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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백혈병, 아버지는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윤정이네 사연

입력 2003.02.03 16:37:00

아이는 백혈병, 아버지는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윤정이네 사연
백혈병을 앓기 전까지 윤정이는 너무 많이 먹는다고 할 만큼 잘 먹고 잘 크는 아이였다. 건강하기만 하던 윤정이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여름부터.
“그렇게 잘 뛰어놀던 아이가 기운이 없고 자꾸 잠만 자고 싶다고 하더군요. 어떨 땐 초저녁에 잠들어서 다음날 12시가 되도록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피곤해하는데. 처음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던 과자며 사탕도 전혀 입에 대질 않고 밥도 거의 먹질 않아서 동네병원을 찾았어요.”
의사의 권유로 다시 큰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급성 골수구성 백혈병. 백혈병이란 암세포가 혈액의 정상적인 작용을 방해하고 결국, 혈액을 따라 암세포가 전신으로 퍼져 목숨을 잃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특히, 급성 골수구성 백혈병은 백혈병 중에서도 완치가 어려운 병으로 알려져 있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윤정이는 바로 무균실에 입원하여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추석이 막 지난 무렵이었다.
“처음엔 너무 기가 막혀 병 수발도 제대로 못했어요.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제가 처한 상황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사람들도 모두 싫고 제 운명이 원망스럽기만 했어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죠. 주변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막막하기만 했어요.”
윤정이 아빠 최태식씨(43)는 허리디스크가 악화되어 꼼짝할 수가 없고, 형제는 물론 가까운 친척 하나 없는 엄마 우찬희씨(35)는 친정어머니마저 병으로 누워 계시기에 홀로 모든 일을 감당해야만 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제 모습을 보고 주위 분들이 ‘엄마가 희망을 갖고 정신을 차려야 윤정이를 살릴 수 있다’며 꾸지람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었어요. 주변 여러분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죠. 어떤 간호사는 혼자 병간호하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며 끼니마다 밥을 푸짐하게 챙겨주기도 했어요.”
여섯살 윤정이에게 3주 동안 계속된 항암치료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독한 항암제 때문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그나마 어렵게 넘긴 음식을 노란 물이 나올 때까지 토해내고는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우씨의 마음은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백혈병이란 사실을 알기 전에 윤정이가 자꾸 고기가 먹고 싶다며 갈비를 사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도 형편이 너무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어린애가 무슨 고기냐고 타박을 했어요. 또 자꾸 힘들다며 업어달라고 보채서 혼을 낸 적도 있어요. 그게 모두 아파서 그런 건데 그걸 모르고 아이만 나무랐으니…. 그 생각만 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윤정이는 의젓하게 치료를 견뎌냈다.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으면서도 우씨가 힘겨워할 때면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는 대견한 딸이다. 40여일간의 항암치료는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다. 퇴원 후 윤정이는 잘 먹고 잘 놀아 살도 다시 올랐다.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버렸지만 윤정이는 개의치 않고 밝게 생활하고 있다.
윤정이 외에도 우씨에겐 또하나의 걱정거리가 있다. 아빠 최씨가 몇해가 지나도록 허리디스크에 시달리며 거동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의류 수선업을 했던 최씨는 일벌레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결혼 후에는 일욕심에 하루 12시간이 넘도록 억척스럽게 일을 했다.

아이는 백혈병, 아버지는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윤정이네 사연

윤정이 수술비와 치료비 때문에 생활이 막막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가족들.


그러나 그게 화근이었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재봉틀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일을 십수년간 해온 최씨의 허리에 무리가 온 것이다. 처음엔 간단한 치료로 통증을 참았지만 갈수록 증세는 악화되기만 했다. 윤정이가 태어날 즈음 최씨는 일을 할 수 없도록 증세가 심각해졌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걷지도 못했어요. 집밖 출입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죠. 몇년 동안 온갖 방법으로 치료를 했지만 차도가 없더군요.”
그 동안 우씨는 봉투 붙이는 부업에서부터 호떡 장사, 막노동 등 남편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런 아내를 그저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최씨의 심정은 절망스럽기만 했다.
원래 최씨는 지난해 10월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윤정이의 발병으로 최씨의 수술은 무작정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윤정이가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최씨는 애만 태워야 했다. 거동이 불편하여 백혈병과 싸우는 어린 딸을 곁에서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최씨는 이를 악물고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윤정이를 생각하면 디스크의 고통도 잊을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은 천천히 걷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병세가 호전되었다. 윤정이 가족에게 닥친 시련이 작은 기적을 낳은 셈이다.
“윤정이가 백혈병이라고 했을 때는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어요. 모두 저의 잘못인 것만 같았죠. 결혼 후부터 계속 안 좋은 일만 생기다가 윤정이마저 남 얘기인 줄만 알았던 그런 병에 걸리니, 정말 모든 걸 포기하고 죽고만 싶었어요. 그런데 애들 아빠가 윤정이를 반드시 살리자고 힘을 주더군요.”
우씨는 김치며 반찬거리를 싸주는 이웃, 동생 의정이(5)를 무료로 돌봐주는 어린이집, 성금을 모아온 성당 교우들…. 윤정이를 돕는 주위 사람들의 손길에 처음으로 이웃간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윤정이는 현재 조혈모 세포 이식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흔히 골수 이식 수술이라고 알려진 이 수술만이 백혈병을 완치할 수 있다. 다행히 동생 의정이의 골수가 이식 적합한 조직형으로 판명이 났다. 그러나 2천만원이 넘는 수술비와 치료비가 문제. 주변의 도움으로 수술비는 간신히 마련을 했지만 무균실에 입원해야 하는 윤정이의 뒷바라지에 들어갈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집까지 팔았지만 5천만원의 빚이 윤정이네가 가진 전부다.
“하늘이 도와서 의정이의 골수를 이식받을 수 있다고 하니, 어떻게든 치료비를 마련해야겠지요. 다시는 약한 마음 안 먹을 거예요. 윤정이만 낫는다면 뭘 못하겠어요? 아직 젊은데, 평생 갚아나갈 겁니다.”
힘주어 말하는 우씨는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마치 언젠가는 윤정이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듯이.


여성동아 2003년 2월 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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