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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솔직 인터뷰

화제의 드라마 <눈사람>에서 멜로 연기 도전한 조재현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김수경 ■ 사진·MBC 홍보실 제공

2003. 02. 03

영화 속 ‘나쁜 남자’가 브라운관의 ‘착한 남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 주인공은 조재현. MBC 수목드라마 <눈사람>에서 착한 아내와 철부지 처제 사이에서 갈등하는 형사 필승으로 열연중이다.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돼보고 싶었다”는 그가 밝힌 드라마 뒷얘기와 요즘 생활.

화제의 드라마 에서 멜로 연기 도전한 조재현

드라마 <눈사람>에서 처제와 사랑에 빠지는 강력반 형사로 인기 끄는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질풍노도’의 10대를 보내고 대학에 떨어진 뒤 군대를 다녀왔다. 뭘 할까 고민하다 경찰이 됐다. 타고난 복인지 인형처럼 예쁜 스튜어디스를 아내로 맞이했다. 게다가 그 아내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혼자 동생을 뒷바라지해서 키울 만큼 착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말을 지겹게 안 듣는 어린 처제 하나가 속을 썩인다. 툭하면 반항하고 가출까지 한다. 그런데 처제를 보면 왠지 자신의 방황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안쓰럽다. 아니, 동정인 줄 알았던 그 감정이 어쩌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언니가 그 남자를 약혼자라고 소개했을 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명을 위협당하는 일을 하면서도 박봉에 시달려야 하는 경찰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남자, 마음이 따뜻하다. 비행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우는 언니를 대신해 나를 헌신적으로 돌봐준다. 사고뭉치이던 내가 마음을 잡고 경찰이 되기로 결심한 것도 그 남자 때문이다. 그를 사랑한다. 어쩌면 좋을까.
최근 MBC 드라마 <눈사람>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 처제와 형부의 위험한 사랑을 다뤄 자칫하면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을 만도 한데,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방영 2주 만에 시청률 20%를 훌쩍 넘어섰다. 그 한가운데 이 남자, 조재현(37)이 있다. 결코 크지 않은 키(172cm)에 미남도 아니지만, 오랫동안 조연생활을 하며 드라마, 영화, 연극을 통해 다져온 그의 연기력은 시청자들을 흡인시키기에 충분하다.
조재현에게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재주가 있다. SBS 드라마 <해피 투게더> <퀸> 등에서 보여준 코믹한 캐릭터는 그의 실제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인터뷰 내내 만담에 가까운 유쾌한 말솜씨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주도했다. 기자에게 명함을 건네받은 그는 그위에 펜으로 무엇인가를 적었다. 고개를 빼 훔쳐보려 하자 당황하며 뒤로 감춘다.
“워낙 여러 사람에게 명함을 받으니까 누가 누군지 기억할 수 없어서요. 일종의 암호를 적은 거죠. 나중에 기억할 수 있게. 하하.”
그가 이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데는 좀 독특한 사연이 있다.
“탤런트 김래원씨랑 같은 소속사예요. 하루는 이 친구가 사무실에서 뭘 읽고 있더라고요. <눈사람> 시놉시스였어요. 심심해서 ‘나도 좀 보자’고 했죠. 참 뭉클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라? 극중 형부가 있네? 그래서 이창순 PD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죠. 그래서 출연하게 됐어요.”
그는 SBS 드라마 <피아노>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 김기덕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 타인에게 부과된 성격이란 뜻으로 영화에서는 감독과 세상을 매개하는 특정한 배우가 존재할 때 주로 사용되는 용어)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영화 <섬>에서는 티켓다방 주인, <수취인불명>에서는 개장수, <나쁜 남자>에서는 포주로 등장해 늘 잔인하고 폭력적인 캐릭터를 구사해왔다.
“저도 이제 인간다운 역할 좀 해보고 싶어요(웃음). 만날 여자 때리고 팔아먹는 포악한 역만 했으니…. 그동안 캐릭터가 너무 극악무도해서 조재현은 원래 저런 놈이라고 생각할까 봐 겁나요.”
“처제와의 사랑?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PD 작품은 ‘명품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애인>을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소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용달차로 집에 있는 물건을 가져다 쓰는 사람이에요. 감독을 신뢰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에피소드죠. 그런데 걱정이네…. 저 때문에 ‘명품 드라마’가 ‘중저가 드라마’가 되면 어떡하죠?(웃음)”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을 듯하다. 미묘한 심리 묘사가 관건인 이 드라마에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감정의 디테일을 살려내는 조재현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품’에 가깝다는 평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PD는 그가 소구력이 매우 강한 배우라고 했다. 미남은 아니지만 느낌이 강하게 전달되는 배우. 이 PD는 ‘형부와 처제의 사랑’이라는 윤리적 문제제기를 비켜가기 위해 드라마를 만드는 데 있어, 현실에 강하게 기반을 둔 ‘다큐멘터리 같은 멜로’를 표방했는데, 그가 제시한 틀에 딱 들어맞는 배우가 바로 조재현이라고 했다.
“조재현 정도 돼야 그 느낌을 제대로 파악하고 전달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지상파 드라마에서 다루기에 다소 위험한 소재라고 걱정하는 분이 많았지만, (그를 믿기 때문에) 걱정이 안돼요.”
제대로 된 연기가 나오려면 극중 배역에 몰입해야 하는 법. 처제와 형부의 사랑을 가능하다고 보는지 묻자 잠시 말을 아끼는 듯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해의 정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죠. 물론 그런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주변에도 그런 사례가 제법 많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 경우로 소급해보면 글쎄요… 모르겠어요.”
그는 현재 영화 <청풍명월>과 <스턴트 맨>을 촬영중이다. 몸이 세개라도 모자랄 지경. 다작(多作)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본인도 인정했지만, 그는 오랜 조연생활로 연기에 대한 갈증에 시달려왔다.

화제의 드라마 에서 멜로 연기 도전한 조재현

조재현은 드라마 극본이 너무 좋아 이창순 PD에게 직접 전화를 해 출연을 자청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배역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어요. 해보고 싶은 역할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드라마 <피아노>의 성공으로 제게도 여러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했고 배역 욕심이 많아진 거죠.”
다작 출연에 대해 회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매년 연극무대에도 꾸준히 섰던 그가 지난해에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인기 좀 얻었다고 해서 배고픈 연극무대에는 서지 않는 사람들을 제일 경멸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딱 그 꼴이 났네요(웃음). 연극 하는 선배들이나 팬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올해는 김갑수 선배랑 꼭 연극 하기로 약속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무대에 설 겁니다.”
그의 욕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틈틈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그는 프로듀서로 데뷔하는 것이 새해 가장 큰 소망이라고 한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사랑이라는 걸 하고 죽을 수 있을까? 죽기 직전, ‘당신은 사랑을 해보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있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이런 질문을 담고 있는 영화예요.”
극중 상대역 공효진과는 15년 차이. “별차이 안 난다”고 우겨댔지만 그에게는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이 있다.
“효진이가 우리 아들과 같은 1980년대생이라고 생각하면 좀 이상해요. 세월 정말 빠르네요.”
드라마의 제목이 왜 <눈사람>일까. 4회까지 방영되면서 처제 연욱(공효진)의 입을 통해 그 의문은 풀렸다. 만들 때는 한없이 신나지만 해가 뜨면 사라지고 마는 눈사람. 연욱에게 형부는 ‘눈사람’이다. 그만큼 열렬하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암시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 드라마를 통해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조재현의 인기를 반영하는 중의적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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