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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이런 곳도 있어요

국내 최초의 성 풍물관 탄생

젊은 연인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관심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김정미 ■ 사진·문상운

2003. 02. 05

지난해 12월6일, 부산 중구 남포동에 국내 처음으로 ‘세계 성 풍물관’이 문을 열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부산에서 30년째 비뇨기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차영일 원장이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성에 관련된 기구와 인형, 미술작품, 조각, 춘화 등 3백여점의 다양한 성풍물을 선보이고 있는 것. 젊은 연인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 현장으로 가보았다.

국내 최초의 성 풍물관 탄생

성을 건전하게 유도하기 위해 성을 공개하는 장소를 마련했다는 차영일 원장.


70대 노인의 성과 사랑을 적나라하면서도 담담하게 묘사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 <죽어도 좋아>. 나이가 들면 더 이상의 뜨거운 밤도, 사랑도 없을 것이라는 젊은 청춘들의 오만과 편견을 일흔 나이의 두 주인공은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렸다. ‘아들 하나만 낳아달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사랑을 나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들에게 섹스는 지금 죽어도 좋을 만큼 여한 없는 절실한 삶이며, 인생이며,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한편 몇해 전, 사회적인 큰 반향 속에서 열광적인 호응과 지지를 한몸에 받았던 구성애씨의 ‘아우성(아름다운 우리들의 성의 줄임말)’을 정점으로 하여 최근까지도 축축한 음지의 성을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12월6일, 건강한 문화로서의 ‘성’을 알리기 위한 성 풍물관이 부산에서 문을 열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름하여 ‘세계 성 풍물관’이 바로 그곳.
부산 중구 남포동에 위치한 이곳은 30년째 비뇨기과를 운영하고 있는 차영일 원장(63)이 발벗고 나서서 자신의 병원 4층에다 10평 남짓한 규모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성 풍물관이다. 사실 유교문화적 성향으로 인해 유독 성에 관해서만큼은 폐쇄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성 풍물관’은 자칫 생경하게 보일 수 있으나 이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나, 덴마크, 일본 등지에서는 전세계의 진귀하고 흥미로운 성 관련 풍물들과 섹스기구를 한자리에 모아 전시한 박물관이 여행객에게 색다른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스위치를 켜면 야릇한 신음 소리와 함께 남성의 아랫도리를 자극하는 여성의 음순, 건드리면 불끈 치솟는 남성성기 모양의 각종 여성 자위용 기구들, 조선시대 양반 호색가들의 성행위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춘화집, 성인 키 높이에 두 손을 뻗어 껴안아도 모자랄 만큼 큰 초대형 금동 남근, 각양각색의 체위를 구사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단숨에 제압하는 인도, 일본, 터키, 포르투갈 등 세계 각국의 조각품과 인형, 게다가 가부좌 모습으로 근엄하게 앉아있지만 밑동을 뒤집어보면 요부와 섹스의 희열을 만끽하고 있는 돌부처상에 이르기까지, ‘세계 성 풍물관’에는 각 나라의 성 관련 토기와 목공예품, 그리고 조각과 그림, 사진 등 3백여 점이 소장돼 있다.
또한 여기에는 동남아 원주민의 성에 관한 주술적, 숭배적 의미를 담고 있는 토속품들도 상당수 차지하고 있는데 피카소의 성화 복사본과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춘화가 특히 눈길을 끈다. 성풍물관은 이밖에도 성기능 장애 치료를 위해 현재 사용되고 있는 수술도구와 주사제, 약품 등도 함께 비치해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교육적 효과까지 더한다.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성 박물관과는 그 규모에서 비교할 수 없지만, 이곳 풍물관에 전시된 전시품들은 차원장이 지난 80년대부터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수집한 것들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처음엔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진귀한 수집품들이 하나하나 늘어갈 때면 다들 신기한 듯 요리조리 만져보면서도 한편으론 망측하게 뭐 저런 걸 다 수집하냐는 듯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죠. 특히 세관을 통과할 때면 아예 성도착증 환자가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있었죠. 심지어 친구, 가족들까지도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많은 사람들의 의심어린 눈초리를 불식시키기 위해 해외여행을 나갈 때면 꼭 자신의 진료과목이 박힌 명함만큼은 1순위로 지갑에 챙겨 다닌다. 세계 각지의 성풍물을 수집하면서 느낀 가장 큰 고충은 뭐니뭐니 해도 보관, 운반의 어려움이다. 탐은 나지만 덩치가 너무 큰 탓에 도무지 옮겨올 방법을 찾지 못해 아쉬움만 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발리에서 구한 작은 조각품을 그의 집까지 가져오는데, 무려 24시간이 넘는 동안 한번도 손에서 놓지 않고 온 탓에 몸살까지 날 정도였다고 한다. 이곳 풍물관에 전시된 작품들 가운데는 차원장의 소장품 외에도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성문화회 회원과 동료 등 주위에서 기증한 작품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국내 최초의 성 풍물관 탄생

성 풍물관에는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3백여점의 성관련 용품과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풍물관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다 보니 관람층 역시 다양하다. 60, 70대 남성들, 신세대 젊은 여성들도 있으며, 이성친구와 함께 성에 대해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누며 진지하게 관람하는 젊은 연인들도 상당수다.
“시대가 변한 만큼 성에 대한 인식도 점차 변화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사실 비뇨기과만 해도 예전엔 그저 남성들의 성병치료가 전부인 것으로 인식돼왔지만, 요즘엔 불감증을 호소하는 여성들까지 비뇨기과를 찾아 상담을 의뢰하고 있어 성의학으로서의 그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습니다.”
“성에 대한 금기 때문에 마치 더러운 것으로 인식되어온 성을 올바르고 건전하게 유도하고자 성을 공개하는 장소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개관 취지를 설명하는 차원장. 그는 성풍물관을 성기능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 치료공간으로 활용함은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장소로도 공개할 계획이다.
섹스용품 들고 세관 통과할 때 성도착증 환자로 의심받기도 해
부산 지역민과 더불어 전국 각지에서 기대 이상의 성원을 보내주는 덕에 요즘엔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차원장. 그는 이 모든 공을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성문화회’ 회원과 뒤에 서서 보이지 않게 도움을 준 지인들에게로 돌린다. 이곳 풍물관에 전시된 작품들 가운데는 성문화회 회원들과 동료 등 주위에서 기증한 작품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한국성문화회’는 서양화가, 판화가, 산부인과 의사, 문학평론가 등 성에 관심이 많은(?) 각계 전문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모임이다.
오래전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부산대 산부인과 김원회 교수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중 의기투합, 지난 98년 결성한 ‘한국성문화회’. 정기적인 세미나는 물론이고 ‘다솜’이라는 회보까지 격월간으로 발행, 성에 대한 담론과 전문 성의학지식, 그리고 세계의 진귀한 성문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웬만한 도색잡지 뺨칠 만큼 충격적인 그림과 사진들로 빽빽이 채워진 회보 ‘다솜’. 사진 자료의 사실성과 방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만큼은 성적호기심을 유발하는 단순한 눈요기거리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포경수술에서부터 섹스테크닉, 생식기질환 등 다양한 의학적 조언과 함께 우리 성문화에 대한 성찰을 담은 글들은 차원장을 비롯해 성문화회 회원들이 지향하는 바를 잘 말해준다. 그래서 아예 명함도 두 가지를 함께 갖고 다닌다. 한쪽에는 현업의 위치,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한국성문화회 회원직함을 넣을 만큼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지방의료인으로서는 최초로 대한비뇨기과학회 회장으로까지 선임될 만큼 성의학에 관해서만큼은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차원장.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빠듯한 일과 속에서도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청소년들을 위한 성교육 강연이 그것. 벌써 수십년째 해오고 있는 일이지만 요즘엔 강연이 종종 힘에 부치곤 한다. 그 이유는 다름아니라 인터넷이다 뭐다 해서 아이들이 그 정체조차 알 수 없는 불온한 성에 무차별 노출되다 보니 의사가 하는 학교 성교육쯤은 아주 장난스레, 대수롭지 않게 치부해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진 성, 그래서 더욱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성을 만드는 주체가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기에 청소년 성교육만큼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그는 믿고 있다. 성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가장 인간적인 체온이 녹아있는 아름다움의 결정체라고 말하는 차영일 원장. 그의 노력들과 함께 우리의 성문화가 맑은 햇살 속에서 건강하게 빛나길 기대해본다.
‘세계 성 풍물관’은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면 누구나 관람이 가능하며, 입장료는 무료.(관람시간 : 월~토, 오전 11시~오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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