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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고통을 딛고서

‘여고시절’ 가수 이수미가 이제야 털어놓는 자해사건의 진실 & 그간의 마음고생

“세상과 담 쌓고 살면서도 가끔은 ‘나 여기 살아있다’고 외치고 싶었어요”

■ 글·조득진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3.07.31 16:38:00

70년대 초 김추자, 정미조와 함께 트로이카 시대를 연 ‘여고시절’의 가수 이수미가 활동을 재개했다.
인기 절정의 순간, 이른바 ‘대천해수욕장 자해사건’과 ‘대마초 사건’으로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던 그는 두 사건의 내막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여고시절’ 가수 이수미가 이제야 털어놓는 자해사건의 진실 & 그간의 마음고생

가수 이수미(51)가 최근 ‘또 다른 세상에서’라는 타이틀로 신곡 4곡을 담은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7년 동안 공을 들였다는 ‘연민’ ‘사랑을 가득 채워줘’, 가스펠풍의 ‘집으로’ 등 신곡 4곡 외에 그의 대표적 히트곡인 ‘여고시절’ ‘내 곁에 있어주’ 등도 담았다. 70년대 이후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으니 20년 만의 앨범 발표인 셈.
“80년대 초반까지 몇번 도전을 했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말았죠.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최희준 선배의 콘서트에 출연해 정훈희씨와 함께 무대에 섰는데, 그땐 정말 눈물이 나더군요. 무대에 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너무 행복했어요.”
그는 지난 69년 목포 KBS ‘노래자랑’을 통해 데뷔했다. 당시 목포여고 3학년에 재학중이던 그는 언니들 옷을 빌려 입고 가발을 뒤집어 쓴 채 무대에 올랐다. 결과는 5주 연속 우승. 이듬해 목포 MBC가 생기면서 ‘연말 노래자랑 결산 방송’을 보러 온 한 음반사 사장의 눈에 띄어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데뷔 초 트로트 가수로 시작한 그는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72년 발표한 팝 계열 곡 ‘여고시절’은 그를 단박에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그해 연말, 신인가수상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MBC 10대 가수와 TBC 7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기며 톱스타의 자리에 오른 것. 귀여운 외모에 섹시한 목소리는 젊은 남성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김추자 정미조와 함께 여가수 트로이카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인기 정상의 달콤함은 그에게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다.

사건 커질까봐 자해라고 말한 게 화근
‘여고시절’ 가수 이수미가 이제야 털어놓는 자해사건의 진실 & 그간의 마음고생

이번에 선보인 음반은 50대를 겨냥한 내용과 음악을 담았다. 목소리가 더 깊고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현재 부천 ‘CNN 라이브’ 등에서 팬들을 만나고 있다.


한해 뒤인 73년 여름, 각 언론 지면엔 ‘가수 이수미, 대천해수욕장 면도칼 자해사건’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많은 사람을 경악케 했다. 연예활동에 염증을 느낀 그가 처지를 비관, 면도칼로 자신의 배를 자해했다는 끔찍한 내용이었다.
“지방공연이 끝나고 이틀의 휴가를 얻어 동료 가수들과 대천해수욕장에서 쉬고 있었어요. 저녁 무렵 혼자 해변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괴한이 나타나 순식간에 제 배를 찔렀어요. 당시 경황도 없고, 또 저를 해칠 만한 사람도 생각나지 않아 그냥 ‘내가 했노라’ 하고 거짓 자백을 했죠. 동료 가수들이 밤샘 조사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문제가 너무 커질까 봐 두려웠거든요.”
그러나 ‘스스로 자해를 한 것’으로 종결된 이 사건은 ‘자해가 아닌 모 방송국의 유명 DJ가 저지른 짓’이라는 소문으로 바뀌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문제가 커지자 가수협회에서는 그를 제명했다. 생사를 넘나들 만큼 큰 상처, 게다가 여자로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피해자였지만 자해범으로 내몰린 채 사건은 종결됐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았다. 1년여의 제재가 풀리고 노래 ‘내 곁에 있어주’로 화려하게 재기했지만 76년 ‘연예인 대마초 사건’에 다시 연루돼 7년 동안 활동이 금지된 것이다.
“제 생일이었죠. 집으로 놀러온 동료 연예인들이 대마초를 꺼내 피우는 거예요. 다들 그러니 뭐라 할 수도 없고…. 대마초를 피운 연예인들과 가깝게 지내고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내려진 결정이었어요. 너무 억울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죠. 그 덕분에 담배도 배우고….”

‘여고시절’ 가수 이수미가 이제야 털어놓는 자해사건의 진실 & 그간의 마음고생

결국 낮에는 한 화장품 회사의 홍보사원으로 백화점에서 근무를 하고, 해가 지면 밤무대에 올라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들로 인해 그런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딜 만큼 힘들었지만 가족만을 생각하며 버텼다.
이후 끊임없이 재기를 꿈꾸었지만 5공 시절 사회정화추진위원회의 징계로 다시 눈물을 삼키는 등 번번이 좌절됐다. 결국 그는 스스로 외부와 단절하고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자 온갖 소문이 나돌기도 했어요. 84년인가, 오랜만에 TV 생방송에 출연했는데 감정이 북받쳐 5분 동안 눈물만 흘리며 입도 벙긋 못했어요. 그러자 ‘이수미가 목 수술을 해서 노래를 전혀 못한다’ ‘실어증에 걸렸다’는 소문이 난무했죠. 속상한 걸로 말하면 책 한권을 써도 모자라요.”
어느날은 오랜만에 친한 동료 가수를 만났더니 “어머, 청량리 (정신)병원에 있다고 하더니 어떻게 나왔니? 너 돕는다고 해서 성금까지 모아서 냈는데…” 하는 소리를 하더라고.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친한 가수 하나가 그를 돕는다며 성금을 모으고 다녔다는 것이다.
“한번 짓밟히기 시작하자 끝도 없더군요.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황폐화될 수 있나 하는 두려움도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 만나기도 싫고 정말 소문처럼 실어증이라도 걸리겠더군요. 신앙의 힘이 아니었으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그에게 새로운 삶이 다가온 것은 지난 97년이었다. 재기의 욕심을 접고 작은 교회에 나가면서 신앙생활에 전념하던 중 지금의 남편 배제동씨(51)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다. 후배의 소개로 만난 배씨를 그는 ‘천사표 남편’이라 부른다.

이젠 ‘비운의 가수’ 타이틀 벗고 싶어
“신앙생활을 하며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때 지금의 수양딸인 정은이를 만났어요. 아이가 한참을 망설이다 제게 ‘엄마’라고 불렀을 때의 기쁨을 잊지 못할 거예요. 그 아이에게 제대로 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었고, 저 또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남편과 전처 사이에 낳은 딸 이름은 정아. 마치 자매처럼 돌림자가 같은 두 아이와 부부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프러포즈는 제가 먼저 했어요. ‘남은 인생 허비하지 말고 나랑 합쳐 아이들을 자매로 만들고 평생 봉사하며 살자’고 꼬셨죠, 하하. 남편이 얼마나 친절하고 자상한지 요즘도 제가 먼 길을 가면 반드시 차로 데려다주곤 한다니까요.”

‘여고시절’ 가수 이수미가 이제야 털어놓는 자해사건의 진실 & 그간의 마음고생

‘미움’을 삶의 끈으로 여기며 살았던 그. 그러나 모든 것을 용서하고 나니 진정한 자기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젠 ‘봉사하는 가수’로 살아가고 싶다고.


의료기 사업을 하는 남편은 이날도 인터뷰 장소까지 아내를 데려다주고 일을 보러 갔다.
“생활이 안정되고, 마음이 정리되니 조금씩 마음 한 구석에서 노래에 대한 열망이 솟더군요.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조관우가 불러 히트를 쳤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내 노래는 누가 안 불러주나 싶었죠. 그러던 차에 SBS 시트콤 ‘여고시절’에 제 노래가 나오더군요. 얼마나 반갑던지, 웃기는 시트콤을 보면서도 눈물이 나더라니까요.”
30년 전의 노래가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재기를 해도 가능성이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마침 남편도 더 늦기 전에 다시 꿈을 찾으라며 등을 떠밀어주었다. 음반을 내고 활동을 재개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방송국에서도 그를 찾았다.
“하지만 막상 노래를 하려고 하니 목소리가 터지지 않았어요. 가슴속의 울분을 토하고 싶은데, 전성기의 스포트라이트를 다시 받고 싶은데…. 하지만 그런 조급한 마음이 목소리를 막았던 거죠. 그걸 깨달은 후 기도를 했어요. ‘한번만 노래를 하게 해달라. 나 살아있다, 나 여기 있다고 말할 수 있게 한번만 노래하게 해달라’며 며칠 밤을 울었어요.”
그는 아직 마음속에 있는 ‘미움의 불’을 다 끄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을 힘겹게 했던 사람들과 시대에 대한 증오가 지나쳐 자다가 갑자기 발이 꼬이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베갯잇이 다 젖어 있곤 했다고. 때로 치미는 분노에 이것저것 내던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힘들어지는 자신을 보았다고 한다.
“요즘은 많이 편해졌어요. 용서했다기보다 미움 자체가 없어진 것 같아요. 예전엔 세상이 싫어 입을 꼭 다물고 있었는데, 요즘엔 수다떨다 보면 옛날 이야기도 많이 하고…. 다 우리 가족들 덕분이죠.”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과거에 대해 속 시원히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인지 몰랐다는 그는 남은 인생을 노래로 봉사하며 살 계획이라고 한다. 숱한 시련을 견딘 그의 노래에는 더 깊은 맛이 배어있다.

여성동아 2003년 8월 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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