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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3년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한 홍석천

“사회적 편견으로 힘든 시간 보냈지만 지금도 커밍아웃 후회 안해요”

■ 글·김지영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3.10.10 18:55:00

SBS 새 주말드라마 ‘완전한 사랑’을 통해 3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홍석천이 또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최근 가진 외지와의 인터뷰에서 “연예인 동성애자가 더 있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고 알려진 것. 이에 그가 “왜곡된 얘기”라며 발끈한 이유와 생활고, 사회적 편견으로 힘겨웠던 그간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커밍아웃 3년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한 홍석천

지난 2000년 9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후 방송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탤런트 홍석천(33). 최근 그가 3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복귀작은 김수현 극본, 곽영범 연출의 SBS 새 주말극 ‘완전한 사랑’. 극중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주인공 차인표, 이승연과 함께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단짝 친구로, 실제 그와 닮은 구석이 많은 동성애자 역할이다.
“극중에서 차인표씨와 이승연씨는 어릴 때 저의 성정체성 문제를 알고 흔쾌히 받아준 친구들이라 셋의 우정이 각별해요. 저는 차인표씨가 김희애씨와 결혼한 후에도 그를 못잊어 노처녀로 늙어가는 이승연씨를 지켜보면서 위로도 해주고, 용기도 북돋워줘요. 이승연씨가 슬플 때 함께 울어주고, 여자친구보다 더 편하게 속깊은 얘기를 나누는 친구 역할인데, 실제 저도 그래요. 제가 여성과 남성, 둘 다 이해하니까 남자친구든, 여자친구든 이성문제로 고민이 생기면 저를 찾아오거든요. 그래서 ‘남자 셋 여자 셋’에 출연할 때처럼 오버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편하게 평소 제 모습을 보여주면 되니까요.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 않네요.”
10월4일 첫방송을 앞두고 서울 이태원에 있는 그의 카페 ‘아워 플레이스’에서 만난 그는 이미 서너 회 분량의 촬영을 마친 상태였다. 컴백 소감을 묻자 “해직 당해서 3년간 백수로 지내다 취직했을 때보다 더 벅찬 느낌”이라고 운을 뗀 그는 아쉬운 첫촬영을 떠올렸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밤새 잠을 한숨도 못자 계속 NG가 나더라고요. 이전에 연기하면서 냈던 NG 횟수를 다 합쳐도 그만큼은 안될 거예요. 주위에서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격려해주시는데도 마음처럼 안되더라고요. 그날은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다행히 촬영이 거듭될수록 감을 되찾아 차츰 적응이 되고 있어요.”
오랜 기다림 끝에 그가 ‘컴백’이라는 결실을 맺은 데는 김수현 작가를 비롯한 ‘완전한 사랑’ 제작진의 도움이 컸다. 드라마를 기획할 때부터 동성애자 역할을 맡길 만한 적임자로 농담처럼 그의 이름을 거론했던 김수현 작가와 제작진이 여러 후보 가운데서 그를 선택한 것.
지난 5월 제작진의 출연 제의를 흔쾌히 수락한 그는 처음에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고 한다. 주말극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기는 처음인데다 배우라면 누구나 욕심내는 김수현 작가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커밍아웃 전에는 친분이 두터웠던 PD들조차 그를 외면할 때 일면식도 없던 김수현 작가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더욱 감격한 그는 드라마에만 전념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음반 발매까지 뒤로 미뤘다.

또다른 연예인 동성애자의 존재 언급한 적 없어

“사실 1년쯤 지나면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커밍아웃을 하면서 한국사회가 동성애에 좀더 관대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를 섭외했다가도 끝내는 번복하는 PD들을 보면서 더이상 한국에서는 방송을 못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 저에게 김수현 선생님이 기회를 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참 멋진 분이세요. 이태란씨, 이승연씨가 힘들 때 ‘내사랑 누굴까’로 도움을 주셨잖아요. 너무 감사한데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대본 연습 첫날 꽃시장에서 장미 한다발을 샀어요. 큰 선물을 드릴 형편도 안되고,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요. 근데 같이 출연하는 선배 연기자들에게 눈치가 보여 처음에 못 드리고 대본연습이 끝나자마자 쫓아가서 ‘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붑니다. 받아주시겠습니까’ 했죠. 그랬더니 막 웃으면서 ‘니 아부 내가 받겠다’며 좋아하셨어요. 그런 선생님께 좋은 연기로 보답해야 하는데 복귀하자마자 시끄러운 일이 생겨 면목이 없어요.”

커밍아웃 3년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한 홍석천

컴백의 기회를 준 ‘완전한 사랑’ 제작진과 김수현 작가에게 좋은 연기로 보답하겠다는 홍석천.


그가 언급한 ‘시끄러운 일’이란 지난 9월초 제주도 서귀포에서 진행된 ‘완전한 사랑’ 촬영 현장을 다녀간 취재진이 ‘최근 홍석천이 ‘뉴욕타임스’ 아시아 지부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연예계에 동성애자가 더 있다는 폭탄발언을 했다’고 보도한 일. 또한 취재진이 동성애자로 알려진 미남탤런트 A와 유부남 탤런트 B에 대한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가 간접시인한 것처럼 알려져 한동안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할 때는 한국 동성애자들의 인권문제와 내가 커밍아웃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커밍아웃한 후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한 얘기를 했을 뿐이에요. 그 과정에서 ‘외국에는 커밍아웃한 연예인들이 참 많은데 한국에는 왜 너뿐이냐’고 물어 ‘혹여 동성애자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고생하는 걸 뻔히 지켜봤는데 커밍아웃을 할 용기가 나겠냐’고 답한 게 전부고요. 제주도에서도 똑같이 얘기했어요. 그런데도 기자들이 몇몇 실명을 언급해서 ‘나는 확인해줄 처지도 아니고 아는 바가 없다. 정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라’고 했을 뿐이에요. ‘연예계에 있단 얘기냐, 없단 얘기냐’고 재차 묻었을 때도 ‘동성애자는 연예계뿐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 종교계 등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데 연예계에 있다, 없다가 왜 중요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을 뿐이고요. 그런데 마치 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처럼 기사가 나 너무 황당했어요. 너무 억울해서 소송을 걸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완전한 사랑’ 식구들에게 이런 일로 걱정을 끼쳐서 너무 죄송할 뿐이에요. 혹시나 말썽피운다고 잘리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들 오히려 더 따뜻하게 마음을 써주시더라고요.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연기만 열심히 하면 된다면서요.”
홍석천이 보도 내용에 민감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커밍아웃 이후 허물없이 지냈던 남자 동료들이 그에게 다가오기를 껄끄러워했는데 같은 일로 더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동성애자든 아니든 간에 일단 저와 어울려다니면 다른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비칠까봐 쉽게 다가오질 않아요. 지난 3년간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어지더라고요. 저에게 편하게 다가오는 동료는 떳떳하다고 자부하는 연예인이에요. 반면 그 전에는 친한 것 같았는데 저와 맞닥뜨리면 슬며시 빠지는 사람은 소문의 주인공이더라고요. 저도 기자들이 얘기하는 만큼 듣기는 했지만 가타부타할 수는 없는 문제예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제가 아는 바도 없고요. 정말 고마웠던 게 이번 드라마를 통해 만난 차인표씨나 이승연씨 같은 경우 저를 스스럼없이 대해주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시더라고요. 매상 올려주려고 우리 가게에도 일부러 손님들을 데리고 찾아오시기도 했고요. 그런 분들을 알게 돼 너무 기뻐요. 더 이상은 나를 그런 문제와 결부시켜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완전한 사랑’ 시청자들도 동성애자 홍석천이 아니라 연기자 홍석천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커밍아웃 이후 방송활동에 제약이 따르면서 한동안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그는 그동안 다섯 군데의 밤무대를 돌면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왔다. 느즈막한 저녁에 집을 나서 동트는 새벽녘에 귀가하는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힘내라’는 손님들의 격려에 절로 기운이 났다고 한다. 또 지난해 10월 카페 ‘아워 플레이스’를 오픈하면서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커밍아웃 3년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한 홍석천

대학교 1학년 때 연극영화과 교수와 친구들 앞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다는 홍석천.


“아워 플레이스를 동성애자 전용 카페로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 카페는 일반인들이 더 많이 찾아와요. 밤무대를 뛰면서 카페를 운영하기가 쉽진 않지만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분들이 많아 힘들지 않았어요. 그분들을 대하면서 전 희망의 빛을 봤어요. 나도 언젠가 컴백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요. 그래서 유학도 미룬 거예요. 실은 커밍아웃한 직후 유학준비를 했었는데 비겁하게 도망가는 것 같아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고 하다 여기까지 왔어요. 버티기를 참 잘한 것 같아요. 우선 이번 작품을 열심히 해서 시청자들에게 인정받고, 연말에 음반도 내야 하니까 유학은 2년 뒤에나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은 2년반 동안 그의 곁을 지켜준 애인이라고 한다. 커밍아웃한 직후에 만난 애인 덕분에 유학도 미루고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생활고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둘 사이가 차츰 소원해졌고, 급기야 지난 2월 헤어졌다.
“올봄엔 이런저런 문제가 겹쳐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어요. 저더러 죽으라는 건지, 살라는 건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모든 걸 포기하고 해외로 떠나고 싶었어요. 그때 헤어진 애인이 저를 잡아주었어요. 함께 지내면서 힘들 바에야 차라리 각자 생활하면서 친구로 지내자며 헤어졌지만 지금도 저희는 매일 통화하고, 자주 만나면서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어요.”



커밍아웃 후 사귄 애인과 지난 2월 헤어져

커밍아웃만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우리에게 사랑받는 홍석천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련만 그는 지난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본모습을 감추며 거짓되게 살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가 한번은 꼭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했을 뿐이라고. 그가 그런 용기를 낸 데는 커밍아웃 이전에 사귄 네덜란드인 애인과 두 번의 커밍아웃 경험이 도움이 됐다.
“네덜란드 친구는 제가 커밍아웃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에요. 동성애자라는 것을 감추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 일깨워줬으니까요. 하지만 이전에 전 이미 커밍아웃을 한 경험이 두번이나 있었어요. 한번은 89년 한양대 연극영화과 1학년 때였는데, 연기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저한테는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다면서 그런 걸 숨기면 배우가 못된다며 털어놓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친구들과 교수님 앞에서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숨김없이 얘기했죠. 커밍아웃에 대한 반응이 두려워서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고요. 그런데 친구들도, 교수님도 다 엉엉 울더군요. 너는 여전히 우리의 친구고, 제자라면서요. 덕분에 학교생활을 참 편하게 했어요. 친구들이 동성애자라는 걸 알면서도 스스럼없이 대해줬으니까요.”
그의 두번째 커밍아웃은 지난 98년 호암아트홀에서 이병헌, 최할리 등과 함께 공연한 뮤지컬 ‘코러스라인’ 무대에서 이뤄졌다. 극중 게이 역할을 맡은 그는 아버지와 관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감독 역의 이병헌에게 커밍아웃을 하며 눈물을 뚝 떨구는 감동적인 연기를 했던 것. 한마디로 우회적인 커밍아웃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아버지는 중간에 객석을 슬그머니 빠져나가셨다고.
“지금도 그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때 눈치를 챘었다는 분도 계시고요. 전 결코 뜬금없이 커밍아웃을 한 게 아니었어요. 이의정, 이선정, 권민중 같은 친한 연예인들에게는 꾸준히 그런 시도를 했어요. 걔들이 오빠는 왜 여자친구가 없냐고 하면 니들보다 남자가 더 좋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거든요. 사실 전 커밍아웃으로 그렇게까지 힘들어질 줄은 몰랐어요.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고, 오래지 않아 동성애자가 성소수자일뿐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아주리라 믿었어요. 비록 컴백은 늦어졌지만 점점 따뜻한 시선이 늘어가는 걸 보면서 제 예상이 틀리지만은 않았구나 싶어요. 그간 진심어린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 팬들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에요.”
좌절과 아픔을 극복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 홍석천. 그의 앞날에 웃음꽃이 만발하기를 기원한다.

여성동아 2003년 10월 4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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