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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가 되기까지의 삶을 굿 퍼포먼스로 풀어 주목받는 한영애

“‘하다하다 별짓을 다한다’던 남편도 신기를 인정하고 적극 도와줘요”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2.07 18:08:00

굿과 모노드라마를 합친 이색 퍼포먼스로 눈길을 끄는 연극배우 한영애. 그가 실제로 지난해 4월 내림굿을 받은 무당임이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평범한 소녀가 연극배우에서 무당이 되기까지의 인생역정과 불가사의 무속체험 고백.
무녀가 되기까지의 삶을 굿 퍼포먼스로 풀어 주목받는 한영애

지난 연말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선 이색 퍼포먼스 공연이 펼쳐졌다. 공연 자체가 한편의 굿이면서 동시에 무당이 되어야 했던 한 여인의 인생고백을 담은 모노드라마였다. 그런데 출연 배우가 실제 내림굿을 받은 세습무당이고, 자신의 실제 체험을 담은 것이어서 화제가 되었다. 연극배우가 진짜 무당이 된 경우도 드물지만 무당이 무대에서 퍼포먼스처럼 굿을 공연한다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화제의 주인공 한영애씨(37)를 오목교 근처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그를 만나기 전 매서운 눈빛,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상상하던 기자의 선입견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여지없이 무너졌다. 154㎝에 44㎏의 불면 날아갈 듯한 작은 체구에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외모, 애교 띤 목소리, 그 어디에서도 그가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라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았다.
집안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이며 안방에 예쁘게 놓인 부부 침대, 아기자기한 그릇들이 포개어져 있는 주방, 베란다에 걸린 아이 옷가지들…. 어디를 둘러봐도 여느 살림집일 뿐 무속인의 집이라는 체취를 느낄 수 없었다. 작은방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작은방 방문을 빠끔 열자 벽 한쪽으로 신단이 놓여져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불이 켜져 있는 양초들과 한쪽 구석에 놓인 과자, 사탕, 인형, 스케치북 등 동자신을 위한 물건들이 이곳이 신당임을 느끼게 할 뿐, 신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탱화나 불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어요. 기도 중에 신들께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면 그때마다 하나씩 갖춰가고 있는 중이에요. 2월 말경이면 제 몸에 만신이 다 들어오니까 3월이면 신당이 완성될 것 같아요. 총 46분의 신을 받으면 그걸 만신이 들었다고 하죠.”
그가 내림굿을 받은 게 지난해 4월, 신이 내리고 신당이 갖춰지기까지 1년 가까이 걸린 셈이니 다른 무속인들에 비해 늦은 편이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외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대에 오르는 걸 두고 한 말이다.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은 점을 치거나(앉은걸이) 굿을 하는(선걸이) 것 외에 다른 일을 하면 안된다는 게 불문율이다. 그런데 그는 어느 배우보다 바쁘게 무대에 서고 있다.
최근 공연한 에 대해 묻자 그는 그전에 했던 공연 를 포함해 모두 자신의 삶을 퍼포먼스로 꾸민 것이라고 했다. 무녀가 되기 이전, 그리고 무녀가 되고 나서의 인생역정을 다룬 모노드라마이자 자신의 살풀이 씻김굿이라는 것.
“무속에서 가장 중요한 게 오방색이에요. 오방색에 제 삶을 연관시켜 이야기한 것이죠. 파란색은 저의 몸주신, 빨강은 저의 사랑, 노랑은 제가 무당이 될 수밖에 없게 한 나의 조상, 흰색은 씻김, 녹색은 아버지를 상징하죠. 이 공연을 구상한 건 내림굿을 받은 후였어요. 내림굿을 받은 후 ‘나는 무당이다’라고 당당한 척 말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주눅이 들더군요. 제 삶이 서글프기도 하고. 그래서 좀더 당당하게 저 자신을 밝히기 위해 이 공연을 시작한 거죠. 스스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내림굿을 받으며 세습무당 집안이란 걸 알아
그는 이 공연을 통해 아버지와 화해했다고 한다. 신이 내린 상태에서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오방기를 하나씩 뽑게 했는데 항상 마지막까지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녹색, 바로 아버지의 색이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원혼을 위해 해원굿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의 일이었어요. 어느날 어떤 아저씨가 절 부르더니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옷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었어요. 전 신이 나서 따라갔죠.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집에선 난리가 났죠. 집에 가서 어떤 아저씨랑 있었다고 하면서 옷도 사주었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그 옷을 찢어버리며 엄청 화를 내더라고요. 중학교에 올라가서야 ‘아, 그분이 바로 아버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죠.”
그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는 그가 세살 때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나왔다고 한다. 갓 태어난 핏덩이 여동생은 남의 집에 준 채. 그는 그 이유를 전혀 모르다가 내림굿을 받으면서 할머니가 무당이었고, 아버지가 백수로 지내자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어머니가 집을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서울대를 나온 분이었어요. 하지만 당신에게도 무속인의 피가 흐른다는 걸 느꼈나 봐요. 무속인의 운명을 거부하려다 보니 폐인처럼 살게 된 것 같아요.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을 테고.”

무녀가 되기까지의 삶을 굿 퍼포먼스로 풀어 주목받는 한영애

한영애씨는 지난해 4월 내림굿을 받았고 올 3월이면 신당이 완성, 본격적인 무속인의 길을 갈 예정이라고 한다.


피는 못 속이는 것일까.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꿈 해몽을 잘하는 아이로 불렸다. 또 누가 언제 죽는다는 것을 잘 맞혔다. 그의 눈엔 죽음을 앞둔 사람 주위에 서성거리는 물체들이 보였던 것이다. 딸의 그런 모습이 두려웠기에 어머니는 그에게 더더욱 무속인 집안이라는 내력을 숨겼다.
“어렸을 때부터 뭔지 모르는 갈증, 불안감이 느껴졌어요. 그게 무속인의 기질인데 그땐 그게 뭔지를 몰랐죠. 사춘기 때 그걸 풀어준 게 연극이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에 몰두했고 대학도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죠. 졸업을 한 후에도 극단에서 연극을 하며 지냈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상한 느낌이 강해졌다. 그건 연극으로도 풀 수 없는 갈증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까지도 자신에게 무당기가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사회에 나와서도 재미삼아 점을 보러가곤 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무당들이 저더러 신기가 있다고 하면서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거예요. 하지만 연극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말들을 듣거든요. 그래서 그 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기곤 했죠.”
그가 본격적으로 이상한 기운을 느낀 것은 2000년부터였다고 한다. 퍼포먼스 공연을 준비하며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신을 잃고 살풀이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퍼포먼스에서 방울을 흔들고, 오방색으로 자신의 몸을 칠하는 등 자신도 모르게 점점 굿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입에서 공수가 터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남자동료랑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너 어젯밤에 여자랑 잤구나. 곧 망신당하겠는데’ 하는 말이 튀어나와요. 그때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던 그 동료가 일주일 뒤에 조용히 찾아와서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냐’고 상담을 하죠. 한번은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갑자기 쿠웨이트에 가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 입에서 ‘거기 못 가’ 하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남편이 이미 결정이 난 거라고 해도 전 두고 보라며 절대 못 간다고 자신했어요. 진짜 며칠 후에 남편이 못 가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에게 신기가 있음을 깨달은 한씨는 지난해 1월, 무당이 안되기 위해 불사굿까지 벌였다. 불사굿이란 신을 모셔만 놓고 몸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는 굿을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그후 신기가 더 강해진 것이다.
“눈앞에서 용이 날아다니고, 집채만한 호랑이 두 마리가 엉켜 싸우다가 내 몸으로 달려드는 거예요. 절대 꿈이 아니에요. 결국 이게 내 운명이면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자고 생각하고 내림굿을 받기로 했죠.”
“남편이 앞으로 언제 누구랑 바람피울지도 알아요”
내림굿을 받겠다는 말에 그의 어머니는 곧 체념을 했다. 남편 왕창훈씨(38) 역시 처음엔 “하다하다 별짓을 다한다”며 타박을 했지만 누구보다도 옆에서 그의 신기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강하게 말리지는 않았다.
“남편과는 97년에 만났어요. 제가 잠시 카페를 할 때 드나들던 손님이었는데, 남편 친구들의 주선으로 1년 동안 연애를 하다 결혼을 했죠. 제가 그때부터 꿈을 잘 맞히고 이따금씩 톡톡 던지는 예언들이 잘 들어맞으니까 속으로 ‘혹시 저 여자 무당 되는 것 아냐’ 하고 걱정을 하기도 했대요. 설마했던 게 ‘역시나’가 되니까 빨리 체념을 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남편도 내림굿을 받으며 몸주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강릉 노암동 아가엄마로 불리는 무속인을 신어머니로 모시고 내림굿을 받았는데, 처음 신어머니를 만나러 갔을 때였다. 남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당이 느닷없이 남편에게 “아내를 타박하지마. 이게 다 너희 집안을 살리려고 하는 거야” 하면서 남편의 집안 내력을 말하기 시작하는데, 집안의 치부까지 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남편조차 모르는 내용까지 말을 해 확인을 해보았는데 전부 다 사실이었다고.
“남편 집안 이야기를 하기는 좀 그렇지만, 남편에겐 어려서 죽은 형이 있었대요. 남편은 그 형이 소아마비로 죽은 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신어머니가 ‘네 형은 소아마비가 아니라 다른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고 사고로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남편이 슬쩍 어머니에게 확인을 했죠. 너무 가슴 아픈 일이라 어머니가 평생 숨기고 있었던 거예요. 그후 남편도 무속을 믿기 시작했죠.”

무녀가 되기까지의 삶을 굿 퍼포먼스로 풀어 주목받는 한영애

개인을 위한 굿보다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굿을 하고싶다는 한영애씨.그는 지난 겨울 미군 궤도차량에 죽은 여중생 추모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신기한 건 아들 준형(5)이다. 신당 안엔 인형, 사탕, 과자, 스케치북 등 아이가 좋아할 만한 물건들이 많은데도 준형이는 그 물건들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보통 때는 ‘장군님 방’이라고 부르며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화나는 일이 있으면 혼자 신당에 들어가 울거나 그 어린 것이 기도를 하곤 한다는 것.
그에게 내림굿을 받은 사실을 시댁도 알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직 모르고 있다고 했다. 시댁이 멀리 있어 아들집에 온 적이 없기 때문에 신당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제 에 기사가 나면 알게 될 것 같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겠다고 했다.
무녀들은 대부분 부부관계를 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남편과 갈등이 있지 않느냐고 묻자 꼭 그런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각방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신내림을 받은 후부터 누가 내 몸을 만지는 게 싫어져요. 그런데 참 웃긴 게 우리 부부는 신내림을 받기 전부터 잠자리를 같이 하는 횟수가 적었어요. 보통 섹스의 횟수가 부부사랑의 척도인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 부부는 몇달에 한번씩만 섹스를 해도 둘 다 그에 대한 불만이 없어요. 잘 지내요.”
그에게 “아내를 신에게 빼앗겨서 남편이 욕구불만이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바람을 피우면 아내가 무속인이어서 금방 들키게 돼 바람도 피울 수 없을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자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다는 예언이 나왔다는 것.
“지난 10월경 받았는데, 제 동생과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다고 나왔어요. 제 몸주신인 최영 장군님이 여자의 이름까지 일러주더군요. 그래서 남편에게 곧 여자가 생길 테니 바람을 피우라고 했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 동생이 웃으며 그러더군요. 자기는 여자가 생겨 장가가게 되었다며 누나 말대로 형님도 곧 여자가 생길 거라고. 이제 남편 차례예요. 눈치가 벌써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 같아요(웃음).”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게 정말 걱정이 안되냐고 묻자 “가정이 파탄날 정도로 심각한 관계는 안되기 때문에 걱정을 안한다”며 태평이다.
“신랑에겐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요. 저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게 많거든요. 한번은 신이 들어올 때 남편이 저를 잘못 건드려서 제가 한 손으로 목을 잡고 휙 던졌어요. 그러니까 저보다 몸이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붕 하고 나가떨어지더라고요. 그게 남자로서 창피했나봐요. 화장실에 가서 울더라고요. 제가 정신을 차린 후에 위로를 해주었지만(웃음), 미안하죠.”
“한동안 없었던 비행기 사고 올 상반기에 있을 것”
그는 지난 겨울에 있었던 미군 궤도차량에 압사당한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에서 굿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앞으로 그는 민족의 한과 눈물을 씻을 수 있는 굿판을 벌일 계획이다. 그게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무당으로서의 사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속인이 개인의 길흉화복을 알려주고, 개인을 위한 굿을 하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위해, 나라를 위해 굿을 하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공연이 바로 그런 굿인 셈이죠.”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 그의 신기를 알아보기 위해 올해의 국운이 어떨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지난해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지난 월드컵 때 천운은 우리 대표팀의 8강진출까지였어요. 그런데 4강까지 올랐잖아요? 그건 4강을 바라는 온 국민의 염원, 그 에너지가 만들어낸 기적이에요. 지난 대선도 마찬가지였어요. 천운은 이회창 후보에게 있었지만 민심이 국운을 바꾸어놓은 겁니다. 올해도 비슷한 일이 있을 거예요. 국운 자체는 좋지 않아요. 경제도 좋지 않을 것 같고, 특히 4∼5월경에 시끄러운 일이 발생하고…. 하지만 6∼7월이 되면 국민들이 작년 월드컵처럼 다시 뭉쳐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일이 생길 겁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안에 크지는 않지만 비행기 사고가 한번 있을 거라고 몸주신이 말씀을 하시네요.”
그는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적으로 국운을 예언하는 것이라 조심스러운 표정이었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이제 그 예언이 맞는지를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는 기자에 대해서도 몇가지 공수를 해주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고, 집사람 이야기를 할 때는 기침을 자주 하는 것이다. 둘 다 기자만이 알고 있는 아버지와 아내의 오랜 습관이다.

여성동아 2003년 2월 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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