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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법의 애증관계’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김은혜 ■ 사진·최문갑 기자

입력 2003.04.14 19:28:00

여성들의 화법은 겸양의 미덕이 앞선다.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의 법칙이 되어 몸에 익혀졌다.
그러나 겸손의 화법은 당당하게 말한 뒤 솔직하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할 때 효과를 발휘한다.
‘화법의 애증관계’


지난해, 1년간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주차를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시간에 5천원씩이나 하는 비싼 주차비도 부담이거니와 이면도로에 차를 대는 것도 새벽같이 나서는 부지런함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날은 운이 좋았다. 차에서 먼저 내려 주차할 공간을 찾는데 요행히 빈자리가 금세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재빨리 그 빈공간에 가서 지켜 선 채 눈에 불을 켜고 주차할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을 동료를 휴대전화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차가 10m앞에 나타나 안도하는 순간, 웬 중형 승합차 한대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다짜고짜 밀치듯이 내가 서 있는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에게 전할 메시지는 분명했으나 불리한 전세를 돌이키지는 못했다.
“저…, 제가 여기 주차하려고 계속 서 있었거든요. 저 뒤에 있는 차가 저희 차고요. 학교 세미나 발표 때문에 급한데 양보를 해줄 수 있으시겠지요?”
한국식 입도선매가 당당한 모양새가 아니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탓이었는지 사설이 참 늘어졌다는 기억이 있다. 반면, 서류가방을 든 전형적인 고소득 전문직의 악센트를 쓰는 그 백인 남성의 답변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래서요? 난 약속이 10분 늦었습니다.”
뒤도 보지 않고 돌아서는 미국인에게서 나는 전형적인 백인 남성들의 화법을 배웠다.
‘짧고 명확하다. 그리고 자아 중심적인 사고가 배려를 압도한다.’

‘여성들의 화법은 겸양의 미덕이 앞선다’

‘여성들의 화법은 겸양의 미덕이 앞선다.’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의 법칙이 되어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졌다.
“죄송하지만…” 혹은 “제가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사과와 부연이 문장 앞에 붙어 있기 일쑤다. 농담도 자신을 깎아내리는 유머가 많다. 이런 말이 상대방의 경계심을 흐트러뜨리는 묘약이 될 수도 있으나 실은 사회생활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허허로움으로 남에게 기억될 때가 더 많다는 사실이 여성들에게는 아픔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히 남성들이 절대적으로 많은 언론계에서 보면 겸손의 화법은 문장 맨 앞이 아니라 맨 뒤에 배치하는 것이 낫다. 당당하게 말한 뒤 솔직하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 상당한 차이가 나는 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
스탠퍼드대에서의 논문발표회는 한국 연구원들에게는 일종의 시험이자 도전이다. 영어가 현지인 같지 않을 경우 2시간의 질문과 답변시간은 고문일 수밖에 없으므로 민망함의 여운을 없애기 위해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안전판을 이렇게 깔아놓는다. “제가 영어가 좀 서투릅니다….” “제가 영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한수 접고 발표회를 시작하지만 문제는 남들이 한수 접어 들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래저래 사면초가다.
이렇게 전제를 달고 세미나를 주재하는 사람들의 백이면 백은 비교적 상당한 영어실력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심리는 영어가 서투르다는 인사말을 받으면 한국인이 가장 취약한 정관사와 관사의 배합만 유심히 지켜보게 된다는 아이러니로 연결된다. 문장의 서두는 형식보다는 진실에 가까워야 더욱 설득력이 있다.

‘화법의 애증관계’




여성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좀더 근원적인 인간 모색에 가깝다. 일보다는 사람을, 직설적이기보다는 우회적으로, 결과보다는 만남의 과정과 관계에 치중한다. 조직사회에서 간부의 방문이 있을 경우 여성들의 반응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대개 그 상사 앞에 나서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을 당연히 간부가 알고 있고 언젠가 평가를 해줄 것이라는 확신 아래 컴퓨터 앞에 고개를 묻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일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 앞에 명확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 한 상사가 자신의 모든 장점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남성들은 여성 쪽이 전하는 섬세한 눈빛과 행동의 메시지를 읽는 것에 여성들처럼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무작정 기다리다 시간을 원망할 수 있다.
상사와 단 한번의 대면 기회에서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것을 준비해두고 있을 필요가 있다. 단계적으로 치고 나가는 화법은 언제 자신의 인상을 각인시킬지 모를 비연속적인 순간 속에서 빛을 내게 해준다.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그러나 짧게 전제하면서 가능한 시각과 한계를 적시하고 이로써 내리는 결론은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들린다. 남성적인 화법이 이렇다. 여성도 이런 화법을 섞을 필요성이 있다.
물론 남성 화법의 이중적인 면도 있다. 사회에서 듣고 본 남성적인 화법은 논리와 이성에 대해 집중하면서도 그러나 지나친 자아의식으로 분위기를 어색하게 할 때가 있다. 성적인 농담 또한 남성이 여성을 시험하는 잣대일 때가 많은데, 여성이 이에 대해 공개적이고 솔직하게 대응하는 추세인 반면 남성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듯 포장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대 여성에 대한 불쾌감에 여성을 폄하하는 시각까지 얹어 양산하는 경우를 볼 때가 적지 않다.

주홍글씨를 의식하지 말자
여성이 승진하는 경우 전보다 커진 마호가니 책상과 넒은 사무실은 여성에겐 기쁨보다 ‘이를 누릴 만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게 한다. 그래서 상사에게 업무 보고나 브리핑을 한 뒤 문제가 있다는 질책을 받으면 여성들은 쉽게 좌절한다. 한번 질타를 받으면 ‘나는 이제 낙인이 찍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앞으로 직장생활에서 주홍글씨를 달고 살지 않을까 염려하고 걱정하게 된다.
남성들의 대응은 더욱 게릴라적이다. 상사에게 꾸중을 들어도 자리에 돌아오면 다음 대응을 위한 전술과 전략을 짜는 것이 보통이다. 보고 방법에 잘못이 있었는지, 순서가 엉켰기 때문인지 등등 자신의 이미지가 손상됐을 것이라는 자책보다는 악재를 호재로 삼을 수 있는 역전의 기회를 항상 꿈꾼다.
여성의 감성적인 섬세함과 부드러움은 남성적인 ‘단타’ 화법과 만날 때 더욱 효과적이다. 취재를 위해 가급적 짧게 끊어 치는 질문엔 길어져서 시선이 분산되는 질문보다 기사거리가 더 많이 딸려 나오게 마련이었다. 여성으로서 인간적으로 배려해주고 주변을 살피는 접근 이후에야 날카로운 취재도 그리고 논리적인 전개도 탄력을 받는다는 사실은 여성들에겐 자신있게 간직할 만한 가치들이다.
모성의 본능은 노력의 산물이 아니지 않던가.



여성동아 2003년 4월 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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