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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의미 있는 도전

유수연의 성공 스토리

학력고사 영어 10점대의 여학생이 억대 연봉 받는 일류 어학원 영어강사가 되기까지…

■ 글·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사진·박해윤 기자, 소담출판사

입력 2003.02.07 16:56:00

“영어공부, 해외 취업, 대학원 진학 모두 ‘맨땅에 헤딩하기’로 이뤄냈죠”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명강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유수연씨가 에세이집을 펴냈다.
<23살의 선택, 맨땅에 헤딩하기>는 수도권의 이름없는 대학을 나온데다가 영어라곤 알파벳밖에 몰랐던 저자가 어떻게 해외 취업을 하고 ‘억대 연봉’을 받는 유명강사로 성공했는지에 대한 보고서다.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도전하려는 마음”이라고 강조하는 이 여자의 성공 노하우.
유수연의 성공 스토리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성공한 사람은 흔치 않다.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그들이 쏟은 노력과 열정은 흘려버리기 쉽다.나이 서른에 억대 연봉을 받는 인기 강사인 유수연씨(31)의 끼와 깡과 오기로 똘똘 뭉친 ‘서른한해’는 성공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한다.
호주 대학 입학, 영국 아스턴대학원 진학, 미국 하얏트호텔 호텔리어, 정철·시사·이익훈 어학원 등 국내 어학원의 유명강사…. 젊은 여성이 이룬 성과로 보기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튀는 이력들. 그 외양만 보고 사람들은 ‘얼마나 잘났으면 저렇듯 성공할까’ 하고 부러워하겠지만 그는 잘라 말한다. “거저 된 건 하나도 없다”고.
유씨가 처음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건 대학교 4학년 여름 무렵, 스물셋 나이였다. 당시 그는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수도권의 한 이름없는 대학에 다니던 그는 학벌사회인 우리 사회가 ‘삼류대생 딱지 붙은 여대생’에게 얼마나 비정한지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삼류대’라는 딱지를 가지고서는 원하는 직업과 직장을 갖기 위한 시도조차 할 수가 없는 닫힌 현실. 중소기업에서 커피나 타는 초라한 미래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녀는 대안은 없지만 결론부터 내렸다. ‘이 땅을 떠나자!’라고.
ELS 초급반 다니던 실력으로 3개월 만에 호주 대학에 당당히 입학
학벌도, 돈도, 재능도, 자격증 하나도 없던 스물세살의 여대생은 그렇게 해서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명목은 어학연수. 학력고사 영어과목 10점대, 영어로 월 화 수 목 금 토 일요일도 헷갈려하던 ‘공인 영어치’였던 그녀가 ‘영어’를 무기삼아 현실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학연수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수업을 들을 실력이 안된다’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는 호주의 대학시험에 응시, 당당히 합격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여전히 ELS 코스에 머물러 있었으니 놀라움은 더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영어를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영어는 몸으로 익혀야 해요. 제 영어실력은 호주인 친구들과 나눈 수다에서 시작해 수다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전 연수를 가겠노라 말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늘 성격부터 바꾸라고 조언해요. 외국인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 수 있는 배짱과 적극성이 있어야 영어도 빨리 늘거든요.”
아시아계 학생들만 득시글대는 ELS 초급반 수업에 회의적이었던 그녀는 수업이 끝나면 늘 랭귀지 파트너를 만나곤 했다. 그 시간이야말로 ‘살아 있는 영어수업시간’인 셈이었다. 랭귀지 파트너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한국어를 부전공으로 하는 호주 대학생들. 유씨는 하루에 6시간 넘게 친구들과의 ‘수다’에 시간을 할애했다. 하루에 많게는 3명의 랭귀지 파트너를 만날 정도였다. 전날 미리 주제를 정하고 관련 단어를 가지고 문장을 만드는 연습을 하고 실전에 나서기 때문에 파트너를 바꾸어가며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다 보니 영어실력이 일취월장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헤어져 저녁에 들어오면 같은 비디오를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듣다 못해 저절로 귀가 트일 때까지. 그렇게 수십번도 더 넘게 본 영화는 리처드 기어,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이다.
그렇지만 막상 대학 수업을 따라가려니 고역이었다. 일단 어마어마한 공부량에 질렸다. 그뿐인가, 짧은 영어실력으로 2주에 1번씩은 프레젠테이션을 치러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는 다른 생각 할 틈 없이 그저 공부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공부가 재밌어진 것이다. 수백장 씩 읽어야 하는 영어책이 재밌고 수면부족에 시달리면서도 리포트를 써내는 일이 즐거웠다. 그렇게 1년쯤 지났을까. 그의 영어실력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한 관광회사가 실수(?)로 절 통역원으로 뽑았죠. 여기엔 약간의 비리가 있는데, 학비가 부족해 늘 아르바이트를 하는 제 사정을 잘 아신 대학 내 한국어학과 교수님이 절 추천해주셨거든요. 3개월간 유명 관광지와 호텔을 돌면서 통역을 맡았는데, 처음엔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어요. 당시 제 실력은 별로 좋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3개월쯤 하다 보니 처음 듣는 단어가 나와도 술술 통역할 정도로 영어가 늘더군요. 이 경험을 통해 전 귀중한 교훈을 얻었어요. 그건 ‘닥치면 다 한다’는 거예요.”
‘닥치면 다 한다’ ‘맨땅에 헤딩한다’ 이 두 문장만큼 유씨가 사는 방식을 콕 집어낸 말이 또 있을까. “누구도 자신의 능력을 미리 알 수는 없으며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열심히 하다 보면 되게 돼 있다. 문제는 맨땅에 헤딩할 자유의지가 당신에게 있는가” 말하자면 오기와 근성이야말로 그가 성공한 핵심 키워드인 셈이다.

유수연의 성공 스토리

삼류대 딱지 붙은 여대생에서 일류강사로 거듭 난 유수연씨. 그는 “자신의 학벌만 탓하지 말고 세계로 눈을 돌리라”고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


1년 2개월의 호주생활을 접은 그는 귀국해서 영어강사를 맡았다. 처음엔 보습학원부터 출발했지만 이내 강사생활에도 탄력이 붙었다. 국내에서 꽤 유명한 정철 어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맡게 된 유씨. 영어라고는 알파벳밖에 모르던 그가 자신보다 더 좋은 대학, 직장을 다니는 이들에게 영어를 강의하는 것이다. 특히 ‘비즈니스 영어’에 강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그는 삼성을 비롯한 국내 굴지의 기업 사내 강의도 도맡았다. 하루 10시간씩 강의를 하는 강행군. 스물다섯에 이처럼 강사로서 탄탄히 자리잡았지만 그는 또다른 도전을 꿈꿨다. 그것은 바로 대학원 진학이었다.
“우연히 들른 유학원에서, 더 늦기 전에 대학원에 진학해야겠다고 말을 꺼냈어요. 그랬더니 대뜸 ‘이름있는 외국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일류대를 졸업한 것도 아니니 미국이나 영국의 명문대학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오냐, 두고 보자’ 오기가 생기더군요.”
서류를 준비해서 대략 30~70위권의 대학에 원서를 접수했지만, 결과는 낙방. 준비 비용으로 쓴 50만원만 헛되이 날렸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좌절 앞에서는 더욱 독해지는 그답게 꾀를 내었다. 가짜 입학 허가서를 만들어 부모님께 보이고 외국 대학원에 합격했다며 거짓말을 한 것이다. 억척스레 강의하며 모은 돈을 들고 무작정 영국으로 떠났다. 지금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시도였지만 당시엔 그만큼 절박했다.
97년 7월 런던에 도착한 그는 랭귀지 코스를 다니며 영국교육청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경영학 전공을 살려 비즈니스 스쿨에 가고 싶었던 그는 영국 내 비즈니스 스쿨의 순위를 조사하고 정보를 모았다. 대학원 지원 마감은 한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 약 20쪽에 달하는 리스트를 만들었다. 거기엔 아스턴, 크랜포드와 같은 신진 명문학교를 포함해 런던, 옥스포드와 같은 전통의 명문학교까지 포함돼 있었다. 국내 유학원 담당자에게 보란 듯이 그는 정성스레 쓴 지원서를 10위권 이내의 학교에 보내기 시작했다. 지원서만 보내는 것으로 머물지 않고 일일이 담당자와 통화하고, 인터뷰 시간을 약속받았다. 런던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는 리즈와 남쪽의 브래드포드까지 오가면서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던 나날. 또다시 인터뷰를 준비하던 어느 날 아침, 그는 드디어 아스턴을 포함한 3개 학교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야말로 피 말렸던 한달의 고생 끝에 비로소 찾아온 값진 성공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대학원 겨울학기를 끝내자마자 귀국을 해야 했다. 97년 IMF 위기는 그라고 봐주지 않았다. 그렇게 눈물을 삼키며 돌아간 서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적자에 방치된 한 레스토랑이었다.
“부모님이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모아 개업한 레스토랑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지경이었던 거예요. 융자금 상환도 멀었는데, 그야말로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었어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겨우 힘들게 대학원 진학을 했더니, 레스토랑 운영을 도우라니 눈앞이 캄캄할 수밖에 없었죠. 말이 좋아 레스토랑이지 술집이잖아요. 그래도 모질게 마음먹었어요. 이곳을 반드시 성공시켜서 위기를 이겨낸 후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그렇게 해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외식일에 뛰어들었죠.”
그는 일단 고급스런 레스토랑 대신 저렴한 호프집으로 인테리어를 바꿨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배운 경영학을 접목시켜 멤버십 카드를 발행하고 각종 이벤트를 벌이는 등 타 업소와 차별화된 전략을 시도했다. 종업원들의 서비스 역시 그가 직접 나서서 가르쳤다. 친구와의 만남이나 외출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2년 여를 그렇게 하루종일 가게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의 이런 노력 탓인지 다행스럽게도 점차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 일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집으로 꼽힐 정도가 됐다. 물론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른바 ‘삐끼’를 이용해 홍보 전달물을 돌리다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고, 인근 업소의 투서로 그가 경찰서까지 다녀온 일도 빈번했다.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내가 이 유흥가 뒷골목에서 뭐하고 있나…. 그때 참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정말 다시 돌이켜봐도 가장 힘든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2년 만에 가게가 팔리던 날, 그는 맘껏 울었다. 이제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안도감에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영국으로 출발하기 직전까지 그는 학비를 모으기 위해 시사어학원에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마이크를 붙들어야 했다. 그러나 부모는 석사를 마치겠다는 그의 결심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직 IMF의 여진으로 휘청이는 가계 살림을 나 몰라라 떠나는 게 섭섭했고, 강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굳이 외국으로 떠돌 생각을 하는 큰딸이 마뜩찮았다.
그러나 부모의 기우를 뒤로하고 그는 떠났다. 그리고 창틀에 자살방지대까지 달린 기숙사에 틀어박혀 공부에만 매달렸다. 입학보다 졸업이 어렵다는 영국 석사과정. 한 학기마다 기숙사생이 바뀔 정도로 학업 스트레스가 극심하다는 그곳에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것도 졸업기한을 1년이나 남겨놓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내 미국 하얏트호텔 인턴으로 취직한다.
“해외 취직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건 이력서예요. 호텔용, 컨설팅용, 일반 마케팅용으로 이력서를 전부 다르게 준비한 다음 원하는 회사에 보내고 반드시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묻곤 했죠. 그러던 중에 드디어 하얏트호텔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았어요.”
하얏트호텔에서 그의 이력서에 대해 감명을 받은 부분은 ‘레스토랑 운영 경험’이라고 했다. 2년여 동안 자연스레 체득한 외식 산업에 대한 이해와 실무지식을 높이 산 것이다. ‘악전고투하며 버틴 그 2년’이 도리어 이런 반전을 낚아주다니. 그야말로 위기가 기회라는 걸 실감하게 됐다고나 할까.
눈 덮인 로키산의 하얏트호텔. 70명의 인턴사원 중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그는 막노동에 가까운 인턴과정을 무사히 끝내고 국내로 돌아왔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세상을 접했지만, 선뜻 그곳을 직장으로 선택하고 싶진 않았던 탓이다.
2001년 귀국, 예전 직장인 시사어학원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토플 전임강사에 비즈니스 영어 전임강사까지 하루 12시간 강행군, 평균 수면시간 4시간에 불과한 나날들. 2002년에는 이익훈어학원, 얼마전에는 임귀열어학원으로 옮겼다. 어느새 그의 몸값은 억대로 뛰어올랐고 학원가뿐만 아니라 굴지의 대기업, 일류 외국계 호텔 등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이쯤하면 한 템포 쉬어가기도 하련만 아직도 그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제게 곧잘 물어요. ‘그렇게 해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꿈은 뭐예요?’ 그런데 전 그런 질문을 들으면 참… 할 말이 없어요. 전 그냥 제 자신을 현재 진행형으로 두고 싶어요. 목표가 정해지고 그걸 이루는 순간, 이미 정체는 시작되는 거잖아요. 전 제가 늘 앞서 나가길 원해요. 그저 생활에 안주해서 적당히 퍼져 있는 그런 모습으로는 살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가 가진 막연한 꿈 중 하나는 하버드 진학이다. 하버드에 가서 굳이 무엇을 전공하겠다는 계획은 없다. 그저 어릴 적 TV에서 방영되던 의 주인공들을 동경했듯이 그저 꿈꿔볼 따름이다. 언젠가 자신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쯤 유씨는 하버드의 문을 두들길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도전! 그 느낌에 다시금 중독되고 싶어서 말이다.

여성동아 2003년 2월 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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