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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처음으로 동성 결혼식 올려 화제 모은 이상철 박종근 부부

“법적으로 부부 인정받아 아이 입양해 키울 거예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4.04.01 18:38:00

동성끼리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인가 여부를 놓고 세계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처음으로 남자 동성애자 부부가 탄생해 화제다. 공개 결혼식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법적으로 혼인신고까지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이상철 박종근 부부를 만났다.
국내 처음으로 동성 결혼식 올려 화제 모은 이상철 박종근 부부

동성끼리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느냐 여부를 놓고 로마교황청까지 나서는 등 세계적으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남자 동성애자 부부가 탄생했다. 지난 3월7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한 카페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상철(36) 박종근씨(32)가 그 주인공. 두 사람은 “평생 동반자로 살아갈 것을 맹세하는가” 하는 주례자의 질문에 힘차게 “예” 하고 대답하는 것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세상에 알렸다.
이날 결혼식은 축가와 화촉 점화, 성혼선언문 낭독, 혼인서약, 예물반지 교환 등 일반 결혼식과 같은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사람을 ‘신랑’ ‘신부’ 대신 ‘동반자’란 말로 지칭했다는 것뿐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20여명의 동성애자들이 하객으로 참석해 앞날을 축복해 주었는데, 양가의 부모 형제 친척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을 꼭 잡고 동시 입장한 두 사람은 식이 진행되는 동안 귀엣말을 주고받거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는 등 마냥 행복한 모습이었다.

2002년 만나 한달만에 동거 시작
결혼식이 있은 지 사흘 후, 동성애자들을 위한 회사인 (주)딴세상(www.ddan. co.kr) 사무실에서 이씨 부부를 만났다. 이씨는 이곳에서 여행사업부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은 손에 똑같은 모양으로 맞춘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 또한 몇달전,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권상우와 최지우가 하고 있던 하트모양의 커플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결혼식을 할 때 기분이 어땠나요?
“너무 너무 좋았어요. 결혼식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하루 종일 웃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방송사 카메라가 너무 많아 얼굴이 노출될까봐 식장에 못 들어오고 그냥 돌아간 동성애자 친구들이 많았어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도 부르지 못했고…. 그런 점이 안타깝긴 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이상철씨)
“기분이 너무 좋아 결혼식 전날 밤엔 잠이 안 왔어요. 아침부터 설레고, 정말 날아갈 것 같았어요.”(박종근씨)
-신혼여행은 어디로 다녀왔나요?
“2월부터 여행사 일을 새로 시작해 신혼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에요.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거든요. 그래서 롯데월드에 갔다가 1박2일로 청평에 다녀올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결혼식 때문에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놀이기구를 타다 보니까 어지럽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집으로 가서 잤어요(웃음). 청평엔 여름에 가기로 했어요.”
이씨의 말에 박씨가 “옆에서 어지럽다고 하니까 너무 안쓰러웠어요. 걱정도 되고” 하면서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얼굴엔 애정이 가득 묻어 있었다.

-신혼여행지를 청평으로 잡았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우리가 처음 놀러간 곳이 청평이었어요. 만난 지 한달쯤 되었을 때 청평에 갔는데, 그곳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동거를 시작했거든요.”

국내 처음으로 동성 결혼식 올려 화제 모은 이상철 박종근 부부

-신혼첫날밤은 어떻게 보냈나요?
“둘 다 피곤해서 저녁도 못 먹고 골아떨어졌어요(웃음). 잠자리에 들면서 둘이 손잡고 ‘이제 결혼식까지 올렸으니까 바람 피우지 말고,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잘 살자’고 약속했어요.”
처음 두 사람이 만난 것은 2002년 10월 서울 낙원동에 있는 한 극장에서였다고 한다. 당시 그곳극장은 동성애자들이 많이 모이는 대표적인 장소였다. 영화를 보고 있는 박씨가 너무 착하고 예뻐 보여서 이씨가 먼저 “커피나 한잔 하자”며 말을 걸었는데, 박씨도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고.
“둘 다 첫눈에 호감을 느꼈어요. 이성애자들이 이성에게 느끼는 감정하고 똑같아요.”
하지만 박씨는 처음엔 두려움을 갖기도 했다고 한다. 이씨가 목소리도 좋고, 얼굴도 잘 생기고, 매너도 좋아 마음에 들었지만 박씨에겐 아픈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겉으로 봐서는 모르잖아요. 전에도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어두운 곳으로 절 끌고 가더니 막 두드려 패고 돈을 뺏더라고요. 한번 만나고는 밥이나 옷을 사주거나, 돈을 주곤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었어요. 그래서 자기(그는 이씨를 이렇게 불렀다)가 다가왔을 때 처음엔 겁이 났어요. 하지만 여러 번 만나면서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동거는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요?
국내 처음으로 동성 결혼식 올려 화제 모은 이상철 박종근 부부

두 사람은 박종근씨(왼쪽)가 살림을 하고 이상철씨(오른쪽)는 돈을 벌어오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하며 산다고 했다.


“종근이가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당시 수원에 있는 세차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다리를 다쳐 일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집에 와서 살게 하면서 서울에 일자리를 알아봐주었어요.”
경남 통영의 한 섬에서 자란 박씨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갖은 고생을 다했다고 한다. 전국을 떠돌면서 세차, 슈퍼마켓 배달 등 궂은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왔던 것.
-종근씨가 평생 반려자라는 생각이 들게 된 계기는 뭔가요?
“1년 반을 함께 살면서 ‘내 반쪽’이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어요. 자기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착한 마음이 항상 저를 감동시켰어요. 처음엔 제 동생이랑 셋이서 살았는데, 종근이가 강아지를 길렀어요. 반면에 동생은 강아지를 무척 싫어했어요. 그것 때문에 둘이 많이 싸우더라고요. 그런데 어느날 종근이가 동생 이불을 깨끗이 빨아 말려서 개놓는 거예요. 저 같으면 미워서 그렇게 안할 텐데…. 그 정도로 착한 친구예요. 동생도 감동해서 그 후로는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또 새 물건이 생기면 ‘형이 좋은 것 써야 한다’며 저를 주고 제가 쓰던 물건을 자기가 써요. 제가 만난 사람 중에 마음이 가장 착한 친구예요.”
-같이 살면서 이웃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았나요?
“연립주택에 살았는데, 이웃사람들에겐 외사촌간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둘이 서로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이 강하게 담겨 있으니까 사람들이 눈치를 챘죠. 그래서 전 주민 공동의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했어요.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하고 친해지니까 우리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더라고요.”


국내 처음으로 동성 결혼식 올려 화제 모은 이상철 박종근 부부

-집안 살림은 주로 누가 하나요?
“종근이가 살림하는 걸 좋아해요. 집안 청소, 식사 준비는 물론 제 옷도 잘 다려줘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살림하는 걸 좋아했는데, 종근이는 저보다 더 잘해요. 그래서 전 돈을 벌어오는 데 주력하고 종근이가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어요.”
“박씨에게만 집안일을 시키는 것은 가부장적인 거 아니냐”고 하자 이씨는 “대신 종근이가 삐치거나 피곤하다고 하면 내가 다 한다. 잘 도와주는 편이다” 하며 웃었다.
이성 부부들이 누리는 법적인 권리 누리고 싶어
동거를 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은 많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한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동성애자들도 대부분 결혼식을 하고 싶어해요. 결혼식을 하면 커밍아웃(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두를 못낼 뿐이죠. 그런데 EBS에서 동성애를 다룬 프로를 만들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어떻게 하면 동성애자들의 인권문제를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리가 결혼식을 올릴 테니 그걸 방송해달라고 제가 제안했어요. 그래서 갑작스럽게 추진된 거예요.”(이상철씨)
-공개 결혼식을 한다는 게 국민을 상대로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니까, 쉬운 결심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각오는 했지만, 결혼식장에 너무 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처음엔 겁도 나고, 당혹스러웠어요. 집안 어른들이 이 사실을 알고 어떻게 나올까 걱정도 되고.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각오도 되어 있고요.”
-결혼식 때 양쪽 모두 가족들이 안 왔는데 안 부른 건가요?
“아직 공개 결혼식을 한다는 것까지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 말씀을 안 드렸어요. 충격을 받고 결혼식을 못하게 막을 수도 있으니까요. 부모님은 제가 동성애자라는 걸 알고, 이해하세요. 종근이와 함께 집에 갔을 때도 아버님이 ‘착하게 생겼다. 둘이 행복하게 살라’고 격려도 해주셨어요. 하지만 둘이 같이 사는 것하고 공개 결혼식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잖아요.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인사를 드리러 가야죠. 종근이네는 아직 종근이가 동성애자라는 것도 몰라요. 아니, 알고는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상태일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인정하실 거예요. 사람들은 누구나 가족이 행복해지길 바라잖아요.”
-결혼하니까 뭐가 가장 좋은가요?
“결혼 때문은 아니지만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같이 살던 동생을 독립시켰어요. 우리 둘만의 공간을 갖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종근이가 너무너무 좋아해요.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시집 식구들이랑 사는 게 불편하고, 둘만 살고 싶어 하는 건(웃음).”
-흔히 부부생활에서 섹스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동성 부부도 마찬가지인가요?
“사실 동성애자들도 성적으로 서로 맞지 않으면 안돼요. 섹스트러블이 생기면 금방 헤어져요. 우리는 성적인 것도 잘 맞아요. 만족스러울 만큼.”
-서로 호칭은 뭐라고 부르나요?
“집에서 전 종근이를 ‘애기’라고 불러요. 종근이는 저를 ‘형’이나 ‘자기’라고 불러요. 어떨 땐 ‘여보’라고 하기도 해요(웃음). 서로 밥도 먹여주고, 정말 행복해요.”
-혼인신고는 했나요?
“결혼식 다음날인 3월8일 구청에 가서 신고서를 냈어요. 일단 접수를 하더니 그날 오후에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민법 제103조에 의거해 수리를 할 수 없다고 통보를 해왔어요. 그러면서 개인마다 행복추구권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헌법소원을 내라고 조언을 해주더군요. 헌법에 분명히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는데, 왜 안 된다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국내 처음으로 동성 결혼식 올려 화제 모은 이상철 박종근 부부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가요?
“이건 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동성애자인권단체와 충분히 상의한 다음 행동을 할 거예요. 우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을 생각이고, 다른 단체들과 연대해 헌법소원을 낼 거예요.”
-굳이 법적으로 혼인신고하려는 이유가 있나요?
“권리를 찾고 싶은 거죠. 똑같이 세금을 내고 의무를 다하는데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부부가 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못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배우자에게 상속을 한다든지, 의료보험, 세금 절감, 전세자금 저금리 융자 등 법적 제도적 보장을 우리에게도 해달라는 거예요. 동성애자의 인권을 인정받고 싶어요.”
-2세 계획은 있나요?
“입양을 할 생각인데, 지금은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받는 문제가 더 중요해요. 결혼을 해야 입양할 자격이 생기거든요. 법적 문제가 해결되려면 몇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겁니다.”
-동성끼리의 결혼을 인정하는 나라도 있잖아요. 그런 곳으로 이민 갈 생각은 안 해보았나요?
“당연히 해보았죠. 그렇지만 ‘왜 내가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동성애자가 아닌 척하고 여자와 결혼해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어요. 하지만 저 자신을 속이며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우리나라의 이성애자들을 이해시키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린 죽는 날까지 사랑할 거예요”
이씨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22세 때 깨달았다고 한다. 물론 전부터 여자 보다는 동성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그건 사춘기여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와도 목욕탕에서 남자의 성기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고.
“저를 쫓아다니던 여자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처음엔 그런 제가 싫기도 했지만 결국 제가 좋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녔죠. 그들을 만나는 게 즐거웠어요.”
93년 큰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가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술집에 출입하는 것을 본 회사 직원이 회식자리에서 그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 일이 있고나서 일주일 동안 회사도 못나가고 엄청 괴로웠어요. 더 이상 일반인들과 함께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죽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나중엔 자살할 용기로 이 세상과 싸우자고 결심했어요.”
박씨 역시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깨달은 뒤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그의 다리엔 아직도 자살을 시도하면서 입은 상처가 깊게 남아 있다.
“우리의 행동이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일반인들도 우리가 왜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이렇게 하는지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이성에게 느끼는 것이나 우리가 동성에게 느끼는 것이나 다 똑같은 사랑이에요. 그런 걸 인정해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씨와 박씨의 바람은 단순하면서도 간절했다. “우린 죽는 날까지 사랑할 거예요. 우리의 행복을 빌어주세요” 하는 두 사람의 말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성동아 2004년 4월 4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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