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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 폐인’ 신조어 낳으며 인기 모은 ‘다모’ 이재규 PD가 들려준 촬영 뒷얘기

■ 기획·최숙영 기자 ■ 글·조희숙 ■ 사진·지재만 기자, MBC 홍보실

입력 2003.10.02 16:48:00

MBC 시청소감 1백만건 돌파, 5만명의 다모 폐인, “아프냐, 나도 아프다” 등 주옥 같은 명대사로 ‘다모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MBC 월화드라마 ‘다모’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연출자 이재규 PD로부터 들은 실제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다모’ 촬영 뒷이야기.
‘다모 폐인’ 신조어 낳으며  인기 모은 ‘다모’ 이재규 PD가 들려준 촬영 뒷얘기

젊은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던 MBC 월화드라마 ‘다모’가 9월9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만화가 방학기 원작의 ‘다모’는 조선시대 여형사라는 새로운 소재를 드라마화한 퓨전무협사극으로 7월28일 첫방송됐는데 젊은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다모 신드롬’까지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인터넷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 ‘다모’의 이재규 PD(33)는 드라마 ‘아줌마’와 ‘국희’ 등의 조연출을 거쳐 ‘다모’를 통해 연출자로 입봉, 스타 PD가 됐다. 서울대 신문학과 출신인 그는 지난 96년 방송국에 입사, 동기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데뷔식을 치른 늦깎이 연출자이기도 하다.

‘다모’는 6년 전 판권을 구입했지만 모두 연출을 포기했던 작품

애초 ‘다모’는 그의 연출 데뷔작이 아니었다. 신인 연출자들이 단막극으로 데뷔하는 관례에 따라 그 역시 염두에 둔 단막극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평소 꼼꼼하고 성실히 일해오던 그에게 미니시리즈를 만들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6년전 판권을 구입했지만 모든 PD들이 연출을 포기했던 작품 ‘다모’였다.
“처음 방학기 선생님의 ‘다모’를 봤을 때 ‘재미있겠지만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극이었고 이야기 구조가 복잡했거든요. 그래서 젊은층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사극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기획을 시작했죠. 중간에 고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아요.”
6년 만에 빛을 본 ‘다모’는 말 그대로 ‘열풍’을 몰고 왔다. 초반 시청률이 13%대에 그쳤지만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하루 평균 2만건의 소감이 속속 올라왔다. 종영된 지난 9월9일에도 게시판에 오른 글이 1백만건이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기록할 정도였다. 6만7천건을 기록한 상반기 최고 히트작 SBS ‘올인’도 ‘다모’의 초특급 열풍을 따라잡지 못했던 것이다.
‘다모’ 열풍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다모 폐인’들이다. 이들은 본 방송을 포함해 인터넷 ‘다시보기’로 1회당 평균 10회 이상 드라마를 시청한 그야말로 열성팬들이다. 하루 종일 재방송을 챙겨보고 밤늦게까지 인터넷상에서 ‘다모’ 뒷얘기를 나누다 밤을 꼬박 새우는 일도 부지기수. ‘다모’를 HD방식으로 보기 위해 TV를 새로 구입했다는 열혈팬도 적지 않다.
게다가 ‘다모 폐인’들 사이에서는 그들만이 공유하는 ‘다모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님’ ‘소인’ ‘나으리’ 등 고풍스러운 어투와 ‘~하오체’는 다모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해졌다.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다모’를 패러디한 이색 포스터가 올라왔고, 가상 기사로 엮은 ‘다모폐인일보’나 ‘한성 좌포청 신문’을 비롯해 ‘다모폐인 방송’까지 쏟아져 나왔다.
이처럼 ‘다모’는 제작진과 시청자 사이의 쌍방향 교류가 잘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재규 PD를 비롯해 스태프와 배우들은 인터넷 다모 카페에 직접 들러 제작 뒷얘기나 감사편지를 올리는가 하면, 팬들은 촬영장으로 먹을 것을 실어 날랐다. 촬영장에 가지 못하는 팬들을 위해 조연출인 김대진 PD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촬영현장 사진으로 ‘다모’ 생중계를 대신하기도 했다.
“시간날 때마다 카페에 한번씩 들러보자”는 이재규PD의 독려에 팬서비스에 앞장선 연기자는 탤런트 권오중이었고 이어서 이서진, 하지원, 김민준을 비롯한 선우재덕, 노현희 등의 연기자들이 줄줄이 직접 글을 남겨 팬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다모 폐인’ 신조어 낳으며  인기 모은 ‘다모’ 이재규 PD가 들려준 촬영 뒷얘기

하지만 ‘다모’ 제작진은 제작 초기에 캐스팅 난관으로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애초에는 이서진이 맡았던 좌포청 종사관 황보윤 역할을 탤런트 이정진이 맡기로 돼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정진이 빠지면서 장성백 역할로 캐스팅된 이서진이 황보윤 역할로 바뀐 것이다. 그러자 이 PD는 ‘다모’를 염두에 두고 특별 트레이닝 시키고 있던 모델 출신 김민준을 장성백 자리에 앉혔다.
“주변에서 이서진이 장성백보다는 황보윤 역할에 더 어울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본인도 그 캐릭터에 매력을 갖고 있었고요. 김민준은 장성백 역할로 점찍어 두고 트레이닝을 시켰던 터라 결과적으로 배역은 적절하게 배치됐다고 생각해요.”
‘다모’에서 이재규 PD의 히든카드는 김민준이다. 95년 최고의 모델로 뽑히기도 했던 김민준은 KTF, BMW 등 여러 편의 CF에 출연한 낯익은 얼굴. 일찌감치 김민준을 낙점하고 있던 이 PD는 그에게 “원하는 수준까지 오르지 않으면 언제라도 포기하겠다(캐스팅하지 않겠다)”는 식의 매서운 말로 트레이닝을 시켰다.
“배우나 작가를 만날 때는 제 직관을 믿는 편이에요. 저한테는 ‘그동안 어떤 작품에 출연했는가’보다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거든요. 김민준을 만날 때도 그랬어요. 쉴 때 뭐하며 지내는지, 평소 좋아하는 게 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죠. 김민준은 뜻밖에 저와 대화가 잘 통했어요. 모델이지만 패션 외에도 영화와 드라마, 음악, 취미, 자동차 등에 박식했고 똘똘했지요.”
유일하게 원만히 캐스팅된 배역은 채옥 역의 하지원이다. 이 PD가 ‘다모’ 원작에서 느낀 채옥은 ‘관능적이고 인생의 우여곡절의 삶이 배어 있는 여자’였다고 한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하지원은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연기자였다.
이밖에 연기와 실제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몰입했던 마축지 역의 이문식, 극 초반에 출연했던 조재현, 임현식, 박준규 등 카메오 출연자들도 ‘다모’를 빛냈다.
국내 처음으로 사전 제작된 ‘다모’는 편당 2억원의 제작비로 총 14부 중에서 12부에 해당하는 분량이 사전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올초부터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한 이 PD는 25대의 트럭과 1백명여명의 스태프, 배우들을 이끌고 전국 방방곡곡을 헤맸다.
하지만 지방 촬영 때 가장 큰 문제는 끼니를 해결하는 일. 특히 극중 ‘산채’ 장면 촬영 때는 스태프와 배우들의 식사 조달이 큰 문제였다. 끼니때마다 1백명이 넘는 제작진을 이끌고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정해진 촬영 분량을 찍는 일은 포기해야 할 정도였고,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는 날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제때 식사를 하지 못한 스태프들 사이에서 “못하겠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동굴 폭파장면 촬영 때는 죽어도 좋다는 각서 쓰기도



또 무협사극이란 특성 때문에 아슬아슬하고 위험했던 순간도 많았다. 후반부 동굴신을 찍을 때가 그랬다. 이재규 PD가 생각한 동굴은 ‘반드시 석회암 느낌이 나며 천장이 높고 천장에 구멍이 있는 곳’이어야 했다. 섭외 한달 만에 찾아낸 곳은 충북 단양 일광동굴. 그러나 미개발 동굴이라 조금만 말소리가 울려도 흙가루가 떨어질 정도로 위험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갈 때 마을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어요.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동굴에 들어간다는 거죠. 거기서 폭죽까지 터뜨리는 일은 정말 미친 짓이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NG가 3번이나 났어요. 사실 마지막도 NG였는데 더 이상은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중에 동굴 폭파장면을 찍을 때는 해당 군청에 ‘촬영중 죽어도 좋다’는 각서를 쓰기도 했어요.”

배우와 스태프들 사이에 크고 작은 부상도 속출했다. 조연출 김대진 PD의 말을 빌자면 “정상인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재규 PD도 수중신 촬영을 위해 시범을 보이다 이마가 찢어졌고 드라마가 끝나고 죽어나간 말도 자그만치 6마리나 된다. 말에서 떨어진 한 스턴트맨은 쇄골이 6조각이나 나는 큰 사고도 있었다.
그중 유난히 말타는 장면이 많아 ‘낙마’하는 사고가 잦았다. 어린 장성백 역을 맡은 아역 김수용은 무술감독 정두홍과 함께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을 찍다 4m 높이에서 낙마했고, 어린 채옥 역을 맡은 정민아도 말에서 떨어져 말 다리 사이에 갇히기도 했다.
이재규 PD는 “영화에서 두 사람이 말을 타고 가는 역할이 쉬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잘 조련된 말도 없을 뿐더러 반드시 말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앞에 타야 하는데 모든 여건을 다 맞추며 촬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성인 연기자들에게 가장 고역은 와이어 액션 연기. 한번 와이어를 장착하고 나면 배우들은 온몸에 멍투성이가 되기 십상이었다. ‘다모’ 첫회 대숲 장면에서 하지원과 대결하던 김민준은 5m 높이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여자 연기자 하지원도 와이어 액션신을 촬영한 후 3일 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다모’의 백미는 함축적이고 절제된 대사에 있다. 지난해 5월에 기획된 ‘다모’는 같은해 7월말부터 올 1월까지 6개월에 걸친 대본작업을 거쳤다. 이재규 PD와 정형수 작가는 1회당 평균 10회 정도의 수정작업을 거쳤을 만큼 대사작업에 공을 들였다.
“정작가와 문제가 되는 장면에 대해서 충분히 얘기해요. 카페에 4~5시간 앉아서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뚫리는 걸 느껴요. 그럼, 작업하고 다시 수정하죠. 대충 10번 정도 수정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둘이 앉아서 대사와 지문을 꼼꼼하게 읽어보면서 최종 점검을 하는 거예요. ‘아프냐, 나도 아프다’도 작가와 얘기하던 중 나온 대사예요.”
‘다모’는 유난히 고비가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재규 PD는 “후반에는 도망가고 싶었다”면서 제작 일정 지연과 늘어나는 제작비 압박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선배들 사이에서 “연출자가 헤매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앳된 얼굴이지만 이재규 PD는 두 아이를 둔 가장이다. 8년 연애한 지금의 부인과 결혼해 다섯살짜리 딸과 세살배기 아들이 있는데 ‘다모’의 최대 수혜자가 이재규 PD라면 최고 피해자는 그의 가족이 아닐까 싶다. ‘다모’를 촬영하는 동안 1주일에 한번 꼴로 집에 들어간 것.
잠깐 미국에 다녀온 후 당분간 쉴 생각이라는 이재규 PD. 차기작은 내년 상반기에 시작할 것 같다는 그는 “남자끼리, 혹은 여자끼리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버디형 드라마를 하게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여성동아 2003년 10월 4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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