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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아이와 함께 보는 풍경화

마법사의 물 상자

2004. 02. 03

마법사의 물 상자

고명근, 물, 2003, 필름, 플라스틱, 29×29×41cm, 작가 소장


바다를 그린 그림을 ‘해양화’라고 합니다. 해양화의 재미는 무엇보다 그림으로 표현한 시원하게 몰아치는 파도나 거칠고 무서운 폭풍우를 보는 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유롭고 힘찬 물의 운동을 보는 재미지요.
그런데 이런 물의 풍경은 어떤가요?
사진설치작가 고명근의 <물>은 대단히 특이한 작품입니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육면체를 만든 뒤 출렁이는 바다를 담은 필름으로 둘러싸 물이 자유롭게 흐르고 요동치는 대신 각진 상자의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계단도 있어 오르내릴 수 있게 돼 있네요.
물 위를 걷는 것도 힘든데, 이렇게 물로 된 계단을 밟고 다닌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요? 필름으로 이뤄져 속이 훤히 비치는 이 물 상자는 그러나 그 현실성과 관계없이 정말 그럴 듯합니다. 마치 마법사가 ‘물 위를 오르고 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우리의 바람을 눈치채고 물 상자를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작가가 물을 이처럼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표현한 것은 공기나 흙, 불처럼 물이 자연의 기본 요소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계단은 수면 아래와 위를 잇는 역할을 하지요. 물은 근원과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그 근원과 지혜에 닿을 수 있도록 계단을 설치해 주었습니다.

한가지 더∼
사진은 여러 벌 인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흔히 원작성(originality)이 떨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고명근의 작품은 사진을 이용한 설치미술인 까닭에 원작이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그는 현재 국민대 교수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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