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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 딛고 뉴욕 최연소 부장검사 되어 화제 모은 정범진씨와 10월 결혼하는 이수영 러브 스토리

“결혼하면 가장 먼저 2세 갖기 위한 노력부터 할 거예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4.03.04 10:57:00

5백억원대의 재산을 가진 벤처 갑부 이수영씨가, 장애를 딛고 2000년 미국 뉴욕 최연소 부장검사에 올라 화제가 되었던 정범진씨와 오는 10월 결혼한다. 나이와 장애, 태평양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중증장애 딛고 뉴욕 최연소 부장검사 되어 화제 모은 정범진씨와 10월 결혼하는 이수영 러브 스토리

발레리나를 꿈꾸는 무용학도에서 벤처사업가로 변신, 5백억원대의 부를 축적한 벤처업계의 ‘신데렐라’ 이수영씨(39)가 오는 10월 결혼한다. 상대는 어깨 아래 전신마비라는 중증장애를 딛고 미국 뉴욕 브루클린 지방검찰청 강력부 부장검사에 오른 재미교포 정범진씨(37). 태평양을 뛰어넘는 사랑을 일궈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씨를 만났다.
강남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이수영씨의 얼굴에선 행복한 미소가 그칠 줄 몰랐다. 연신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에서 예비신부의 설레는 마음이 가득 느껴졌다. “결혼 준비 때문에 일에 소홀해지는 것 아니냐”고 하자 “결혼을 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또 웃는다.
과거 온라인 게임업체 웹젠과 여성 포털사이트 마이클럽닷컴을 최고의 벤처기업으로 성장시키며 벤처신화를 일구었던 이씨는 한동안 벤처업계를 떠나 있다 지난 2월 ‘이젠’이란 새로운 벤처회사를 창업했다. 엔터테인먼트 포털업체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차별화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 10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하는 걸 목표로 준비중이라고 한다. 따라서 10월 전에 모든 준비가 끝나지 않으면 결혼 역시 연기될 수밖에 없다.
“직원들이 저를 꼭 시집 보내야 한다며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믿어야죠(웃음).”
사업가로서 남부럽지 않은 부와 사회적 명예를 얻은 그가 갑자기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했다.
“전 일도 사랑도 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가족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가족은 정신적 안정감을 주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잖아요. 그런 사랑을 느껴야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믿어요. 그런데 제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가족을 만들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전 결혼을 못하면 아이를 입양해서 가족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2002년 봄 우연히 정범진 검사가 나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아홉살 때 미국에 건너간 정씨는 워싱턴대 법대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어깨 아래를 전혀 쓰지 못하는 전신마비의 장애인이 되었다. 하지만 시련을 딛고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 2000년 뉴욕 브루클린 지방검찰청 사상 최연소 부장검사가 됐고, 지난해에는 강력부 부장검사로 승진했다. 그의 인간승리에 많은 여성들이 감동을 받았고, 이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정씨는 ‘밥 잘 먹고 힘센 여자를 찾습니다’란 책을 펴내고 공개구혼을 하던 차였다.
“저도 나이가 있으니까 주위에 남자도 많고, 남자친구도 많았고, 결혼을 생각한 남자도 여럿 있었어요(웃음). 그들 중에는 정말 사람들이 다 좋아할 만한 조건을 갖춘 사람도 있었지만 마음이나 생각에 장애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결혼할 사람을 찾기 힘들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정검사는 생각이 참 올바른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꼭 한번 만나고 싶었어요.”
하지만 미국 뉴욕에 있는 정씨를 만날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2002년 9월 웹젠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후 미국 뉴욕에 갈 기회가 생겨 정검사의 인터넷 팬카페를 통해 ‘만나자’는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이 없어 만나지 못했다. 또한 그해 12월 말 장애인 자선행사를 위해 정검사가 입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호텔로 찾아갔지만 이번엔 길이 엇갈리고 말았다.

중증장애 딛고 뉴욕 최연소 부장검사 되어 화제 모은 정범진씨와 10월 결혼하는 이수영 러브 스토리

어깨 아래 전신마비의 장애를 딛고 뉴욕 지방검찰청 부장검사에 오른 정범진씨는 2002년 공개구혼을 해 많은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


기회는 우연한 곳에서 찾아왔다. 2003년 5월 웹젠이 코스닥시장에 등록되면서 최대주주인 그가 수백억원의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을 때였다.
“당시 제 책상에 정검사 사진이 붙어 있었어요. 취재온 기자들마다 누구냐고 물어봐요. 그래서 ‘정범진 검사인데 무척 좋은 남자 같다’고 했어요. 그런데 다른 기자들은 다 그냥 듣고 넘겼는데 한 스포츠신문 기자가 그걸 ‘나의 이상형은 정검사- 공개 프러포즈’란 제목으로 기사화한 거예요. 무척 당혹스러웠죠. 상대방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를 어떤 여자로 볼까 걱정도 되고. 전 정검사가 그 기사를 못 보기를 바랐는데 며칠 후 그 기자가 다시 찾아왔어요. 정검사의 아버지에게서 ‘이수영이란 여자가 누구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고 하더군요.”
그 기자는 이씨에게 정검사 아버지가 알려준 정검사의 이메일 주소와 집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얼굴도 못 보았는데 전화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이씨는 먼저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기사가 나가게 돼 미안하다’는 사과의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날 정검사로부터 ‘괜찮다. 언제 한번 뉴욕에 오라’는 답장이 왔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이메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메일 데이트를 하던 두 사람은 지난해 8월 뉴욕에서 처음 만났다. 이씨가 마이클럽 사장을 사임하면서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도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마침 뉴욕에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해 약속 날짜보다 늦게 도착했던 것이다. 그나마도 짐을 찾을 수 없어 다시 잡은 약속 시각을 몇 시간 남겨놓고 옷과 신발, 화장품 등을 전부 새로 사야 했다.
“이틀 동안이나 입고 있었던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는 도저히 못 만나겠더라고요. 얼른 백화점으로 달려가 부랴부랴 속옷부터 핸드백까지 전부 새로 구입했어요. 옷도 가장 먼저 눈에 띈 검은색 원피스를 샀는데, 나중에 정검사가 자기는 그 옷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더군요.”
이씨가 당시의 난감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원래는 3박4일 일정으로 갔어요. 두어 번 만나 밥이나 같이 먹고 돌아올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여자들은 직감이란 게 있어서 이 남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느낌으로 알잖아요. 첫날 만나고 바로 일정을 일주일 머무는 것으로 바꿨어요(웃음).”
뉴욕에서 만난 지 3일째 되던 날, 정검사가 “진지하게 사귀자”고 제안했다. 이후 이씨가 한달에 한번꼴로 뉴욕으로 날아가 열흘 정도씩 머물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을 때는 국제전화로 사랑을 속삭였다.
“저는 늘 가정을 가질 생각을 하고 있었고, 정검사도 공개적으로 프러포즈를 한 상태라 젊은 사람들처럼 밀고 당기는 사랑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함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애정과 신뢰가 갔어요. 저에게 감추는 것도 없고요.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결혼은 현실적인 것을 맞춰가는 파트너가 필요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하면 서로 통하는 게 많았어요. 야구를 시청할 때도 그렇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잘 맞았어요. 둘 다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유치하니까요(웃음).”
정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 누구보다 오랫동안 깊게 생각을 해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사고 후에 사귄 여자분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결혼에 대해 저만큼 많이 생각했던 사람이죠. 그런 그가 진지하게 사귀자고 한 것은 나름대로 저에 대한 판단이 섰기 때문이겠죠(웃음).”

중증장애 딛고 뉴욕 최연소 부장검사 되어 화제 모은 정범진씨와 10월 결혼하는 이수영 러브 스토리

예비 신랑신부인 정범진씨와 이수영씨. 둘다 사진 찍는 것을 안 좋아해 둘이 찍은 유일한 사진이라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은 대부분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동화 속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경우가 많다. 이씨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 “언제 정검사가 운명적인 사랑으로 다가왔냐”고 물어보았다.
“저도 20대 때 운명적인 사랑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정말 운명적인 사랑이었을까 의문이 들어요. 정검사도 그렇게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보석이 된 사람이고, 저 역시 평탄하게 살아오지는 않았어요. 서로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통하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운명적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같이 살아야 하고, 같이 살면 잘 맞을 것 같은 파트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크리스마스 이브에 뉴욕 맨하튼에서 프러포즈 받아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 처음 들었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이씨는 두번째로 미국을 다녀오고 난 후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전화를 끊을 때 늘 저에게 ‘뭐 잊은 것 없냐’며 저로 하여금 ‘좋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게 한다”며 웃었다.
“같이 있으면 참 즐거워요. 제가 말이 별로 없으니까 저랑 전화할 때나 이야기를 할 때면 말을 많이 하면서 재미있게 해줘요. 애교도 얼마나 많은데요.”
지난해 크리스마스는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이씨를 에스코트하러 호텔방에 들어선 정씨가 느닷없이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약혼의 징표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며 프러포즈를 한 것이다.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상상하는 프러포즈 상황이 있잖아요. 멋진 레스토랑에서 남자가 무릎 꿇고 반지를 주면서 결혼을 해달라고 하는 것인데, 정검사는 무릎을 못 꿇으니까 그럴 수도 없고 멋진 레스토랑에서 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전세계 여자들이 꿈꾸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뉴욕 그것도 맨하튼에서 프러포즈를 받았으니까 전 행복한 여자죠. 정검사도 원래 식당에서 하려고 했대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 시선 때문에 못할 것 같아 호텔방에서 했다고 하더라고요. 식당에서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웃음).”
프러포즈 상황을 떠올린 것일까. 그의 얼굴이 잠시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결혼은 두 사람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는 그의 말에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제가 없을 때 동생이 부모님에게 정검사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녹화한 비디오를 보여주었어요. 제가 처음 말했을 때에는 그저 몸이 조금 불편한 정도로만 아셨나 봐요. 별 말씀이 없으셨는데, 비디오를 다 못보고 밖으로 나가셨다고 하더군요. 어머니는 ‘되도록이면 다시 생각할 수 없냐’고 하는 편이에요. 반면 아버지는 최근에 당뇨로 발가락을 하나 절단수술한 후부터는 적극적으로 제 편이 되어주세요. 제가 어머니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는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정도로 걱정하시는 것 같아요. 딸이 고생하지 않을까 하는.”
그는 장애인의 가족은 고생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정검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옆에 사람이 있어야 해요. 한국에서는 결혼 전에는 부모가, 결혼 후에는 아내가 당연히 그 일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미국에선 꼭 그렇게 생각 안해요. 사람을 고용하면 되는 거죠. 가정부를 얻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가족에게 뒷바라지는 부차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살면서 서로 행복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린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확신해요. 제가 정검사와 결혼을 하는 데 자신있다고 하는 이유도 그렇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힘이 센 여자라도 전동 휠체어를 번쩍 들 수는 없을 거예요(웃음).”



중증장애 딛고 뉴욕 최연소 부장검사 되어 화제 모은 정범진씨와 10월 결혼하는 이수영 러브 스토리

웹젠과 마이클럽을 경영하며 닷컴신화를 일군 이수영씨는 지금 ‘이젠’이란 새로운 벤처회사를 설립해 다시 한번 벤처신화를 꿈꾸고 있다.


물론 그도 옆에서 내조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건 안다. 실제 뉴욕에서 데이트를 할 때도 정검사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차를 오르내리기 힘들기 때문에 웬만한 거리는 차를 타지 않는다. 그래서 전동 휠체어를 탄 정검사를 따라 먼길, 특히 오르막길을 걸을 때면 이씨도 피곤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혼자 택시를 타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신혼여행지를 잡을 때도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당초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는 4월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새로 시작하는 사업 때문에 10월로 연기를 했다. 이씨는 프러포즈를 받은 후 가장 먼저 신혼여행지부터 물색했다고 한다.
“정검사가 이동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가 많이 필요해요. 그래서 교통이 편리해야 하고, 또한 휠체어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도로에 계단이 많거나 보도블록이 돌로 되어 있는 곳은 안돼요. 그래서 유럽은 못 가요. 신혼여행지를 찾기 위해 지구본을 몇 바퀴나 돌려봤지만 적당한 곳을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정검사는 하와이로 가자고 해요. 또한 호텔을 정할 때도 휠체어로 모든 게 가능한지 확인해야 해요.”
그의 말투에는 불만보다는 정검사에 대한 배려와 애틋한 감정이 배어 있다.

3년간은 한국과 미국 오가며 살 계획
이씨는 앞으로 3년 정도는 새로 시작한 사업을 안정시키기 위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신혼생활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후에는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정검사가 한국으로 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중증장애인인 그가 한국에 와서 활동할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2세 계획을 많이 물어보는데, 둘 다 나이가 있으니까 빨리 노력을 해야죠. (정검사가) 가능한지 검사도 받아보고요. 정검사 말로는 아직은 가능하다고 해요. 임신은 제 사업과 상관없이 빨리 시도할 생각이에요. 저는 입양을 먼저 생각했는데 정검사는 본인이 할 수 있으니까 한번 시도해보고 그 다음에 입양을 생각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 보면 남자들이 핏줄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씨의 재산이 5백억원대에 이른다는 걸 정검사가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한번도 그런 이야기는 안했어요. 그런데 솔직히 모르진 않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게 제가 미국에 갈 때마다 계속 호텔에 머물 수는 없으니까 집을 얻어야 하거든요. 임대를 하면 월세가 너무 비싸서 집을 사기로 했어요. 집 구하는 일을 지금 정검사가 하고 있는데 ‘이런 집을 보고 왔다’는 말을 할 때마다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올라가더라고요(웃음). 정검사는 한번도 제 월급이 얼마인지 물어보지 않았어요. 대신 언제든지 제가 일을 그만둬도 자기 월급으로 우리 두 사람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해요.”
성공과 실패의 부침이 심한 벤처 분야에서 강한 추진력과 예리한 판단력으로 성공신화를 일궈온 이씨도 정검사와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동안은 수줍은 소녀로 변해 있었다.

여성동아 2004년 3월 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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