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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변에서 성폭행당한 뒤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낸 스물여덟살 학습지 교사의 사연

■ 글·이승희 ■ 사진·아름다운 동참 제공

입력 2003.08.29 17:06:00

지난 8월4일 울산지원에 색다른 고소장이 접수되었다.
치한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국가와 울산시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 지난해 7월, 집으로 가던 중 대로변에서 두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경찰조사에서 또 한번 절망을 느꼈던 그가 성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깨닫고 당당히 나서기까지.
대로변에서 성폭행당한 뒤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낸 스물여덟살 학습지 교사의 사연

지난 8월12일 열린 성폭력 생존자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지지 기자회견 모습.


이지숙씨(가명·28)는 학습지 방문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마지막 수업은 울산시 북구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약 7백60세대가 사는 제법 큰 규모의 아파트 단지다. 2002년 7월11일. 그날도 여느 때처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길을 나섰다. 밤 11시40분경이었다. 조금 늦긴 했지만 그가 차를 기다리며 걷던 길은 대로변이어서 특별히 경계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30대쯤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슬그머니 다가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의 뒤에서 목을 조르고 팔을 비틀었다. 그는 대로변에서 농수로 둔덕까지 강제로 끌려가야 했다. 그들은 낮고 험악한 목소리로 협박을 해댔다. “조용히 해라. 입 벌리거나 말 안 들으면 죽는다”고.
두 남자는 번갈아 성폭행을 한 후 “이동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그의 지갑을 빼앗았다. 한 남자가 신용카드를 빼내려 하자 또 다른 남자는 카드를 가져가서는 안된다며 가방에 들어 있던 회비 봉투를 꺼냈다. 2만원인을 가지고 가며 “30~40분 동안 꼼짝 말고 있다가 나오라”고 그에게 엄포를 놓았다.
그는 낯익었던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서웠다. 겁이 나서 두 남자가 시키는 대로 꼼짝없이 10분인가 누워 있었다. 10분 동안 바라본 그날의 하늘은 너무나 어두웠고 추웠고 그래서 두려운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는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상태에서 도로로 뛰어나왔다.
경황 없이 거리로 뛰쳐나온 그는 때마침 순찰 나온 112순찰차를 발견했다. 순찰차를 불러 세운 후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기 위해 ‘평등세상을 여는 울산 여성들’ 회원 친구의 집으로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그를 태우고 가던 중 한 경찰관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는 무슨 일인지 캐물었다. 그는 방금 전 일어났던 강간사건을 사실대로 얘기했다. 그를 태운 순찰차는 즉시 차를 돌려 사건현장으로 향했다. 그는 경찰관에게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러곤 찾아가려 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옆자리에 경찰이 있었지만 그는 친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얼마 후 친구는 그가 입을 옷을 챙겨 가지고 현장에 도착했다.
사건현장을 둘러본 후 경찰은 그에게 가해자의 인상착의를 물었다. 그는 상세히 알려줬다. 그러고 나서 보관하고 있던 가해자의 음모를 경찰에게 건넸다. 그러나 그들은 증거물인 음모를 건네받지 않았다. 그에게 가지고 있으라고 할 뿐이었다.
그뿐인가? 이곳은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라며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10분 정도 지난 후 관할 파출소에서 경찰관이 나왔다. 그는 가지고 있던 증거물, 즉 가해자들의 음모를 관할 경찰들에게 건넸다. 그러나 그들도 거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친구에게 증거물인 음모를 건넸다(친구는 음모를 휴지에 싸서 보관하고 있다가 사건 발생 다음날인 2002년 7월 12일 담당 형사에게 주었다).

대로변에서 성폭행당한 뒤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낸 스물여덟살 학습지 교사의 사연

7월11일 성폭력 사건 1년을 맞아 성폭력을 당한 사건 현장의 나무에 지지자들이 리본을 매달았다.


관할서에서 나온 경찰관들은 그에게 피해자 조사를 해야 한다며 경찰서로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와 친구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몸에 남아 있는 가해자들의 정액을 채취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병원부터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말했지만 경찰들은 막무가내였다. 현장보존을 위해 다른 경찰의 지원을 요청해도 경찰은 “절차가 필요하여 시간이 걸리므로 지금은 올 수 없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친구와 함께 울산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외상부터 치료했다. 질입구부 후음순 소대열상, 다발성 좌상이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정액을 채취하려 했지만 경찰이 입회해야 정액채취가 가능하다 하여 다시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다. 30분쯤 지났을까? 경찰 둘이 도착했다. 정액채취를 하고 나서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휴대전화가 없어진 걸 알게 되었다. 그는 경찰에게 사건현장에 가서 확인해줄 것을 요구하였지만 너무 어두워 볼 수 없다며 다음날로 미루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너무 어둡다는 말만 남기고 병원을 떠나버렸다. 그러나 그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현장으로 가 가해자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수색하기로 했다. 휴대용 랜턴과 카메라를 들고 수색에 나섰던 친구들은 현장에서 젖은 면장갑을 찾아내 경찰에 전달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평등세상을 여는 울산 여성들) 참으로 침착했고 용감했다. 경찰에서도 그의 태도를 보고 ‘이런 피해자는 처음 봤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건 그가 유별나거나 특별히 강해서가 아니다. 그는 평범한 학습지 교사였지만 여성단체 회원으로 활동해왔고, 1시간17분마다 성폭력이 일어나는 현실 앞에서 그는 ‘침묵’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그는 담당 경찰서에서 나온 강력반 반장, 형사들과 함께 현장검증을 위해 사건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밤새 일어났던 악몽의 장소는 대로변이고 주변엔 건물들도 없어 정확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담당 경찰들은 짜증이 났는지 “그것도 기억하지 못하느냐”며 그를 위축시켰다. 그러더니 한 경찰이 그를 자동차 뒤로 불러내 “범인들이 구강사정을 했느냐” “성경험이 있느냐”는 등 성적 굴욕감을 자극하는 질문을 했다. 그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치스러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그곳은 남자도 다니기 무서운 곳인데…” “시집도 가야 되는데…” 하는 말도 들었다. 그보고 어쩌란 것인가? 남자도 다니기 힘들 만큼 무서운 길이라면 가로등이라도 훤히 밝혔어야 할 것 아닌가. 자가용 없이 버스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차를 타기 위해 그 길을 걷고, 그 길에서 차를 기다려야 하는데 말이다. 또한 ‘시집은 가야 되는데’라니, 그건 또 무슨 뜻인가. 그를 진정으로 위해서 하는 말인지 덮어두자는 말인지….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로변에서 성폭행당한 뒤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낸 스물여덟살 학습지 교사의 사연

평등 세상을 여는 울산 여성들 교육관에 모여 모임을 갖는 ‘아름다운 동참’회원들.


그는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참기로 했다. 그리고 이겨내기로 했다. 신체적 침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침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신고조차 꺼리게 만드는 우리의 현실 앞에 무릎을 꿇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여성에게 순결을 강조하고 정조 이데올로기로 묶어두려는 사회에 순응할 수가 없었다.
가해자 검거를 위해 그와 친구들은 경찰 이상으로 치열했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담당 형사는 세번이나 바뀌고 그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건은 다른 사건에 밀리기 일쑤였다. 그는 또다시 절망했다. 그러나 절망보다 더 무섭게 그를 짓누르는 건 언제든 다시 성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현실이다. 그는 지금도 불안과 고통을 안고 다시 사건현장을 거쳐 일터로 간다.
그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침해당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헌법 제10조)를 돌려받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되찾기로 했다. 국가가 해야 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사회에 알리기로 했다.
그는 이런 점을 물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했다. 성폭력이라는 파렴치한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데도, 이로 인해 여성이 잠재적인 피해자로 살아가야 하는데도 국가는 어떤 예방이나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송비는 ‘성폭력 생존자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폭력 없는 세상을 위한 아름다운 동참-1인 1만원 내기 모금 운동’을 통해 마련했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닌 다른 여성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다.
그의 이런 용기는 피해 여성들의 입을 열게 하고, 법과 제도를 고치고, 수사관행을 바꾸는 단초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재수 없는 개인적 사고’로 치부되어온 성폭력 범죄를 혼자 알아서 조심할 일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국민 모두 함께 해결할 ‘사회적인 범죄’로 자리매김하는 운동의 시작으로 만들 것이다.


여성동아 2003년 9월 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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