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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기막힌 인생

바람난 아내·사업 실패 때문에 자살 기도 후 스님 되었다 환속한 시인 전형철

■ 글·박윤희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3.08.29 16:14:00

생모에게 버림받고, 첫사랑을 교통사고로 잃고, 바람난 아내와 이혼하고….
하마터면 세상을 버릴 뻔했던 남자 전형철.
두번의 자살 미수, 사업실패를 극복하고 인터넷 시인으로 변신한 그의 파란만장한 삶.
바람난 아내·사업 실패 때문에 자살 기도 후 스님 되었다 환속한 시인 전형철

“오프 모임이요? 싫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가 여자예요.” 불혹의 나이에 사춘기 소년의 감수성을 지닌 남자 전형철씨(39). 인터넷 시인으로 사이버 세상에서 유명한 그는 요즘 여성 네티즌들로부터 하루 2백50통에 가까운 ‘러브콜’ 성격의 이메일을 받는다. ‘감성시’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그의 시에 반해 여성팬들이 오프 모임을 요청하지만 그는 인터넷 필명 ‘바람소리’에 걸맞게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묻자 뜻밖에도 세상 여자들의 ‘배신’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머니, 연인, 아내에게 모두 배신 당했어요. 그러니 여자가 안 무서울 수가 없죠.”
강남구 봉은사 선방에서 좌정을 한 채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전씨가 그 말을 하고는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숨을 고르고 오겠다”며 대웅전 마당으로 성큼 걸어나갔다.
최근 그가 온라인에서 인기를 얻은 시를 한데 모아 펴낸 감성시집 ‘꽃향기 서러운 날에’를 보면 ‘슬픔’ ‘그리움’ ‘눈물’이라는 시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것도 미움이나 원망이 가시지 않은 한숨소리와 울분이 시집의 날실과 씨실을 이룬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대웅전 앞에서 합장하는 그의 등허리가 곱다.
잠시 후 그가 돌아왔다. 붉어졌던 얼굴이 어느 정도 제 색을 찾은 듯했다.
“호적에 오른 어머니만 세명이었어요. 아주 어렸을 때 생모는 가출을 했고요. 어릴 적 새로 어머니가 오실 때마다 저는 ‘원래 어머니가 저렇게 바뀌는가 보다’ 생각했어요. 계모들의 구박이 심해서 마음 둘 곳이 없었죠.”
그의 유년시절과 사춘기는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에 온통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학업도 뒷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출을 일삼았던 그는 성년이 되자마자 생모가 있는 곳을 수소문해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가 사시는 곳을 찾아가긴 했는데 젖먹이를 업고 있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자식들을 다 버리고 가신 분이 또 다른 아이를 키우고 있다니…. 그 길로 되돌아와서 원양어선도 타고 안해 본 일이 없어요.”
그 일로 어머니의 사랑은 ‘없다’고 선언한 그는 어머니란 존재를 ‘착각’이란 말로 무화시켜 버렸다.
‘사랑은 없었다/ 처음부터 비워진 사랑만이 있었을 뿐,/ 마음이 떠난 자리에/ 점점이 밀려든 착각인 것을/ (중략) / 그대와 나는 슬픈 추억마저 가질 수 없는/ 서로 잊혀진 존재인 것을’-‘마음이 떠난 자리’ 중에서
관계의 결핍이 또 다른 관계를 욕망하는 것처럼 그는 어머니에게서 채울 수 없었던 정신적인 허기를 여자친구를 통해 채웠다. 열일곱살에 찾아온 첫사랑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그가 스물세살 되던 해 비극적으로 끝이 났다.
“저랑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그는 여자친구의 죽음을 ‘배신’이라고 표현할 만큼 쌓인 한이 많은 듯했다.
“저와 함께 살아 있지 못하고 죽었으니 그것도 일종의 배신이죠. 2년 동안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살고 싶지 않아서 음독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어요.”
그가 2001년부터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한 시도 대부분 불귀의 객이 된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연시다. 10대 청소년부터 70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네티즌의 사랑을 받았고, 독자들이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그의 시를 퍼뜨리기 시작하면서 그는 ‘바람소리’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서 공감을 얻게 됐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semyeong.netian.com)와 다음카페(cafe.daum.net/jenhyengchel)를 클릭하면 영상이 곁들여진 감성시를 만날 수 있다.

바람난 아내·사업 실패 때문에 자살 기도 후 스님 되었다 환속한 시인 전형철

전형철 시인은 환속을 했지만 계속 절에 머물며 생활하고 있다.


운명은 정면으로 다가오고 숙명은 뒤에서 ‘짱돌’처럼 날아온다고 했던가. 운명의 첫사랑이 그의 얼굴을 바위처럼 내리치고 떠났다면 아내는 숙명처럼 다가와 그를 완전히 때려눕히고 떠났다. 마치 인위성이 극에 달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그의 불행은 그칠 듯하다가도 계속 이어졌다.
“아내는 제 첫사랑이랑 제가 삼총사처럼 어울려 다니던 친구였어요. 첫사랑이 교통사고로 죽고 나서 아내가 저를 많이 위로해주었죠. 알게 모르게 정이 많이 들었는데, 제가 건축 관련 사업을 하면서 지방 출장이 잦았어요. 그럴 때 남자친구를 사귄 모양이에요. 7년 동안 별거하다가 이혼했는데 마침 또 제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를 맞아 10억원 넘게 손해를 보게 됐죠.”
그가 왜 ‘여자’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가정은 파탄났지만 그는 사업가로 재기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헛수고로 끝났고 형제들한테까지 손가락질받던 그는 두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살고 싶지 않아 동아줄에 목을 매었죠. 그러고는 정신을 잃었는데 나중에 눈을 떠보니 그 굵은 동아줄이 끊어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살아난 거예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일이죠.”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두 아이를 여동생 집에 맡기고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 있는 승화사로 찾아가 머리를 깎고 세상과 등을 졌다. 그렇게 부처님의 제자가 된 때가 지난해 10월.
“절에서 참선하면서 보낸 시간이 저에게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기간이었어요. 지난 과거 때문에 마음이 괴로울 때면 삼천배를 하면서 마음을 비워나갔죠.”
삼천배를 할 때 그의 화두는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이었다. 그를 가르친 큰스님은 그에게 이런 말씀을 내려주셨다.
‘스스로 도를 깨우치는데 부처의 말씀이 방해가 된다면 네 마음속의 부처를 스스로 죽여라. 부처를 찾고자 나선 것이 아니다. 부처가 되고자 나선 것이니 스스로 마음속의 부처를 찾아라.’
그에게 ‘잃어버린 나’를 찾았는지 물어보았다. 출가한 지 8개월 만에 환속해 시인이 됐으니 말이다.
“동생에게 맡기고 들어간 사업체가 제대로 운영이 안돼서 제 아이들의 생계가 막연한 상태였어요. 여동생 부부도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인데 누군가가 생활비를 대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형편이죠. 저 혼자 마음 편하다고 절에 앉아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승복을 벗은 그는 현재 건축일을 하면서 시를 쓰고 있다. 소박한 작업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도의 여파로 일정한 거처 없이 여기저기 떠돌며 시를 쓴다.
“시를 쓰고 싶을 때마다 주머니에서 스프링 노트를 꺼내 이것저것 적어봐요. 그렇게 습작한 분량이 스프링 노트로 7백 권 정도 되지요.”
그는 앞으로 3년 동안 열심히 시를 쓰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사업에 매진한 후 다시 승려의 신분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남들은 힘들 텐데 승려의 길을 어떻게 가냐고 하지만 저는 참선을 통해 ‘마음을 비우는 일’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껴요. 마음을 비우는 것은 곧 영원한 기다림마저 사랑한다는 뜻이니까요.”

여성동아 2003년 9월 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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