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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 동굴 속에서 사는 ‘서울 원시인’ 박진호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박진숙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3.04.15 11:17:00

도심 한복판에 동굴이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
‘서울 원시인’으로 불리는 박진호씨가 바로 그 주인공.
그가 8년 동안 동굴에서 혼자 살게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어보았다.
도심 한복판 동굴 속에서 사는 ‘서울 원시인’  박진호


“거기, 바로 그 앞이 동굴아저씨 사는 곳이에요.” 지나가던 동네 아줌마가 친절하게 알려준 그의 동굴은 바로 코앞에 있었다. 빌라와 주택 사이에 있는 입구를 커다란 천으로 가려놓아 모르는 사람은 그곳이 동굴 입구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계세요?” 하고 묻자, 인기척이 느껴지고 곧 이어 “들어오세요”라는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서니 퀴퀴한 동굴 특유의 냄새와 함께 ‘서울 원시인’ 박진호씨(43)가 앉아 있었다. 175㎝ 키에 선한 인상을 풍기는 박씨는 부끄러워하며 서둘러 모자를 눌러 썼다.
T자 형태의 이 동굴은 높이가 2m, 폭 1.8m, 길이는 50m쯤 된다고 한다. 박씨는 이중 동굴 앞쪽 서너평만 칸막이로 막아 주거지로 사용하고 있었다.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천장에는 비닐을 쳐놓았고, 바닥에는 스티로폼을 깔고 그 위에 전기장판을 얹었다. 다행히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있어서 동굴 안은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다. 실내 한켠에는 가스레인지와 식기들이 마련되어 있어 나름대로 부엌 구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비롯해 다른 가전제품은 눈에 띄질 않았다. 그가 이용하는 문명의 이기는 휴대전화 하나가 전부. 그것이 동굴 밖 세상과 통하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여기서 산 지 벌써 8년짼데… 불편하진 않아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거든요. 단 화장실이 없는 게 좀 그렇지만…. 용변과 세면은 동네 놀이터에서 해결하고 있어요. 음식은 생수를 이용해서 만들어 먹고요. 비록 동굴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답니다.”
이렇듯 동굴에서 8년째 살다보니 동네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자장면을 시킬 때도 “동굴입니다” 한마디만 하면 10분 안에 배달된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동굴로도 여느 집처럼 버젓하게 우편물과 공과금 영수증까지 배달된다. ‘안암동 3가 132번지’가 바로 동굴 주소. 지난해 12월에는 ‘동굴 주거권’까지 확보했다. 이제는 누구에게나 떳떳한 박씨만의 ‘집’이 된 것이다.
박씨는 8년이라는 긴 시간을 동굴에서 지내다보니 어느새 ‘동굴 사나이’가 다 되었다고 한다. 그에겐 오히려 일반적인 집이 더 낯설고 불편하다는 것. 그런 박씨를 보고 때때로 ‘도를 닦기 위해’ 동굴에서 사는 것 아니냐는 사람도 있지만. 밤이 되어 동굴 속에 가만히 누워 있다보면 서글픈 생각도 든다고 한다.
“밤에 잠이 잘 안오는 편이라서 늦게까지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몸이 안 아팠으면, 장사가 잘 되었으면, 집앞의 건축 자재는 어떻게 치우나….뭐, 이런 생각을 하죠. 그러다가도 앞에 서있는 빌라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다른 사람들은 지금쯤 따뜻한 방에서 잘 텐데…. 이 생활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난 동굴에서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하죠.”
그가 동굴 생활을 하게 된 데에는 남다르고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서울 토박이로 2남3녀중 막내인 박씨는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지금의 동굴터에서 살아왔다.
“부모님은 이곳에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그 앞의 집을 사셨죠. 이 동굴은 일제시대 때 방공호로 쓰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요. 발견된 지는 60년 정도 되었고요. 어릴 때는 이 동굴에서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면서 놀았을 정도로 제게는 익숙한 곳이에요.”
하지만 그의 유년기가 행복한 기억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목수였던 아버지는 그나마 지병으로 오랫동안 몸져누워 있어 집안 형편은 늘 쪼들렸다. 때문에 박씨는 중학교를 마지막으로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도심 한복판 동굴 속에서 사는 ‘서울 원시인’  박진호

‘거주지 승인서’를 비롯, 각종 서류를 보여주며 동굴이 엄연한 자기 집이라고 말하는 박진호씨.



“중학교를 졸업하고 택시회사 조수로 일하면서, 틈틈이 다른 일도 했어요. 그 당시엔 수도가 별로 없어서 산동네 사람들에게 물지게로 물을 날라주고 돈을 받기도 했고, 찹쌀떡도 팔고, 신문팔이, 볼펜 장사 등 안 해본 것이 없어요. 정말 힘들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운전면허를 따서 택시운전기사로 16년 동안 일했습니다. 서울 시내는 모르는 곳이 없죠. 군에 있을 때는 전두환 전대통령 사촌 전정환씨 운전병이었는 걸요(웃음).”
비록 버겁고 힘든 생활이었지만 가족이 있었기에 힘든 줄도 몰랐다. 그러던 중 93년,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4개월 후 어머니마저 암으로 아버지를 따라갔다. 어머니가 암 선고를 받고 나서 그와 형제들 사이에는 다툼이 많았다. 부모님의 빚을 갚지 못해 땅이 남의 손에 넘어갈 판이었다. 앓아 누우신 어머님을 생각해 땅이 넘어가지 않도록 돈을 융통해달라는 박씨의 부탁을 형제들은 하나같이 거절했다. 결국 어머니가 맘 편히 돌아가시지 못한 상태에서 박씨는 형제들과 등을 돌리고 말았다. 박씨는 형제들 이야기가 나오자 한숨을 내쉬며 더 이상 말하기를 꺼렸다.
“95년에 동굴을 이용해서 멋진 식당을 만들려고 공사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기초공사를 하던 중에 그만 폭삭 무너진 겁니다. 집이 무너지자 다급한 마음에 임시 방편으로 이불 등 필수품만 들고 동굴로 들어갔지요. 그렇게 시작한 동굴 생활이 오늘에 이르렀네요.”
지금도 동굴 주변에는 짓다만 벽과 창틀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박씨는 집이 무너졌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자 몹시 괴롭다며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집이 무너짐과 동시에 그의 인생은 또 다른 내리막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살다가 4년전 건널목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그때 허리를 다쳐 장애 4급 판정을 받았죠. 그러니 택시 운전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돼버렸어요. 3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보상도 받지 못하고 돈만 까먹었어요. 집을 수리하려고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집수리는 고사하고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박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비록 불편한 몸이었지만 어묵 장사, 군밤 장사, 과일 장사 등 닥치는 대로 했다.
“죽으란 법은 없는지 동사무소에서 준 리어카로 여러가지를 팔았죠. 그러다가 마침 고맙게도 사촌누님이 작은 트럭을 마련해줘서 과일 장사를 했어요. 하지만 장사가 신통치 않아요. 몸이 자주 아프니까요. 지금은 트럭 유지비조차 벌기가 힘들어요. 며칠 전에는 주변의 인근 대학 졸업식에서 밤새도록 만든 꽃다발을 팔아 손에 돈을 조금 쥐었죠.”
안암동 전철역 2번 출구 앞에 서있는 트럭이 그의 일터다. 과일 박스 하나도 혼자 힘으로는 들지 못할 정도로 장애가 심해서 하루 벌고, 다음날 쉬어야 하는 형편이다. 현재 박씨는 매월 국민기초생활보장금으로 나오는 21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하루하루 먹고 살아갈 일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지만 박씨는 조금이라도 돈을 벌면 간식거리를 사들고 동네 노인들을 찾아간다. 모두 어머니 친구들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제 형편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직까지는 제 손으로 벌 수 있으니까 적으나마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야지요. 집터에 있는 은행나무를 볼 때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어머니가 직접 심으신 건데 가을이 되면 은행이 꽤 많이 열려요. 그것을 따다 팔기도 했죠. 어릴 때 어머니가 은행나무 밑에 음식 찌꺼기를 묻으시면 지저분하다며 타박을 하곤 했는데 그게 다 거름이 된 거지요. 얼마전에는 동네 교회의 목사님이 생일 축하 편지를 보내셨더군요. 그 편지를 받고 어머니가 생각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어머니는 제 생일에 임종하셨거든요.”
눈시울이 붉어진 박씨는 외롭다고 했다. 특히 비나 눈이 올 때면 남들은 피해서 집으로 들어가지만 그는 동굴 밖으로 나와 하염없이 눈비를 맞으며 외로움을 달랜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2명의 여자와 선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동굴 속에서 사는 그를 보고 모두 기겁해서 도망갔다고 한다. “결혼하면 동굴을 떠날 것”이라는 박씨가 요즘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술이다. 동굴 안에는 그가 마신 술병만큼 그의 외로움도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한 동네에서 그를 쭉 지켜보았다는 인수웅씨(60)는 “서로 형님, 동생하면서 자주 들여다보는데 걱정이 많이 돼요. 술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많이 하죠. 너무 오래 혼자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누구라도 돌봐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다.
박씨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듯 ‘호적 등본’ ‘거주지 승인서’와 ‘주민등록 등본’ 등 이것저것 보관해둔 서류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빛 바랜 ‘공사 승인서’를 만지작거리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집을 꼭 완성하고 싶어요. 식당을 할 겁니다. 동굴 안에 탁자와 부엌을 들여놓고, 은행나무가 바라보이는 옥상을 만들어 테이블을 놓고 싶어요. 거기에서는 남산도 보일 만큼 전망이 좋거든요.”
그가 소원하는 은행나무 아래의 ‘동굴 식당’이 개업했다는 소식이 하루 빨리 들려오길 기대해본다.

여성동아 2003년 4월 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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