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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네팔 여행하고 돌아와 첫 산문집 펴낸 작가 전경린

“자신에게 찾아온 근심, 걱정, 고통을 어느 순간 사라지는 날파리처럼 생각해 보세요”

■ 기획·최미선 기자 ■ 글·박윤희 ■ 사진·최문갑 기자

입력 2003.07.09 15:49:00

등단 9년 만에 첫 산문집을 펴낸 작가 전경린.
‘연애소설 잘 쓰는 작가’, ‘이사 잘 다니는 작가’로 꼽히는 그가 한달간의 네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여행 에세이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를 펴낸 것. 이제 ‘유목민’이 아닌 ‘정착민’으로 살겠다고 선언한 그가 내면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리는 삶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
홀로 네팔 여행하고 돌아와 첫 산문집 펴낸 작가 전경린

작가 전경린씨(41)는 최근 여행 에세이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와 소설집 ‘물의 정거장’을 나란히 펴냈다.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는 한달 남짓한 네팔 여행의 흔적을 담은 그의 첫 산문집. 인간이 꿈꾸는 최고의 여행은 ‘실종’이라고 했던가. 다행히 그는 최고의 여행을 유보한 채 우리 곁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네팔은 일교차가 심해서 밤이 되면 굉장히 추운데도 난방을 전혀 하지 않아요. 다른 여행자들은 오리털로 된 슬리핑백을 준비해 괜찮았는데 저는 무작정 떠난 여행이어서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를 견디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아무리 봐도 사십대로는 보이지 않는 여린 얼굴에 섬세한 손가락. 게다가 아이 둘 가진 엄마치고는 ‘생산’의 흔적을 도저히 엿볼 수 없을 만큼 몸을 이루는 선이 고왔다. 그의 초현실적인 문체가 독자의 눈을 찌를 듯이 날카롭고 아름다운 것처럼 경상도 억양이 살짝 들어간 그의 음색과 ‘구두약처럼 검은’ 눈동자가 뿜어내는 서늘한 광채도 예사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네팔의 냉기 때문에 아직도 몸이 안 좋다”며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대목에서 사십대 초반인 그의 나이가 가까스로 읽혀졌다.
사십대 중년여성이 한달 동안 집을 비우면 부엌 씽크대에는 켜켜이 먼지가 내려앉을 것이고 냉장고 안의 당근이며 파 따위의 야채는 서서히 물러지고 시큼해져 방치된 생활의 냄새를 지독하게 피워 올릴 것이다. 아무리 작가라고는 하지만 사십대 주부가 자신의 부엌을 버리고 혈혈단신 남의 나라를 한달 동안 쏘다니다니…. 그것은 용기라기보다는 일종의 ‘도발’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좀 지친 상태였어요. 사랑이 절대 계산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생의 해답도 논리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쉬면서 뭔가 느끼고 싶었고 제 인생의 한 지점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었죠.”

‘삶에서 단념할 것은 무엇인가’를 화두삼아 떠난 네팔여행
아마 가슴속 ‘냉기’가 그를 ‘가난’과 ‘계급’과 ‘히말라야’가 존재하는 네팔로 떠밀었던 모양이다. 그는 카트만두를 거쳐 룸비니, 포카라 등을 떠돌면서 ‘내가 삶에서 단념할 것은 무엇인가’ ‘절대적으로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방랑자의 화두로 삼았다.
“네팔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살아 있는 여신의 집이라고 하는 달바르 스퀘어의 쿠마리 사원이었어요. 현재 쿠마리 여신은 다섯살인데 계급과 순수혈통, 피부와 눈과 귀와 음성 등을 엄밀하게 따져서 선택해요. 쿠마리가 되는 마지막 관문은 50마리의 물소 머리를 잘라 넣은 어두운 방에서 홀로 지새게 하는 것인데요. 네다섯살 아이가 울지 않고 튀어나와 버리지 않고 혼자 피비린내 가득한 밤을 보내야 쿠마리 성녀가 돼요.”
그는 사원에 유폐된 어린 쿠마리 성녀의 얼굴에서 삶이 개인에게 가하는 야만, 혹은 자신의 숙명 같은 것을 읽은 모양이다.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에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살아지지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캄캄한 내부로부터 삶 불능이라는 붉은 경고서를 받았다. (중략) 가끔 삶이 가혹해질 때면 성녀 쿠마리의 방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고통을 뱃속으로 삼키는 침묵이 중요하다. 곰으로부터 인간이 될 때까지, 인간으로부터 신에 이를 때까지 지그시 견디는 것이다. 슬픔이 50마리 물소 머리를 끌어안은 것같이 무섭고 깊은 것이라 해도…….’

홀로 네팔 여행하고 돌아와 첫 산문집 펴낸 작가 전경린

인터뷰 도중 우연히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전경린 씨.


그의 문체를 두고 한 문학평론가는 ‘오감을 다 드러내는 문체’라고 평하는데 그만큼 그는 예민한 사람이다. 오죽했으면 그가 찾아간 무당으로부터 “당신은 지금껏 서른번 정도 미칠 뻔한 고비를 넘겼다”는 소리까지 들었을까. 이번 여행에서 그는 모든 ‘촉수’를 죽이고, ‘나’를 죽이는 연습을 하면서 평상심을 얻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그래서 카트만두에서 서너 군데 요가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요가원에 가보긴 했는데 몸을 껌처럼 줄였다가 늘였다가….좀 무섭더라고요. 기간도 한달 이상을 다녀야 한다고 그래서 포기했는데 우연히 한국식당에서 한국 고유의 참선을 연구하는 스님과 마주쳤어요. 70세 정도 되어 보였는데 얼굴이 아주 깨끗하고 맑아서 어린애 같았어요. 스님은 저를 귀찮아하시는데 제가 명상 자세를 잡아달라고 따라 다녔죠.”
그는 스님이 기거하는 방에서 스님과 마주 앉아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는 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고 한다. 이미 수습하기에는 늦은 것 같아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물, 콧물 다 쏟아내고 났더니 스님이 “무엇이 가장 아프냐?”고 물어왔다.
“제가 성냥갑 속에 갇힌 것 같다고 했더니 스님께서 ‘성냥갑에 갇힌 자신이 누군지 아시는가? 나는 성냥갑에 갇힌 내가 누군지 몰라서 늘 고놈을 바라본다네’ 하시더군요. 순간 ‘갇힌 것이 포박의 고통이 아니라, 응시가 없음이 고통이었구나’ 싶은 깨달음이 왔어요.”
이날 이후로 그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어떤 변화를 경험했고 고요함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에게 찾아온 근심, 걱정, 고통을 너무 심각하게 ‘내 것’이라고 소유하지 말고 여름날 ‘날파리’같은 존재로 느끼라는 것. 어느 순간 날파리떼가 발광하듯 몰려들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는 이치처럼 근심, 걱정 따위도 어느 순간 ‘반전’하면서 ‘소멸’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스님이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 눈꺼풀이 삶의 뜨거운 호흡에 아교풀이 녹아 흐른 듯 달라붙어 있었나 봐요. 나와 나 사이가 한치의 틈도 없이 녹은 엿처럼 쩍 들러붙었으니 삶이 캄캄하고 두려울밖에요. 그날 스님과 헤어져 제 숙소로 돌아오는데 꽃, 나무, 하늘, 바다, 지상의 눈꺼풀이 모두 열리고 제 발 밑이 환해지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그래서일까. 이번에 새로 낸 여행 에세이집의 제목부터 삶에 대한 상당한 긍정과 자신감이 비쳐진다.
“아침에 눈뜨기 싫어도 ‘그래. 삶은 내 것이다’ 하면서 일어나고요. 아이들 밥 차려주기 싫어도 ‘아…내가 삶은 나의 것이라고 그랬는데…’ 하면서 열심히 일상에 ‘복무’하고 있어요(웃음).”
여행 후 달라진 것이 또 있다. 그는 문단에서 이사 잘 다니는 작가로 유명하다. 타고난 역마살 때문에 부모님 품을 벗어난 이후로 계속 이사를 다녔고, 그 어디에도 오래 뿌리 내리지 않았다. 유목민이 따로 없었다. 그런 못 말리는 방황에 본인 스스로 공포감을 느껴 무당을 찾아가기도 했다. 무당은 그에게 ‘떠다니지 않는다’는 부적을 써주었다. 하지만 그는 부적을 몸에 지니고도 세번이나 더 거처를 옮겼다.

“여행 전에는 생활공간을 마산에 두고 작업실을 서울에 두었는데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서울 인왕산 근처에 집을 마련하고 두 공간을 합쳤어요. 삶에서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아이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제 이사도 그만 다니려고요. 공사장 소음이 저를 괴롭혀도 ‘시끄럽다고 죽는 것 아니잖아’ 하는 생각으로 그냥 버텨요. 그런데 한편으론 이렇게 모든 촉수를 자르고 이 뭉툭함으로 뭘 쓸까, 걱정도 돼요.”
그는 사십대가 젊은 날의 모든 혼란을 종식시키는 나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삶을 무너뜨리고 얼굴을 다치며 내쫓기는 비합리적인 사랑’에 매혹되어 문단에서 ‘연애소설 가장 잘 쓴다’는 소리를 들었던 그가 이젠 ‘사랑’조차도 많은 것이 내면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그는 여행을 통해 ‘현자’라도 된 것일까.
“혼자 하는 여행… 네팔과 정사를 하고 난 기분이라고 할까요? 일, 가족문제, 인간관계 등을 지금 당장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내 마음을 평정시켜야겠다는 여유가 생겨요. 여행 한번 다녀왔다고 삶이 일순간에 장악되는 것은 아니겠죠. 삶은 내가 장악했다가 놓치고 또 장악하고 다시 놓치고의 연속인 것 같아요.”
여행을 통해 얻어진 그의 변화는 올겨울쯤에 출간될 새로운 장편소설에도 반영될 모양이다.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 장편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등의 작품에서 ‘인물’ 부각에 공을 들여왔다면 앞으로 쓰여질 소설에는 ‘삶’을 좀더 부각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꼭 까무러치기 직전에야 문장을 토해내는 것만 같은 완벽주의 소설가 전경린. 그런데 인터뷰 도중 자꾸 요리에, 아이 키우는 일에, 총체적인 삶에 자신이 없다고 웅크린다. 늘 ‘잠언’ 같은 어투로 독자들에게 햇솜 같은 위안을 전해주는 그이지만 정작 자신은 무언가로부터 계속 할큄을 당하는 ‘약자’의 모습이었다는데, 그가 새해 첫날 수첩 한 귀퉁이에 적어놓은 ‘인생의 레시피’는 작가와 독자에게 모두 요긴해 보였다.
‘삶에서 이런저런 상황이나 조건이란, 그저 요리의 재료 같은 것이다. 재료 하나가 빠졌다거나, 부실하다고 해서 요리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제발 재료 한두 가지가 없거나 부실하다고 해서 나머지 재료들이 시들어 가도록 요리를 한없이 유보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생은 지금이다.’

여성동아 2003년 7월 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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