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서쪽, 금문교 아래에 있는 골든 게이트 파크. 안개가 낀 날, 동틀 무렵에 이 공원을 바라보면 입구의 오렌지 빛의 아치가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이 공원의 면적은 무려 1백25만여평, 서울 여의도의 면적이 86만여평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기자는 그 사실도 모르고 출발하기 전에 호텔 직원에게 “골든 게이트 파크를 둘러보려면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이 한참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모르겠다”면서 “자전거로 하이킹을 하기에는 좋은 코스”라고 딴소리를 했다. 웬 자전거? 그럼에도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놀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골든 게이트 파크에 도착하는 순간 기자는 호텔 직원이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원과 달리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기 때문이다. 입구에 개선문처럼 세워져 있는 아치는 웅장했으며 공원 주위는 온통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커다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또한 공원 어디에서도 담을 찾아볼 수 없었고, 나무들이 담장을 대신해 공원 안과 밖을 구분지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공원 규모에 결국 기자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 관광투어에 참가했다. 걸어서는 도저히 다니기가 힘들 것 같고(생각해보라! 여의도보다 더 넓은 지역을 어떻게 걸어서 다닐 수 있단 말인가) 자전거는 잘 못 타는 관계로 자전거를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이드와 함께 자동차로 공원을 둘러보니 이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담이 없는 공원은 군데군데 밖으로 빠져나가는 샛길들이 많아 뭣모르고 달리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공원 밖, 차도로 나갈 때가 많다. 그때마다 다시 차를 돌려서 공원 안으로 들어와야 했고, 그 바람에 공원 안과 밖을 수차례 들락날락해야 했다. 표지판도 별로 없고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모두 모르겠다는 투였다.
그렇게 몇 시간을 헤매고 다녔을까. 공원에 도착한 건 이른 아침이었는데 공원 안의 지리적인 위치를 어느정도 파악하기 시작한 것은 얼추 오후 2시가 넘어서였다.
여의도보다 넓은 골든 게이트 파크의 웅장한 아름다움
골든 게이트 파크는 구석구석 테마별로 잘 꾸며져 있었다. 호수는 모두 10개, 그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것이 ‘스토레이크’다. 그 호수는 특이하게도 호수 한가운데 ‘스토로베리힐’이라는 언덕이 있고 정자와 작은 폭포까지 있었다.
그 풍경은 뭐랄까, 동양적인 느낌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뭔가 색다른 기분이 들 것 같은데 정자 안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한 것이 좀 아쉬웠다. 그럼에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어떻게 호수에 이런 것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호수 안에 언덕이 있고 정자와 작은 폭포가 있다니!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분이었다. ‘스토레이크’ 근처에는 예쁘게 잘 가꿔진 드라이브 코스가 많다.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거나 자전거로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 간혹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다니는 이들도 볼 수 있었다. 한결같이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어떤 미국인은 기자를 보고 “하이!” 하고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스토레이크’에서 얼마쯤 가자 이번에는 ‘뮤직 콘코스’라는 야외음악당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가수들의 공연이 수시로 열린다고 하는데 그날도 마침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로커들이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서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광하고 있었다. 파란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푸른 하늘과 울창한 숲, 그리고 열광의 콘서트는 한마디로 압권이었다. 열정과 자유로움, 이것이 미국문화인가.
1. 예쁘게 잘 다듬어진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 이들의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진다.<br>2. 골든 게이트 파크에서 규모가 가장 큰 ‘스토레이크’ 호수. 특이하게도 한가운데 ‘스토로베리힐’이라는 언덕이 있고 정자와 작은 폭포가 있어 동양적인 느낌을 준다.<br>3. 마치 네덜란드에 온 듯 거대한 풍차가 눈길을 끄는 ‘퀸 윌힐미너’ 정원. 잔디밭에 앙증맞은 작은 꽃들이 심어져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공원 안에 자리잡고 있는 ‘뮤직 콘코스’라는 야외음악당.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 분수와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공연과 함께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무대 아래 한켠에서는 바비큐 파티가 한창이었다. 바비큐를 요리하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모두 흥에 겨워 건들건들 몸을 흔들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시원한 맥주까지 들이키며 분위기를 즐기는 그들을 보니 기자도 덩달아 어깨가 들썩여진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맥주는 물론이고 바비큐 파티를 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바비큐 그릴까지 맥주회사가 협찬을 해준 것이라고 한다.
“어느 도시를 가도 이런 공원이 없을 거예요. 골든 게이트 파크가 도심 속에 위치한 인공공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잖아요.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하고 와서 자전거도 타고 바비큐 재료와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서 잔디밭에 앉아 직접 구워 먹죠. 오늘처럼 콘서트가 열리는 날은 같이 공연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 생활의 활력과 기쁨을 불어넣어주는 소중한 공간이죠.”
아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제니 파커(36)의 말이다.
이윽고 그들을 뒤로하고 야외음악당을 벗어나자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란 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손을 잡고, 혹은 아빠의 손을 잡고 박물관을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흰색으로 지어진 건물 입구에는 지구, 바다, 우주를 주제로 한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고 과학자들의 동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자유와 열정이 느껴지는 야외음악당에서의 콘서트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 ‘뮤직 콘코스’ 야외음악당 한켠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시민들. 마치 축제가 열린 것처럼 분위기가 흥겹다.
입장료는 9달러(우리돈으로 1만8백원), 안으로 들어가니 ‘아콰리움’이란 데가 눈길을 끌었다. 그곳에서 다양한 물고기들을 볼 수 있었다. 견학온 아이들은 ‘상어관’ 앞에서 자리를 뜰 줄 모르고 “와아~ 와아~” 하고 탄성을 연발했다. 어두운 실내에서 보는 상어가 신기한 모양이다.
여기서 또 하나 볼거리가 있는데 바로 ‘피시 라운드 어바웃’이란 둥근 모양의 수족관이다. 그 수족관 한가운데에 관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특별해 보였다.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에는 이밖에도 ‘스카이 쇼’를 관람할 수 있는 천문관과 아프리카 동물들을 옮겨다 놓은 ‘아프리칸 홀’이 있는데, 이를 관람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박물관에서 나오니 어느새 저녁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서머타임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바깥은 아직도 한낮의 느낌이 강했지만 더는 공원을 둘러볼 수가 없었다. 하도 넓은지라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호텔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골든 게이트 파크를 다시 취재했다. 이틀간 연속적으로 왔기 때문일까. 첫날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원에는 전세계의 다양한 기후대에서 수집한 7천여종의 식물이 있었고, 꽃들은 모두 선명하고 화사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특히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삼나무숲은 장관이었다.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 박물관. 흰색 건물 입구에는 지구, 바다, 우주를 주제로 한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고 넓은 관내는 견학온 아이들로 항상 붐빈다.(좌)<br>공원의 잔디밭에 설치된, 거대한 에어쿠션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
공원 안의 식물원과 비슷한 분위기의 온실. 야자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좌)<br>식물원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일본정원. 규모는 매우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다.(우)
식물원 옆에는 규모가 아주 작은 일본정원이 있다. 아담한 정원이라고 해야 할까. 선명한 붉은색의 탑과 불상은 동양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고 외국 관광객들은 그 앞에서 서서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어떤 관광객은 아예 불상을 껴안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들의 눈에는 동양의 문화가 신비롭게 느껴지나 보다.
일본정원 초입에는 등나무로 장식한 목조건물의 찻집이 있다. 안은 상당히 어두웠지만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관광객들로 붐볐다. 그들은 차를 마시며 정적인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표정도 사뭇 진지해 보였다. 순간 기자는 골든 게이트 파크에 일본정원은 있는데 왜 한국정원은 없는지 의아했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우리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다음으로 간 곳은 식물원과 비슷하게 꾸며놓은 ‘온실’과 ‘퀸 윌힐미너’란 정원이다. 두 곳의 위치는 정반대 방향으로 공원의 입구와 공원의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 더구나 ‘온실’은 인터넷 정보를 통해서 사전에 알고 간 것이지만 ‘퀸 윌힐미너’는 기자가 우연찮게 발견한 장소다. 그런 까닭에 그 앞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자, 한 할머니가 다가와서는 “여기는 ‘퀸 윌힐미너’란 정원”이라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연인들.
“난 이 정원에 자주 찾아와요. 나무가 많아서 공기도 맑고 아름답기 때문이죠. 모래 언덕에 불과했던 이 골든 게이트 파크를 존 맥라렌이란 사람이 온 정성을 다해 꾸몄다고 해요. 자신의 인생을 이 공원에 바친 셈이죠. 저는 그분에게 감사해요. 다른 나라에도 아름다운 공원이 많겠지만 골든 게이트 파크는 호수 하나, 나무 한그루도 특색 있게 가꿔놓았거든요. 보세요, 얼마나 예뻐요.”
아닌 게 아니라 ‘퀸 윌힐미너’란 정원에는 거대한 풍차가 있고, 잔디밭에는 앙증맞은 작은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 안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연인들, 한폭의 그림 같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시민들은 이 골든 게이트 파크를 보존하기 위해 해마다 자발적으로 1인당 3백달러(36만원)씩 기금을 낸다고 한다. 공원의 규모가 넓어서 한때는 정부가 상업지구로 만들려고도 했지만 시민들의 결사적인 반대에 부딪혀서 지금의 아름다운 공원으로 남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 까닭일까. 꽃 하나 나무 하나에도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손길이 머문 곳, 세계 최대의 인공공원인 골든 게이트 파크는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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