용해 이익을 보려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로 이씨는 법정소송까지 벌여야 했고 그게 갈등의 씨앗이 되어 김씨와의 다툼이 잦아져 결국 5개월 만에 헤어지고 말았다.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요. 싸울 때는 몰랐는데 그녀를 보내고 나니까 비로소 소중함을 알겠더라고요.”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수술한 시인이자 사회사업가 이문기

이씨는 2001년 6년 동안 연애한 여성 김씨와 결혼하는 등 완전한 남자로 살아왔다. 김씨와는 결혼 5개월만에 헤어졌다.


김씨는 이혼 후 영국으로 건너가 현재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지금도 가끔 전화연락을 하면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씨는 이혼의 아픔을 시로 승화시켜 ‘그대 떠난 뒤 사랑인 걸 알았네’라는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성전환수술을 하기 전에는 삽입섹스가 불가능하다. 성전환수술을 해도 만들어진 남성의 성기는 완전발기가 안돼 정상적인 섹스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들은 섹스를 할 때 비참함마저 든다고 한다. 그런데 이씨는 어떻게 성관계를 맺을까.
“남자들이 하는 것과 똑같아요. 물론 단순히 삽입운동만 하는 건 아니고 온몸으로 하는 거죠. 남자 성기가 없어도 서로 아랫도리를 밀착시켜 압박을 가하면 클리토리스를 자극해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어요. 여자들은 어떻게 하든 다 좋다고 해요. 몸을 부딪치는 게 좋은 거니까요.”
그는 체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래야 섹스가 더욱 즐겁다는 것.
“전에 아내도 그랬어요. 제가 남자성기 모형이 있다는 걸 알고 ‘그걸로 해줄까’ 했더니 싫대요. 제 살이 자기 살에 부딪치는 느낌이 제일 좋다는 거예요. 정말 좋은 섹스는 체온을 통해 서로의 사랑이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요?”

여성동아 2004년 4월 4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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