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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튼튼 육아법

“아이에게도 아플 권리를 주라”는 주장하는 소아과 전문의 고시환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이승민 ■ 사진·조영철 기자

2003. 10. 07

2000년, “깡통 이유식을 버려라” 하고 외치며 맞춤 이유식 ‘닥터고 아기밥’ 배달사업을 처음 시작한 소아과 전문의 고시환. 그런 그가 최근 “아이에게도 아플 권리를 주라”고 주장해 화제다. 아이에게 미열 증세만 나타나도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들에게 다소 생소한 주장을 펴는 고시환 원장을 만나 아이를 튼튼하게 키우는 육아법을 들어보았다.

“아이에게도 아플 권리를 주라”는 주장하는 소아과 전문의 고시환

“하루 3백~4백명의 환자를 본 적도 있어요. 엄마들이 아이의 증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어떤 약을 쓰면 될지가 금세 떠올라요. 하지만 증상만 치료해서는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없습니다.”
홈메이드 이유식 ‘닥터고 아기밥’으로 유명한 압구정 홍은소아과 고시환 원장(39)은 “병원을 찾은 아이들 10명 중 8~9명은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라며 단순히 증상만을 없애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기보다 정확한 원인을 찾고, 아이가 아픔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소아질환의 90% 이상은 바이러스 질환으로 열, 기침, 콧물, 가래, 구토, 설사, 피부 발진 등의 증상은 몸에 들어온 나쁜 균과 싸워 자연 면역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므로 약을 써서 이를 억지로 없애는 것은 오히려 아이가 건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없애는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그는 “아이들에게 아플 권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아질환의 90% 이상은 자연 면역력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
“이를 위해서는 엄마와 의사 사이의 신뢰감 형성이 매우 중요하죠. 의사가 ‘약을 쓰지 말고 며칠만 지켜보자’고 했을 때 엄마가 믿고 따라줘야 하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소아과가 아플 때만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 육아에 대해 모든 것을 상담할 수 있는 사랑방이 되어야 합니다.”
고시환 원장은 배밀이를 하던 아이가 의자를 집고 일어섰을 때, 하얀 이가 나오기 시작할 때 등 성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의사에게 이야기하라고 조언한다. 소아과에 아이에 대한 모든 정보를 쌓아놓는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이런 정보들은 아이가 아플 때 적절한 처방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알기 위해 시간적 여유를 갖고 환자나 보호자가 의사와 충분히 상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가 자신의 병원에 운동처방실을 따로 마련한 것도 청진기로 아이의 질병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아이가 노는 모습을 통해 아이의 발달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병원 인테리어도 최대한 자연 친화적으로 꾸몄다. 알레르기를 유발하지 않는 특수 페인트를 사용했고, 산소 바람을 통해 늘 쾌적한 공기를 유지하도록 했다. 또한 내부 장식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병원을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소아과는 대부분 아이들이 아플 때 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은 하류 의료 행위이고, 질병을 예방하는 것은 중류 의료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아이가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상류 의료행위지요.”

아이 두뇌 발달과 건강 위해 씹어먹는 이유식 먹여야

그가 국내 최초로 홈메이드 맞춤 이유식 배달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의료 행위가 질병을 치료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평소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양질의 음식이고, 특히 자신의 기호와 각종 정보를 절충해 음식을 가려먹을 수 있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주는 대로 먹기 때문에 아이들의 먹을거리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더욱이 소아 내분비 전문의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동안 소아비만과 소아당뇨, 왜소증 등 아이들의 성장 발달과 관련한 질환을 진료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 영양 섭취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이에게도 아플 권리를 주라”는 주장하는 소아과 전문의 고시환

고시환 원장은 소아 환자의 질환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료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엄마들이 지나치게 분유와 가공 이유식에 의존하는 데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20세기초 미국과 유럽에서는 분유 제조 기술의 발달과 여성들의 사회 참여율이 높아지면서 분유 수유율이 급격히 증가하였으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다시 모유 수유율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70년에는 99.7%였던 모유 수유율이 78년에는 42.8%, 79년 30.4%, 81년 28.5%로 계속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다 97년, 14.1%까지 낮아졌고, 이후 모유 수유율은 최근까지도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는 결국 아이들의 입맛이 출생과 함께 분유와 가공 이유식 등 인스턴트 영양원에 길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가공된 분유형 이유식은 지방이 많이 들어 있어 아이들 건강에 좋지 않고, 우유병에 담아 이유식을 주게 되면 치아발달과 구강구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고시환 원장은 최근 소아비만과 알레르기 환자가 부쩍 늘어난 것도 잘못된 식습관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이유식은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 식습관 및 식문화를 익히게 하는 역할 역시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음식은 영양 공급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 민족이 오랜 기간 살며 터득한 문화와 생활이 녹아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유식을 통해 과일, 고기 등 다양한 음식을 먹고 씹으면서 각각 다른 맛과 촉감을 익히게 됩니다. 영양이나 편리함만 생각해 인스턴트 이유식을 먹이는 건 엄마가 아이에게 음식문화를 익힐 기회를 뺏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그는 영양사가 아기의 개월수에 맞춰 식단을 짜고, 유기농 재료를 엄선해 인공 첨가물을 전혀 쓰지 않고, 깨끗하게 조리한 이유식을 각 가정으로 배달하기 시작했다. 고시환 원장이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 후발 업체들이 속속 생겨났을 정도로 홈메이드 이유식 배달사업은 화제가 됐다. 이에 그는 ‘아기밥’의 품질을 한 단계 올리기 위해 최근 15억원을 들여 안성에 이유식 전용 공장을 설립했다. 그리고 ISO 9001(국제품질경영시스템) 인증과 HACCP(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 기준)를 획득하면서 아기밥의 품질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갑자기 분유형 이유식에 길들여진 아이의 입맛을 홈메이드 이유식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대부분 단맛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은 아무런 첨가물을 넣지 않고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린 이유식을 잘 먹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 입맛에 맞추자고 첨가물을 넣을 수는 없는 일. 염분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콩팥 기능이 약해지고, 인공 첨가물은 위암, 고혈압, 심장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서서히 아이의 먹을거리 전체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시환 원장은 아기밥 안성 공장을 이유식 제조 시설뿐 아니라 가족들이 와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가족공원으로 조성했다. 수영장, 농구장, 골프장, 축구장 등의 시설이 마련되어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그만이라고.
“가족이 나들이삼아 와서 직접 아기밥의 제조 과정을 감독하라는 뜻에서 공원을 만들었어요. 무슨 재료가 쓰이는지,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를 직접 보면 아기밥 이유식을 안심하고 아기들에게 먹일 수 있을 겁니다. 저희 공장이 단순히 이유식만을 만들어내는 곳이 아니라 소아과 전문의, 영양사, 운동처방사, 피부관리사, 가정 법률 상담을 위한 변호사, 아동심리 전문가 등이 모여 아이와 가족들의 어려움을 풀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시환 원장은 앞으로도 ‘음식은 곧 문화이고,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음식은 바로 우리 음식’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건강에 초석이 되는 먹을거리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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