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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신드롬 몰고온 틱낫한 스님 방한 현장

“숨쉬기와 걷기만으로도 ‘화’를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3.04.03 10:33:00

명상 신드롬을 일으킨 베스트셀러 '화'의 저자 틱낫한 스님이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소요하는 평화’가 무엇인지를 온몸에서 느끼게 하는 ‘살아있는 성자’ 틱낫한 스님이 들려주는 화를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수행법.
명상신드롬 몰고온 틱낫한 스님 방한 현장

프랑스 플럼빌리지를 운영하는 틱낫한 스님은 세계적인 영적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지난해 4월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7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화(anger)‘의 저자 틱낫한 스님(77)이 95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지 8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의 저서 또는 관련 서적이 최근 2년 사이에 10종이 넘게 출간될 만큼 우리나라 출판계에 강력한 ‘명상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스님은 전세계적으로도 달라이 라마와 함께 ‘영적 스승’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3월16일 한국에 온 스님은 3월18일 오전 9시30분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20일 동안의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스님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1백여명의 기자들이 모여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이는 등 성황을 이루었다.
16명의 승려, 7명의 재가자들과 함께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특유의 걸음걸이로 보행명상을 하며 기자회견 장소에 들어선 스님은 희수(喜壽, 77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이었다. 160cm 정도의 작은 체격과 얼굴에 흐르는 온화한 미소는 왜 서양사람들이 그를 ‘어린 왕자와 관세음보살을 합쳐놓은 것 같은 스님’이라고 부르는지 알게 해주었다.
기자회견은 벽안의 서양 승려들이 “관세음보살”을 독경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이야기 중간중간 2분 정도씩 은은한 종소리에 맞춰 명상의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종 모양이 우리가 흔히 보는 것과 달라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종은 반타원형으로 입구가 밑에 있는 것에 비해 스님이 타종하는 종은 대접 모양으로 입구가 위로 향해 있었다. 명상의 시간에도 끊임없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스님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명상에 임해보라”며 권하기도 했다.
스님은 현재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에서 명상수련센터인 ‘플럼빌리지’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 35개국 사람들이 이곳에서 진행하는 수행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데, 보통 부부, 부자, 모녀 등 가족 단위와 커플 단위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부분 수행을 통해 서로 갈등을 풀고 평화를 얻고 돌아간다고 한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어떻게 슬기롭게 평화와 행복을 이룰 것인가를 수행합니다. 그곳에서 보통 5일 정도 수행을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워 나갑니다. 분명한 사실은 수행을 하면 자기 안에 있는 평화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님이 설명하는 수행법은 그리 특별하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마음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마음을 집중하는 ‘mindfulness(마음의 자각)’를 해야 하는데, 숨을 쉬고 걷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마음의 자각이란 과거의 잘못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바로 현재의 상태에 집중해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상태를 말한다.
“호흡명상은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공기가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닿을 때까지 숨을 들이마시면서 자신을 생각하고, 숨을 천천히 조금씩 내쉬면서 상대를 느끼는 것입니다. 보행명상 역시 천천히 걸으며 발을 땅에 디딜 때마다 땅의 감촉과 기운을 느끼며 자신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별도의 시간을 내어 수행을 하기란 힘들다. 이에 대해 스님은 “운전을 하거나, 식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지하철을 타고 가거나 할 때도 항상 마음을 자각하는 수행이 가능하다. 한잔의 차를 마실 때도 마음을 집중하며 마신다면 그 순간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장에는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여성신학자 정현경 교수(유니온신학대)도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정교수는 “과거 하버드대 교수 시절 강의실에 붙어 있던 스님의 시를 읽고 플럼빌리지로 찾아가 스님의 제자가 됐으며 지난 2000년 스님이 미국 9·11 테러 참사현장을 방문해 걷기명상을 할 때 통역하며 보좌했었다”고 인연을 소개했다.

명상신드롬 몰고온 틱낫한 스님 방한 현장

틱낫한 스님은 기자회견에서 이라크전쟁과 북핵문제에 대해 미국정부를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에서 틱낫한 스님의 신드롬이 인 것은 그의 저서 ‘화‘에서 주장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 한국인만의 독특한 스트레스성 질병인 ‘화병(의학용어로 탈영실정이라고 한다)’의 치유법으로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은 스님을 라즈니쉬,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명상가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세계 최초로 ‘참여불교’를 만든 ‘실천운동가’ 쪽에 더 가깝다.
그의 현실참여에 대한 면모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프레스센터 길 건너편에 있는 서울시의회 의사당 앞에서 2백여명이 모여 서울시장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본 스님은 가이드에게 무슨 일인지 자세히 묻고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묵상에 잠기기도 했다. 스님이 ‘참여하는 양심’이라는 것은 이날 오후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심포지엄 ‘내 안의 평화, 세상의 변화’에서 행한 강연에서 더욱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현실을 떠난 평화는 의미가 없습니다. 고통이 없으면 고통을 이기기 위한 자비심을 개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당히 직시하고 그 본질을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스님은 상대방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테크닉(경청)을 가져야 하고, 상대방에 대해 사랑으로 이야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자비심이 생기고 상대방으로 인해 마음 속에 생긴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수행은 개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도 여러분은 왜 북한이 굶주리면서도 먹을 것을 사는 데 돈을 쓰지 않고 핵을 만들어야만 하는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북한이 고통 받는 원인은 바로 강대국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들이 갖고 있는 고통의 원인에 대해 직시한다면 더는 북한에 대해 분노를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북한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서로 전쟁의 상대국이 아니라 한형제’라고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한쪽이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는다면 다른 한쪽도 이를 막는 데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북한에 두려움과 공포가 없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심의 실천입니다.”
스님은 플럼빌리지에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함께 초청해 수행을 통해 두 민족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보통 처음 3∼4일은 서로 의심하고 불신에 싸여 대화를 하지 않지만 5일에서 일주일 정도 지나면 서로 신뢰하고 대화를 하며 자기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깨닫고 마음에 평화를 느끼게 된다고 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비심으로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은 곧바로 관세음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북한사람들의 고통, 어려움, 공포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의가 끝난 오후 6시경, 스님은 청중과 함께 20여분간 국회 정원에서 보행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3월 중순의 서울 날씨가 프랑스에 비해 추운 탓인지 짙은 갈색의 임제종 가사 위에 두터운 점퍼를 걸치고 갈색 목도리를 두른 차림이었다. 선두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걸으며 명상에 잠기는 그의 모습에서 ‘소요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심포지엄엔 정대철, 박희태의원 등 여야 대표를 비롯, 10여명의 국회의원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1천명이 넘는 시민들이 경청을 하는 등 성황을 이뤄 스님의 높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스님의 방한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명진출판사 관계자에 따르면 스님과 관련된 각종 행사에 대한 문의전화가 하루 3백통에 달할 정도로 폭주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당초 2백명 정도 참가할 것으로 예상했던 ‘틱낫한 스님과 함께하는 3일간의 수행’ 행사는 참가 희망자들이 넘쳐 장소를 더 큰 곳으로 옮겨야 했을 정도라고 한다.
스님은 4월4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에서 대중과 만나 ‘화’ ‘평화’ ‘정념’ 등을 주제로 법문을 할 예정이다(일정표 참조). 또한 대중집회에도 참석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3월2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반전, 반핵을 위한 평화의 소리 한마당‘에 참석해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한 데 이어 3월28일엔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해 문규현 신부와 수경스님이 50일 동안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하며 행진하는 행사에도 참석한다. 스님은 4월3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여성을 주제로 강연을 한 후 다음날 출국할 예정. 스님은 방한 기간동안 그랜드힐튼 호텔에 머물렀다.

명상신드롬 몰고온 틱낫한 스님 방한 현장

국회의원 회관에서 심포지엄을 마친 후 정치인, 청중들과 함께 보행명상을 하는 틱낫한 스님.


1926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16세에 승려가 된 틱낫한 스님은 젊은 시절부터 관념의 종교가 아닌, ‘민중의 고통을 덜어주는 종교’를 실천하기 위하여 사회운동을 벌여왔다. 베트남전쟁이 격화되던 60년대, 전쟁의 뿌리가 미국에 있다고 판단한 스님은 미국으로 건너가 반전평화운동을 펼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추천으로 67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평화에 대한 굳은 의지와 솔직한 표현들은 베트남 정부에 반대하는 것처럼 비쳐져 고국 베트남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프랑스로 망명한 스님은 75년 파리 근교에 명상 공동체인 ‘스위트 포테이토’를 설립하고 ‘시대가 변하고 대중이 달라지면 종교도 달라져야 한다’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런 소신은 82년 ‘플럼빌리지’를 세우면서 더 확실하게 표출되었다. 또한 90년대에는 미국 버몬트주에 ‘단풍림 승원’과 ‘그린 마운틴 수행원’을 설립했다.
‘영적인 오아시스’라 불리는 플럼빌리지에서는 오늘도 전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인종의 벽을 허물고 마음의 평화를 위한 수행에 정진하고 있다. 또한 스님은 해마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를 순회하면서 외롭고 지친 영혼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얻는 방법을 일러주고 있다.





여성동아 2003년 4월 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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