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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뜻밖의 고백

20년 만에 재회한 연하 화가와 3년간 나눈 뜨거운 사랑 고백한 탤런트 김애경

■ 글·강은아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4.02.03 10:54:00

독신인 연기파 탤런트 김애경이 2년 연하의 화가와 3년여에 걸쳐 ‘깊은 사랑’을 나누었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지난 97년 20년 만에 재회한 연하의 화가와 뜨거운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헤어지게 된 안타까운 사연을 자전 에세이를 통해 고백한 것.
‘시고도 떫고도 더러운 사랑’(가제)이라는 말로 요약하는 그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
20년 만에 재회한 연하 화가와 3년간 나눈 뜨거운 사랑 고백한 탤런트 김애경

지난해 특유의 콧소리를 내면서 통감자를 써는 CF로 인기 몰이를 했던 그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브레인 서바이버’란 코너에서도 엉뚱하고 귀여운 잔소리로 인기를 얻고 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짜릿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고도 감사했죠. 이렇게도 순수하고 진지하고 또 찐한 사랑이 내게 오다니…. 특수효과로 처리한 CF나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꽃잎이 여기저기 하늘하늘 날아다니고 부드러운 향기가 가득한 공간을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니까. 그야말로 생전 처음 사랑을 느껴 본 ‘숙맥’ 아가씨처럼 눈에 콩깍지가 끼어서 사랑이란 감정의 달콤하고도 황홀한 마법에 빠져든 거죠.”
탤런트 김애경(55)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20대 시절 연기자와 팬의 관계로 시작된 그 남자와의 인연. 두 살 연하의 그는 키도 훤칠하고 서글서글하니 잘 생긴 외모를 가진 청년이었다고. 하지만 처음 만났을 당시는 그를 이성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도 아니었고 특별한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20년 전이면 연하의 남자와 교제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불륜을 저지르는 것처럼 여기던 시절이었죠. 나 역시 연하의 남자와의 사랑, 결혼 같은 것은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냥 좋다고 자꾸 쫓아다니니까 몇 번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했는데 그 사람이 군대 가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어요. 그때까지 키스는커녕 손 한번 제대로 안 잡아본 상태였죠.”
그 후 군대에 간 그 남자는 ‘군대 안에서 장미 꽃밭을 헤매며 그리워하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나 핑크빛 장미꽃밭에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 넣은 대형 그림을 보내기도 했다고. 하지만 그는 그 편지들을 세월과 추억 속에 고이 묻어 두었다고 한다.
그렇게 흐른 20여년. 그는 연기자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던 세월이라고 한다. 10년 전 홀어머니가 폐암으로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면서 늘 강한 척 씩씩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살았던 것. 하지만 친구처럼 연인처럼 의지처가 되어주던 어머니가 떠나자 내심 많이 외롭고 힘겨웠다고 한다.
“오랫동안 혼자 살다보니 혼자 사는 여자 특유의 괴팍스러움 같은 것이 나도 모르게 배어 있지 않을까 늘 조심했어요. ‘혼자 사는 여자니까 성격이 그 모양이지’ 하는 이야기를 안 들으려고 나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꾹꾹 눌러가며 늘 밝고 낙천적으로 살려고 노력했죠.”
행여 결혼 이야기라도 나오면 “적당한 사람이 언젠가는 나타나겠죠” 하고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기댈 수 있는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지인들을 통해 그의 연락처를 찾고 있던 20년 전의 그 남자가 운명처럼 그 앞에 다시 나타났다. 군 제대 후 프랑스 유학을 가서 15년간 그곳에서 살다 돌아온 그 남자는 매력적인 은발을 휘날리는 40대 중반의, 부드럽고 기품을 갖춘 매력적인 화가로 변해있었다. 두 번의 이혼 경험을 가진 독신.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 지인에게서 그 남자가 술에 취하면 ‘김애경’이라는 첫사랑 여자 이야기를 습관처럼 하곤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20여년 동안이나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는 그 남자. “캔버스를 앞에 놓으면 애경씨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림 작업을 도저히 해낼 수가 없다”는 달콤한 그 남자의 고백 앞에서 그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20년 만에 재회한 연하 화가와 3년간 나눈 뜨거운 사랑 고백한 탤런트 김애경

그의 코믹한 푼수 이미지를 만든 건 지난 90년 KBS 일일극 ‘서울뚝배기’의 윤마담 역. 그의 ‘실례합니다아∼앙’이란 코맹맹이 대사가 장안의 화제였다.


“보통의 경우 이혼을 두 번 했다고 하면 ‘왜 했을까’ 한번쯤은 궁금해했을 법한데 그땐 그런 것쯤은 안중에도 없었어요. 그저 그 사람이 혼자라는 사실이 반갑고 다행스럽기까지 하더군요. 2박3일 동안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아파트 안에서 단 둘이 함께 지내던 날들은 너무 행복했어요. 동네 반장 아주머니께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어요. 20년 전의 사랑을 다시 만났다고. 감추고 몰래 만나지 않고 여기 저기 자랑을 하고 다녔고 그래서 축하 인사도 많이 받았죠. 하늘이 정해 준 내 남자로 생각했고 그래서 당연히 결혼을 생각했으니까.”
20년 전에는 다섯살 연하인줄 알았던 그 남자는 실제로는 두살 연하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그는 은근히 안도의 기쁨을 느꼈다고. 그만큼 연상녀라는 심리적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은 나 혼자 괜히 자격지심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내가 연상이라서 더 나이가 들어 보이면 어쩌나, 혹시라도 이 남자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 둘이 서 있으면 그가 오히려 나보다 더 나이들어 보인다고 그래(웃음). 그리고 잠자리 문제는 그 사람에게 허심탄회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어요. 이 남자는 자기 감정 표현에 있어서는 아주 직설적이고 솔직 담백한 사람인데, 늘 ‘좋았다’고 대답해 주었고 나 역시도 ‘홍콩’을 여러 번 다녀오곤 했어요(웃음). 그 문제에 있어서는 정말 괜찮았어요.”
당시 드라마 ‘서울뚝배기’를 통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적지 않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그는 그러한 물질마저도 그 남자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하느님이 그 사람의 예술적 재능을 살리기 위해 저를 만나게 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말 팍팍 밀어줄 계획도 가졌죠. 그게 마음이든 육체든 돈이든 내 모든 것을 그야말로 아낌없이 다 주고 싶었어요.”

뜨겁고 황홀한 밤 보낸 후 차가운 반응으로 상처주던 사람
하지만 뒤늦게 핀 꽃도 결국 시들 수밖에 없는 것. 성적으로 충분히 만족했고 여자로 다시 태어난 기분을 느끼면서 행복했던 그. 하지만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그 남자의 갑작스러운 말과 행동이 점점 감당하기 힘든 상처로 다가왔다.
“너무나 뜨겁고 황홀한 홍콩(?)에서의 밤을 보내고 나면 그 다음날 하루가 즐겁고 흥겹고 또 행복하거든. 기쁜 마음에 전화를 하는데 연결이 안 되는 거예요. 촬영 틈틈이 하루 종일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수십 번도 넘게 했죠. 그러다가 겨우 밤중에야 연락이 닿았어요. ‘어머 자기, 어디 갔었어요? 내가 전화 여러 번 했었는데…’ 하니까 ‘볼일 있어서 나갔다 왔어요’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랬구나∼. 어디 갔었는데∼? 자기∼’하고 물어봤죠. 그때 돌아온 대답이 아주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그런 걸 내가 일일이 보고하고 다녀야 해요?’였어요.”
순간 무안해진 그는, 얼른 어리광을 부려서 상황을 좋게 해보려고 “응, 나, 자기 종일 보고 싶었어∼엉. 자기는 나 안 보고 싶었어요?” 하고 콧소리로 애교 있게 물어봤다고 한다. 그때 날아온 남자의 대답은 “아뇨, 안 보고 싶었어요”였다고.
“지난밤 서로를 그토록 간절히 원하면서 충분히 하나가 되었다는 합일감을 느끼게 해주었던 바로 그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거예요. 순간 가슴이 싸아 아프더라고요.”

20년 만에 재회한 연하 화가와 3년간 나눈 뜨거운 사랑 고백한 탤런트 김애경

인생은 결국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좋은 인연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 남자의 행동과 말이 생트집 잡는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하고 생떼를 부리는 악동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그의 눈을 멀게 한 ‘사랑의 콩깍지’가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 책의 내용 중 ‘그 사람이 자고 있었다.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어젯밤에는 그와 나 둘다 분명 너무 행복했는데 왜 그럴까. 또 한번 가슴이 철렁했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때의 제 느낌 이해하시겠어요?”
하지만 그는 이해가 안 되고 황당하기까지 한 상황에서도 그를 이해하고 감싸안으려고 노력했다. ‘혼자서 예술에만 빠져 있다보니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에 서투른 거지’ ‘힘든 유학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었던 기억 때문이겠지’ 하면서.
하지만 결국 그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예술가 특유의 기질과 변덕 앞에서 그 모든 이해와 배려가 점점 곪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내 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점점 외로워지더군요. 공연히 슬퍼지기도 하고 삶의 의욕이 꺾이기도 하고.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엔 내 인생의 마지막 남자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최선을 다했고 그런 점에서는 지금도 후회가 없어요. 40여년 연기생활 동안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를 숱하게 했지만 연기 속에서 또 실제 생활에서 만나지 못했던, 그야말로 지독한 사랑을 겪었다고 생각해요.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한편으로는 시원하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그와의 관계를 정리할 당시에는 어깨가 가벼울 정도로 홀가분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 함께 보낸 기억들이 자꾸 떠올라 힘겨웠다고 한다.
“그와의 사랑을 꾸려 가면서 속으로 무척 힘들었고, 나름대로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에요. 결국 일종의 후유증이 생긴 거죠. 누군가에게 자꾸 이야기하거나 뭔가 토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 광고지 이면이건 노트건 종이 조각만 보이면 가리지 않고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갔어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다가도 또는 밥을 먹다가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으면 바로 메모했어요. 그냥 줄줄 뱉어내다시피 했다고 할까요. 나중에 모아보니까 대학노트 대여섯권 분량이 되더군요.”
그는 가슴에 담아놓은 가슴아픈 추억들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에게 자신처럼 글을 써서 토해내라고 일러준다.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느라 현재를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특효약이라고.

떠나지 않는 사랑의 기억 토해내며 혼자 눈물짓기도
“내가 쓴 글을 모아놓고 생각날 때마다 가끔 읽어봤어요. 나 혼자 웃기도 하고 또 눈물짓기도 하면서 한 숨에 다 읽게 되더군요. 또 ‘참 별난 사랑을 했구나’ 싶기도 하고. 혼자 보기 아까운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 또는 사랑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러던 중 한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 자신의 육필 원고 뭉치를 갖다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써 본 글인데 공연히 망신만 당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몹시 떨었다고 한다.



“원고를 갖다 주고 두어 시간 후 문자메시지가 왔어요. ‘선생님 글 참 잘 쓰시네요. 너무 재밌어요. 결정했으니 서둘러야겠습니다’ 하는 내용이었어요. 순간 가슴이 ‘톡톡톡’ 터지는 듯 하더니 온갖 걱정들이 싹 가시면서 강한 의욕이 솟더라고요.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가며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써 내려가는 과정은 힘겨웠어요.”
동덕여대 국문과 출신으로 글솜씨가 좋은 그는, 자신의 인생과 연기역정을 고스란히 한권의 책에 담았다고 한다.
“물론 성적인 부분도 사실대로 썼어요. 하지만 처음에는 조금 망설여지더라고.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써도 될까 싶어서 중간에 두루뭉술하게 표현을 좀 수정했는데 다시 읽어보면서 ‘내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성인인데, 그리고 야한 영화가 널려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오히려 더 어색하다’ 싶더군요. 그래서 사실 그대로 ‘찐하게’ 썼어요. 대충 뭐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끄윽 끅 숨소리가 멎는 듯 하다가 히이힝잉 하는 희열에 찬 웃음과 탄성소리… 그날 밤 홍콩을 몇 번을 왕복했는지…(어머 이렇게까지 써도 되나?``)’ 뭐 이런 식으로 썼어요. 말끝에 괄호로 사족과 함께 스마일 기호를 붙였는데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얼굴 빨개져가며 읽다가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거라 생각해요.”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그는 늘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햇볕을 많이 쐬려고 노력한다고. 오전 11시쯤 볕이 환하게 들어오는 거실 바닥에 얇은 요를 하나 깔아놓고 간편한 옷차림으로 엎드려서 선글라스를 끼고 책을 읽는다고. 환하게 부서져 들어오는 햇볕에 몸을 맡겨 놓고 있으면 그 순간처럼 행복한 게 없다고 한다. 우울증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햇볕을 많이 쬐는 것이라는 외국 연구보고서를 읽고 나서 시작한 생활습관이기도 하다.
“우리네 삶은 모두 다 자기가 선택해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모든 사소한 일상부터 생사를 논하는 거창한 결정까지 모두 이렇게 할 것인가 저렇게 할 것인가 스스로 선택하는 거죠. 그렇다면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를 미리 앞당겨 걱정할 필요가 없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온 ‘현재를 즐기라’는 말을 늘 되뇌곤 해요.”
뒤늦게 경험한 ‘시고도 떫고도 더러운 사랑의 상처’도 아물고 이제는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교통사고와도 같은’ 사랑의 열병을 앓고 난 후 오히려 사랑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진 듯 특유의 귀여운 미소와 콧소리로 한 마디 덧붙인다.
“사랑과 결혼에 대해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그렇다고 사랑 찾아 삼만리를 하는 것도 물론 아니죠. 하지만 서로 기대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좋은 인연이 나타나면 언제라도 반갑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요.”

여성동아 2004년 2월 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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