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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고백

법정 구속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부인 장은영 심경 고백

“남편 구속 통해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달았어요”

■ 글·김순희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4.02.03 10:41:00

배인순씨의 자전소설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잔’으로 구설수에 오른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장은영씨는 요즘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남편 최회장이 뜻밖에 법정구속을 당했기 때문이다. 장은영씨가 직접 털어놓은 착잡한 심경을 들어보았다.
법정 구속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부인 장은영 심경 고백

장은영씨(34)는 요즘 ‘차디찬’ 방에서 잠을 자고, 운전 중에도 히터를 켜지 않는다. 남편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61)이 법정구속 돼 교도소에 수감된 지난 1월8일부터다.
배임 및 분식회계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남편이 항소심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법원으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재판 결과에 대해 누구보다도 궁금해하고 있는 자신에게 가장 먼저 알려줄 남편의 전화를 목 빼고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기다리다 못해 먼저 남편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 신호음만 들릴 뿐 남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재판정에 동행한 남편의 일행이었다. 남편이 법정구속 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게 사실이냐”고 여러 차례 되묻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실형선고(3년2개월)와 함께 법정구속이라는 결과가 나오리라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
남편의 법정구속 소식에 넋놓고 울던 그는 고혈압과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남편의 약을 챙겨 경기도 안양교도소로 향했다. 면회시간이 종료된 직후에 교도소에 도착한 그는 남편을 만날 수 없게 되자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교도소 내 물품반입 업무가 끝나 약을 들여보낼 수 없다”는 교도소 측의 설명에 장은영씨는 “제발 남편이 약을 먹을 수 있게 반입을 허락해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남편 구속 후 장은영씨도 냉방에서 지내
추운 겨울에 투병중인 남편을 교도소에 남겨놓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난방 스위치를 ‘OFF’에 고정시켰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찬데서 잠을 자는 남편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함이었다.
최회장이 구속 수감된 이튿날, 교도소의 면회실에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남편을 만난 장은영씨는 눈물부터 흘렸다. 최회장은 이런 장은영씨에게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걱정하지마. 나는 이런데 적응 잘하니까. 양말은 뭐, 어제 신었던 것 그대로 신고 있는데 괜찮아…, 같은 방에 수감중인 사람이 내복을 빌려줘서 입고 잤으니 걱정하지마” 하고 위로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난생 처음 밤을 지새운 최회장의 눈에도 물기가 서렸다.
최회장이 구속된 다음날 밤, 기자는 장씨와 어렵게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울다가 지친 목소리였다. 그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몸도 아픈데. 차라리 나를 집어넣지…” 하고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장은영·최원석 부부. 두 사람은 99년 7월31일 27년이라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혼인신고’만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최회장이 동아그룹의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미국에 암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 장씨가 그의 병원수속을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사랑의 감정이 싹텄다고 한다. 결혼 5년 차에 접어든 그에게 남편은 아주 특별한 존재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선택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법정 구속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부인 장은영 심경 고백

“남편에게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서 풍성한 식탁을 차리는 거, 참 즐거운 일이잖아요. 자신 없는 일 중에 하나가 요리예요. 한달에 서너 번 요리선생님을 찾아가 (요리를) 배우고 있는데 영 제맛이 나질 않아요. 요리 선생님을 통해 배우고 느끼는 게 참 많아요. 삶과 살림의 지혜도 깨닫고요.”
지난해 12월 중순 장은영씨를 만났을 때 그에게선 ‘주부’의 향기가 묻어났다. 당시 그는 남편이 “그냥 남자로, 남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좋다”며 “세월이 흐를수록 남편이 더 고맙게 느껴진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최회장의 전 부인 배인순씨가 출간한 자전소설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잔’으로 인해 곤욕을 치를 때도 그는 남편의 두 손을 꼭 붙잡고 사랑으로 이겨냈다.
현재 장은영·최원석 부부가 살고 있는 장충동 빌라는 중산층의 집안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50평형 아파트와 비슷한 크기의 빌라 거실엔 ‘ㄷ자’로 놓여진 소파와 커다란 TV가 살림의 전부. 벽면 한쪽을 붙박이장이 차지하고 있는 안방에는 침대와 화장대가 놓여있을 뿐이고, 그 옆에 세평 남짓한 작은 서재가 딸려 있다. 나머지 두 개의 방 중 하나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은혁씨(27·최원석 회장과 배인순씨 사이의 첫째 아들) 부부가 귀국할 때 거처하는 방이고 또다른 방은 사무실 용도로 쓰인다.
기자는 최회장이 법정구속 되기 하루 전인 지난 1월7일 한 호텔의 일식당에서 최회장과 마주앉았었다. 그의 얼굴은 몹시 부어 있었다. “건강은 어떠냐”고 안부 인사를 건네자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오래 전부터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데…. 사실은 며칠 전에 병원에 입원해 투석을 시작해야 되는지 여부에 대해 정밀검사를 받으려고 예약을 해 뒀거든요. 그런데 내일 재판(배임과 분식회계 혐의)과 모레 재판(배인순이 낸 자전소설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마치고 나면 하려고 미뤘어요. 제 선친도 만성신부전증으로 오랫동안 투석하다 돌아가셨는데….”
이때 최회장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그래, 그래.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고는 마치 소년처럼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집사람이네요” 하고 말했다. 최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같은 호텔 2층에 있는 에메랄드 룸으로 향했다. ‘동아건설 강제화의안 설명회’라고 쓰인 안내문구를 보는 그의 눈빛에 힘이 실렸다.
한때 재계 서열 10위인 동아그룹의 총수였던 최원석 회장. 98년 5월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의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2002년 4월 소액주주의 추대로 동아건설의 대표이사 회장에 복귀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최씨는 동아건설의 회생을 바라는 주주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일 뿐 경영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최회장 고혈압과 만성신부전증 투병중
이에 그는 지난해 9월26일 소액주주들과 함께 ‘동아의 파산절차를 중지하고 강제화의(파산절차가 진행중인 회사를 채권단 등이 화의를 통해 다시 살리는 것)를 인가해 달라’는 신청을 법원에 냈다. “어떻게든 동아를 살려내 60여 년 동안 숨쉬어온 동아건설의 간판을 살리고 싶다”면서 그동안 동아건설 회생에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던 그였기에 법정구속이 가져온 충격은 더 컸을 듯싶다.
1월13일, 안양교도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옮긴 남편을 면회하기 위해 대기실에 앉아 있는 장씨를 만났다. 핼쓱해진 얼굴이 남편이 구속된 이후 며칠동안 식음을 전폐한 그의 요즘 생활을 말해주는 듯했다. 남편과의 만남이 허락되는 ‘짧은 5분’을 기다리는 그의 눈빛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울어서 해결될 일이라면 하루 종일, 24시간 울겠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울고 있다고 될 일도 아니고…. (남편의) 몸이 많이 안 좋은데. 저 안에서, 추운 저기서 병이 악화되면 어쩌나, 남편의 건강이 가장 걱정돼요.”



하루도 빠짐없이 구치소를 찾아 남편을 위로하는 그는 요즘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투병중인 남편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자유의 몸이 될 때까지 집안의 난방을 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시 처녀시절로 되돌아간다 해도 지금의 남편을 선택했을 것”이라며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감’도 잡히지 않는 일이다. 우리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떤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흔들리는 사랑이 결코 아니다”고 말하는 장은영의 앞에 지금 험하고 높은 산이 가로막고 서 있다. 하지만 그는 “남편의 구속을 통해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달았다”는 희망적인 말을 남긴 채 전날 내린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서울구치소를 빠져나갔다.


여성동아 2004년 2월 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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