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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 동거 그린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실제 주인공 김유리

“세상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살고 싶지 않았어요”

■ 글·김정미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7.09 17:14:00

인터넷 소설을 TV 드라마로 각색,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옥탑방 고양이’.
최근 혼전동거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 드라마 내용이 실화로 알려지면서 또다른 화제가 되고 있다. 2001년 자신의 혼전동거 사실을 인터넷 소설로 연재한 뒤 이를 소설로 출간하고, 동거 4년 만인 지난 3월 결혼식을 올린 김유리씨가 그 주인공. ‘결혼, 살아보고 하자’며 당당하게 주장하는 옥탑방 고양이의 ‘쿨’한 사랑 이야기.
혼전 동거 그린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실제 주인공 김유리

동거 4년만인 지난 3월 결혼식을 올린 김유리·안동열 부부.


혼전동거 이야기를 경쾌한 터치로 그리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두 청춘남녀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동거생활을 시작하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내용의 이 드라마는 사실 지난 2001년 인터넷 사이트 ‘마이클럽’에 연재돼 인기를 모았던 인터넷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선비 같은 분위기에 엽기적인 행동을 일삼는 ‘야옹이’와 터프하면서도 슬픔을 참지 못하는 울보 ‘주인님.’ 신세대들만의 유쾌한 언어코드로 혼전동거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고 코믹하게 풀어낸 이 인터넷 소설은 최근 실화로 밝혀져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옥탑방에 살면서 자신의 혼전동거 이야기를 ‘옥탑방 고양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연재하기 시작, 최근 소설로 출간한 김유리씨(27)가 바로 그 주인공. 물론 드라마에선 ‘혼전동거’와 ‘옥탑방’이라는 원작의 모티프만 빌려왔을 뿐 등장인물은 모두 각색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혼전동거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옥탑방 고양이’의 주인공 김유리씨는 자신의 혼전동거에 대해 사회적 통념을 적용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서로 결혼을 약속할 만큼 사랑하는 사이라면, 먼저 살아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지, 왜 그게 잘못된 것이냐고 되묻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기도 할 터.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부산으로 김유리씨를 만나러 가는 길. 사실 혼전동거에 대한 이야기보다 소설의 배경이 된 ‘옥탑방’과 둘만의 달콤한 신혼생활이 더 궁금했다. 온갖 재미난 사건사고(?)가 뒤얽혀 있는 옥탑방에 대한 갖가지 상념들. 하지만 동아대학교 근처에 있는 그녀의 보금자리는 옥탑방도, 반지하 셋방도 아닌 반듯한 2층 독채였다.
예상을 뒤엎은 공간에 “아니? 옥탑방에서 탈출하신 건가요?” 하고 묻자 “당연하지예. 명색이 신혼부부인데… 사실 옥탑방에 사는 게 마음에 쓰였는지 어른들이 나서서 구해준 집입니더.”
소설 속 옥탑방의 환상에서 깨어나느라 잠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활자 너머로 김씨의 자잘한 생활까지도 요리조리 훔쳐보며 꿰찬 덕에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음료수 잔마저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결혼 후 크게 달라진 건 업심더. 5평짜리 옥탑방에서 15평짜리 2층집으로 이사 왔다는 것 외에는…. 아! 참 이젠 부모님들이 어엿한 사위로, 며느리로 인정하시는 것도 있네예.”

혼전 동거 그린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실제 주인공 김유리

‘옥탑방 고양이’의 주인공인 정다빈과 김래원의 실제 모델이 바로 김유리 안동열 부부다.


동거 4년 만인 지난 3월, 결혼에 골인한 김유리씨.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시절 문학동아리에서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희곡에 남다른 재주를 보였을 만큼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몇 시간 동안 책만 들여다보는 강의실 인생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친구들마저 ‘니가 깡패가?(땡땡이 치는 학생들을 일컫어…) 와, 학교를 안 오고 난리고’ 하며 면박주기 일쑤. 공부는 고사하고, 파우더와 트윈케이크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부지런히 화장품 사 모으는 데만 열중했는가 하면, 귀고리를 한꺼번에 여섯개나 달 수 있을 정도로 귀에 구멍을 뚫는 등, 그야말로 ‘불량대학생’의 진수를 보여줬다.
결국 대학 3학년을 끝으로 그는 영영 학교와 이별을 고했다. 그마나 그를 지탱해준 유일한 끈이라면 문학동아리 시절부터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든 지금의 남편 안동열씨(29). 서로 착한 심성에 끌리다가 결국 사랑이 불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동거를 감행한 것은 지난 99년. 소설가로 성공해보겠다는 그의 꿈이 단초가 되었다. 그리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태어나면서부터 스무살이 넘도록 ‘내 방’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나만의 공간’에 대한 갈증 또한 커져만 갔다. 그렇다고 학교까지 그만둔 백수 주제에 독립한답시고 부모님께 손을 내밀지도 못할 처지. 일단 경제적인 독립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 두달 만에 1백만원을 손에 넣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성공한 소설가로서의 인생’을 담보로 당당히 부모님으로부터 허락을 얻어내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예기치 못한 상황이 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을 구하자마자 남편 안씨가 동거를 제안해온 것. “처음엔 정말 황당하데예. 근데 3일을 고민해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한번 살아보고 결혼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대예. 결혼한 뒤 후회하거나 이혼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잖아예.”
처음 시작은 햇볕도 들지 않는, 보증금 1백만원에 월세 15만원의 반지하방. 그러나 3개월 만에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자 보증금을 겨우 건져 다시 월세 10만원짜리 옥탑방으로 이사했다. 드디어 햇볕을 보게 되는구나 싶어 잔뜩 기대했는데 웬걸, 전자레인지가 따로 필요없을 만큼 사람을 푹푹 삶아댔다.
살림살이라 해봐야 숟가락 2개, 밥그릇 2개가 전부. 월 생활비는 단돈 5만원. 겨울에도 냉수목욕으로 버텨야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PC방, 호프집 등을 전전하면서부터 가사분담은 철저히 반반씩 나눴다. 집에 있을 땐 설거지는커녕 빨래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는데 현실은 냉정했다. 통조림 참치와 김치만으로도 끼니를 때울 수 있다면 다행한 일. 어깨가 빠지는 줄도 모르고 빨래하다 응급실 신세까지 지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알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다투고 화해하고, 또 다투고 화해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것. 생활고는 결코 문제가 아니었다.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삶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시간들이었다. 부모님께 기대지 않고 나 스스로 난관을 극복하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당시 두 사람의 동거 사실은 부모님에겐 절대 비밀. 물론 오래 가지 못했다. 옥탑방으로 이사 오던 날, 친구의 말 실수로 들통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동네 부끄럽다며 ‘머리끄덩이’를 잡고 금족령을 내릴 만큼 노발대발한 부모님. 하지만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적어도 ‘저집 딸내미, 집 나가서 머스마하고 살림차렸단다’ 하는 비웃음 하나 때문에 이 값진 인생을 ‘한때의 방황’으로 저당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철 없이 저지른 불장난이 아니었죠. 그만큼 서로 믿음도 확고했고요. 우리 사회에서 더구나 여자가 자신의 혼전동거 사실을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인터넷 공간을 빌려서라도 요즘 젊은 세대들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혼전 동거 그린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실제 주인공 김유리

김유리씨는 극중의 정다빈처럼 유쾌하면서도 복잡미묘한 감정의 촉수를 지니고 있다.


2001년 당시, 인터넷 소설 형식을 빌려 글을 올릴 때만 해도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김유리씨. 그만큼 혼전동거에 대한 요즘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은 분명 기성세대와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서 동거를 금기시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거가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더. 일단 법적 구속력이 없어 책임이 따르지 않고, 또 연애와 달리 동거는 남녀간의 성관계가 있음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여자의 순결이 100% 의심받기 때문이지예” 하면서 연애를 해도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상처는 남게 마련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비단 동거에서만 문제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혼란스럽다고 신세대다운 솔직함을 내비친다.
그가 말하는 성공적인 동거의 가장 큰 원칙은 바로 ‘동거는 동거일 뿐이지 결혼이 아니다’는 사실이다. 결코 서로 예속하지 않되 적어도 함께 생활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집안일에는 결코 패권싸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동거는 절대적으로 평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집안일은 무조건 반반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게 그의 제2의 원칙. 마지막으로 법적인 장치는 없지만 어쨌든 준가정의 형태이므로 ‘주변 사람들에 대해 공공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김씨가 들려주는 혼전동거의 절대적인 제3원칙이다.
소설 속에서 만난 그는 참으로 유쾌하고 명쾌하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그는? 생각대로 유쾌하고 명쾌하면서도 매우 복잡미묘한 감정의 촉수를 지닌 글쟁이다. 정식으로 등단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인터넷 소설로 이렇게 유명해졌으니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정색을 한다. 판권문제로 돈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다는 것. 그리고 작가로서의 성공 역시 “아직은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한다.
최근 인터넷 소설이 영화로든, 드라마로든 대박 신드롬을 일으키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정작 김씨는 ‘현실과 타협한 비겁한 글쟁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제가 쓴 소설은 정통문학도, 그렇다고 희곡도 아닙니더. 한마디로 어정쩡하지예. 하지만 지금의 제 나이에, 그리고 제가 가진 현재 능력으로 쓸 수 있는 최선의 글을 썼다고 자신합니다.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서도 현재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땐 당연히 펜을 잡지 않아야 하겠지만 말이죠….”
동거를 시작했을 때도 그러했지만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원칙을 바르게 세우고 있는 김유리씨.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아버지다. 평생 파출소장으로 지내셨지만, 단 한순간도 현실에 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월급날이면 꼭 당신이 읽을 책 열권과 함께 어린 딸에게 동화책을 한아름 안겨주는 기쁨을 알던 분이다.
아버지의 응원 덕분인지 요즘엔 죽기보다 하기 싫었던 공부에 대한 열정이 불길처럼 솟아오른다고 말하는 김유리씨. 지난 5월, ‘옥탑방 고양이’ 연장전을 끝낸 그는 요즘 두문불출한 채 공부 삼매경에 푹 빠져 있다. 언젠가 내공으로 단단히 무장된 김. 유. 리. 이름 석자를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그의 성공을 빌어본다.

여성동아 2003년 7월 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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