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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세계의 도심 속 공원을 찾아서 ②|독일 티어가르텐

베를린 티어가르텐에서의 즐거운 산책

시민과 함께 살아 숨쉬는 도심 속의 녹색 공간

■ 글 & 사진·이지은 기자

2003. 06. 05

베를린은 ‘녹색의 메트로폴리탄’이라고 불릴 만큼 현대적인 건물과 함께 녹지조성이 잘 되어 있는 도시다. 이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숲의 공원, 티어가르텐을 현지 취재했다.

베를린 티어가르텐에서의 즐거운 산책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11시간을 날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목적지인 베를린으로 가려면 비행기를 갈아타고 40여분을 더 가야 한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게이트 앞, 탑승객을 위해 커피와 티 같은 음료를 무료로 맘껏 마실 수 있도록 한 서비스가 낯설게 다가왔다. 공짜로 먹는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에 감동하며 다시 비행기에 올랐고 드디어 베를린 티겔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취재의 목적지는 독일 베를린에서 가장 큰 공원인 티어가르텐으로 도심 속에서 공원을 어떻게 가꾸고 활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출발 전 인터넷과 책을 뒤져 찾아본 정보는 ‘티어가르텐은 16세기 프로이센 왕국의 여러 황제들과 귀족들을 위한 사냥터로 만들어졌으며 18세기 공원으로 바뀌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베를린 동물원 북쪽에서부터 브란데부르크 문에 이르는 약 4km, 폭 1km에 걸친 방대한 규모의 공원이다’라는 것이 전부. 티겔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공원 옆에 있다는 호텔로 향했다. 택시 기사가 여기서부터 티어가르텐이라고 설명해주었으나 너무 깜깜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이 많지도, 밝지도 않은 티어가르텐의 밤풍경. 요란하지 않은 고요한 그 모습이 오히려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베를린의 중심부, 전승기념탑에 오르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 공원을 실제로 가보기 위해, 호텔 직원에게 티어가르텐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그 순간 베를린에서 태어나 34년째 살고 있다는 그 직원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이곳이 바로 티어가르텐이라고 한다. 호텔을 나서니 큰 차로와 길 양쪽의 나무숲들, 나름대로 위엄 있는 빌딩들이 보인다. ‘지금 이곳이 공원이라고?’ 한국에서 본 공원을 연상한 기자는 직원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직접 찾아나서리라 마음먹었다.
호텔 문을 나서니 도로 양편으로 커다란 숲이 서로 마주보며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에 50m(나중에 자료를 확인하니 67m라고 한다)쯤 높이로 솟아 있는 황금빛 탑이 보인다. 뭔가 싶어 한국에서 가져온 가이드북을 꺼내어 확인해보았더니…. 이 탑은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Landmark)인 전승기념탑으로, 프로이센이 1864년 덴마크와의 전쟁에서, 그리고 1866년 오스트리아와, 1871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그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 자체만으로 ‘장엄’함이 느껴지지만 특히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탑의 모습을 보니 과거 제국의 영화와 업적을 자랑하는 듯 금방이라도 ‘저벅저벅’ 제국 군대의 군화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 전승기념탑을 중심으로 티어가르텐이 형성되어 있다는 가이드북의 정보에 따라 주위를 빙빙 돌며 공원의 입구를 찾아보았지만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전승기념탑 위에서 보면 공원의 모든 전경을 확인할 수 있다는 말에 일단 올라가 보기로 결심했다. 입장료는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인 5유로(한화 약 6천5백원). 가이드북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적혀 있어 “엘리베이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별로 친절해 보이지 않는 안내원은 “그런 건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걸을 수밖에. 정확히 2백85개의 계단이었다. 정말 취재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주저 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한 백인 부부는 지쳐 있는 기자를 보더니 씩 웃고 추월한다. 지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고개를 들고 오르니 그제서야 층계의 사방벽면에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써놓은 낙서가 가득한 것이 보였다. 호기심이 생겨 한국 사람들의 것은 없을까 하고 찾아보니, 역시 예외 없이 한국 사람들의 낙서도 많았다(글을 추가하고 싶은 욕망이 들었으나 기자로서의 품위(?)를 생각해 하지 않았다).
마침내 오른 정상에서 티어가르텐을 내려다보는 순간, 호텔 직원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큰길을 사이에 두고, 이 전승기념탑을 중심으로 사방에 펼쳐져 있는 울창한 숲과 숲 안에 들어 있는 도시,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공원을 이루고 있었다. 담을 사이에 두고 도시와 사람, 그리고 생활과 유리된 듯한 인공적인 한국의 공원들만 봐온 기자로서는 이렇게 직접 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도심 밀착형, 생활 밀착형’ 녹색 천국이 바로 티어가르텐이다.
베를린 티어가르텐에서의 즐거운 산책

1 티어가르텐의 중심부에 있는 전승기념탑. 정상에 오르면 티어가르텐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br>2 울창한 숲과 작은 호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티어가르텐의 특징이다. <br>3 티어가르텐을 알리는 이정표.



베를린 티어가르텐에서의 즐거운 산책

날씨가 좋으면 베를린 시민들이 나와 일광욕을 즐기는 티어가르텐의 넓은 잔디밭.


전승기념탑을 내려와 본격적으로 커다란 나무들로 둘러싸인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우리나라의 공원들과 비교해보면 훨씬 자연에 가까운 모습이다. 숲을 걷다 보이는 수선화 꽃밭, 작은 연못 그리고 연못 위의 다리는 예쁘게 꾸며놓았다기보다는 자연 그 자체의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와 화장실이 있어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돋보였다.
숲이 끝날 때쯤 되면 차가 다니는 대로가 나오고 그 길을 건너면 다시 숲이 나오고…. 숲이 커다란 도시를 안고 있는, 바로 그런 모습이다. 이곳에서 베를린 시민들은 러닝셔츠와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헤드폰을 낀 채 뛰거나 자전거를 타고, 개와 함께 산책하면서 공원의 자연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에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며 두리번거리는 기자의 모습이 낯선지 힐끔힐끔 쳐다보던 그네들…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 속의 평화로운 풍경이 아름다워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숲의 장관에 감동한 채 몇십분을 걷다가 길게 펼쳐진 멋진 아름드리 나무 숲에서 뒤돌아보니 전승기념탑이 나무에 가릴 듯 말듯 아름답게 반짝인다.(이 전승기념탑은 빔 벰더스의 작가주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왔다고 하는데, 전혀 기억이 없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봐야겠다고 결심!)

베를린 장벽의 상징, 브란데부르크 문
베를린 티어가르텐에서의 즐거운 산책

공원 곳곳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는 바로 화장실. 내부도 깨끗하다.


숲길을 계속 걷다보니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강이 보인다. 바로 베를린 중앙을 흐르는 슈프레 강이다. 한강의 반도 안되는 폭이지만 맑은 강물과 강 양쪽을 따라 전개되는 숲의 모습이 마치 풍경이 담긴 엽서 한장을 보는 듯 아름답다. 파리에 센 강이 있다고 하면 베를린에는 슈프레 강이 있다는 이곳 시민들의 자랑이 결코 허세가 아닌 듯했다.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강을 따라 서서히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유람선은 보통 4월 중반부터 9월까지만 운행한다는데, 강에 놓인 수많은 다리와 운하를 지나 베를린의 아름다운 풍경을 왕복하며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빠듯한 일정으로 유람선 타기를 포기한 채 다시 강을 따라 천천히 티어가르텐을 걸었다. 도시 전체를 환경과 자연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작은 나무 하나 돌 하나에 이르기까지 정성스럽게 가꾸고, 세계 1차,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수없이 파괴당하면서도 파리보다 많은 숲과 베니스보다 많은 아름다운 다리를 건설했다는 독일 사람들에게 새삼 경의를 표한다. 서울에서도 7월1일부터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된다는데, 아무쪼록 도시의 환경과 생태를 잘 고려하여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숲길을 돌아 3시간 넘게 걷다보니 눈앞에 베를린의 또 하나의 명승지라는 브란데부르크 문이 보인다. 1791년 칼 고타드 랭하우스가 만든 이곳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프로필라이아를 모방해 문 위에 이륜 사두마차를 장식한, 화려하면서도 거대한 문이다. 한때 동서 베를린을 나누는 경계로 분단의 상징이 되기도 했지만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당시에는 수많은 베를린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통일의 기쁨을 만끽했다고 한다. 역사적 배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분단의 이력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특별한 감흥을 느끼기에 충분한 건물이다.


베를린 티어가르텐에서의 즐거운 산책

튤립가든을 알리는 표지판. 취재 당시 4월이라 꽃이 피지 않았다.


브란데부르크 문 주변과 그 앞의 파리저 광장은 각국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는데 흥겹고 밝은 기운이 감도는 모습이 마치 축제현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광장 양옆으로는 카페와 상가가 길게 늘어서 있다. 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고단함을 풀었다.
다음날, 전날의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아 다리가 뻐근했다. 호텔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다시 한번 티어가르텐을 돌아보기로 했다.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그리고 낯선 이국땅이라는 특별한 느낌 속에서의 자전거 타기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베를린의 모든 보도 옆에 자전거 도로가 별도로 만들어져 있어 누구나 안전하게 탈 수 있다. 서울보다 큰 면적의 도시에, 인구는 3백50만명.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낮다는 것에서 나오는 여유일까. 부러운 일이다.
주위의 풍광에 매료되어 자전거를 타는 동안 수풀이 우거진 사이로 펼쳐진 잔디밭에선 어제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눈에 띈다. 바로 잔디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남녀를 불문하고 거의 모두 반나체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그들과 함께 동참하기 위해 (물론 옷을 벗지는 못했다) 잔디밭에 누워 따사로운 햇살과 풀향기를 만끽해보았다. 한 30분쯤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숲속에 숨겨져 있던 자동 스프링쿨러가 작동해 놀라 일어났다. 이런 방대한 규모의 공원을 유지하기 위해 저런 시설들이 얼마나 많이 필요할까 생각하니 새삼 놀라게 된다.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데 옆으로 강아지를 끌고 온 할머니가 다가왔다. 눈인사를 교환하고 강아지가 예쁘다며 말을 걸어보았다. 에바 슈렘프(60)라고 밝힌 할머니는 공원이 좋다는 기자의 말에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티어가르텐은 제 생활의 일부예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산책하고 운동하고, 애완견과 함께 같이 보내죠. 저 뿐 아니라 베를린 시민들에게 이곳은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소중한 공간이죠.”
이들 마음속에 공원은 단순히 가보아야 할 대상인 객관적인 사물이 아니라 그들 안에 내재되어 있는 생활 자체인가 보다.
공원을 뒤로하고 베를린에서 가장 번화가라고 하는 쿠담 거리로 갔다. 공원에서 자전거로 10분 정도 왔을까. 백화점과 수많은 상점, 그리고 카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 한눈에 번화가임을 느낄 수 있다. 숲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최첨단의 건물들이 즐비한 번화가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쿠담 거리 한쪽으로는 폭탄을 맞아 옆부분이 완전히 무너진 빌헬름 교회가 보인다. 2차 세계대전 중 폭격당한 건물로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기 위해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쿠담 거리의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인 유로파 센터 앞 카페에는 맥주나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수많은 베를린 시민들이 보인다. (점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테이블엔 케이크와 너무나 간단한 샐러드, 맥주가 전부였다.)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 유럽 노천카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티어가르텐과 베를린 시내의 취재를 마치면서 느낀 것은 부러움이다. 베를린은 방대하게 펼쳐진 녹지와 힘차게 솟아 있는 대형 빌딩들의 조화 덕택에 ‘녹색의 메트로폴리탄’이라는 별칭을 얻은 도시로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은 도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티어가르텐은 나중에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은 녹색천국이며 그런 공원이 우리 곁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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