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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황주리의 그림 에세이

11월에 꾸는 꿈

2003. 10. 31

11월에 꾸는 꿈

맑음, 때때로 흐림, 2000, 캔버스에 아크릴, 91×73cm


나는 가을도 겨울도 아닌 을씨년스럽고 쓸쓸한 11월을 좋아하지 않는다. 11월 한달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쓰러져 누워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에 유난히 마음 무거워지는 늦은 밤, 지하철역에 서서 열차가 몰고 오는 스산한 바람에 흔들리며 애써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한다.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 길가에 가득 핀 코스모스, 그리운 사람이 보낸 이메일을 열어보는 순간, 극장에 앉아 보는 좋은 영화, 겉으로는 바쁘지만 속으로는 고독하기만 한 오후에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 이 세상의 모든 산과 바다, 그리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 생각하면 살아 있는 모든 날들은 아름답다.
올가을엔 스코틀랜드에 다녀왔다. 산 넘어 또 산이 있고 그 산 넘어 또 산들이 펼쳐지는 광대한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나 부러운 건 자연이 아니라 도시든 산간벽지든, 도시 중심에 있든 후미진 뒷골목에 있든 집들이 한결같이 모두 깨끗하고 안락해 보인다는 점이다. 북한산 주변인 우리 동네만 해도 앞쪽으로는 번듯한 전원주택들이 자태를 뽐내지만 동네 뒤쪽으로 돌아가면 낡고 허름한 집들이 60년대를 연상시킨다. 화려한 도시 중심을 벗어나면 금세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하고 가난한 아파트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겉과 속,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있는 자와 없는 자, 그 사이의 심연은 깊고도 깊다. 세상 어디에 완벽한 세상이 있으랴마는 마치 들쭉날쭉한 이빨들을 고르게 교정을 하듯 세상의 집들이 고르고 하얗게 빛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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