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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특별한 만남

영화감독 출신으로 첫 문화관광부 장관 돼 화제 모은 이창동

“지금도 영화 이야기하니까 집무실에 올라가기 싫으네요”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3. 04. 04

영화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 세계 명감독의 반열에 오른 이창독 감독이 노무현 정부 첫 문화관광부장관으로 취임했다. 그가 본지에만 털어놓은 장관이 된 심경 &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 이창동의 진면모.

영화감독 출신으로 첫 문화관광부 장관 돼 화제 모은 이창동

노무현 정부 첫 문화관광부장관에 이창동 감독(49)이 후보에 올랐다는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과장 추측 보도’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문화개혁시민연대, 영화인회의 등에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남들 앞에 나서는 성격도 아니고, 교사-소설가-영화감독으로 이어진 그의 인생역정 어디에도 정치행정가로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통추 활동을 했던 정치인이 진보와 보수 예술단체 양쪽에서 모두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로 추천을 받은 상태였다. 반면, 이창동 감독은 일부 시민단체에서 자신을 후보로 추천하자 미국으로 외유를 떠날 정도로 거절 의사를 강하게 밝혔다. 그런 상태에서 그가 장관이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영화감독 출신의 문화장관이 되었다.
지난해 영화 ‘오아시스‘로 세계적인 영화제인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그의 장관 취임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기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먼저 업무파악을 해야 한다. 또한 기자를 만나는 데에도 원칙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원칙을 정할 때까지는 기자를 만나지 않겠다”며 입을 다물었다. 난감했다. 그는 한번 이렇게 하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기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장관이 취임한 지 보름 만인 3월14일, 문화관광부 출입기자들과 처음으로 갖는 간담회 자리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간담회장에 나타난 이장관은 언론에 보도된 대로 넥타이를 매지 않은 캐주얼한 차림이었다. 또한 약간 어눌한 듯한 말투, 양손을 바지주머니에 넣은 채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이야기하는 품은 과거 교사시절 학생들에게 ‘꺼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20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기자가 이장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83년이다. 그는 바로 전해에 신일고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기자는 그해 신일고에 입학했다. 1학년 내내 그로부터 국어과목을 배웠고, 2학년 때는 교내 연극서클에서 다시 지도교사와 부원으로 만났다. 그후 한동안 못 만나다 95년 그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전태일‘ 시사회장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오랜 세월이 흐른 터여서 기억을 못할 줄 알았는데 그는 기자가 결혼한 사실까지 알고 있었고 웃으면서 “왜 괘씸하게 내게 주례를 서달라고 찾아오지 않았냐”며 농담을 건넸었다. 그후에도 몇차례 문화 관련 행사장에서 마주칠 기회가 있었지만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또다시 긴 세월이 흘렀다.
“장관 되었다는 말 듣고 딸은 집 나가겠다고 해”
기자간담회는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가운데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이날 이장관은 문화관광부의 홍보업무와 관련해 앞으로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취재를 제한하고, 기자의 취재를 받은 직원은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에 대해 기자들은 ‘새로운 언론탄압’이 아니냐며 질문공세를 펼쳤다. 심지어 “기사의 양과 비중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나왔지만 이장관은 “직원들의 업무공간을 보장하고, 취재의 ABC를 준수하는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퇴장하는 이장관에게 다가갔다. ‘과연 나를 기억할까’ 하는 우려 속에 “저 기억하시죠” 하며 인사를 건네자 그는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로 “알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퉁명스러운 말투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 퉁명스러움 뒤에 상대에 대한 따스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의 학교 제자들과 문학판, 영화판 사람들은 다 안다. 이장관은 구내식당에서 기자와 점심을 함께 하며 일과 관련된 이야기 외에는 입을 열지 않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비교적 소상히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영화감독 출신으로 첫 문화관광부 장관 돼 화제 모은 이창동

기자간담회를 가진 후(위 사진).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이창동 장관(아래 사진).


- 처음 장관 제의를 받고 극구 사양했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미 장관이 된 이상 그런 이야기는 안 써주었으면 좋겠어요. 임명장을 받고 처음 공식행사를 하면서 ‘아 내가 미스 캐스팅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 장관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요?
“다들 싫어했어요. 딸이 지금 고3인데 ‘아빠가 장관이 되면 집을 나가겠다’고 할 정도였어요. 아무래도 자신의 얼굴도 알려지게 되고, 사람들에게 누구의 딸이라고 불리는 게 싫다는 거였죠. 제 생각도 같아요. 가족들의 사생활은 보호하고 싶어요. 오늘도 방송국에서 제가 집에서 출근하는 모습을 촬영을 했는데 아이들 모습은 절대 나오지 않도록 부탁했어요. 앞으로도 가족을 공개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 주말엔 뭘 하나요?
“그동안(장관 되고 나서) 주말이 두번 있었는데, 정신없이 바빴죠. 평소에도 전 아이들하고 친하고 싶은데, 아이들이 저를 왕따시켜요. 매일 아침 출근할 때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하는 게 제겐 큰 기쁨이에요.”
- 그동안 너무 의식적으로 기자들을 피해 기자들의 원성이 높습니다.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안되었는데 특정 장관이 사소한 이유로 언론에 자주 나오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너무 안 만나니까 마치 제가 기자들을 피하는 인상까지 주었던 모양이에요. 어떤 신문에선 ‘문화장관이냐 문상장관이냐’고 힐난을 했더라고요. 문상만 다니는 장관이란 말인데 저는 문상 딱 두번 갔어요. 하지만 그것도 이문구 선생 문상은 업무시간이 끝난 후에 갔고, 조병화 선생 문상은 딱 1시간 갔다왔어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기사를 쓴 건 좀 심했죠.”
- 그래도 영화감독 출신의 첫 장관이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대중적 인지도가 있다고 해도 제가 수행하는 장관의 업무와는 상관없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지엽적인 이미지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옷차림이 어떻네, 차를 직접 몰고 다니네 하는 것은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잖아요.”
- 벌써 취임한 지 두주가 지났는데, 어떤가요?
“개인적으로 제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지금부터 해야 하는 것과 괴리가 있으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렵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제가 해야만 되는 일이기에 가능하면 잘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 밖에서 보던 문화관광부 모습과 들어가서 본 모습이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많죠. 예를 들면 자리를 하루만 비워도 결재서류가 책상에 가득해요. 그런데 서류의 상당 부분이 ‘과연 꼭 장관이 결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이것이 과연 제대로 지원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 가는 게 많았어요. 이런 건 바꾸어나갈 생각이에요. 또한 임명장 수여식, 취임식에서부터 장관에 대한 의전 등 관료사회의 관습과 문화가 일반대중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권위주의적이라고 느꼈어요. 장관실 앞에만 깔려 있는 붉은 카펫, 장관이 나타나면 부동자세로 서 있는 직원들, 행정고시를 통과한 사무관 비서가 꼬박꼬박 장관의 차 문을 열어주는 것, 장관에게 누구나 허리를 90도로 꺾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며 좀 실례되는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조폭문화가 연상되었어요. 이런 권위주의적 관습과 문화를 버리자고 권유하고 있어요.”

영화감독 출신으로 첫 문화관광부 장관 돼 화제 모은 이창동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 왼쪽부터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 권위주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임명장 수여식 때부터 파격적인 옷차림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전 영화감독으로 일 때문에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복장에서부터 공무원 냄새가 나는 문화부 공직자를 만나보질 못했어요. 복장이 자유로운 만큼 그들의 사고와 행동은 자유롭고 유연했어요. 공무원이므로 반드시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과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와 도덕적 엄격함을 지녀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거예요. 사실 제가 처음 이렇게 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선 말렸어요. ‘큰일난다’ ‘힘들다’고 했어요. 심지어 공무원들로부터 캐주얼한 옷을 사는 게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는 말도 들었어요. 하지만 막상 하니까 큰일날 것도 없잖아요.”
- 출퇴근 때 장관이 직접 운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소리가 높습니다.
“출근시간마저 빼앗기고 싶지는 않아요. 그 시간은 제가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마음껏 사유하며 저를 찾는 시간이에요. 만약 제가 관용차를 타면 운전기사뿐 아니라 당연히 비서도 따라 타겠죠. 그러면 차안에서부터 업무가 시작되는 겁니다. 집에서 이곳까지 오는 그 시간만이라도 자유롭고 싶어요.”
- 프랑스의 경우 문화부장관 임기가 대통령 임기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끝까지 같이 가는 것은 지겨울 것 같고…(웃음). 임기는 대통령의 권한이라 제가 말할 부분은 아니고요. 하지만 그동안 장관들의 임기가 너무 짧아 부작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대통령도 언론에 별 문제가 없는 한 2년 임기를 보장하고 싶다는 말을 했으니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어요.”
-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다시 장관으로…. 벌써 두번에 걸쳐 파격적인 변신을 했는데?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간 것은 변신이지만 장관은 변신이 아니죠. 외도라고 할까(웃음). 임기 뒤엔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야죠.”
- ‘오아시스‘를 만들고 난 후 구상하고 있던 다음 영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구상했던 영화가 있기는 있었어요.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어요.”
- ‘오아시스‘에 대해 일부 여성단체에서 여성장애인에 대한 강간문제를 가지고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전 그런 것조차 편견이란 생각이 들어요.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아요. 그분들이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인 거라고 생각해요.”
- 장관과 설경구, 문소리는 이제 황금콤비로 불립니다. 무명이던 설경구를 처음 ‘박하사탕‘에 캐스팅한 것부터 파격적이었는데, 설경구와는 어떻게 인연이 맺어진 건가요?
“‘박하사탕‘을 준비할 때 여러 배우를 오디션을 보았어요. 그런데 적당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그가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를 보았어요. 그래서 직접 집에까지 찾아가 만나보았죠. 아, 영화 이야기 하니까 위(집무실)에 올라가기 싫다(웃음).”

영화감독 출신으로 첫 문화관광부 장관 돼 화제 모은 이창동

오랫만에 기자와 다시 만난 이창동 장관은 고교교사 시절 때와 그다지 변한 게 없어보였다.


이쯤에서 오후에 있을 청와대 국무회의 관계로 이야기를 접어야 했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그를 배웅하며 악수를 나누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따뜻하고 억세었다. 그가 지난 20년 동안 소설과 영화를 통해 추구한 것은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냉철한 사회의식이었다. 그의 이런 신념과 가치관이 장관으로서 문화, 예술, 관광, 체육 등 우리 사회의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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