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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홈리스를 위한 안식처 운영하는 <수선화의 집> 김기혜 소장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조희숙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3.02.07 17:05:00

냄새가 나도 얼굴 찡그리지 말 것, 부드럽게 이름을 불러줄 것, 절대로 충고하지 말 것….
<수선화의 집> 김기혜 원장이 여성 홈리스를 대하는 3가지 철칙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그가 소외된 여성들의 ‘친정엄마’를 자청하고 나선 이유는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한다.
♥ 수선화의 집을 돕고 싶으신 독자분은 연락처 02-2644-0713/soosunh@hanafos.com로 문의하거나 국민은행 802-01-0214-248/우리은행 120-403152-02-001 계좌번호로 입금을 하시면 됩니다.
여성 홈리스를 위한 안식처 운영하는  김기혜 소장

여성 홈리스(homeless)들을 위한 쉼터 . 서울 양천구 목동 주택가에 위치한 아담한 이층 양옥집을 개조해 만든 수선화의 집은 병들고 오갈 데 없는 여성들을 위한 따뜻한 보금자리다. 이들에게 아무 조건없이 따뜻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 주인공은 김기혜씨(58). 여성 홈리스의 ‘대모’로 불리는 그는 지난해 4월부터 이곳에 여성 홈리스를 위한 쉼터를 운영해오고 있다.
“이곳에는 남편의 폭력이나 가족의 학대를 피해 가출한 여성들이 대부분이에요.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한 상처를 받은 여성들에게 마음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현재 에 머물고 있는 여성은 모두 15명으로 연령층도 20~60대까지 다양하다. 지난해 4월25일 문을 연 이후 9개월 동안 이곳을 거쳐간 여성들은 약 30여명. 그들 중에는 남편의 폭행으로 이가 모두 빠진 정신지체장애 여성, 3대째 호적 없이 지내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들로부터 도망쳐 나온 할머니, 심지어 얼굴이 기형이라는 이유로 친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여성 등 저마다의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숙소는 주로 역 대합실이나 공중화장실이었다. 처음 가출한 여성들은 대부분 기도원이나 친구집, 찜질방을 전전하다가 나중에는 대형 쇼핑센터 지하주차장, 병원 중환자실, 공원 화장실 등으로 옮겨가며 잠자리를 해결한다고 한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들은 동사무소, 경찰, 여성 및 종교단체 등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오게 되죠. 집 없이 떠돌아도 이들에게 ‘노숙자’라는 말은 합당하지 않아요. 험악한 부랑인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거리에 방치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홈리스(homeless)’라는 말을 써야 맞죠.”
김소장이 여성 홈리스들에게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4년 전의 일이다. 불교단체가 정부로부터 운영을 위탁받은 여성 노숙자 시설인 을 맡으면서 그는 여성 홈리스들을 위한 쉼터의 절실함을 체험하게 되었다.
직접 쉼터를 만들 계획을 세웠지만 당장 쉼터로 쓸 공간을 구하는 일부터 막막했다. 그는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9천만원을 대출받아 목동에 지금의 양옥집을 마련한 후 직접 후원자를 구하러 나서기 시작했다. 가까운 여고 동창생 위주로 후원자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히려 가족들은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묵묵히 후원해주었지만 친구나 주변 사람들은 저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심지어 거지들하고 어떻게 사느냐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친구들은 그냥 편하게 살지 왜 어렵게 살려고 하냐며 비아냥거리거나 충고를 해오기도 했죠.”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몇년 동안 에서 일하면서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믿음대로 오래지 않아 을 후원하겠노라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기 시작했다. 노래강사로 활동중인 구지윤씨나 불교소설가 남지심씨를 비롯한 경남여고 동창생들은 지금까지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다.
을 시작하면서 그는 몇 가지 규칙을 정해두었다. 입소자들에게 불쾌한 냄새가 나도 절대로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다정하게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에게 절대 충고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투명한 운영을 위해 쌀 한톨, 비누 한장이라도 출처를 명확히 밝혔고 얼마 전부터 발행한 소식지에도 수백명의 후원자 명단을 일일이 기재했다.
“그동안 많은 후원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내놓은 후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후원금지출 내역을 공개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간혹 이름을 밝히길 꺼려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되도록 성함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죠.”

여성 홈리스를 위한 안식처 운영하는  김기혜 소장

명문 여대를 졸업하고 외국계회사에 근무할 만큼 엘리트였던 김기혜소장이 여성 홈리스를 돕는 사업에 뛰어든 데는 남 돕기를 좋아했던 부친의 영향이 크다고.


김소장이 여성 홈리스들을 위해 마음 편히 밤낮으로 뛰어다닐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격려와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김소장은 졸업 후 외국계 회사에 근무했을 정도로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 출신. 결혼 후 언론계에 종사하던 남편을 따라 두 차례나 프랑스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남매를 모두 박사로 키워내 자녀교육에도 성공한 남부러울 것 없는 주부다. 그가 이처럼 안락한 생활을 뒤로하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 부친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가 독실한 신앙인이셨는데, 성당 주변에 천막을 치고 집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돌보셨어요. 그런 부친 때문에 저 역시 부모 없는 아이들과 함께 밥 먹고 뛰놀며 자랐죠. 저는 부모가 있어 학교에 다니는데 그 아이들은 그럴 수 없는 게 늘 미안하기만 했어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팔자였는지 “고등학교 시절 가장행렬에서 넝마복장을 하기도 했다”는 그는 대학시절 종로 YMCA 뒤편 넝마촌에서 한글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렇게 봉사활동으로 바깥활동이 잦으면 가정 살림에는 신경을 쓰지 못할 것 같은데, 그는 아이들 모두 박사로 성장시켰다. 서울시립대 사회과학부 강사와 서강대 인문학부 강사로 활동중인 아들과 딸은 그의 독특한 교육법을 받고 자랐다.
집을 담보 잡혀도 묵묵히 지원해준 가족의 격려가 큰 힘
그가 제시한 교육법은 이른바 ‘청개구리 교육법’. 아이들에게 절대로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일찍 불 끄고 자라”는 그의 성화를 피해 아이들이 도리어 베란다 불빛 아래서 공부를 해야 했다고. 그뿐인가. 사립학교 열풍이 불 때는 집 근처에 있는 사립학교를 마다하고 멀리 있는 공립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입학시켰다. 이유는 어려운 친구들과 함께 부딪히면서 자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옷가지나 책들도 대부분 이웃이나 선배들에게 얻어서 입히거나 읽혔다. 특히 아이들의 책은 많으면 도리어 소용없다는 생각에 반드시 한권씩만 선택해 읽도록 시켰다고.
“읽을 책이 너무 많으면 게을러서 책을 읽지 않게 되죠. 딱 읽을 만큼의 책을 주고 필요할 때마다 구해주곤 했어요. 너무 풍족하면 가진 것에 대한 귀함을 모르거든요.”
그는 지난해 여름 서강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여성 홈리스를 위해 제대로 일해보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에서 일할 당시 그는 영등포역과 서울역 등을 뒤지며 하루 4백여명의 여성 홈리스들을 찾아 데려오기도 했다. 때로 포주로 오해받기도 했고, “도망간 부인을 내놓으라”는 남편으로부터 칼로 위협을 받아본 적도 있다.
여성 홈리스를 위한 안식처 운영하는  김기혜 소장

어릴 때 아동보호소에서 생활했다는 윤미화씨(23·왼쪽)는 부모를 찾고 싶다고 일부러 사진촬영에 응했다.


“여성 홈리스들이 처한 상황은 아이들이나 노인들에 비해 시설이 절대적으로 미흡한 편이에요. 아이들은 아동보호소에 가면 되고 노인은 노인복지시설에 가면 되지만, 집 없는 여성들이 갈 만한 ‘어른 고아원’은 없거든요. 이들이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친정 같은 역할을 해주고 싶어요.”
김소장은 지난해 입소자들을 데리고 강원도 삼척과 정선 등지로 여행을 다녀왔다. 입소자들과 기회가 닿는 대로 영화나 연극 구경도 함께한다는 김소장. 한번은 을 단체 관람한 후 정신지체 입소자들이 너무 울어 3명이나 기절한 일도 있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홈리스들을 위한 마땅한 재활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개발한 이런 방법으로라도 사회적응 훈련을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라고 한다.
“강원도 여행 갔을 때 현지 관계자가 ‘이런 사람들도 놀러다니냐’고 놀라길래 화를 낸 적이 있어요. 홈리스들은 놀러다니지 말란 법도 있나요? 제 계획은 이 사람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여행가는 거예요.”
현재 은 정식 법인 복지시설로 인가가 나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정부로부터 단 한푼의 재정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다. 김소장이 자비를 털어 쉼터를 마련하긴 했지만 이곳의 평균 한달 생활비만 4백여 만원이 든다. 집세에 나가는 이자만 70만원, 여기에 관리비, 난방비, 입소자들의 병원비 등으로 지출이 많아, 몇달째 자원봉사자의 교통비조차 못 주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버텨왔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입소자들이 늘어날수록 상담실이나 부업실 등 당장 필요한 제반 시설들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때밀이를 하면서 어렵게 번 돈을 보내주거나, 돈이 없다며 김치나 밀가루 등을 택배로 보내주는 분들을 보면서 항상 반성하게 돼요.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 어울려야 예쁜 꽃 수선화처럼 제가 하는 이 일이 향기나는 세상을 만드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김소장. 그는 “이제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내 자신만을 위한 즐거움이나 욕망은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다른 사람을 돕지만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여성동아 2003년 2월 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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