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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서 다행이야’ 펴낸 칼럼니스트 박사·이명석

“고양이는 ‘애완동물’이 아니라‘동거동물’이에요!”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박윤희 ■ 사진·최문갑 기자

입력 2003.03.05 17:57:00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 에세이집까지 펴낸 사람들이 있다. 칼럼니스트로 활약중인 박사와 이명석이 주인공. 개와 같은 다른 애완동물에 비해 고양이의 매력은 독립적이고 개인주의적 성향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고양이 기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들이 살짝 알려주는 고양이의 매력, 그 흥미진진한 세계로 들어가 보자.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펴낸 칼럼니스트 박사·이명석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는? 70년 개띠 동업자 박사(여·33)와 이명석(남·33)은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고양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다. 고양이의 ‘야옹’ 소리에도 떨리는 가슴을 주체 못하는 이들은 고양이 에세이집 ‘고양이라서 다행이야’를 최근 펴내고 그간 고양이와의 ‘수상한 동거’ 사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서울 혜화동에 있는 이들의 공동 작업실에 찾아갔을 때 이들과 동거중인 검은 고양이 ‘요도크’가 탁자 위에서 필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호박색의 투명한 눈빛이 무척 도도하다.
“예전 주인이 동물병원에 버려두고 간 고양이에요. 저희가 첫눈에 반해 데려왔어요. 식물을 좋아해서 작업실 안에 있는 식물을 모조리 뜯어먹었어요. 한번은 허브를 뜯어먹고 그 부작용으로 얼굴이 퉁퉁 부어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어요.”
평소 필자는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터라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었는데 연신 고양이를 끌어안는 박씨의 표정은 무척 평온해 보인다. 마치 아기를 다루는 엄마 같다. 그런데 그녀의 손등은 온통 고양이 발톱에 할퀸 상처 자국으로 가득하다.
“친구의 고양이랑 놀다가 이렇게 됐어요.”
박씨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마침 이씨가 ‘삼색이’라는 얼룩 고양이를 책상 밑에서 안고 온다.
“어제 누가 신축건물 공사장에 버려둔 고양이인데 위험해서 다칠까봐 데리고 왔어요. 주인을 찾을 때까지 보살펴주려고요. 새로 목욕시켰는데 정말 예쁘죠?”
현재 이들과 동거하는 고양이는 요도크와 삼색이 말고도 다섯 마리가 더 있다. ‘노루기’ ‘까루기’ ‘펭귄’은 박씨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이고, ‘사탕발림’ ‘사탕발랑’은 이씨와 동거하는 고양이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근거 없는 편견으로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고양이의 실제 모습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아요. 정말 매력이 많은 동물이죠. 사람한테 의존적이지 않고 굉장히 독립적이에요. 저도 고양이를 보면서 영감을 많이 얻는데 주로 개인주의적이고 예술적 감성을 지닌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해요.”
이씨는 “오후의 졸음을 참으면서 까끌까끌한 혀로 자신의 몸을 빗질하고 일광욕을 즐기는 고양이가 사랑스럽다”고 하고, 박씨는 고양이 특유의 “말랑말랑함이 좋다”고 고백한다.
“머리 끝에서 꼬리 끝까지 꼭꼭 씹어먹을 수 있을 것처럼 말랑말랑한 느낌이 좋아요. 고양이 발바닥, 엉덩이, 배, 코 모두모두 말랑말랑하죠. 고양이와 같이 베개를 베고 하룻밤 자고 나면 알게 돼요. 저에게 특별한 고양이는 더 특별하게 말랑말랑하게 느껴져요. 눈빛도, 목소리도, 애정도, 영혼도 말랑말랑하죠.”
이런 고양이의 외양말고도 고양이만의 개성을 이씨는 더 높이 친다.
“고양이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그들의 뼈와 살을 덮고 있는 고급스러운 모피에 있지 않아요. 세계를 바라보는 유연하고도 단호한 눈동자, 새침함과 용맹함이 함께 깃든 용모, 두근거림과 뻔뻔함이 절묘하게 섞여 들어간 황금률의 매너가 으뜸이죠.”
그래서일까. 이들은 고양이를 가리켜 ‘애완동물’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자신들을 일컫는 ‘고양이 마니아’란 말도 달갑지 않게 여긴다.
“고양이가 ‘애완동물’이라는 말은 개념 자체가 잘못 됐어요. ‘반려동물’ 이나 ‘동거동물’이라고 불러주세요.”
고양이는 생명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이지 결코 ‘장난감’이 아니라는 게 이씨의 주장인데, 이들 역시 고양이의 ‘주인’으로 행세하기보다 ‘조력자’ ‘반려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 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에서도 수직적인 구속 관계보다는 수평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맺자는 것이 ‘고양이라서 다행이야’에 담긴 메시지다.
그렇다고 고양이가 늘 우아함만을 자랑하는 반려동물은 아니다. 사람관계에서 음양이 있듯 고양이와 사람 사이에서도 지지고 볶는 일은 매번 일어난다. 고양이 발톱에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한 니트와 스타킹이 한둘이 아니고, 고양이가 애정표현으로 던져주는 ‘선물’ 공세에 까무러치기 일보직전인 경우도 생긴다.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펴낸 칼럼니스트 박사·이명석

고양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박사(왼쪽)와 이명석(오른쪽)은 정작 둘다 ‘개띠’다.


“밤에 잠을 자다가 언뜻 눈을 떴는데 베개 위에 뭔가가 있어요. ‘아, 뭔지 모르지만 귀엽다!’ 생각하고 다시 보는데 쥐랑 눈이 딱 마주쳤어요. 죽은 쥐가 코를 제 쪽으로 하고 누워 있는 거예요. 벌떡 일어나서 비명을 질러댔죠.”
박씨는 반려동물로부터 쥐 선물을 한두번 받은 것이 아니다. 매미, 귀뚜라미 등의 곤충이나 생선토막은 그래도 귀여운 축에 속하는 선물이지만 토실토실한 쥐의 시체는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박씨는 고양이를 ‘처단’하지 않는다.
“원래 고양이가 육식동물이고 태어날 때부터 강한 야생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인간의 잣대로 나무랄 수 없는 문제잖아요. 고양이 딴에는 저를 좋아해서 최고의 선물을 한다고 그런 것뿐인데….”
박씨는 자신이 사랑하는 동물이 육식동물이라는 것이 상당히 복잡 미묘한 일이라고 언급한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에 대한 열렬한 애정은 주변의 다른 동물, 이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을 돌아보게 해줘요.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어이없이 죽어가는지 깨닫는 것은 굉장한 일이죠. 저는 고양이와 함께 살아감으로써 얻게 되는 큰 장점 중 하나가 그런 깨달음이라고 생각해요.”
실제 고양이를 키우면서 많은 사람들이 보신탕을 먹지 않게 되거나 채식주의자로 돌아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박씨 또한 식탁에서 육식 메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www.freechal.com/ cats)’은 이런 뜻을 공유하기 위해 박씨가 만든 인터넷 동호회다. 현재 3천6백명 가량의 회원들이 고양이 사료, 물품 등에 관한 각종 정보를 교환하고 정기적으로 벼룩시장을 열어 고양이가 갖고 노는 장난감을 서로 사고 팔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무지개 다리 너머 고양이 나라’라는 인터넷 고양이 추모관을 따로 마련해 이미 죽은 고양이를 기리는 추모의 글을 남기기도 한다.
“단지 고양이에 대한 전통적인 미신이나 편견 때문에 ‘도둑고양이’를 잡아서 건강원에 팔자는 둥, 동물원 맹수의 먹이로 제공하자는 둥 온갖 무신경한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이 많아요. 쥐를 죽이는 고양이보다 사람들의 무절제한 살의가 더 두려워요.”
손재주가 많은 박씨는 고양이를 테마로 한 도자기 인형을 곧잘 만들기도 하는데 이들 작업실에 있는 고양이 관련 소품만 해도 옷걸이, 재떨이, 카드, 달력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또 이씨는 어찌나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삼색이의 여러가지 표정과 동작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아낸다.
현재 이들은 신문, 잡지 등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데 영화, 그림, 조각, 만화, 여행, 요리, 사진 찍기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특유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이 운영하는 비평 관련 웹진 ‘사탕발림(www.sugarspray.com)’에 접속해보면 관심분야가 ‘잡탕’이고 ‘노는 게 곧 일’인 이들의 독특한 스타일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개띠 특유의 역마살 때문일까. 이 두 사람은 여행에도 많은 투자를 하는데 네팔, 터키, 프랑스 등을 거쳐온 세계 배낭여행 일지도 사탕발림에 고스란히 올라와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열흘간의 베트남 여행도 함께 다녀왔다며 사진을 내놓는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다다르자 갑자기 이 둘의 ‘수상한 동거’에도 호기심이 발동했다.
“애인 사이냐고요? 저희는 ‘자매’예요(웃음). 감각이 서로 닮아 있어서 편하게 일하는 사이일 뿐이에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자꾸 애인관계로 의심을 해요. 그것도 단계가 있어요. 처음에는 ‘사귀지?’ ‘애인이지?’ 하고 물어요. 2단계는 ‘혹시 애인 아닌 것 아냐?’ 그 다음 저희를 좀더 지켜본 후 3단계째는 ‘애인 아니지?’ 그러면서 호기심을 거두죠.”
두 사람 모두 자유기고 활동을 하는 만큼 마감과 마감 사이에 공백기간이 생길 때 각자 여행가방을 챙겨들고 훌쩍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일까 연애, 결혼에는 그다지 관심없어하는 눈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으로 화제를 돌렸다.
“훌륭한 고양이가 되는 게 소원이에요. 고양이를 가만히 보면 특별한 성취욕 없이 하루하루 만족하며 사는 것 같아요. 저도 지나친 욕심부리지 않고 현실에서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이미 다른 사람들이 그려놓은 지도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가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들고양이’의 호흡 같은 야생성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들과 만나고 돌아온 다음날,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삼색이 녀석 미모만 뛰어난 게 아니라 사람을 홀립니다요. 이멍돌(이명석) 홀딱 빠져서 정신 못 차리고 정신 못 차리는 김에 우, 우리가 키울까…?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봅니다. 으으 정말. (솔직히 이쁘긴 너무 이쁘지…음..^^)’ -박사(baxa)

여성동아 2003년 3월 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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