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 삼계동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권순자씨(40) 집의 거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부부의 기도’가 적힌 액자였다.
“사랑을 줄 줄 알고/사랑을 받을 줄 아는/부부가 되게 하소서/작은 것을 얻어도/소중하게 여기며/큰 것을 가지고도/아끼지 아니하고/좋은 것이 있을 때/서로가 양보하고/허물이 보일 때에도/덮어주게 하소서/어려울 때 곁에서/힘이 되게 하시고/벅찰 때는 서로가/나눠지게 하소서/용기를 잃었을 땐/두 손 잡게 하소서.”
흰색 옥스퍼드천에 한땀 한땀 십자수로 글귀를 수놓은 액자를 보며 직접 만들었냐고 물었더니 권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환자가 언제 저런 걸 다?’ 하고 감탄하는 순간, 눈시울을 붉히는 그의 모습에서 지난 세월의 아픔이 전해졌다.
“아프기 전에는 매일 남편과 가게에 나가 함께 일을 했는데 아프고 나니까 집에서 특별히 할 일이 있어야지요. 일하던 사람이 할 일 없이 있는 게 싫기도 하고…. 바늘을 잡으니까 정신 집중도 되고 좋대요.”
빙그레 웃고마는 그의 모습에서 바지런함을 읽을 수 있었다.
“남편은 트럭에 철판을 대어 보강해주는 일을 해요. 결혼한 지 11년이 됐는데 남편 혼자 하기 힘든 일이라 신혼 초부터 일을 거들었어요. 철판 길이와 넓이가 있어서 누군가가 옆에서 붙잡아주고 날라줘야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되거든요. 철판 무게(60∼70kg 정도)가 있어서 일이 힘든 데도 주문이 밀렸을 때는 시간 안에 빨리 끝내야 하니까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죠.”
제때에 식사를 하지 못해 한꺼번에 많이 먹거나 거리에서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튀김, 떡볶이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허다했다. 돈벌이가 좀 괜찮은 날은 삼겹살이나 불고기가 주 메뉴였다. 힘들게 일한 만큼 고기를 먹어야 기운이 난다는 생각에서였다. 권씨는 나중에 병이 난 후 생각해 보니 이런 식생활이 위에 아주 안 좋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고 말한다.
“남편이 설사가 잦았어요. 2000년 3월, 집 근처 내과에 대장내시경 검사를 예약했는데 남편이 겁이 난다고 해서 제가 함께 따라나섰죠. 병원에 갔더니 남편이 ‘이왕 병원에 온 거 당신도 위 검사를 받아보지’ 하더라고요. 심하지는 않았지만 밥을 먹고 나면 더부룩하고 속이 쓰린 증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위 내시경 검사를 했어요.”
오전엔 권씨가 위 검사를 하고 오후엔 남편 최병락씨(43)가 장 검사를 했다. 그런데 최씨가 장 검사를 끝내자 의사가 최씨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면회실에 가니 의사가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남편 내시경 검사 따라갔다 위암 사실 알아
“선생님의 장에는 이상이 없는데 아무래도 부인이 위암인 것 같습니다. 검사를 위해 조직의 일부를 뗐습니다. 저희 병원과 연계를 맺고 있는 대학병원에 의뢰를 할 생각인데 정확한 건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1기말에서 2기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부인이 하고 싶다는 건 다 해주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병원 문을 나서며 최씨는 막막함을 느꼈다고 한다. 먹고살 만하니 이런 일이 터지나 싶기도 하고, 97년에 얻은 딸이 이제 겨우 세살인데 이제 어쩌나 하는.
그로부터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보름 동안 최씨는 아내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속으로 끙끙 앓았다. 하지만 권씨는 평소와 다른 남편의 태도를 보며 ‘뭔가가 있다’고 감지했다.
“딴 때는 집에 돌아오면 ‘힘들다’고 가만히 앉아만 있던 사람이 검진을 받은 후에는 ‘당신 힘들지 쉬어. 내가 뭐든 할게’ 하는 거예요. ‘청소도 내가 할게, 설거지도 내가 할게’ 하니 이상하다 싶을밖에요. ‘뭐 있지? 뭔가 있지?’ 하며 남편에게 재차 묻자 눈치를 보면서 ‘위궤양이 심하면 암으로 넘어가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한대’ 하는 정도로 말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암이구나 생각했지요.”
유기농 자연식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권순자씨 부부.
대학병원에서 검사 결과 진행성 위암 3기로 나왔다. 수술 날짜가 잡혀 수술실에 들어갈 때 그는 한바탕 난리를 쳤다. 레지던트가 코에 호스를 꼽는데 꼭 죽을 것만 같아서 어렵게 코 안으로 넣은 호스를 잡아 뺐다. 도살장으로 끌려들어가는 것만 같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아내를 최씨는 어르고 달래 겨우 수술실로 보냈다. 5시간이 넘는 대수술 끝에 그는 위를 3분의 2나 잘라내고 회복실로 돌아왔다.
수술 후 병원에서는 권씨에게 최소 6개월 이상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항암제 주사를 하루에 4시간씩 5일을 맞고 쉬었다가 다시 5일을 맞고 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첫째날에는 견딜 만했는데 둘째날부터는 견딜 수가 없었다.
“위암의 경우 그리 독하게 항암제를 안 쓴다고 해서 안심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음식 냄새도 못 맡고 토하다 토하다 더 이상 나올 게 없으니까, 위 분비물까지 나올 정도였어요. 온몸이 뒤틀려서 도저히 잠을 잘 수도 없었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병이 낫기도 전에 항암제 치료받다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몸무게의 변화가 말해준다. 위암 수술 전에 64kg이던 몸무게는 수술 후에는 별 변화가 없었는데 5일 동안 항암제를 맞고 나서 13kg이 빠졌다. 권씨는 “다이어트에 항암제만큼 효과가 좋은 약은 없을 것”이라며 웃었지만 당시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이 갔다. 당시 권씨는 살기 위해서라도 2회차 항암제 투여를 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물론 친정어머니도 반대하셨어요. 항암제를 맞아도 살 확률이 반인데 아예 죽으려고 작정했느냐고. 하지만 저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항암제 치료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어요. 암 보험을 들어놓았기에 병원에 입원해서 항암제 치료를 받는 것이 솔직히 이익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낫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항암제 맞다 죽기 싫다’고 완강하게 거부를 하자, 남편도 제 뜻을 따라주었어요.”
항암제 치료를 거부하고 그가 희망을 건 것은 식이요법. 책을 통해 경남 양산에 암 환자를 위한 식이요법을 가르쳐주는 ‘자연생활인의 집’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비빔밥을 내왔는데 너무 맛있었다. 불과 한달 사이에 뼈만 남을 정도가 되고 입맛도 잃어 도통 맛있는 것이라곤 없었는데 비빔밥을 먹으며 ‘그래, 이거야’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9박10일 동안 함께 입소한 암환자들과 숙식을 하며 정말 열심히 귀를 쫑긋 세우고 건강을 살리는 먹을거리에 대한 이론과 실습교육을 받았다.
“처음엔 저도 그렇지만 식구들 역시 적응을 잘 못했어요. 그간 혀가 양념과 조미료에 길들여져 자극이 적은 자연의 맛은 맛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방법이 아니면 정말 살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자 남편과 딸도 잘 따라주었어요.”
권순자씨는 그 뒤로 양산에 몇번 더 내려갔다. 궁금한 점을 묻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부엌에 들어가 가르쳐주는 대로 음식을 만들어보기까지 했다.
직접 개발한 저염도 간장, 야채수프로 건강 관리
그의 식사원칙의 기본은 이렇다. ‘조미료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식사는 하루 세끼 규칙적으로 한다. 너무 많이 먹지 않는다. 한번에 4∼5가지 이상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짜고 매운 음식은 먹지 않는다. 튀김음식은 노화와 통증의 원인이 되기에 먹지 않는다’.
아침엔 두유와 죽, 호두나 땅콩에 통밀 식빵 등으로 짜인 식물성 단백질 위주의 식사, 점심엔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 저녁엔 국수에 과일 정도로 가볍게 먹는 비타민 식사로 구성했다. 특히 저녁을 간단하게 먹으면 잠잘 때 편안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개운하다고 한다.
채소는 주식의 2배 정도를 먹는데 겨울엔 채소를 많이 먹지 않는다고 한다. 겨울에 채소를 많이 섭취하면 몸이 차가워지기 때문.
병원에서 1년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지만 권씨는 2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있다.
“식단을 짤 때는 봄·여름에는 나물이나 채소 같은 알칼리성 식품, 가을·겨울엔 곡류나 견과류 같은 산성 식품 위주로 식단을 짜면 계절에 맞아요. 음식을 만들 때는 가능하면 간단히 조리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연 그대로 섭취하는 것이 좋아요. 양념과 조미료를 많이 사용한 음식은 입에는 당기지만 몸에는 좋지 않고요.”
이런 원칙에 따라 권씨는 저염도 간장을 개발해 모든 음식에 사용한다. 저염도 간장은 검정콩과 흰콩을 삶아 우려낸 물에 소금을 약간 넣어 만든 것. 유리병에 담아두고 간장 대신 사용한다. 또 야채수프를 만들어 식전 30분에 1컵씩 마신다. 야채수프는 우엉뿌리, 당근, 표고버섯 말린 것, 무청 말린 것을 같은 양씩 넣고 3배의 물을 붓고 끓여 만든 물. 고운 체에 걸러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마신다.
2∼3일에 한번씩 야채국물 만들기도 잊지 않는다. 야채국물은 곰솥에 크게 썬 무와 통양파, 말린 표고버섯, 크게 자른 다시마를 넣고 푹 끓여 만든다. 액체를 체에 걸러 역시 유리병에 담아두었다가 모든 국이나 찌개, 전골의 국물을 낼 때 사용한다. 기름은 식용유를 사용하지 않고 올리브오일을 사용한다. 참깨를 태우다시피 해 짜낸 기름이 몸에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식사시간은 5시간 간격으로 지켜서 먹고 간식은 하지 않는다. 음료도 물 이외에는 마시지 않는다. 물보다 몸에 좋은 음료는 없다고 여기는 그는 깨끗한 물로 위를 자주 씻어줄수록 좋다고 생각해 하루에 2ℓ의 생수를 마신다고 한다. 밥 먹기 30분 전과 식후 2시간 후에 큰 컵으로 한잔씩 마신다고.
쌈장도 콩을 불려 삶아 절구통에 넣고 찌어서 소금과 간장을 약간 넣은 저염도 쌈장을 만들어 먹는다. 김치를 담글 때도 젓갈을 사용하지 않는다. 소금에 절인 음식은 위에 나쁘기 때문. 두부나 버섯을 넣은 전골이나 야채잡채 등을 식탁에 자주 올리는데 당면, 두부, 버섯을 올리브오일에 살짝 볶아 쌀로 만든 페이퍼에 싸먹는 함지쌈 등으로 식단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매일 등산 할 정도로 건강 회복
2년 동안 그는 물론 남편도 이런 식사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그 결과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이 무색하게 건강하게 살고 있다. 발병 후 처음 2년은 집에 있었지만, 슬슬 기운이 나면서 남편 가게에 나가 예전처럼 일을 돕거나 일이 바쁘지 않은 날은 등산을 간다.
“얼마 전에 대학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집사람이 어떠냐고 물어요. 그래서 아직까지 잘 살아 있다고 말해줬지요.”
최씨는 아내가 항암치료를 거부했을 때 아내의 말을 따르는 것이 아내를 죽이는 길이 아닐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가 좋아서 너무 다행이라고 활짝 웃는다.
“위를 3분의 2나 잘라냈다고 하면 모두 조금씩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위는 늘어나는 성질이 있어요. 6개월이 지나면서 식사량이 비슷해졌어요. 지금은 보통 사람들만큼 먹어요.”
이제는 살도 올라 50kg 정도 나간다는 권씨는 하루해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겠다고 한다. 아침에 딸 은진이(7)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나면 부지런히 집안 정리하고 물 한병을 들고 집앞의 산을 오른다. 1시간 반 정도 천천히 산책을 겸해 등산을 하고 돌아와 점심을 챙겨 먹고 오후엔 야채수프나 국물, 저염도 간장을 만든다. 그러고 나면 은진이가 올 시간이 되고 저녁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된다는 것.
위암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전혀 환자 같아 보이지 않는 권씨. 그러나 그는 방심은 금물이라고 한다.
“평생 투병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봐요. 한번 암에 걸리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으니까요. 의사가 ‘완쾌됐어요’ 하고 증명서를 준다고 해도 옛날 생활로 돌아가면 바로 재발하는 게 암이라고 해요.”
속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비싼 생수를 매일 한병씩 마시고 채소도 유기농으로 우리농산물만 골라 먹으니 그거 안 먹어도 사는데 왜 그런 것을 먹느냐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암이 다 낫는 게 어디 있어요? 일반인들은 죽으면 뼈에서부터 모든 장기를 기증할 수 있는데 암 환자는 기증을 하고 싶어도 못 줘요. 그게 정말 속상한 일이지요.”
지금까지 힘든 과정을 잘 참고 이겨왔다는 권씨. 가끔 자신이 죽는 악몽을 꾸고 난 아침에는 ‘언제까지 살까’ 싶어 마음이 불안하고 절망스럽기도 하지만,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은진이를 생각해서라도 식이요법을 끝까지 잘 지켜가겠다고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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