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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미스터리의 진실

“살아남은 훈련병 직접 만났다” 주장하는 ‘실미도’ 원작자 백동호

■ 글·이영래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4.02.10 11:30:00

영화 ‘실미도’가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북파공작 임무를 띠고 특수훈련을 받다 정부의 배신에 분노, 청와대로 향했던 실미도 훈련병들은 전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사건을 추적했던 소설 ‘실미도’의 작가 백동호씨는 “생존자가 있고 직접 만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실미도 훈련병 중 생존자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일까?
“살아남은 훈련병 직접 만났다”  주장하는 ‘실미도’ 원작자 백동호

소설 ‘실미도’의 작가 백동호씨는 실미도의 진실을 교도소에서 만난 생존 훈련병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말 개봉된 영화 ‘실미도’가 개봉 19일 만에 전국 5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흥행의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는 역대 국내 개봉영화 사상 최단기간 기록이다.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실제 실미도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데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1971년 8월23일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인천시내버스를 타고 나타난 군인들이 군경합동진압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폭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실미도 사건. 단 한명의 생존자도 남지 않은 그들은 우리측 특수부대 684부대원들이였다. 684부대는 1968년 1월 김신조가 이끄는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했던 ‘1·21 사태’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같은해 4월 창설된 특수부대. 김일성 암살을 목적으로 사형수 등 사회 밑바닥 인생들을 모아 극한 훈련을 시킨 정부는 작전 성공시 모든 형벌을 취소하고 전과기록을 말소하는 등 새삶을 보장했지만 남북화해 기류가 흐르자 모든 작전을 전면 취소하고 그들을 전원 사살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사전에 알아챈 훈련병들은 반란을 일으켜 기간병들을 죽이고 실미도를 탈출, 청와대로 향하다 전원 사망하고 만다.
개봉 당시 이 영화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은 “훈련병 중 생존자가 단 한명도 없고 관련자들의 증언도 엇갈리는 부분이 많아 사실 복원에 애를 많이 먹었다”며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데 따른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이는 이제까지 실미도 사건을 추적했던 모든 이가 안타까워하는 점이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고민이다. 실미도 대원들이 과연 전원 사형수나 무기수였는가 하는 점 또한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을 정도로 실미도 사건에 대한 기록은 불완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실미도’의 원작자 백동호씨(49)가 “훈련병 중 생존자가 있다”는 주장을 펼쳐 관심을 끌고 있다. 사건 당시 소대장이던 김방일씨는 31명으로 구성되었던 실미도 부대원 중 7명은 훈련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24명은 탈주 사건 때 목숨을 잃었다며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백동호씨는 어떤 근거로 실미도 훈련병 중 생존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다섯살 때 고아가 돼서 아이 없는 집에 양자로 보내졌는데 하도 때리고 학대를 하니까 결국 못 이기고 13세 때 가출을 했습니다. 그 나이에 집을 나왔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소년원부터 시작해서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 듯 들락거렸죠. 제가 사실은 전과 7범이에요. 동산유지 금고털이 사건으로 체포돼 8년6개월을 복역하면서 가장 오래 감옥에 있었는데 그때 교도소에서 실미도 훈련병 출신 생존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교도소에서도 유명한 주먹꾼으로 미국으로 밀항한 뒤 소식 끊겼다”
백동호씨는 20억원대 금고털이범으로 지난 85년 체포돼 8년여를 복역하고 나온 뒤, 자전소설 ‘대도’를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인물. 그는 교도소에 있을 당시 실미도 훈련병 출신 복역수를 만나 실미도 사건을 직접 전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96년 출소하자마자 소설 ‘실미도’를 쓰려고 했다는 것.
“청와대로 가자고 하는데 전원이 찬성했을 리는 없잖아요? 훈련하다 죽은 7명을 빼고 탈주에 가담했던 인원이 24명인데 이 사람들이 패가 갈린 거예요. 청와대 가면 다 죽으니까 각자 흩어지자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중 한명은 강경파에게 맞아죽고 두명은 섬을 탈출해서 다른 인생을 살았던 겁니다.”

“살아남은 훈련병 직접 만났다”  주장하는 ‘실미도’ 원작자 백동호

그는 그 근거로 당시 모든 신문들이 섬을 탈출한 인원이 21명이라고 보도했다는 점, 실미도에 인접한 무의도 주민들이 탈주해온 훈련병들을 봤다고 하는 점, 사건 다음날인 인천 민가에 훈련병들과 같은 복장의 괴한이 침입해 밥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만일 생존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교도소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 또 다른 범죄를 저질러 체포됐다면 그 또한 사형을 당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전과 7범인 나 또한 내 이름으로 형을 산 것은 단 두번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70년대나 80년대쯤에 호적이나 신원을 위조하는 것은 간단한 일에 속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실제 만났던 생존 훈련병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백씨는 그에 대해 “사람을 죽이는 데 이력이 난 살인자로 다부진 체격에 무술 실력이 뛰어났다. 교도소 안에서도 실력자로 대접받은 대단한 싸움꾼이었다”고 회상했다. 국내 암흑가를 전전하다 미국으로 밀항해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2년여 전쯤 마지막 통화를 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실미도 훈련병 중 생존자가 있다는 주장도 흥미롭지만 실제 백씨의 삶도 한편의 드라마 같다. 전과 7범의 전과자가 소설가로 거듭났다는 점이 더욱 관심을 끄는데, “어떻게 소설을 쓸 생각을 했냐?”고 묻자 그는 “국립호텔에 장기 투숙한 덕에 3천권이 넘는 책을 읽게 됐다”며 웃었다.
“감옥에 8년여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도 남들처럼 사랑받고 컸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다, 어차피 감옥에 있게 됐으니 이 기회에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자, 그래서 시작한 게 검정고시 공부였습니다. 제 꿈은 감옥에서 공부해 서울대 가는 거였는데 여러 사정상 그게 안됐죠. 그래서 기왕 공부한 거 글을 써보자고 결심한 겁니다.”
뜻한 대로 대학 진학은 하지 못했지만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한 그는 출소를 2년여 앞두고 1급 모범수가 됐다. 그때 그의 후견인이 돼준 사람이 황순헌 변호사다. 면회 오는 사람 하나 없는 그를 위해 황변호사는 매달 10만원의 영치금을 넣어주는가 하면, 출소 이후 글을 쓰겠다는 그를 위해 3천만원의 생활 자금을 대주기도 했다고 한다.
“제가 지금까지 가장 감사하는 분이 바로 황변호사입니다. 그렇게 도움을 받고 제가 정상적으로 살게 됐으니 저 또한 보람 있고 뜻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실미도 진상 추적에 더 매진할 수 있었던 거죠. 사건을 처음 추적할 때는 안기부로 보낸다는 협박도 받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 덕분인지 제 소설 ‘실미도’가 지난 4년여간 수십만부나 팔렸어요. 영화 원작료로 받은 돈도 상당했죠. 그러나 무엇보다 제가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은 실미도의 진실을, 그리고 실미도에서 죽은 사람들의 한맺힌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는 겁니다.”
그는 사건 당사자는 아니지만 생존 기간병 출신으로 구성된 ‘실미도 전우회’(회장 김방일)의 명예회원이기도 하다. 일찍이 언론조차 실미도 사건을 취재할 엄두도 못내던 시절, 실미도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고 관심을 기울여온 정열을 인정받은 덕분이라고 한다.

여성동아 2004년 2월 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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