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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 앓는 딸 돌보며 만성신부전증 투병중인 정영희씨 안타까운 사연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안소희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3.12.03 14:06:00

만성신부전증으로 8년째 혈액투석을 받고 있는 정영희씨. 지난 10년간 피부암과 뇌졸중, 각종 합병증으로 온몸이 성한 곳이 없다. 게다가 딸 정민이마저 자반증신우염이라는 희귀 신장질환으로 투병중이다.
정영희씨 모녀의 딱한 사연.
희귀병 앓는 딸 돌보며 만성신부전증 투병중인 정영희씨 안타까운 사연

얼마 전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딸의 생명을 이어주던 산소호흡기를 떼어내 안락사시킨 서글픈 사건이 있었다. 시시비비를 떠나 자식의 고통스런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힘겨움에 더해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조차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부모의 아픔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이렇듯 큰병을 앓는 환자들은 병마에 시달리는 고통에 생활고까지 더해져 2중, 3중의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주변에서 도움 주신 많은 분들이 아니었으면 신문에 제 이름이 실렸을지 몰라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땐 차라리 아이와 함께 죽어버리자는 생각도 숱하게 했으니까요.”
혼자 몸으로 생계를 책임지며 투병생활을 해온 정영희씨(45). 게다가 딸 정민이(15)마저 자신과 비슷한 증세를 보일 때는 정말 가슴이 답답해 죽음만을 떠올렸다고 한다. 식당일, 슈퍼, 점원 등 안 해본 일 없이 ‘억순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오로지 일만 하고 살던 영희씨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10년 전, 피부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부터다.
94년 오른쪽 허벅지에서 발견된 종양은 다행히 수술을 통해 제거할 수 있었고 수술후 항암치료를 받아 아직까지 재발 징후를 보이고 있지않다. 그러나 수술과정에서 영희씨는 만성신부전증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항암치료 때문인지 신부전증은 급속히 악화되어 급기야 혈액투석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피부암 수술 후 꼭 1년 만의 일이다.
신부전증이란 노폐물 배출, 수분 조절 등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장이 제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신장의 기능이 정상의 5% 미만으로 떨어지면 반드시 투석을 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혈액투석은 보통 1주일에 3회 하는데, 한번에 5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다. 그는 8년째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
“처음에는 항암치료에 신부전증 치료까지 받으려니 정말 힘들더군요. 약을 참 많이 먹었어요. 아마 지금까지 먹은 약이 쌀 한 가마니 분량은 될 거예요.”
힘겨운 투병생활이 계속되었지만 영희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 정민이의 얼굴을 보며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는 했다. 신부전증은 다른 어떤 질환보다 합병증이 무섭다. 혈액투석을 받기 시작한 지 2년째 되던 해에 영희씨에겐 또 한번의 큰 시련이 찾아왔다.
“집에서 방문을 열고 나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깨어 보니 병원이었어요. 모두 깜짝 놀라더군요. 제가 그렇게 45일을 누워 있었대요.”
뇌졸중이었다. 45일 동안 의식불명인 채 사경을 헤맨 것이다. 병원에서는 의식이 돌아오기도 힘들겠지만 돌아온다 해도 전신마비 등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 했다. 그러나 영희씨는 깨어났고 약간의 마비증세도 한달 만에 치유되어 예전의 모습을 찾았다. 의료진은 이런 경우는 몇천분의 일의 확률도 되지 않을 거라며 영희씨에게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기적 같은 일이지만 영희씨의 굳은 재활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희귀병 앓는 딸 돌보며 만성신부전증 투병중인 정영희씨 안타까운 사연

남편과의 이혼으로 혼자 자식들을 키워야 하는 데 병까지 걸려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정영희씨.


그러나 작은 기적도 잠시,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민이가 열살 때, 자반증신우염이라고 하는 희귀 신장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면서 신장의 기능이 저하되는 질병이다.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증상도 다양해 치료가 까다로운 병이다. 특히 합병증이 무서운데 청력, 시력 등의 저하와 관절염, 골다공증과 같은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고 신장의 기능이 계속 떨어지면 투석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투석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영희씨에겐 열살배기 정민이가 혈액투석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투석만은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정민이가 어릴 때 제가 아파서 제대로 못 먹이고 못 입혀서 저렇게 된 것만 같아 가슴이 더 아팠죠. 저는 집에 있을 때보다 병원에 있을 때가 많았고 병원으로 찾아오는 정민이는 항상 철 지난 옷을 입고 있었어요. 언젠가는 초겨울 쌀쌀한 날씨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왔더라고요. 소풍이라고 도시락을 제대로 싸주었나, 체육대회라고 학교를 한번 찾아간 적이 있나…. 엄마로서는 빵점이죠. 심지어는 입원과 퇴원도 정민이 혼자했으니까요.”

신장 기여자 있지만 수술비 없어 애만 태워
그 무렵 그는 결혼 초부터 성격차이로 불화를 빚어온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고 투병과 정민이 병수발을 혼자 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더구나 그동안 ‘억순이’ 소리를 들으며 모은 2억원 넘던 재산은 고스란히 영희씨의 수술비와 치료비로 들어간 후였고, 투석을 하며 일을 하기란 불가능했기에 다달이 들어가는 생활비는 주변의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영희씨는 앞으로의 일이 더 걱정이다. 치료비와 생계비 모두 정부보조에 의지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해 카드빚만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랜 투석으로 합병증이 나타나 부갑상선 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수술비 마련이 막막한 형편. 더구나 올해 영희씨에게 이식이 가능한 신장 기여자가 있어 수술비만 있으면 언제든지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으나 1천만원이 넘는 수술비를 구하지 못해 애만 태우고 있다.
“우리 같은 만성신부전증 환자들에겐 신장이식이 유일한 희망이죠. 수술을 하면 정민이 뒷바라지도 하고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속상하죠. 하지만 괜찮아요.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도 희망이 있잖아요. 그동안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온 거잖아요. 그것만으로도 감사드려요. 소원이 있다면 저도 정민이도 그분들처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사는 거예요.”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밝게 웃으며 희망을 안고 사는 영희씨와 정민이. 모녀가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도록 우리의 작은 정성과 관심이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여성동아 2003년 12월 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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