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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4개월 만에 간암으로 투병중인 윤이네 딱한 사연

“태어나서 한번도 맘껏 먹지도 자지도 못한 아기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안소희 ■ 사진·정경진

입력 2003.06.03 15:48:00

세상에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간암 판정을 받은 아기 고윤은 간에 퍼진 암덩어리가 너무 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한다. 수술을 해야 하지만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애만 태우고 있는 딱한 처지 속에서도 꺼져가는 작은 생명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윤이네 가족의 눈물겨운 희망가.
생후 4개월 만에 간암으로 투병중인 윤이네 딱한 사연

“임신 28주 만에 윤이가 태어났을 때, 모든 것이 제 잘못인 것 같아 죄책감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의사는 회생 가능성이 20%도 안된다고 했거든요.”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쏟아지던 날 윤이네 집을 찾았다. 네 식구가 지내는 ‘집’이라기엔 너무 작아서 서기도 앉기도 어색한 방이 윤이네의 어려운 형편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방안을 둘러보니 윤이와 엄마, 아빠, 윤이의 누나 은별이 네 식구에겐 더없이 소중하고 포근한 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앳된 모습의 엄마 이지영씨(25)가 등을 몇번 다독이자 윤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태어난 후 며칠이 지나도 아이가 자꾸 토하고 분유도 제대로 먹지 못했어요. 잠도 30분 이상 자는 법이 없었죠. 겨우 먹은 분유도 소화를 못 시키고 토하기 일쑤였어요. 걱정이 되어 몇번이나 동네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별 이상이 없다고만 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아기들에게 흔히 있는 소화장애인 줄만 알았죠. 하지만 백일이 지나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불길한 생각이 들었어요.”
밤이고 낮이고 울기만 하는 윤이 때문에 엄마 지영씨도 석달이 넘도록 새우잠에 시달려야 했다. 어렵게 하루하루 윤이를 돌보던 어느날, 지영씨는 윤이 곁에 누워 있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서 본 윤이의 배가 멜론 크기만큼 볼록하게 부풀어올라 있고 배 주변에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와 있는 것이었다. 볼록하게 부어오른 배를 만져보니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이 마치 돌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서둘러 큰 병원을 찾았다.
그때가 겨우 생후 4개월이었으니 사소한 검사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계속된 피검사, 골수검사로 윤이도 지영씨도 초주검이 되었다. 검사 결과 병명은 간모세포종.
“간암이죠. 생후 4개월 된 아기가 간암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어요.”
간모세포종이란 소아암의 일종으로 매우 드물고 위험해 그만큼 치료도 어려운 병이다. 윤이의 간에 번진 암세포는 이미 간의 대부분을 잠식했고, 너무나 비대해진 암덩어리 때문에 장기가 눌려 음식물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위에 들어온 분유가 역류했던 것이다.
곧바로 입원하여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사경을 헤매는 날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깨어 있으면 울고 간신히 먹은 소량의 우유조차 밤새도록 토했다. 우유를 토할 기운도 없고 소화시킬 기운도 없어 배가 딱딱하게 굳어지면 식도에 호스를 넣어 애써 삼킨 우유를 빼내야 했다. 의료진의 초긴장 속에서 그렇게 40일이 넘는 1, 2차 항암치료를 견뎌냈다. 독한 항암제 때문에 머리카락이며 눈썹까지 다 빠져버렸지만 윤이는 누구보다 잘 버텨주었다.
“병원에서 별명이 순둥이에요. 항암제를 투여하면 4개월 된 애가 떼를 쓰고 우는 게 아니라 마치 어른처럼 신음소리를 내요. 울 기력조차 없는 거죠. 링거로 네다섯 시간씩 투약하는 동안 쉴새없이 고통스럽게 뒤척이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어요.”
남들 앞에서 좀체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는 지영씨도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젖은 눈망울이 흔들렸다.

생후 4개월 만에 간암으로 투병중인 윤이네 딱한 사연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고 있는 윤이가 대견하다는 이지영씨.


집안에 우환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해맑은 얼굴의 지영씨. 어린 나이에 남편 고현봉씨(35)를 만나 듬직한 모습에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2년 전, 고씨의 사업이 기울기 전까지 둘은 남부러울 게 없는 신혼 생활을 꾸렸다.
그러나 첫째 은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처럼 믿고 지내던 동료에게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었다. 간신히 주변의 도움을 얻어 의류도매업으로 재기를 시도했으나 경험도 자금력도 없는 고씨에게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결국 감당할 수 없는 빚만 지고 사업을 정리해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생각지 못한 둘째아이까지 생겨 어려운 살림이 더욱 옹색해졌다. 하지만 뱃속의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진 재산은 모두 차압당했고 현재 지영씨 동생 자취방 한켠에 신세를 지고 있다. 5천만원이 넘는 카드빚과 곳곳에 쌓인 부채로 신용불량자가 된 고씨는 제대로 된 일자리조차 얻을 수 없는 처지다. 생활비는 고씨가 이런저런 일거리로 벌어오는 70만원이 전부. 네식구 생활하기에도 빠듯한데 윤이 치료비며 뒷바라지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남편은 제가 봐도 성실한 사람이에요. 윤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낮에는 은별이 돌보고 밤에는 밤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런데 그 편의점마저 며칠 전에 문을 닫았어요.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손대는 일마다 어그러지는지 모르겠어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고씨 부부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지금까지 윤이가 견뎌온 시련보다 앞으로 넘어야 할 높고 험한 산이 더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간모세포종은 반드시 수술을 해야만 살 수 있다. 윤이는 현재 4차에 걸친 항암치료를 끝내고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수술 결과에 따라 간이식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수술을 해도 재발률이 75%가 넘는다고 하니 정말이지 산너머 산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죠. 태어나서 하루도 양껏 먹고 편히 잠들지 못한 윤이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윤이네에게 기쁜 소식이 있기를 바란다.


여성동아 2003년 6월 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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