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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안타까운 사연

재일교포 사업가 부인과 결혼 5년 만에 이혼한 귀순가수 김용

■ 글·박진숙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4.01.09 11:27:00

91년, 서른의 나이에 두만강을 건너 남한으로 탈출한 가수 김용이 지난 98년 결혼한 재일교포 부인과 최근 이혼한 사실이 알려졌다. 북한음식 전문점 모란각, 호텔업 진출 등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두며
가장 잘 적응한 귀순자로 알려진 그였지만 가족을 두고 홀로 떠나온 내면의 죄의식과 고독은 어쩔 수 없었던 듯싶다. 결혼 5년 만에 파경을 맞은 김용의 심경고백.
재일교포 사업가 부인과 결혼 5년 만에 이혼한 귀순가수 김용

“이혼 직후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그때는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면서 저도 죽고 싶었어요. 몇달이 흘러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되니까 아내에게 죄스러운 마음밖에 없네요. 늘 내 주장만 하고 살아서 너무 미안해요.”
지난 91년, 남한으로 귀순한 탈북가수 김용(43)이 최근 이혼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귀순 후 ‘아, 평양아!’를 발표하며 가수생활을 시작한 후 탤런트, MC, 연극배우 등 왕성한 연예 활동을 했다. 그후 그는 사업가로 변신, 북한음식 전문점 ‘모란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지난 98년 재일교포 김선혜씨(38)와 결혼해 아들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런 그가 결혼 5년 만인 지난 7월 극비리에 합의이혼한 것.
“성장배경이 달라서 그런지 결혼생활하는 동안 갈등이 많았어요. 결혼 5년 동안 서로 거리를 좁혀보려고 애썼지만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어요.” 김용과 부인 김선혜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실향민2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서 화장품사업을 하고 있던 아내는 북한에서 탈출한 김씨에게 호감을 보였고, 그 역시 외향적인 성격의 아내가 마음에 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연애 3년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북에 남은 형제 생각하며 지나치게 검소한 생활 강요한 게 마찰의 시작
그러나 검소한 생활에 익숙한데다 가부장적 사고가 비교적 강했던 김용와 격식과 예의를 존중하면서도 자상한 남편을 원했던 아내는 달라도 너무 달랐고, 두 사람은 매사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명품을 사오면 그는 “그 돈이면 양말이 몇 켤레인데…”하며 면박을 주었고, 나중에 별생각 없이 귀순 후배에게 선물로 주었다가 두고두고 원망을 듣기도 했다.
“아내는 어떻게 해서라도 촌티를 벗겨보겠다고 명품을 사다주는데 저는 무조건 돈으로 환산해서 생각했죠. 아내 마음을 모르지 않는데도 애정표현이 워낙 서툴렀던 겁니다. 더구나 화려한 패션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늘 튀지 말라고 주문했으니 아내와 정서가 너무 달랐어요. 북한에서 30년을 사는 동안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잔소리 한번 크게 못하시는 모습만 보고 자라서 그런지 남쪽의 보통 남편처럼 대해주지 못했어요.”
이런 김용이었지만 재작년 평양국립교향악단이 서울에 왔을 때는 평소와 다른 제안을 해 아내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공연을 보러가기에 앞서 “머리며, 옷이며 가장 최고의 모습으로 꾸며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 아내는 ‘이 양반이 뭘 잘못 먹었나?’하면서도 무척 좋아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꾸민 아내와 함께 그는 공연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마침내 이들을 알아본 공연단의 요청으로 이들 부부는 무대에서 교향악단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아내는 이때가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며 두고두고 이날을 회고했다고 한다.

재일교포 사업가 부인과 결혼 5년 만에 이혼한 귀순가수 김용

“북에 두고 온 가족 모셔온 후 결혼식 치르려 끝내 면사포 못 씌워준 게 미안하다”며 김용은 씁쓸한 심경을 피력했다.


“공연단원들 모두 제가 북한에서 가수로 활동할 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그들에게 남한에서 잘 살고 있는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 생각에 그리움이 떠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늘 외로웠어요. 하지만 이런 제 마음을 아내는 이해하지 못했죠.”
특히 명절만 되면 그는 가슴에 피멍이 드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고 말한다. 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화목한 명절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그때마다 김용은 ‘나도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 심정으로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귀향길에 오르는 사람처럼 양손에 선물 보따리를 잔뜩 들고 중국으로 향해 단골 북한식당을 찾았던 것. 그곳에서 만난 북한동포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이런저런 고향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 갈 때는 늘 혼자 떠났다. 그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겠지만 가족과 함께 있으면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더구나 독립적으로 살아온 아내에게 경제권조차 주지 않아 아내는 늘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그는 “북한의 식구들이 남한에 왔을 때 아내 눈치를 보면서 일일이 돈을 타 쓰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의 주변에는 돌봐주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귀순자들에게 임시로 기거할 집을 마련해주고, 자본주의 체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운영하던 체인점을 아무 대가 없이 내주기도 했다. 아내에게는 10원 한장도 아껴 쓰라던 사람이 ‘고향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큰돈을 턱턱 썼던 것이다.
이처럼 그에게는 결코 아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아픔이 있었다. 그가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한 상태로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귀순한 후배들의 결혼식에 갈 때마다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는 부모 자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북한의 가족이 참석할 때까지 결혼식을 올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터였다. 그런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한 아내였지만 그래도 아이가 커갈수록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어했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해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하려고 준비를 했었죠. 그런데 그때 마침 어머니가 강제수용소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어요. 어머니에게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3년 동안 좋은 것 안 걸치고, 좋은 음식 안 먹기로 그때 다짐을 했어요. 당연히 결혼식도 취소됐죠.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는데 환경이 따라주지 않더군요.”
그후 그는 비록 수용소 생활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살아 있는 형과 누나, 조카들을 떠올리며 사업에 더욱 전념했다. 그는 97년 ‘모란각’이라는 작은 음식점으로 시작해 현재 국내외에 70여개의 체인점을 둔 북한음식점 (주)모란각과 식품회사인 모란식품, 화장품 회사인 코레코 코리아 등 건실한 기업체를 여럿 운영하는 중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중국 텐진(天津)시에 있는 특급호텔까지 인수해 활동영역을 국제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그의 이런 사업 의욕도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한번 시작하면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그의 성격 탓이었다. 지난해 불어닥친 사스로 중국 전역이 공포의 도가니였는데도 불구하고, 김씨는 마스크 하나만 달랑 쓰고 중국을 오갔다. 사스 전염을 우려한 아내가 사정하며 말렸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중국에 한번 다녀올 때마다 40일 동안은 전염이 될까 싶어 집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따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들 부부는 건널 수 없는 강을 서서히 건너가게 되었다.

재일교포 사업가 부인과 결혼 5년 만에 이혼한 귀순가수 김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씨는 화장품 수입업을 하던 아내를 다단계 사업에 끌어들였다가 지난해 초 수억원의 빚만 안겨주었다. 결국 그 일이 결혼생활에 쐐기를 박게 만들었다.
“아는 사람이 하도 권해서 일본에서 화장품 주식회사를 운영하던 아내를 졸라 아내가 거래하는 일본화장품을 수입했어요. 2001년 7월부터 지난 2월까지 다단계 사업을 했는데 어처구니없게 16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날리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투자한 돈까지 다 까먹고, 일본화장품 회사로부터는 신용을 잃어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 거죠. 경제적 타격이 심해지자 6월쯤 아내가 당분간 헤어져 살자면서 별거 이야기를 먼저 꺼내더라고요.”
한달 후 두 사람은 위자료 없이 양육권만 아내에게 양도하는 조건으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부동산과 기업체를 소유해 재정적 어려움이 없었던 아내는 “회사를 애인삼아 실컷 일하라”는 말만 했을 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호텔업 진출 등 확장중인 사업 안정되면 어떻게든 재결합 추진할 생각
하나뿐인 어린 아들은 아직 부모의 이혼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다섯살 난 아들에게 아빠는 지금 ‘출장중’이다. 잠버릇조차 자신을 쏙 빼닮은 아이가 보고 싶을 때면 그는 지갑에 넣어둔 아들 사진을 보면서 ‘잘 있지’하고 말을 건네본다고 했다.
이제 그의 앞에 남은 것은 오로지 ‘일’뿐이다. 그는 다단계 사업 실패로 떠안은 부채를 빠른 시일에 해결하고 중국 호텔 사업에 전력을 기울일 생각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오늘의 자리에 서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귀순해서 받은 정착금과 방송활동으로 모은 돈을 믿었던 사람에게 속아 한순간에 다 날리면서 앞이 캄캄했을 때 5천만원을 가까스로 대출받아 음식점을 차린 그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침부터 밤까지 만두를 빚고, 육수를 끓이는 일에만 매달렸어요. 그때 아내도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길게 기르던 손톱까지 자르고 만두를 빚을 정도였죠.”
그가 인수한 중국의 ‘코리아 서울호텔’은 개업식을 목전에 앞둔 상태. 초호화 호텔은 아니지만 인수자금 1백20만달러(15억원)를 들여 리모델링을 하는 등 최고의 호텔로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고.
“전 가족과 일 두 가지 갈림길에서 일을 선택한 셈이에요. 중국의 호텔을 잘 운영해 제 이름이 널리 알려지도록 하고 싶어요. 그러면 평양에 있는 가족들도 제 소식을 듣게 되겠죠. 기업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아내와 재결합하고 싶습니다. 아내가 절 받아줄지 모르겠어요.”
그에게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너무 많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미안한 아내를 위해, 그리고 북한에서 고생하는 형제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가 이혼의 상처를 하루빨리 극복해 평양까지 ‘김용’의 이름 석자를 떨치게 되길 기원해본다.

여성동아 2004년 1월 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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