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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한 남자

‘헌신적인 남편’ ‘목포의 건달’ 상반된 역할로 연기 영역 넓히는 차인표

■ 글·이영래 기자 ■ 사진·홍상표

2003. 10. 31

요즘 SBS 드라마 ‘완전한 사랑’으로 인기를 모으는 차인표. 늘 예의바르고 단정한 ‘젠틀함’이 트레이드마크인 그가 올 12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쏟아내며 목포의 전설적인 주먹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 ‘목포는 항구다’ 촬영장에서 차인표를 만나보았다.

‘헌신적인 남편’ ‘목포의 건달’  상반된 역할로 연기 영역 넓히는 차인표

올가을, 차인표(36)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한 철을 보내고 있다. 10월4일 첫 방영된 SBS 특별기획드라마 ‘완전한 사랑’, 영화 ‘목포는 항구다’ 촬영에 10월4,5일 이틀 동안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공연된 뮤지컬 ‘지저스 지저스’의 연습으로 그는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가며 강행군을 거듭했다. 이날 ‘목포는 항구다’ 촬영장에서도 그는 무척 피곤했던지 촬영 도중 어디론가 사라져 잠시 잠을 보충하고 오기도 했다.
“목포 지역 건달의 최고 보스인 백성기역을 맡았어요. 전설적인 주먹으로 이 지역 주먹계를 평정하는데 영화 ‘대부3’에서 알파치노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나자 합법적인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인물이에요. 그 합법적인 사업이 바로 보물선 탐사죠. 의리 있고 낭만적인 캐릭터라 맘에 듭니다.”
90년대 초반은 터프가이의 시대였다. 당시 터프가이 신드롬은 두 가지의 남성상을 만들어냈다. 하나는 최민수로 대변되는 반항아적 이미지였고, 다른 하나는 차인표로 대변되는 세련된 매너를 겸비한 강인한 남자였다. 94년 MBC 미니시리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차인표는 손가락 하나로 톱스타 대열에 올랐다. 그후 10여 년. 그동안 군대도 갔다왔고 동료 탤런트 신애라와 결혼해 내후년에 학교에 갈 아들 정민(6)을 두었고,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차인표의 이미지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 조각상 같은 단단하면서도 미려한 이미지는 회칠을 덧씌우듯 그의 모습을 석고화시켜갔다. 아마도 그때문이었으리라, 그가 ‘알바트로스’ ‘짱’ ‘닥터 K’ ‘아이언 팜’ ‘보리울의 여름’에 이르기까지 출연한 모든 영화에서 잇달아 실패를 겪어야만 했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에서 그가 맡은 배역이 목포의 건달이란 사실은 주목해볼 만하다. 백구두에 흰색 양복, 슛 들어가기 직전 족히 10여분 이상을 달라붙어 고데기와 헤어스프레이로 다듬어내는 안정환식 헤어스타일, 각 잡힌 양복 깃 안쪽으로 보기좋게 부풀어오른 듬직한 가슴. 그는 영락없는 낭만파 건달의 모습이었다.
“연기 잘하는 사람은 타고 났다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것뿐만은 아니라는 걸 이 작품을 하면서 깨달았어요.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조재현 선배하고 같이 하면서 정말 많이 배우게 되더라고요. 또 조연분들도 연극계에서 유명한 연기파 배우들이거든요. 영화란 게 이런 거구나,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삼하게 신경써가며 도자기를 빚듯 조금씩 빚어나가는 거구나 하는 걸 배우게 되더라고요. 이제야 왜 제가 영화에서 계속 실패했나 알 것 같아요.”
최민수나 그나 영화에선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주인공의 카리스마에 의존해 끌려가는 모노톤의 영화를 관객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개성파 조연이라면 모를까. 지나치게 카리스마 넘치는 주연은 스크린에서 상대 배우들과 호흡을 나누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영화 ‘청풍명월’은 이런 면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소문난 연기파 조재현이건만, 최민수와는 버무려지지 못했다. 그런데 묘하게 조재현은 영화 ‘목포는 항구다’에서 역시 카리스마로 무장한 차인표와 비슷한 구도에 서게 됐다. 조재현이 “차인표와 내가 동갑이었으면 연기하는 데 힘들었을 것이다. 두 사람 색깔이 틀려 맞추기 어려웠을 텐데 다행히 나이차가 나서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고 토로하는 것도 ‘청풍명월’의 아픔이 어느 정도 깔려 있는 말인 듯싶다. 이런 공감대가 형성된 듯, 조재현과 차인표는 이구동성으로 ‘호흡’을 강조했다.

‘헌신적인 남편’ ‘목포의 건달’  상반된 역할로 연기 영역 넓히는 차인표

“전체 호흡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해요. 영화작업하면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호흡이니까요. 제 자신을 눌러줘야 하는 부분에선 확실히 누르려고 해요. 사투리요? 연습 많이 했죠. 두세 달 정도 연습한 데다 현장에 사투리 선생이 붙어 있어요.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연습한 만큼 성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목포 관객들이 보더라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는 될 걸요(웃음).”
그의 변신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올겨울을 지켜봐야 할 듯싶다. 하지만 그가 전통적으로 지켜온 ‘젠틀맨’의 이미지는 현재 브라운관에선 막강한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지난 10월4일 첫 방송을 탄 SBS 특별기획드라마 ‘완전한 사랑’은 방영 첫날부터 시청률 20%를 넘기는 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아내(김희애)를 곁에서 지키는 헌신적인 남자 ‘시우’역을 맡았다. 중년을 맞아가는 나이건만 매 시간시간 부인에게 전화할 정도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가정적이며 성실한 남자. 마치 차인표를 위해 만들어진 듯한 이 배역을 그는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다.
‘헌신적인 남편’ ‘목포의 건달’  상반된 역할로 연기 영역 넓히는 차인표

SBS 드라마 ‘완전한 사랑’(왼쪽)에서 차인표는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남편 역을, 영화 ‘목포는 항구다’(오른쪽)에서는 항구도시의 건달 역을 맡아 전혀 다른 모습을 동시에 연기하고 있다.


“실제 제 생활이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바르지는 않아요. 그런 시각들이 부담스러울 때도 많고…. 하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은 ‘시우’와 비슷한 데가 있어요. 집사람과 아들 정민이는 제게 너무 소중한 존재예요. 사실 제가 집사람에게 많이 기대고 의지해요. 전 시골에서 전원생활하며 조용히 살고 싶은 현실탈출 욕구에 시달리는 편인데, 그때마다 저를 잡아주고 지탱해주는 게 집사람이거든요. 몇년째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어떤 때는 존경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아들 정민에게 그렇게 좋은 아빠는 못되는 것 같아요. 바쁘다는 핑계로 맘껏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자책을 간혹 하는데, 저하고 노는 것보다 친구들하고 노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웃음).”
그의 아내 신애라는 요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친정어머니가 위암말기 투병중인 것. KBS 제2라디오 ‘신애라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로 방송 복귀를 준비하던 신애라는 이 때문에 방송을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차인표는 그런 아내를 “우울할수록 바깥 일을 한가지쯤 갖는 게 좋겠다”며 설득, 결국 방송에 복귀시켰다. 제작진은 신애라의 안타까운 상황을 고려, 1주일에 닷새분을 녹음 방송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위암말기라 희망을 가지긴 어렵지만 신애라는 기적을 바라는 심정으로 매일같이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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