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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기획특집|한여름 밤 맥주 즐기기

탁구 스타 홍차옥씨 가족의 맥주공장 체험

“식혜 만드는 엿기름으로 맥주 만든다는 사실 처음 알았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장옥경

2003. 08. 06

한여름밤의 무더위를 씻기 위해 남편과 함께 차가운 맥주잔을 기울이던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홍차옥씨의 머릿속에 문득 ‘맥주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궁금한 것은 빨리 풀어야 하는 법. 다음날 오전, 홍씨는 아이들 현장학습에도 좋을 것 같아 가족과 함께 맥주공장으로 체험여행을 떠났다.

탁구 스타 홍차옥씨 가족의 맥주공장 체험

맥주는 우리가 먹는 보리쌀이 아닌 2줄보리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안 홍씨 부부가 맥주공정과정을 따라가며 보고 있다.


90년 북경 아시안게임 금메달, 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 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동메달 등 굵직한 대회를 석권하며 현정화와 함께 한국 여자탁구를 이끌었던 탁구 스타 홍차옥씨(33).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묻자 “세 아이와 함께 북적거리며 사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함박웃음부터 지었다.
“의규가 여덟살, 세림이가 여섯살, 세희가 다섯살이에요. 세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대부분 ‘아이가 셋이나 돼요?’ 하며 눈이 동그래져요. 그러곤 ‘어휴∼, 둘도 아니고 셋을, 그것도 연년생으로 어떻게 키웠어요?’ 하며 동정 어린 눈빛을 보내죠(웃음).”
홍씨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 아이를 키우는 게 그렇게 힘들거나 귀찮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해보았다”고 하자 남편 양종옥씨(39)가 한마디 거든다.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오지만 아내는 ‘아이들에게 아직은 엄마의 손이 필요할 때’라며 우선 순위를 엄마 역할에 두고 있어요. 요즘 여자답지 않아요.”
양씨는 처음엔 사회생활도 때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해 지난해 성신여대와 국민대에서 아내에게 강의를 요청해오자 적극적으로 아내의 등을 떠밀기도 했다고 한다. 강의하는 날은 자신이 일찍 들어와 아이들을 돌볼 테니 걱정말고 나가라고 했다는 것.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강의를 나갔지만 오후 6시에 수업이 끝나 집에 돌아오면 저녁 8시가 넘었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만 커졌다는 홍씨는 결국 올해엔 성신여대 강의 외에 다른 모든 강의를 접었다고 한다.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줘요. 주중엔 회사 일로 바빠 육아나 가사를 거들 틈이 없지만 주말엔 장도 보고, 청소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목욕도 시키는 등 전적으로 거들어주죠.”
유도 국가대표 주장만 8년을 한 남편 양씨는 93년 은퇴 후 쌍용양회에서 근무를 하다, 99년부터 한 보험회사에서 컨설팅 라이프플래너로 일하고 있다. 그의 연봉은 2억원이 넘는데, 이는 아침 7시15분이면 어김없이 삼성동의 사무실에 출근해 있을 정도로 근면함과 성실함의 결과다. 양씨는 많이 버는 만큼 나눔의 삶에도 관심이 많아, 후배들을 위한 장학회 두세 곳을 후원하고 있다.
세계맥주박물관에 들르면 맥주에 대한 많은 상식 알 수 있어
탁구 스타 홍차옥씨 가족의 맥주공장 체험

급식 당번이 되면 아들 학교에 가서 밥도 퍼주고 청소도 한다는 홍차옥씨가 맥주공장 견학을 계획한 것은 올 여름의 무더위 때문이다. 한밤중에도 더위가 꺾이지 않는 열대야에 종종 남편과 함께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곤 했는데, 즐겨 마시는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현장학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남편은 물론 세 아이와 함께 경기도 이천에 있는 OB맥주공장을 찾았다.
“아빠, 저게 보리야, 밀이야?”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세계맥주박물관.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전시된 식물을 보며 의규(8)가 질문을 했다. 양씨는 “글쎄? 아빠 생각엔 밀 같은데…. 그런데 맥주는 보리로 만드는 거 아닌가?” 하며 아내에게 물었다. 그러자 안내를 하는 이곳 직원이 “맞아요. 그건 밀이에요. 맥주는 주로 보리에서 나온 맥아로 만들지만, 밀로 만든 밀맥주도 있어요” 하며 설명을 해주었다.
보리는 씨알의 배열이 6줄로 되어 있는 보리와 씨알이 2줄로 배열되는 보리가 있는데 맥아의 원료가 되는 것은 2줄 보리라는 설명을 들으며 홍씨가 “두 줄” 하며 아이들을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어 보였다. 흔히 2줄 보리는 식혜를 만드는 엿기름으로 사용된다.

호기심이 많은 의규가 다음으로 뛰어간 곳은 효모 첨가기. 저장용기의 효모를 공기압력으로 발효시켜 침전 탱크에 첨가해주는 기계로 68년부터 85년까지 공장에서 사용하던 것을 전시해놓은 것이다. 쪼르르 다가간 세 아이는 용기를 ‘통통’ 두드려보기도 하고, 밸브를 돌려보기도 하며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탐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박물관 중앙으로 들어서니 세계 맥주 발달사가 코너 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홍씨의 관심을 끈 것은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맥주컵 모양을 본떠 만든 재떨이와 잔받침. 전시품들은 판매하지 않지만 인테리어용품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하면 좋겠다며 살림하는 주부의 안목으로 유심히 살폈다.
양씨의 관심을 끈 것은 독일, 아일랜드, 덴마크 등 서유럽의 맥주들. 맥주의 본고장 하면 서유럽, 그중에서도 독일을 떠올리게 된다. 양씨는 애주가는 아니지만 레벤브로이, 홀스텐 같은 제품이 독일 맥주라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독일이 세계 맥주역사를 주도해왔다고 하지만 유럽 정통 맥주의 대명사는 덴마크야. 전세계 1백30여개국에서 칼스버그 맥주를 즐겨 마시지.”
홍씨가 “언제 맥주박사가 되었지?” 하며 남편의 해박함에 감탄하자 양씨는 어깨가 으쓱해진 듯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히딩크 감독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네덜란드산 하이네켄 맥주의 국내 소비량이 늘었다”고 덧붙였다.
공장견학에 들어가기 전에 안내하는 직원이 “맥주는 맥아, 호프, 효모, 물, 이 네 가지를 원료로 하여 만들어진다”고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보리의 싹을 틔우는 것이 맥아, 맥주의 쌉쌀한 맛을 내는 것이 호프, 발효를 시키는 물질이 효모인 셈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호프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생김새와 모양을 살펴보기로 했다. 연년생인 세림이와 세희가 서로 먼저 보겠다고 하더니 막상 홍씨가 호프를 올려놓은 손바닥을 아이들 코에 가까이 대자 “으아, 냄새” 하며 코부터 움켜쥐었다. 호프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때문이다.
탁구 스타 홍차옥씨 가족의 맥주공장 체험

맥주공정의 첫 단계인 담금실로 들어가니 후끈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잘게 부순 맥아에 전분 등 부원료를 넣고 물과 혼합하여 전분질을 당분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여기서는 맥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맥아 속의 효소가 작용하기 쉽도록 실내온도를 40℃ 정도에 맞춰놓았기에 ‘덥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이들은 거대한 담금솥에 정신이 팔려 그곳으로 쪼르르 달음질을 쳤다. 손잡이를 밀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나 고개를 넣어 보기도 하고, 의규는 “아아…” 소리도 질러 보았다.
담금솥에서 당주가 만들어지는 시간은 약 6시간. 그 이후엔 냉각기를 이용하여 맥즙을 식힌다. 이유는 효모를 투여하기 위해선 온도를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뜨거우면 효모가 살 수 없기에 100℃의 온도를 10℃까지 내린다고 한다.
냉각공정으로 들어서니 담금실에서와는 판이하게 온도가 너무 낮아 팔에 소름이 돋았다. 약 1시간 정도 이곳에서 냉각을 시킨 후 효모를 투입하고 발효공정에 들어가는데 발효공정은 전발효와 후발효 두 과정으로 나뉜다고 한다.
“효모에 의해서 맥즙 속의 당 성분이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바뀌는 과정이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탁구 스타 홍차옥씨 가족의 맥주공장 체험

당주를 만드는 담금솥 안을 들여다 보는 의규, 세림, 세희 남매.


안내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전발효실로 들어갔다. 깜깜한 어둠을 헤치며 들어가니 어마어마하게 큰 통이 보였다. 전발효 탱크의 높이는 15m. 겉은 우레탄으로 싸여 흰색으로 보이지만, 속은 스테인레스로 되어 있다고 한다.
맥즙은 전발효 탱크에서 1주일 정도 시간을 보낸 다음 후발효 탱크로 옮겨진다. 이곳에서 약 25일간 머물며 저온숙성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한마디로 미성숙 맥주가 성숙해지는 곳인가요?”
양씨의 말에 좌중엔 웃음이 터졌다.
양씨 표현을 빌리자면 여과실은 성숙해져서 철이 든 맥주가 옮겨오는 곳. 여과실로 들어오니 탱크 사이로 파이프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맥주를 상품화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거치는 곳이다.
“특수 여과장치를 이용해서 맥주 특유의 맑고 깨끗한 황금빛이 되도록 여과하는 공정입니다.”
안내직원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 맥주가 병으로 옮겨지기까지 약 1∼3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는 “특별히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시중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막 여과된 맥주 맛을 보여드리겠다”며 피처에 맥주를 담아 가져왔다. 몇 모금 들이키며 시음을 해본 홍씨 부부는 입을 모아 맥주 맛이 아주 부드럽다고 평했다.
“포장하기 직전의 맥주라 효모가 살아있는 듯 싱싱하고 아주 순한 느낌입니다.”
안내직원은 맥주 애호가들이 공장견학을 오면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많이 남긴다며 재미있는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맥주를 한참 마시다가 갑자기 바닥에 누워 알라신에게 절을 하는 이슬람교도가 있는가 하면, 술에 취해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키스를 주고받은 대학생 연인들도 있었어요. 도자기 박람회에서 운영하는 공장견학 셔틀버스를 반복해 타고와 하루 3∼4번씩 공짜 술을 마시러온 사람도 있고, 대형 술병을 가져와 무료 맥주를 담아달라고 조르는 대학생들도 있었죠.”
탁구 스타 홍차옥씨 가족의 맥주공장 체험

맥주는 효모의 발효에 의해 시원한 거품과 맛이 결정된다. 세계맥주박물관과 효모의 발효과정을 둘러보고 있는 홍씨 부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발길이 멈춘 곳은 제품생산공정. 압력탱크 안에 있는 맥주를 병 또는 캔에 담고 포장하여 제품으로 만드는 공정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자동화 시스템으로 맥주병이 운반되는 것을 보며 의규는 입이 딱 벌어졌다. 움직이는 맥주병을 손으로 잡아보고 싶어 기계 근처로 다가가려는 것을 엄마가 불러세웠다. 아빠 품에 안긴 세희도 오빠를 흉내내 팔을 뻗다가 엄마에게 “떼찌!” 야단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가족이 들른 곳은 무료 시음장. 호프집 분위기로 꾸며진 이곳은 방금 태어난 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곳이다. 아이들과 씨름하는 한편으로는 머릿속에 공정 내용을 입력하느라 분주한 홍씨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휴!’ 숨을 내쉬었다.
그런 홍씨를 보며 양씨가 “싱싱한 맥주 한 모금 마셔보라”며 잔을 건넸다. 평소 밖에선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는 홍씨지만 그래도 여기 오니 몇 모금은 넘어간다며 활짝 웃었다. 아이들이 함께 맥주를 마실 수 없어 아쉬웠지만, 여름철을 대표하는 음료인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확실히 배울 수 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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